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47화
25장 일이 점점 커지네?(2)
“저희는 그냥 형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맞습니다. 그냥 군인을 밟으라고 해서 한 것뿐입니다.”
“그래? 이제야 말이 통하겠네. 그래 어디 한번 상세히 말해봐. 어떻게 된 일이라고?”
이강진이 씨익 웃으며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실은, 일거리가 있다고 따라오라길래 저희는 형님을 따라간 거뿐입니다. 근데 따라간 곳에 또 다른 형님이 계셨습니다.”
“그래? 누구?”
“종석이라고 했습니다.”
“아니지, 인마. 종식이라고 했잖아.”
“맞다. 종식이라고 했습니다.”
두 녀석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강진이 타자를 치다가 멈칫했다.
“종식이? 혹시 그 종식이가 불사파 종식이 말하는 거니?”
3.
자신의 원룸에서 세상 모르게 잠을 자던 종식은 시끄럽게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하아, 누구야?”
종식은 짜증이 잔뜩 묻어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문 초인종 구멍으로 밖을 확인했다.
초인종 구멍 너머에는 단정하게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 딱 봐도 경찰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미친, 짭새잖아.’
종식은 곧바로 몸을 돌려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뒤쪽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3층 아래에도 경찰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X발!”
종식이는 낮게 욕을 내뱉었다. 그러자 문 앞에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종식아. 나 이강진이다. 안에 있는 거 안다. 그냥 우리 조용히 가자. 소란 피우지 말고.”
그 목소리를 들은 종식이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강진? 중부 경찰서 미친개잖아!”
종식이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종식입니다.”
-왜? 무슨 일이야?
“저, 지금 경찰에 쫓기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야, 인마. 그런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도망치면 되는 것을.
“아무래도 못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게……. 형님께서 힘 좀 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인마,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힘을 써줘?
“지난번에 경찰서에 아는 동생들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그거야……. 아무튼 지금은 어려우니까 알아서 도망쳐라.
“형님. 너무하십니다. 저는 형님께서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까.”
종식이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솔직히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애들 불러 혼 좀 내라는 형님의 말을 들은 것뿐이었다.
-뭐? 너……. 만약에 너 입에서 내가 나왔다면 넌 뒤지는 수가 있어.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저 혼자 다 뒤집어씁니까?”
-그럼 인마. 대철이 팔아.
“네?”
-그냥 날 빼라고! 나 빼고 네가 직접 대철이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 되잖아.
“아, 그러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빠져나와.
“네, 알겠습니다.”
종식이가 전화를 끊고, 곧바로 휴대폰에 찍힌 번호도 다 삭제를 했다. 배터리를 분리해 한 곳에 던진 후 문 쪽으로 갔다.
“아, 누굽니까?”
종식이는 바로 자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앞에 이강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종식아!”
4.
그날 저녁, 오상진이 이강진의 전화를 받고 중부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내부로 들어가자 덩치 큰 네 명의 사내가 붙잡혀 있었다. 오상진은 이강진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갔다.
“아, 과장님. 범인 잡혔다고 소식 들었습니다.”
“아, 오셨습니까? 바로 저놈들입니다.”
오상진이 들어오자마자 봤던 그 녀석들이었다.
“저 녀석들입니까? 왜 그랬답니까?”
“일이 좀 재미있어집니다.”
“뭐가 재미있습니까?”
“저 녀석들 범행 동기를 캐물어 봤는데 아는 군인에게 사주를 받았다고 합니다.”
“네?”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혹시 강대철이라고 아십니까?”
오상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방금 강대철이라고 했습니까?”
“네, 저 녀석들 강대철에게 사주받아서 행동한 것이라고 합니다.”
“하아…….”
오상진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군인이 어떻게 밖의 조직에 폭행 사주를 해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가만 군인이 폭행 사주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이 일이 밝혀지면 안 되었다.
‘우리 부대 이미지는 물론이고, 국군 전체 이미지에도 좋지 않아.’
오상진은 생각을 정리한 후 이강진에게 말했다.
“과장님. 이제 와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이 일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럴 생각이긴 한데 평생 비밀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조용히 처리한 후 넘길 생각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아마 우리가 조사를 하더라도 군인이 사주했다는 것 때문에 사건이 헌병대로 넘어갈 것 같습니다. 다만 그쪽에서 이 일을 잘 수습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아, 헌병대에 아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께 말해서 조용히 처리하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여기서도 나름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헌병대 임규태 소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 소령님, 충성대대 오상진 소위입니다.”
-오오, 오 소위. 오랜만이야. 잘 지냈나?
“네. 임 소령님도 잘 계시죠?”
-나야, 물론 그렇지. 그래, 무슨 일로 전화를 다 주고.
“아, 실은 말입니다.”
오상진이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임규태 소령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흐음, 이거 참 골치 아프게 생겼네. 이등병 놈이 상병에게 원한을 품고 조직원을 동원해서 구타를 했단 말이지?
“네.”
-이거 외부에 알려지면 전부 엿 되게 생겼는데.
“그래서 미리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 부분은 내가 최대한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래도 시간은 좀 걸릴 거야. 아마 경찰 쪽에서 바로 넘기지 않을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참, 그전에 그놈을 격리해야 하는데…….
“일단은 저희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경찰서에서 넘어오면 그때 조용히 처리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알았다. 그럼 이쪽에서도 준비를 해두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철아. 강대철! 도대체 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5.
그로부터 며칠 후, 이해진 상병이 부대에 복귀했다. 오른팔에는 여전히 깁스를 한 상태였다.
“야, 해진아. 무슨 일이야.”
이해진 상병이 힐끔 강대철 이병을 쳐다봤다. 강대철 이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가 이내 표정을 바로 했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휴가를 나갔는데 어떤 녀석들이 절 다굴 놓지 뭡니까!”
“뭐? 몇 명이?”
“한 열여덟 명쯤 됐는데…….”
“뭐? 열여덟 명? 무슨 18 대 1이냐?”
“농담이고 정확하게 네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네 명이면 네 명이지 같다는 건 뭐야?”
“그게…… 정신 없이 맞느라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래? 많이 다쳤어?”
김일도 병장이 물었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팔에 금이 간 정도입니다. 한 보름만 깁스하면 된다고 합니다.”
“다행이네. 그보다 널 때린 녀석들은 잡았어?”
이해진 상병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네. 잡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힐끔 강대철 이병을 봤다. 강대철 이병의 몸이 움찔 떨리는 게 보였다.
“잡았어? 이야, 잘됐네.”
“네, 아주 잘되었지 말입니다.”
“왜 그랬대?”
“그게 말입니다. 저희 형님이 형사이지 않습니까.”
“아, 맞다. 너희 형님이 형사셨지?”
“네.”
강대철 이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해진 상병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형님의 말에 의하면 뭔가 원한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던데 말이죠.”
“원한? 네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원한 관계는 없지 말입니다.”
“그럼 착각했나?”
“아뇨, 착각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 이상하네. 잘 생각해 봐. 너 무슨 원한을 사서 이런 일까지 당해.”
김우진 상병이 웃으며 물었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상병님은 제가 무슨 원한을 살 사람으로 보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또 모르잖아.”
“솔직히 지금 군대 들어온 지 1년이 넘었는데 말입니다.”
“하긴.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군대에서 원한을 산 게 아니라면 말이야.”
김우진 상병이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홱 돌려 강대철 이병을 봤다.
“야, 대철이. 혹시 너냐?”
“예?”
강대철 이병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어찌나 화들짝 놀라는지, 그 모습은 김일도 병장을 비롯해 다른 선임병들이 봐도 이상했다.
“왜, 놀라고 그래? 그냥 해본 소린데. 진짜 너야?”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왜긴 왜야. 우리 부대에서 해진이한테 앙심을 품을 사람은 너뿐이니까 하는 소리지.”
“저, 저는 아닙니다.”
“와, 대철이 너무하네. 그렇게 안 봤는데…….”
당황하는 강대철 이병의 반응이 재밌었을까? 잠자코 있던 김우진 상병까지 가세했다. 그러자 강대철 이병은 두 손을 흔들기까지 하며 부인했다.
“아닙니다. 저는 절대 아닙니다.”
장난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던 강대철 이병이 강하게 부인할수록 김일도 병장과 김우진 상병 다른 선임들까지 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하던데…….”
“저, 진짜 아닙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렇게 당황하고 그래? 자꾸 그러니까 더 의심스러워지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있지 말입니다.”
“당황한 거 아닙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무실을 나갔다.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강대철 이병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야, 저 자식!”
“그러게 말입니다.”
이해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빨리 다녀와. 이야기 마저 해줘야지.”
“네.”
이해진 상병도 내무실을 나섰다.
6.
한편, 강대철 이병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공중전화 부스로 향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두두두두, 뚜두두두두.
한참이나 신호가 갔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번을 더 걸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아, 진짜 어떻게 된 거야. 형님이 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지?”
강대철 이병의 불안감은 점점 더 커졌다. 들고 있던 수화기를 귀에 바짝 가져다 붙이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서, 설마 진짜로 들킨 건가? 하, X발. 그럼 엿되는 건데.”
그때 뒤에서 이해진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대철아, 전화를 안 받아?”
순간 강대철 이병이 화들짝 놀라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한 후 몸을 돌려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