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48화
25장 일이 점점 커지네?(3)
“무, 무슨 말씀이신지…….”
“글쎄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저 아닙니다.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누가 뭐래? 왜 흥분하고 그래? 그런데 말이야. 만약에 너라면 이번에는 다시 우리 소대 돌아오기는 어려울 거야.”
“……!”
“이번에 영창 가면 군 생활 끝날 때까지 거기 있어야 할걸?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마 밖에 나와서도 감방 생활 해야 할 거다.”
“……!!”
“그러니까 만약 너라면,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이해진 상병의 말을 들은 순간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다음 날.
강대철 이병이 공중전화에 붙어 있었다. 어딘가로 계속해서 전화를 하지만 받지 않았다.
“하아, 진짜 미치겠네. 왜 전화를 안 받아!”
어제부터 수십 통의 전화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애당초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아주지 않았다.
군대에 있어서 섣불리 나갈 수도 없고,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강대철 이병은 속이 터질 노릇이었다.
“답답하네. 도대체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강대철 이병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누가 멋대로 혼자 전화 쓰래!”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강대철 이병이 그 말과 함께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앞에는 다른 중대의 상병이 서 있었다.
“어디서 이등병 녀석이…….”
강대철 이병이 울컥하며 소리쳤다.
“이등병은 전화 쓰면 안 됩니까?”
“어쭈! 이 자식 봐라?”
그 상병이 명찰을 확인했다.
“어? 강대철? 아, 네가 1소대 꼴통 녀석이구나.”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겁니까.”
“아아, 됐다. 너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겠지. 그보다 이등병이 전화할 데가 어디 있다고 하루 종일 수화기만 붙잡고 있냐? 여자 친구가 도망가기라도 했냐?”
“예, 그렇습니다. 됐습니까?”
강대철 이병은 현재 여유를 부릴 입장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강대철 이병의 말에 상병은 움찔했다.
“아, 새끼! 겁나게 들이대네. 됐다. 내가 오늘 하루 전화 안 하고 말지.”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 뒤에 있던 고참들 역시 인상을 쓰며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이미 강대철 이병에 대한 소문이 부대 전체에 퍼질 대로 퍼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웬만하면 강대철 이병을 피하려 했다.
강대철 이병은 다시 몸을 돌려 수화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조금 전 상병이 한 말이 떠올랐다.
“가만, 여자 친구?”
강대철 이병은 갑자기 예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곧바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아직 번호는 안 바뀌었겠지?”
잠시 후 신호음이 가고 얼마 가지 않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미정이냐?”
-누구신데요?
“나 대철이.”
강대철 이병이 이름을 말한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왜 나에게 전화를 하냐? 난 할 말 없으니까 끊어!
“야야, 끊지 마! 부탁이야. 끊지 마! 나 지금 급하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래.”
-……뭔데?
“나 군대 있는 거 알지?”
-너 군대 갔어? 군대는 또 언제 갔대?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광식이 형님이랑 연락이 안 돼서 말인데…….”
-광식이 오빠? 나도 광식이 오빠랑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어. 지금은 전화번호도 몰라.
“그럼 종식이 형은?”
-종식이 오빠? 잠깐 기다려 봐.
그리고 수화기 너머 미정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잠시 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혹시 종식이 오빠 연락처 알아?
-종식이? 걔 유치장 갔잖아.
-유치장? 아니, 왜?
-듣기로는 아는 놈 부탁받고 한 가지 일을 해줬다는데. 그게 잘못되어서 걸렸다네. 멍청한 놈이지.
미정이 다시 수화기를 가까이 가져갔다.
-야, 강대철 들었지?
“아, 시발 진짜 X됐네! 알았어, 끊어.”
강대철 이병이 잔뜩 인상을 쓰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터벅터벅 공중전화 박스에서 나와 한쪽으로 가서 머리를 감쌌다.
“제기랄, 진짜 잡힌 거야? 정말 잡힌 거냐고.”
강대철 이병은 설마 했던 일이 확실해지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지?”
강대철 이병은 혼자 모든 것을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내무실로 향하는 강대철 이병의 표정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강대철 이병이 내무실에 들어가자 한쪽에 소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뭐지?”
강대철 이병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그들은 우르르 몰려 이해진 상병의 팔 깁스에 매직펜으로 낙서를 하고 있었다.
“야,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
김우진 상병이 신나게 낙서를 하며 물었다.
“원래 이래야 빨리 낫는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더 열심히 낙서해 줘야겠네.”
김우진 상병이 씨익 웃으며 한쪽에 해골 그림을 그렸다.
“아, 김 상병님! 해골 그림은 너무 했습니다.”
“뭐, 어때? 해골 하면, 뼈! 지금 너 뼈가 부러졌으니 당연히 해골을 그려줘야지.”
“그 무슨 논리입니까?”
“시끄러워!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아, 네에…….”
그러던 중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들었다. 멍하니 구경을 하고 서 있는 강대철 이병과 눈이 마주치자 이해진 상병이 씨익 웃었다.
“야, 강대철.”
“이, 이병 강대철.”
“너 인마 거기 서서 뭐해? 너도 여기로 와서 한마디 적어! 아, 여기 빈자리 있네.”
이해진 상병이 팔 깁스에 낙서가 채워지지 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강대철 이병을 바라봤다. 순간 강대철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왠지 범인으로 지목받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대원들의 반응은 그게 다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열심히 낙서에 집중했다.
“여기에다가 뭘 적으면 좋겠습니까?”
“몰라, 네가 알아서 적어!”
“음, 만수무강이라고 적으면 됩니까?”
“뭐? 만수무강? 푸하하하, 인마! 이 상병이 늙은 영감이냐? 만수무강하게?”
“그래도 좋은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 좋은 말이다.”
“그럼 전 만수무강으로 적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해진 상병이 네임펜 하나를 집어 들어 강대철 이병에게 내밀었다.
“강대철 뭘 그리 멍하니 서 있어. 너도 어서 와서 적으라니까.”
“아, 저는…….”
“인마, 이렇게 뭐라도 적어야 빨리 낫는다고 하잖아. 어서 적기나 해.”
김우진 상병이 입을 뗐다.
“그래 너도 와서 적어라. 얼마나 재미있게 적는지 보자.”
강대철 이병이 주춤거리며 다가와 네임펜을 받았다. 그리고 이해진 상병이 가리킨 빈 공간에 펜을 가져갔다. 뭘 적을지 잠깐 고민하던 강대철 이병이 몇 자 적어 내려갔다.
[이 상병님 꼭 낳으십시오.]
이해진 상병이 그 문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철아.”
“네?”
“내가 닭이야?”
“잘 못 들었습니다.”
“내가 닭이냐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여길 봐봐. 내가 알 낳아? 무슨 히읗 받침이야. 이 무식한 놈아.”
“그러네. ‘낳으세요’? 뭐냐?”
“하하핫! 미치겠다.”
다른 소대원들 역시 강대철 이병이 쓴 문구를 보며 놀렸다. 이에 강대철 이병은 속으로 울컥했지만 꾹 참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몰라서 그랬습니다.”
“너는 참 모르는 것도 많다. 그래서 사회생활 어떻게 할래? 아니지, 네가 지금 사회생활 걱정할 것은 아니지.”
이해진 상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순간 강대철 이병이 움찔했다. 그때 김우진 상병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김일도 병장이 누워서 책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말이야.”
김일도 병장의 시선이 강대철 이병에게 꽂혔다.
“범인은 바로 너야!”
김일도 병장의 뜬금없는 말에 소대원들은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김우진 상병이 물었다.
“김 병장님 무슨 소리입니까? 갑자기 책 보시다가 뜬금없이 범인은 너다! 이런 말을 합니까?”
“아니, 어제 그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말이야. 해진이와 척을 진 사람은 저 녀석밖에 없거든.”
“아, 그 얘기입니까?”
김우진 상병을 말을 하면서 강대철 이병을 봤다. 모두의 시선이 강대철 이병에게 향했다. 그 사이를 뚫고 김일도 병장이 나왔다.
“강대철 너 어떻게 할래?”
“이병 강대철. 잘 못 들었습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결국 네 짓인 것이 밝혀졌어. 내가 바로 명탐정 코남이다.”
순간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모두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김일도 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나의 명석한 두뇌로 봤을 때 범인은 너야. 네가 사주한 것이 확실해!”
김일도 병장은 그냥 장난을 치고 있는 것뿐이었다. 주말이었고, 심심하기도 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듣고 있는 강대철 이병은 심장이 벌렁거리다 못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뭐, 뭐지……?’
그때 지켜보던 소대원들은 김일도 병장의 허접한 연기에 박수까지 치며 장단을 맞춰줬다.
“와, 대박입니다.”
“방금 진짜 코남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다들 깔깔 웃고 있는데 강대철 이병만 동참을 할 수 없었다. 이해진 상병이 그런 강대철 이병을 보며 말했다.
“대철아, 웃어. 안 웃으면 더 이상해진다.”
“하하하, 맞습니다. 제가 범인입니다.”
강대철 이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씩씩거렸다.
‘젠장,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러거나 말거나 김일도 병장은 어느새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야, 밥 먹으러 가자.”
“넵!”
김일도 병장의 말에 다들 시계를 확인하더니 관물대에서 수저를 챙겨 일어났다.
식당에 도착한 강대철 이병은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수저로 깨작깨작 밥을 넘기는 강대철 이병에게 앞에 있던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대철아.”
강대철 이병이 움찔하며 놀랐다.
“이병 강대철.”
“팍팍 좀 먹어라. 팍팍 좀! 어디 이등병이 밥을 깨작깨작 먹어!”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의 구박에 강대철 이병은 잘 들어가지도 않는 눈칫밥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그렇게 억지로 밥을 집어넣다 보니 사레가 들려 밥풀을 뿜어버렸다.
“야! 뭐야? 더럽게!”
“죄송합니다.”
강대철 이병은 허겁지겁 자신이 튄 밥풀을 치웠다. 하지만 앞에 있던 선임의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강대철 이병은 이 상황이 밥보다 눈치를 많이 먹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불편했다. 결국 강대철 이병은 그날 거하게 체하고 말았다.
“구 일병님.”
“왜?”
“저 아무래도 체한 것 같습니다. 의무대에 갔으면 합니다.”
“의무대? 어쩐지 점심 먹을 때 막 뿜어대고 그러더니. 알았다. 김 병장님께 얘기하고 가자.”
“네.”
그렇게 강대철 이병과 구진모 일병이 의무대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