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38화
24장 부대 꼴 잘 돌아간다(2)
“야, 강대철.”
“이병 강대철.”
“너 X발, 뭘 잘했다고 나에게 지껄였냐?”
김일도 병장이 나직이 속삭였다.
“예?”
“불침번 근무자가, 그것도 이등병 녀석이 지각을 해? 넌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녀석이냐?”
“저, 그게 깨우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못 들었으면 다야? 고참이 깨웠는데 못 들었다면 다냐고. 오죽 네가 안 일어났으면 그런 식으로 깨웠을까? 그런 생각 안 해?”
“마, 맞습니다.”
“빨리빨리 처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나가!”
“네,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후다닥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김일도 병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동안 괜찮다고 했더니.”
김일도 병장이 잔뜩 짜증을 내며 도로 누웠다. 그때 옷 입는 소리와 장구류를 착용하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 내지 마, 개XX야!”
그러자 조용해졌다. 강대철 이병은 대충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정리했다. 그리고 상황실에 가서 불침번 근무 교대를 알리러 갔다. 시간은 어느덧 2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충성 이병 강대철 상황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당직사령이 강대철 이병을 보며 물었다.
“뭐야?”
“불침번 근무 교대자입니다.”
그 소리에 당직사령이 힐끔 시계를 확인했다.
“너 인마 왜 이렇게 늦었어?”
“그게 아니라…… 제가 좀 늦게 일어났습니다.”
당직사령이 강대철 이병의 이름을 확인했다.
“강대철? 이등병이네. 이등병이 이렇게 늦어도 돼?”
“…….”
당직사령이 눈을 매섭게 뜨며 물었다.
“다음 근무자가 제시간에 안 깨웠어?”
“아닙니다.”
“그런데 왜?”
“…….”
“됐다. 빨리 근무자 교대해.”
“네.”
강대철 이병은 다시 경례를 한 후 이해진 상병에게 갔다.
“이 상병님 죄송합니다.”
“됐어! 근무 제대로 서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내무실로 들어갔다. 강대철 이병은 근무일지를 확인하며 인상을 썼다.
“X발…….”
이해진 상병은 옷을 갈아입고 잠들기 전 화장실에 들르려고 다시 내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이 삐딱한 자세로 서 있었다.
“야, 똑바로 안 서!”
그 한마디에 강대철 이병이 후다닥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해진 상병은 그런 강대철 이병을 매섭게 째려본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아, 저 자식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강대철 이병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시 30분이 흐른 후 1소대 내무실에서 김우진 상병이 나왔다. 화장실로 가려는데 강대철 이병을 발견했다.
“야, 강대철.”
“이병 강대철.”
강대철 이병이 관등성명을 대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너 자세가 상당히 불량하다. 불침번 근무 똑바로 안 서!”
“아닙니다.”
“너 영창 갔다 와서 초반엔 좀 잘한다 싶더니……. 요즘 다시 상당히 불량스럽다. 제발, 네 소리 좀 내 귀에 안 들리게 할 수 없냐?”
“…….”
“어후, 부사수라는 것이 저딴 게 들어와서는.”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흔들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강대철 이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와, X발. 오늘 다들 왜 이러지?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젠장,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날 강대철 이병은 지워지지 않는 찝찝함과 억울함 속에서 불침번 근무를 서야 했다.
30.
시간이 지나고 김철환 1중대장은 예정대로 휴가를 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오상진의 휴대폰으로 김세나의 다급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오빠! 오빠! 지금 당장 저희 집에 좀 와줘요.
오상진은 깜짝 놀라며 전화를 걸었다.
“왜, 세나야?”
-오빠, 지금 급해요. 빨리요.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저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이 생겼어요.
“일생일대의 중요한 일?”
-오면 말해줄게요. 아무튼 빨리 와요.
“아, 알았어!”
오상진은 급히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김철환 1중대장 집으로 향했다.
허겁지겁 김철환 1중대장의 집에 도착한 오상진은 현관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김세나가 현관문을 열어줬다.
“세나야, 무슨 일이야?”
“오빠 잘 왔어요.”
걱정과는 달리 김세나는 밝은 얼굴로 오상진을 맞이했다. 그런데 거실 한쪽에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꼬마 숙녀가 있었다. 오상진은 그 숙녀가 바로 김철환 1중대장의 딸 김소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소은이 안녕!”
하지만 김소은은 매몰차게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순간 오상진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하아, 이 정도면 친해질 만한데…….”
그때 김세나가 방에서 뛰어나오며 말했다.
“오빠, 오빠 간식은 여기 냉장고 있고요. 똥오줌은 잘 가리니까요. 그냥 화장실에 데려다주면 돼요. 오늘 저녁까지만 봐줘요. 알았죠!”
“으응? 뭐?”
“미안해요. 저 지금 급히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어요. 이거 안 보면 저 너무너무 후회할지 몰라요.”
“그러니까, 그게 뭔데?”
“오디션요! 지금 연락이 왔어요. 아무튼 갔다 와서 말해줄게요. 소은이 잘 부탁해요. 소은아 이모 빨리 갔다 올게.”
김세나는 오상진이 말 한마디 할 틈도 안 주고 후다닥 현관을 뛰쳐나갔다. 그 덕에 오상진은 멍한 상태로 현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세, 세나야.”
오상진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나머지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런 오상진에게 어느새 김소은이 다가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삼촌.”
“응? 그래, 왜?”
“나 쉬…….”
“뭐?”
“쉬…….”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오상진은 혼자서 김소은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무슨 여자애가 체력이…….”
오상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휴대폰이 울렸다. 바로 한소희였다.
“소희 씨…….”
오상진은 거의 울먹이며 한소희를 불렀다. 한소희는 그런 오상진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그게 말이에요……. 지금 제가 지금 애를 보게 되었는데요.”
-애요? 누구 애를요?
“중대장님 애인데 소은이라고…….”
-아, 전에 상진 씨가 말했던 그 꼬맹이요?
“네네, 맞아요. 그런데 소은이가 예쁜 사람만 좋아해요.”
-네?
“전 너무 못생겼다고 바라봐 주지도 않는데……. 저 너무 힘들어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한소희는 오상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에도 아이들을 돌봐준 기억이 손에 꼽히는 오상진에게 애 돌보기란 유격보다 힘든 일이었다.
“소희 씨. 저 좀 도와줘요.”
-제가요? 어떻게요?
“미안한데 소희 씨가 좀 와주면 안 될까요? 우리 소희 씨는 예쁘니까 소은이가 좋아할 거 같아서요.”
-그게 뭐예요.
한소희는 다짜고짜 자신을 부르는 오상진의 말에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오상진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알았어요. 갈게요.
잠시 후 한소희가 김철환 1중대장의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한소희를 본 오상진의 표정이 환해졌다.
“소희 씨 어서 와요. 정말 구세주를 본 느낌이에요.”
“뭐래요.”
한소희가 안으로 들어갔다. 한소희를 발견한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던 김소은의 눈이 반짝였다.
“어? 예쁜 이모다.”
그러면서 한소희에게 쪼르르 달려가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한소희는 순간 당황하며 오상진을 보았다. 오상진은 그제야 한결 안심이 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 다행이다. 소희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정말 예쁜 사람만 좋아하는 거에요?”
“그게…… 형수님, 그러니까 중대장님 사모님께서 엄청 미인이시거든요. 물론 우리 소희 씨가 더 예쁘지만요.”
“칫.”
처음에는 자신에게 애 보기를 떠넘기기 위해 오상진이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보며 생글생글 웃는 소은이를 보니 오상진이 많이 고달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소희가 김소은을 안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오상진이 그간의 사정을 대충 둘러댔다. 한소희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중대장님 처제라는 분이 오디션 본답시고 애만 놓고 나가버렸단 거죠?”
“네.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와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생각할수록 얄밉네.”
“저도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그래도 인생이 걸린 오디션이라 그러는데 차마 붙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고 중대장님이 모처럼 휴가를 가셨는데 어떻게 또 모른 척합니까.”
“상진 씨 사정은 충분히 알겠으니까 그만 말해요. 계속 들으면 화날 거 같으니까.”
한소희도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찬찬히 아파트를 둘러봤다.
“그런데…… 여기가 군인 아파트에요?”
“아, 네에. 좀 작죠? 그래도 방 세 개에 거실 있고. 나름 괜찮아요.”
“그렇구나.”
한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찬히 집 구경을 했다.
“이거 몇 평 정도 돼요?”
“아마 20평 좀 넘을 걸요? 저도 잘 몰라요.”
“20평이 좀 넘는다라……. 그래도 좀 작긴 한데.”
한소희가 혼잣말을 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슬쩍 물었다.
“만약에 상진 씨가 결혼하면 이곳에서 살아야 돼요?”
“네?”
오상진이 눈을 끔뻑이며 되물었지만, 군인과 결혼하면 이런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 한소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한소희의 눈빛에 오상진은 살짝 당황한 듯 말을 꺼냈다.
“그, 글쎄요. 보통은 군인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지만…….”
“하지만?”
“우린 더 좋은 집에서 살 여력이 있으니까요.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지만…….”
한소희가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군인 아파트를 마저 훑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김소은과 놀아주며 나름 데이트도 즐겼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김세나가 집에 왔다.
“오빠 저 왔어요.”
그때 거실에서 소은이와 놀고 있는 한소희를 보며 깜짝 놀랐다.
“어? 누구세요?”
“아, 저는…….”
“세나 왔니?”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른 오상진이 뛰쳐나왔다. 김세나는 오상진의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고는 물었다.
“오빠? 그런데 이분은?”
“아, 오빠 여자 친구.”
“아, 그렇구나.”
한소희는 집에 들어온 김세나를 처음 봤다.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얘기는 들었다. 그 정도 되려면 얼굴이나 몸매에 자신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예쁠 것이라 생각은 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더 예쁘고, 몸매도 좋았다.
‘요즘 연예인 준비하는 애들은 다 저런가?’
한소희는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김세나는 오히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어머나, 안녕하세요. 상진 오빠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중대장님 처제 되시는 분이죠? 어머나! 연예인인 줄 알았어요.”
“에이. 아니에요. 언니가 훨씬 더 예쁘세요.”
두 사람은 서로를 칭찬하며 인사를 나눴다.
“제가 너무 늦었죠. 죄송해요, 오디션 2차 떨어졌다고 했는데 갑자기 붙었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런데 저 이 오디션 안 보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오상진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오빠! 저 합격했어요.”
“진짜? 축하해.”
오상진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김세나가 오상진에게 달려가 안기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