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37화
24장 부대 꼴 잘 돌아간다(1)
“박대기!”
“병장 박대기.”
“너, 이 녀석! 애들 관리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끝이야? 끝이냐고!”
“아닙니다.”
장재일 2소대장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박대기 병장의 쪼인트를 까버렸다.
“악!”
박대기 병장은 그대로 발을 쩔뚝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가. 믿고 분대장 달아줬더니 내무실 꼬라지 잘 돌아간다. 어?!”
“…….”
장재일 2소대장은 그렇게 큰소리를 친 후 내무실을 나가버렸다. 순간 내무실에는 쪼인트 까인 박대기 병장, 2소대장에게 혼난 이은호 이병, 그리고 중간에 난처한 김승곤 일병만이 남았다.
“하아…….”
오상진도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소대장이 되어서 상황을 해결하려는 생각 없이 그냥 화만 내 버리고 나가 버렸으니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시선을 돌리는데 김승곤 일병의 뺨이 붉게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이 자식들이.’
오상진의 날 선 시선이 박대기 병장에게 향했다.
그런 오상진의 시선이 불쾌했던지 박대기 병장이 보란 듯이 얼굴을 굳혔다.
‘도저히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
오상진은 애써 화를 삼키며 박대기 병장에게 말했다.
“분대장이야?”
“네. 그렇습니다.”
“여기 수습해라.”
“네.”
오상진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내쉬며 내무실을 나갔다. 다시 행정반에 들어가니 장재일 2소대장이 기분 나쁜 얼굴로 말했다.
“아, 진짜. 왜 나의 소대 일을 가지고 이래라저래라 합니까.”
“2소대장. 먼저 2소대 일에 간섭을 하게 된 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미안하긴 합니까?”
“2소대장.”
“아니, 미안한 줄 알면 미안한 일을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미 해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래도 그것을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전에 저에게 미리 말해줄 수는 없었습니까? 그리고 3소대장이나, 4소대장이었으면 이렇게 했겠습니까?”
“…….”
오상진은 말문이 턱 막혔다. 장재일 2소대장의 말처럼 3소대나 4소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면 아마 다르게 대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오상진의 속내를 읽기라도 했던지 장재일 2소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행정반을 나가버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오상진은 어두운 얼굴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생각을 했다.
‘내가 정말 잘못했나? 아니, 그 모습을 보고 어떻게 모른 척을 해?’
만약 오상진이 신참 소위였다면 이 상황에서 어찌 판단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상진은 장성을 바라보다가 과거로 돌아왔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 소대 내 폭력 문제를 겪었다.
‘아니지, 이건 아니야. 그냥 넘어가선 안 돼. 내가 고자질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대장님께 보고를 하는 것이 맞겠어.’
오상진은 생각을 마치고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을 만났다.
“1소대장 왔어? 청소 다 했다고 보고 하게?”
“아뇨, 청소는 아직 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난 네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할 때는 무섭다.”
“그게 말입니다.”
오상진이 자신이 보고 겪은 바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얘기를 다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벌컥 냈다.
“이런 십장생이 다 있나.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어? 지금 당장 2소대장 불러!”
“불러서 뭐라고 하실 겁니까?”
“뭐라고 하긴. 소대 관리 똑바로 하라고 해야지.”
“그러지 마십시오.”
“뭐?”
“여기서 2소대장을 더 몰아붙이시면 부대 분위기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이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길 바랐다. 장재일 2소대장을 불러 야단치더라도 지금과 같은 감정으로 혼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사고 친 장재일 2소대장보다 입에 발린 소리로 말리는 오상진이 더 얄미웠다.
“1소대장!”
“네.”
“하나만 해! 네가 지금 나에게 보고를 하는 것은 장재일 그 녀석 버릇 고치라고 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런데 이런 일을 일러놓고, 나보고 하지 말라면 어떻게 하냐? 그래 안 그래? 아니면 내가 신병 옆에 꼭 붙어 있을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빠져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어쩔 수 없이 방을 나가고, 김철환 1중대장은 휴대폰을 들어 2소대장을 불렀다.
똑똑똑.
“들어와.”
장재일 2소대장이 들어왔다. 김철환 1중대장이 2소대장을 보며 말했다.
“2소대장. 내가 1소대장에게 얘기는 들었다. 너희 소대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아, 그게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 넌 소대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신병이 그런 꼴을 당하는 줄도 몰라. 얼마 전에 1소대 신병도 또라이 짓을 해서 영창 간 것 알아, 몰라? 그런 일이 있었는데 소대장이라는 녀석이 신병 하나 케어하지 못해! 내가 분명 말했지. 그 녀석 많이 심약하고,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이야. 내가 말했어, 안 했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애가 너무…….”
“당연히 신병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안 그래?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런 말도 되지 않는 짓을 해! 솔직히 말해봐, 너 알고 있었지?”
“아뇨, 몰랐습니다.”
“몰랐어? 진짜야?”
“네.”
“소대장이 되어서 몰랐다는 게 말이 돼!”
“…….”
장재일 2소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알았다고 해도 문제가 될 테고, 몰랐다고 해도 혼이 날 거라면 차라리 몰랐다고 잡아떼는 편이 나았다.
“좋아, 몰랐다는 말 믿어보지.”
“정말 몰랐습니다.”
“시끄럽고 앞으로 똑바로 처신해. 내가 지켜볼 거야. 신병 그 애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너 옷 벗을 각오해! 경고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 이런 일로 1소대장에게 지랄하지 마. 나중에 일 터져서 뒷수습하는 것보다 미리미리 신경 써주는 것이 어디야. 고마운 줄 알라고.”
“네.”
하지만 장재일 2소대장은 이렇게까지 꾸중을 들은 마당에 고마움을 느낄 리가 없었다.
장재일 2소대장은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로 행정반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도 펴질 줄 모르는 장재일 2소대장 때문에 행정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 분위기가 영…….”
4소대장의 말에 3소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람 진짜 뭔 일이 있었나 봅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죠?”
3소대장과 4소대장이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오상진은 그 분위기가 불편해 행정반을 나갔다.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이 몸을 뒤로 젖히며 욕을 내뱉었다.
“와, X발! 진짜…….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3소대장이 그런 장재일 2소대장의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진짜. 이번에 새로 온 신병 있잖아.”
“네.”
“하도 군기가 빠져 있어서 군기 좀 잡으라고 했더니 오늘 애들이 좀 과하게 군기를 잡았던 모양이야. 사실 애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잖아. 훈련 중에 얼빠진 신병 하나 때문에 사고라도 터지면 누가 책임질 건데?”
“그건 그렇습니다.”
“그런데 1소대장이 그걸 본 모양이야. 그거 가지고 신병 가혹 행위 한다고 지랄을 하지 뭐야.”
“1소대장이 말입니까?”
“그래, 시발!”
4소대장이 가만히 듣더니 2소대장을 옹호했다.
“그냥 군기 잡은 거로 가혹 행위라고 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3소대장도 맞장구를 쳣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1소대장이 너무하셨네.”
“그렇지? 내가 이상한 거 아니지? 만약에 말이야, 너희들 소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소대장이 가서 막 휘저어. 그럼 기분이 좋겠냐?”
“이건 확실히 1소대장이 잘못하신 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이 맞장구를 쳐주자, 장재일 2소대장이 기고만장했다.
“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4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1소대장님 왜 그러셨지? 원래 안 그러시는 분인데.”
“아, 몰라! 아무튼 더럽고 치사하네. 그리고 중대장님이 어디 육사 출신 감싸는 거 하루 이틀이냐.”
3소대장과 4소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솔직히 행정반에서 오상진 빼고는 모두 육사 출신이 아니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행정반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29.
그날 밤.
부대원들이 모두 잠든 시각.
각 중대 복도에는 불침번 근무자들만 자리해 있었다. 그중 1소대 앞 불침번 근무자는 이해진 상병이었다.
이해진 상병이 시계를 확인하자 어느새 새벽 1시 50분이 되어 있었다. 이제 슬슬 교대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해진 상병은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1소대 내무실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여 다음 근무자에게 다가갔다.
“야, 일어나.”
이해진 상병의 다음 근무자는 공교롭게도 강대철 이병이었다.
“강대철.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아으으으음, 10분만…….”
강대철 이병은 고개를 흔들며 잠을 청했다. 자연스럽게 이해진 상병의 눈에 불이 켜졌다.
“이 자식, 또 시작이네. 강대철, 일어나라고!”
이해진 상병이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강대철 이병은 듣질 않았다.
머리를 툭툭 건드려 봤지만 마찬가지. 강대철 이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이해진 상병은 손전등을 켜서 강대철 이병 얼굴에 비췄다. 순간 강한 불빛에 강대철 이병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눈을 떴다.
“아, 뭐야?”
그 소리에 잠귀가 밝은 김일도 병장이 일어났다.
“뭐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이해진 상병이 바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김 병장님. 주무십시오.”
“뭔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무자 깨우려고 들어왔습니다.”
“야, 인마. 살살 깨워! 자는 사람 다 깨우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이에 강대철 이병이 이때다 싶어 얼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김 병장님. 저 자는데 이 상병님이 손전등으로 제 얼굴을 비췄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서 소리를 내버렸습니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약간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해진아. 왜 그랬어? 손전등을 얼굴에 비추고 그래.”
“아니, 강대철이 다음 근무자인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말입니다. 지금 벌써 3분 지각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일도 병장이 상체를 일으킨 상태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런 미친 자식!”
“김 병장님 참으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저 자식……. 또라이 아니야? 아니, 이등병 녀석이 불침번 근무자가 깨우는데도 일어나지 않고, 근무시간까지 늦어? 그것도 고참이 깨우는데?”
“…….”
순간 강대철 이병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설 데 안 나설 데 모르고,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가 지금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