인생 리셋 오 소위! 250화
25장 일이 점점 커지네?(5)
“어디 가?”
“화장실에 똥 싸러 갑니다.”
“아, 자식. 더럽게……. 빨리 갔다 와.”
“네.”
강대철 이병이 그것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아,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면 되겠네. 그것도 똥 싸러 말이야.’
강대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김일도 병장에게 말했다.
“김 병장님.”
“왜?”
“저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화장실? 하필 왜 지금이야?”
“급똥 신호가 왔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급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일도 병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빨리 갔다 와! 예불 시작하기 전에 와야 해.”
“네,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부랴부랴 법당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위를 잠시 확인한 후 곧장 법당 뒤쪽으로 뛰어갔다. 임찬규 병장이 말한 대로 그곳에 작은 공터가 나왔다.
“여긴가?”
강대철 이병이 주위를 확인했다. 역시나 철조망이 떡하니 있었다.
“여기구나.”
그리고 고개를 들어 철조망 건너편을 확인했다. 저 멀리 아파트가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하, 저 아파트구만! 그럼 이것만 넘으면 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철조망이 생각보다 높고, 철조망 꼭대기에 가시가 박힌 철조망이 또 쳐져 있었다.
“아,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데…….”
하지만 자세히 보니 빈틈이 보였다.
“어? 저기라면…….”
강대철 이병이 결심을 하고 주위를 확인했다. 일단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난 후 머리에 쓰고 있던 전투모를 철조망 너머로 던졌다.
별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만에 하나 철조망을 넘다가 들켰을 때 전투모를 주우러 갔다고 둘러댈 요량이었다.
“좋아, 가자!”
강대철 이병이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철조망을 올라갔다. 그런데 거의 꼭대기에 올라갔을 때쯤 설법을 전하러 온 스님에게 발견되었다.
“어어어, 이보게! 이보게!”
강대철 이병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스님은 강대철 이병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자네 지금 뭐하나?”
“아, 저기 그러니까……. 모자! 전투모가 반대편에 떨어져서 말입니다.”
“전투모?”
스님이 바짝 다가가 철조망 건너편을 바라봤다.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만치 전투모 비슷한 게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강대철 이병의 머리에 전투모가 없으니까 정말 전투모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다만 사람 키를 훌쩍 넘기는 철조망 너머로 어떻게 전투모가 넘어갔는지가 의문이었다.
“그래도 위험해! 어서 내려와.”
“안됩니다. 전투모 없으면 전 영창입니다.”
“거긴 위험해! 풀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거기 생각보다 높아!”
그 말에 강대철 이병이 당황했다.
‘진짜야? 높아? 아니지, 저기 올라온 평지와 비교하면 그리 높지 않은 거 같은데. 아니면 풀 때문에 안 보이는 건가?’
강대철 이병은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저, 전투모 꼭 가져가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강대철 이병이 반대쪽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런데…….
푸드드드득.
풀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강대철 이병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악!”
깊은 풀숲에서 다리를 부여잡은 강대철 이병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스님의 말처럼 풀 때문에 바닥이 보이지 않았고, 강대철 이병은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을 했다. 그래서 과감히 뛰어내렸는데 생각보다 깊게 떨어져 발을 접질린 것이었다.
스님이 그것을 보고 법당으로 뛰어갔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여기 사람이 떨어졌소.”
스님의 부름에 법당에 있던 장병들이 우르르 나왔다. 그 속에 김일도 병장이 있었다.
김일도 병장은 발을 접질린 강대철 이병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뭐 하냐? 화장실에 똥 싸러 간 거 아니냐?”
“네. 똥 싸고 담배 한 대 피우려는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전투모가 넘어가 버려서…….”
강대철 이병이 말을 얼버무렸다. 그때 다른 어떤 장병이 소리쳤다.
“이 자식 탈영 아닙니까?”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눈을 부릅떴다.
“이봐요. 아저씨! 뭘 믿고 탈영 어쩌고 그딴 소리를 내뱉습니까. 큰일 날 소리 하네.”
“생각해 봐요. 저쪽으로 넘어가면 바로 사회인데. 이등병이고…….”
“뭐라고요? 방금 전투모 떨어져서 주우러 간다는 소리 못 들었습니까? 지금 얻다 대고…….”
김일도 병장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그때 스님이 나섰다.
“탈영이 아닙니다, 저 군인 자신의 전투모가 바람에 의해 반대편으로 넘어가 그걸 주우러 갔던 겁니다. 제가 직접 봤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였던 스님은 강대철 이병에게 유리한 쪽으로 답변해 주었다. 군대 내 법당에서 군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이고 사회로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부정적으로 말한 장병이 민망한 얼굴로 입을 뗐다.
“그렇습니까?”
뭔가 미심쩍었지만 스님의 말을 믿기로 했다. 김일도 병장은 강대철 이병을 보며 말했다.
“뒷문으로 가면 되는데 뭐 한다고 울타리를 넘어가서 이 난리를 쳐!”
“그게, 혼날까 봐 무서워서…….”
강대철 이병은 절뚝거리며 걸어갔다. 이미 발목은 상당히 부어올라 있었다. 곧바로 의무대로 가서 깁스를 하고 부대로 복귀했다.
김일도 병장이 전투모를 던지며 한소리 했다.
“이거 참 우리 소대에 마가 꼈다. 한 놈은 손이 부러지고, 다른 한 놈은 다리가 부러지고 말이야.”
김일도 병장은 그냥 이대로 이 일을 묻어두려는 생각이었다. 자신이 절에 가는 인원들을 인솔했는데 그중 한 놈이 탈영을 시도했단 말이 나오면 자신의 군생활도 꼬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진 상병은 강대철 이병의 꿍꿍이가 훤히 보였다.
‘저 자식 분명 탈영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증거가 없단 말이지.’
이해진 상병은 탈영으로 확신을 가졌다. 일단 강대철 이병에게 갔다.
“대철아, 발 괜찮아?”
“네, 조금 아픕니다.”
“자식, 발이 그래 가지고 탈영도 못 하겠다.”
“네?”
강대철 이병이 눈을 크게 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말이야. 솔직해지자. 거기 탈영하려고 넘어간 거 아니야?”
“…….”
“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아, 아닙니다. 전투모가 넘어가서 주우러 간 것뿐입니다.”
강대철 이병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이해진 상병이 씨익 웃으며 강대철 이병에게만 들리게 낮게 말했다.
“아니긴……. 대철아! 이렇게 된 거 감방 생활 잘해라. 알았지?”
“…….”
그렇게 강대철의 야무진 탈출 계획이 하루아침에 물 건너갔다.
8.
다시 하루가 지나고 월요일 아침 헌병대 차량이 충성 대대에 도착했다.
임규태 소령이 조수석에서 내리고, 뒤이어 헌병대 대원 두 명이 내렸다.
“너희들은 강대철 이병 데리고 와.”
“네.”
임규태 소령은 곧장 대대장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안에서 소리가 들리자 임규태 소령이 대대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종태 대대장은 심각한 얼굴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대대장실로 들어온 인물을 확인했다.
“어? 임 소령?”
“안녕하십니까, 대대장님.”
임규태 소령이 환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한종태 대대장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헌병대 수사과장이 여긴 무슨 일인가?”
“제가 왜 왔겠습니까?”
임규태 소령의 물음에 한종태 대대장이 움찔했다.
‘설마…… 들켰나?’
한종태 대대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임규태 소령을 바라봤다. 그러나 임규태 소령은 한종태 대대장이 용건이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1중대 1소대에 강대철 이병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있겠지.”
“그 친구가 밖에서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밖에서 사고를 쳐? 어떻게 된 일인가?”
“혹시 뉴스 보신 적 있습니까? 휴가 나갔다가 집단 구타를 당했다던 군인 얘기 말입니다.”
“아, 그 얘기는 들었네. 기사도 봤고 말이야. 그 녀석도 1중대 1소대인데…….”
“네, 이해진 상병이죠. 그런데 알고 보니 이해진 상병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당한 것이었습니다.”
“뭣이? 그게 정말인가?”
“네. 그 사주한 장병이 바로 강대철 이병이고 말입니다.”
“이, 이럴 수가…….”
한종태 대대장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현재 집단 구타 사건으로 한창 시끄러운 상황이었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한종태 대대장은 불안한 눈빛이 되었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큰일인데…….’
임규태 소령의 말에 의하면 강대철 이병이 밖에 있는 조직을 통해 폭행 사주를 했다는 말이 된다.
물론 폭행 장소도 외부고 폭행 가해자도 민간인이지만 사주한 사람과 피해자만 놓고 보자면 군대 내부 문제로 비칠 수 있었다.
‘곤란해. 곤란하단 말이야.’
한종태 대대장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세간에는 군인이 일방적으로 집단 구타를 당한 것이라 알려져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군 내부에 있는 군인이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로 판이 뒤집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뻔히 보였다.
현재 대중들 사이에선 ‘구타당한 군인이 너무 불쌍하다, 군인이라서 겪는 부당한 처우를 개선해 줘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는 상태였고, 정부까지 나서 군인 인권 문제 개선에 대해 논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 이런 사실이 밝혀져 버리면 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고, 무엇보다 충성대대를 책임지고 있는 한종태 대대장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임 소령…….”
한종태 대대장이 매우 조심스럽게 임규태 소령을 불렀다.
“저기 말이야…….”
“아, 대대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다 압니다.”
임규태 소령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다 안다고?”
“네. 최대한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 달라는 말씀 아닙니까.”
“어험, 맞네. 가능하겠나?”
임규태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대철 이병, 이 녀석 사회에서도 아주 꼴통이었지 말입니다. 군대에 오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건을 저지른 상태였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그렇고 경찰 쪽에 듣기로 그 녀석이 연루되어 있는 폭행 사건이 한둘이 아니랍니다. 직접적으로 관여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쭉 용의 선상에 있다는 게 사실입니다. 사회에서 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자 부랴부랴 군대에 입대한 것으로 보이고요.”
“그런 녀석이었어? 그런데 신교대에서는 어째서 그런 녀석들까지 받았지? 아니, 왜 그런 녀석을 걸러내지 못했냐 이 말이야.”
“원래 사고를 많이 치던 녀석이었습니다. 그전에도 몇 번이나 훈련소에 입소했다가 그때마다 사고를 쳐서 퇴출당했다고 합니다.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상태였고요. 병무청에서는 이번엔 돌려보낼 수 없다는 공문을 보냈고, 그래서 신교대에서도 그냥 받아들였나 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때 조사를 했으면…….”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하긴 그렇지.”
한종태 대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렇지만 신교대에서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우리 부대까지 왔다는 것이 못내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