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43화
24장 부대 꼴 잘 돌아간다(7)
“소희 씨, 난 괜찮아요.”
“봐봐, 네 남친이 괜찮다고 하잖아.”
김주희는 냉큼 말을 받았다. 한소희는 눈치 없는 오상진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못 살아.’
그런 한소희의 속도 모르고 오상진은 김주희와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은 오상진이 입을 열었다.
“뭐 드실래요?”
오상진은 매너 있게 먼저 메뉴판을 건넸다. 김주희는 메뉴판을 슬쩍 확인하더니 바로 짚었다.
“코스 요리 먹으면 좀 부담스러우시려나?”
코스 요리는 스테이크를 비롯해 파스타, 디저트까지 풀코스로 나오는 메뉴였다. 가격대는 약 25만 원. 7명이 코스 요리를 시킨다면 175만 원이었다.
“농담이 지나치다?”
한소희가 김주희를 한 번 노려보고는 메뉴판을 확인하더니 하나를 골랐다.
“그냥 파티 코스로 해요. 너희들 파티 코스면 괜찮지?”
“뭐, 그것도 나쁘지 않네.”
파티 코스는 32만 원 정도 했다. 메뉴판상으로 7~8인 기준이라고 했으니 양도 넉넉할 거 같았다.
오상진도 이 정도면 큰 부담은 없었다.
“파티 코스로 주십시오.”
종업원이 물었다.
“파스타는 어떻게 드릴까요?”
그러자 김주희가 바로 손을 들었다.
“주문은 이쪽에서 먼저 할게요.”
그러면서 김주희는 곧바로 메뉴를 정했다. 종업원이 옆으로 가서 불펜을 들었다.
“파스타는 이걸로 주시고요. 스테이크 굽기는 미디움으로 하고 그다음은…….”
자기들끼리 메뉴를 알아서 다 정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소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작게 불렀다.
“상진 씨.”
“네.”
“쟤들 내 친구 아니거든요?”
“정말요? 친구들이라고 해서 친구인 줄 알았어요.”
“그럼 모르는 사람이 와서, 한소희 친구라고 하면 다 사 주겠네요.”
“으음……. 그래도 정말 소희 씨 친구일 수 있으니까 사 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한소희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뭐래요. 다음부터는 나에게 직접 확인해요. 이상한 사람들 밥 사 주고 다니지 말고.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상진 씨는 내가 정말 좋나 봐요?”
한소희가 장난식으로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으니까, 이렇게 붙어 있겠죠.”
한소희가 슬며시 웃었다. 그리고 테이블 밑으로 한소희의 손이 오상진의 손을 꽉 잡았다.
“칫, 앞으로 내 친구는 따로 소개시켜 줄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요.”
“네. 알겠어요.”
그때 앞에 있던 김주희가 입을 열었다.
“뭐야, 둘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냥 얘기 나눴어.”
“너희는 주문 안 해?”
“해야지.”
한소희가 이것저것 메뉴를 골랐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음식이 나왔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한가득 음식이 놓였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는데 김주희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지난번에 먹었던 것보다는 좀 별로다.”
“그렇지? 나도 좀 그러네.”
한소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숨도 안 쉬고 잘만 먹고 있으면서 무슨?’
한소희의 손에 쥐어진 나이프가 부르르 떨렸지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한 번 더 인내했다. 한소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얘들아. 그래도 내 남친이 사 주는 건데 맛있게 먹지?”
“그래서 엄청 맛있게 먹고 있잖아. 아, 좀 더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갈 걸 그랬나?”
‘저걸 그냥!’
한소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주희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그런데 두 사람 언제 만났어요? 키스는 했어요?”
“아, 네네.”
오상진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어머나! 키스했대. 어쩜!”
그렇게 떠들다가 김주희가 또 오상진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상진 씨.”
“네.”
“소희 학교에서 인기 많은 거 아세요?”
“아, 그래요?”
“소희 따라다니는 남자 엄청 많은데.”
“야!”
한소희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오상진이 괜히 오해할까 봐 걱정이 된 탓이었다. 하지만 한소희의 걱정과는 달리 오상진은 테이블 아래로 한소희의 손을 잡곤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소희 씨 정도면 당연히 따라다니는 사람이 많아야죠. 그게 정상 아닌가?”
오상진이 별로 신경 안 쓴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김수희가 약간 놀란 눈이 되었다.
“어머? 군인들은 보수적인 줄 알았는데 상진 씨는 여자의 과거에 많이 너그러우신 거봐요.”
“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한소희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얘는 뭐 어때? 지금이 중요하지 어디 과거가 중요한가?”
한소희는 매서운 눈빛으로 김주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주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때 오상진의 핸드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어?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
오상진은 전화를 바로 받았다.
“네.”
-소대장님 저 이해진 상병입니다.
“그래, 해진아. 휴가 잘 보내고 있냐?”
-저 지금 병원에 있는데 말입니다.
“뭐? 병원?”
오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오상진이 정중하게 말을 한 후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는 왜? 무슨 일인데…….”
그 모습을 한소희가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다가 고개를 홱 돌려 앞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바라봤다. 손에 든 포크를 탁 내려놓은 후 입을 열었다.
“야, 지금 장난해! 너희들이 언제부터 나랑 친구였다고 지랄들이야?”
“한소희, 그러지 마라. 네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우리가 같이 먹어주는 것을 고마워해야지. 안 그러니?”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다.
“맞아. 고마워해야지.”
“전혀 안 고맙거든!”
한소희가 울컥하며 말했다. 김주희가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왜? 군인 남친 등쳐먹으니까 돈 아까워? 돈 쓰기가 그렇게 싫으니? 네가 다른 오빠들에게 얻어먹은 것 때문에 우리가 못 얻어먹은 것을 생각 안 해?”
“야, 김주희! 너 지금 뭐라니? 진짜 어이없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너네가 얻어먹고 싶으면 얻어먹으면 되지. 지금 그 말이 나랑 뭔 상관이야. 그리고 내가 다른 오빠들에게 얻어먹는 것을 봤어?”
“야, 네가 그러니까 다른 오빠들이 우리에게 돈을 안 쓰잖아.”
“…….”
김주희의 말에 주변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친구들의 모습에 한소희는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밥을 사 준다는 오빠들의 입장에선 가장 예쁜 한소희가 밥을 안 얻어먹는데 그보다 못한 애들이 밥을 사달라고 하니 사 줄 마음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 덕에 괜찮은 오빠들은 물론 그냥 그런 오빠들에게도 밥 얻어먹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그녀들이었다. 그래서 이렇듯 한소희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하지만 한소희도 굴하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 한 번은 그냥 넘어가는데 다음에 또 이래봐. 가만있지 않을 거야.”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우리가 네 남친한테 과거를 다 불면 어쩔 거냐고.”
“그래, 어디 한번 해봐! 그리고 내 과거가 어디 있어?”
그러자 주희가 콧방귀를 꼈다.
“얘가, 얘가. 아직 잘 모르네. 너 소문 아주 안 좋게 난 거 모르니?”
“그러니까, 어디 한번 해보라고!”
“진짜 한다!”
“해!”
두 사람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오상진이 들어왔다.
“소희 씨.”
“네?”
“제가 사정이 생겨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사정이요?”
“부대에서 휴가를 나온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지금 병원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헌병대가 도착하기 전에 제가 거기로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요? 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계산은 제가 나가면서 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김주희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설마 그냥 가시는 거예요? 계산은 하고 가셔야죠.”
“제가 나가면서 계산하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카드 주고 가세요.”
“네?”
“카드 달라고요.”
“아…….”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한소희에게 주었다.
“소희 씨, 여기요. 꼭 제 거로 하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한소희가 카드를 받으며 중얼거렸다. 오상진은 정말 급한 듯 카드를 건넨 후 바로 인사를 하고 나갔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소희 씨, 연락드릴게요.”
“네.”
오상진이 부랴부랴 레스토랑을 나갔다. 한소희는 약간 아쉬운 얼굴로 오상진이 건넨 카드를 바라봤다. 그때 김주희가 한소희의 손에 들린 카드를 유심히 바라봤다.
‘헐, 블랙카드! 저거 웬만한 사람은 못 들고 다니는 그 카드잖아. 그런데 군인이 저걸 들고 다닌다고?’
김주희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한소희를 보며 말했다.
“한소희, 그 카드 네 거지?”
“뭔 소리야. 방금 내 남친이 건네는 거 봤잖아.”
“거짓말하지 마, 지난번에 네가 그 카드 들고 있는 거 내가 봤거든!”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머, 어쩜! 그런 거니?”
“너도 참 군인 남친 기 살려주려고 열심히 한다.”
“괜찮아. 이해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얘!”
한소희는 그녀들의 말을 들으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를 보여주었다.
“이 카드 말하는 거니?”
한소희 지갑에서도 블랙카드가 나왔다. 순간 김주희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놀랐다.
“뭐야? 그 카드 두 장 발급 받았니?”
“아니야. 저 카드 아무나 내주지 않아.”
김주희가 바로 말했다.
“그럼…….”
친구들의 시선이 김주희에게 향했다. 김주희는 저 카드가 무엇을 뜻하지는 알고 있고, 쉽게 발급을 해주지 않는 것도 알았다.
“…….”
김주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소희가 나섰다.
“봐봐, 바보들아. 여기 내 이름 적혀 있지? 그리고 여긴 내 남친 이름이 찍혀 있지? 계속 헛소리할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주희는 끝까지 믿지 않으려 했다.
“줘봐, 확인해 볼게.”
“이게 어디……. 보려면 직접 와서 봐.”
김주희는 믿지 못하겠다며 벌떡 일어나 직접 확인을 했다. 정말 카드 두 개에 적혀 있는 이름이 달랐다.
“뭐야? 네 남친이 왜 이 카드를 들고 있어?”
“너, 이 카드가 가진 의미를 알고는 있어?”
“알지. 이거 블랙카드잖아. 거기 은행 VVIP에다가, 자산이 20억 이상인 사람이거나, 연 지출이 1억 이상인 사람에게만 한정적으로 발급해 주는…….”
주희가 놀라며 말하자, 한소희가 입을 열었다.
“뭐야? 되게 잘 아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그, 그게…….”
김주희는 입을 다물었다. 차마 자신의 아버지가 블랙카드를 신청했다가 까였다는 소리를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바로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네 남친 돈 많은가 봐?”
“글쎄다.”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계산은 하고 갈 테니까. 너희들끼리 맛있게 먹고 가라.”
한소희가 그 자리를 떠나고 김주희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