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45화
24장 부대 꼴 잘 돌아간다(9)
“야, 아무래도 먼저 들어가야 할 거 같다.”
“뭐야? 너 휴가 나왔다고 해서 모인 건데?”
“미안, 집에 들어오란다.”
“야. 휴가인데 친구랑 놀게 두지. 너무하시네. 어머니가 들어오시라고 해?
“아니, 형이.”
“아, 형? 강진이 형이 부르면 들어가야지.”
“암. 강진이 형이 들어오라면 들어 와야지.”
“야, 그런데 너희 형. 아직도 무섭냐?”
“아직도라니. 죽을 때 까지 저러고 살 거다.”
“그럼 얼른 들어가라. 지난 번처럼 눈탱이 밤탱이 되지 말고.”
“그게 언제쩍 일인데. 아무튼 먼저 갈게.”
“들어가기 전에 다시 뭉치자.”
“알았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라.”
가게를 나온 이해진 상병이 왔던 길로 몸을 돌렸다.
“아, 진짜 우리 형이지만 너무하네.”
이해진 상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 보니 편의점이 나왔다.
편의점 바로 옆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형씨. 불 좀 빌립시다.”
이해진 상병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저요? 저 담배 안 피웁니다.”
“에헤이, 거 불 좀 빌리자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라이터가 없습니다.”
이해진 상병은 최대한 정중히 말을 한 후 다시 가려 했다. 하지만 종식은 그런 이해진 상병을 놓아주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 이 자식 안 되겠네.”
“네?”
“들어가!”
그러면서 누군가 이해진 상병의 등을 확 밀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후미진 골목 안으로 넘어졌다.
우당탕탕!
이해진 상병은 넘어진 것도 아프고, 무엇보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어이없는 상황에 화가 났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해진 상병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후미진 골목 안으로 따라 들어온 종식이가 나직이 말했다.
“쳐!”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난 다른 사내가 각목을 들고 이해진 상병을 후려쳤다. 이해진 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방어했다.
빠각!
각목이 부러지며 파편이 비상했다. 이해진 상병은 순간 팔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했다.
“으악!”
그 뒤론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해진 상병이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인 것은 편의점 직원의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편의점 직원에 의해 119 구급대원이 오고, 병원으로 이송되어 온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해진 상병이 기억하는 사건의 전말이었다.
35.
모든 얘기를 들은 이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래도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다. 아무튼 운동시키길 잘했어!”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일방적으로 얻어터진 거네?”
“그렇지. 내가 군인인데 민간인에게 어떻게 손을 대겠어.”
“그래도 멍청아. 요령껏 때려야지! 요령껏!”
“형, CCTV 다 찍혔다면서 어떻게 요령껏 때려. 만약에 한 대라도 때렸다면 나 지금 헌병대에 끌려갔어!”
“암튼 핑계는 좋아요, 핑계는……. 어구, 병신같은 녀석!”
그러다가 오상진과 눈이 마주쳤다. 이강진이 곧바로 인사를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소대장님 앞에서 말조심을 해야 하는데 워낙에 습관이 되어서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혹시 소대장님도 동생분 있으신가요?”
“네. 있습니다. 그래서 형사님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맘이 편하네요.”
멋쩍게 웃던 이강진이 다시 이해진 상병을 보며 말했다.
“해진아.”
“응?”
“다른 곳 다친 곳은 없고?”
“그냥 팔에 금이 간 정도래. 그 외는 괜찮아.”
“그럼 바로 퇴원하고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쉬어!”
“버, 벌써?”
“칼 맞은 것도 아니고 고작 팔 부러진 거 가지고 병원 신세를 지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너 이러는 거 알면 대한민국 강력계 형사들이 전부 나한테 뭐라고 할 거다. 동생 교육 잘못시켰다고.”
“또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아무튼 잘됐네. 군인 놈이 돌아다니지도 않고, 집에서 푹 쉴 수 있어서 말이야.”
그때 이강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어! 최 형사. 그래, 그래. 고마워 자료 잘 받았어. 뭐? 기자들이? 잠깐만.”
이강진이 전화를 하다 말고 오상진을 불렀다.
“저기 소대장님?”
“네.”
“혹시 이 사건 말입니다. 기사로 나가도 되겠습니까?”
“예? 무슨 말씀인지…….”
이강진이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말했다.
“경찰서에 상주하는 기자 하나가 냄새를 맡고 기사로 쓰겠다는데 어떻게 하죠?”
오상진은 이강진의 말을 듣고 살짝 고민을 했다.
‘가만 이미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기사를 쓰겠다면 막을 수 없잖아. 그리고 기자들이 일부러 자극적으로 써버리면 괜히 더 곤란해질 수도 있고 말이야.’
오상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이강진에게 말했다.
“기자들이 쓴다면 어쩔 수 없죠. 막을 방법도 없잖아요.”
그렇게 말한 오상진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휴대폰을 꺼냈다.
“잠깐만요. 전화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세요.”
오상진이 밖으로 나가 박은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지 씨, 접니다.”
-네, 상진 씨!
“혹시 기사 하나 써줄 수 있어요?”
-무슨 기사요?
“아, 우리 소대에 병사 하나가 있는데…….”
오상진은 차근차근 이해진 상병의 얘기를 해주었다. 가만히 듣던 박은지가 입을 뗐다.
-그런 얘기라면 제가 당연히 도와야죠. 거기 무슨 경찰서예요?
“중부 경찰서라고 합니다.”
-아, 거기요? 내가 아는 기자들이 있으니까요. 잘 입단속 시킬게요. 걱정 마요.
“고마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아 참! 그리고 구타 장면이 찍힌 CCTV 영상이 있거든요. 여기 형사님께 물어보고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드릴게요.”
-그럼 좋죠!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이강진에게 갔다.
“저기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아는 기자가 있는데 혹시 조금 전 보여주셨던 동영상 그 기자분에게 보내도 되겠습니까?”
“네. 뭐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기자라면 자극적이지 않게 기사를 써줄 겁니다. 아시겠지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나가봐야 해진이한테도 좋을 게 없어서요.”
“알죠. 요즘 기자들 조회 수 때문에 제목 멋대로 짓는 거 아주 못 봐줄 정도니까요.”
“대신 이 동영상은 그 기사가 나가기 전까지 다른 기자들에게는 뿌리지 말아주십시오.”
오상진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박은지에게 이 사건에 대한 증거 동영상이 있다고 하면 다른 기자들이 함부로 추측성 기사를 쓸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박은지가 동영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자극적인 기사로 도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은지에게 동영상이 있고, 중립적으로 기사를 쓰면 다른 기자들 역시 그 동영상에 기반해 좋은 기사를 작성해야 했다.
이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러다가 우리 해진이 곤란해지는 것은 아니죠?”
“절대 그럴 일 없도록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오상진은 이강진이 안심할 수 있도록 힘 주어 말했다.
그다음 날 오상진은 부대에 출근해 곧바로 중대장실로 향해 어제의 사건을 보고했다.
“뭐? 폭행?”
“네, 다행히 이해진 상병은 크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아, 너희 소대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도대체 왜 그러냐? 마가 낀 거 아니야? 진짜 굿이라도 한번 해야 하나?”
“중대장님. 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야. 뭔가 일이 있어! 왜 1소대만 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오상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글쎄다. 내가 왜 너를 보고 있는 것일까?”
“설마 저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나도 그렇게 생각 안 하지. 그런데 유독 1소대에서만 사고가 터지잖아! 1소대장 너는 그 이유를 아니?”
“잘 모르겠습니다.”
오상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나저나 대대장님께는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하나. 대대장님께 잘 보고를 해야 할 텐데…….”
김철환 1중대장이 중얼거릴 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박은지에게서 온 문자였다.
“어?”
오상진이 곧바로 문자를 확인했다.
-상진 씨, 방금 기사 올렸어요.
오상진이 곧바로 휴대폰으로 확인을 했다. 박은지가 올린 기사 제목을 확인했다.
-묻지 마 폭행! 이번엔 휴가 나온 군인이 변을 당해!
그 기사 제목을 클릭하자 편집된 동영상이 나오고 그 밑에 박은지가 쓴 기사가 있었다.
-XX일 저녁 6시경, 서울 모 부대에서 휴가를 나온 이 상병은 갑작스러운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이 상병의 진술에 따르면 외출 후 귀가를 하는 이 상병에게 한 사내가 불을 빌려달라며 접근했고, 비흡연자인 이 상병이 불이 없다 하자 느닷없는 폭행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 상병은 정체 모를 괴한들에게 약 10여 분간 구타를 당한 후 기절했고, 근처 편의점 직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해자 이 상병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팔에 금이 가고 여러 군데 타박상을 입는 등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이 상병은 학창 시절 운동부 출신으로 맷집이 좋아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다며 주위를 안심시켰지만, 공개된 CCTV 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정신을 잃은 이 상병의 모습이 찍힌 영상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반응이었다.
…….
“중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오상진이 기사 원문을 김철환 1중대장에게 건넸다. 김철환 1중대장이 기사 작성자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어? 은지 씨가 기사를 썼어?”
“네, 혹시나 해서…….”
“야! 이런 기사는 함부로 쓰면 안 되지. 제대로 확인하고 써야지!”
“일단 기사 내용부터 확인해 보시죠.”
김철환 1중대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기사를 확인하는데 기사를 읽어 내려갈수록 서서히 표정이 풀어졌다.
“어? 내용 괜찮네.”
김철환 1중대장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오상진을 봤다.
“은지 씨 기사를 깔끔하게 잘 쓰네.”
“한국일보 기자지 않습니까.”
“하긴 한국일보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은 아니지.”
“그럼 대대장님께서도 이 기사를 보면 좀 괜찮지 않겠습니까? 크게 화를 내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도 이 기사를 보면 그러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어? 대대장님이다.”
김철환 1중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대대장이었다. 오상진이 긴장한 눈으로 서 있었다.
“충성, 1중대장님입니다.”
-대대장이다.
“네.”
-올라와!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전화를 끊었다.
“뭐라십니까?”
“올라오라고 하네.”
김철환 1중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오상진에게 말했다.
“다녀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