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33화
23장 첫 휴가(3)
한편, 김소희는 오랜만에 신호가 와서 화장실에 있었다.
“그래, 왔어. 왔다고…….”
김소희는 잔뜩 인상을 주며 힘을 줬다. 하필이면 그때 전화가 울렸다.
‘지잉!’
김소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중요한 타이밍에 누가 전화를…….”
김소희는 신경 쓰지 않고 볼일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전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울려댔다.
“아, 진짜!”
김소희는 결국 짜증 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희 씨 저예요. 쉬고 있어요?
“아, 아뇨. 그게……. 중요한 볼일을…….”
-중요한 볼일요? 그게 뭔데요?
“뭘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요. 내려갈 테니까 기다려요.”
-왜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김소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눈치 없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력이 더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하아, 저 화장실이에요.”
결국 김소희가 말했다. 순간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한대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신호가 왔어요?
“아, 몰라요. 끊어요!”
김소희가 전화를 끊은 후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 진짜!”
그 시각, 한대만은 휴대폰을 바라보며 멍한 얼굴이 되었다.
“쩝. 타이밍도 참…….”
한대만 역시도 김소희가 변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신호가 왔을 때 자기가 전화를 했으니…….
한대만은 살짝 미안해졌다. 그렇게 다시 20분이 흐른 후 김소희가 내려왔다.
“어? 왔어요?”
“네.”
“타이밍 잘 맞춰서 내려오셨네. 어서 앉으세요. 이제 막 고기 다 구웠어요.”
오상진의 말에 김소희가 어색하게 웃은 후 한대만에게 갔다.
“와, 왔어요?”
“뭐예요, 진짜. 엄청 중요한 시기에…….”
“미안해요.”
“며칠 만에 온 신호였는데…….”
“그래서 실패했어요?”
“거의 성공까지 갔는데 전화가 오는 바람에 실패했어요.”
“정말 미안해요.”
“됐어요! 제가 누렇게 뜨면 대만 씨 책임이에요.”
“소, 소희 씨…….”
한대만이 미안한 얼굴로 김소희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붙지 마요.”
“소희 씨…….”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오상진과 한소희는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24.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그제야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밤이 되니 주변의 불빛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우와, 불빛 예쁘다.”
한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경치를 구경했다. 오상진은 그런 한소희의 옆으로 다가가 살며시 어깨를 감쌌다. 한소희는 자연스레 오상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야, 역시 제대를 하니까 좋네. 어떻게 4년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한대만이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봤다.
“매제.”
“네?”
“자넨 어때? 군대 생활 괜찮아?”
“전 괜찮습니다.”
“그러고 보면 매제는 딱 군대 체질인 것 같아.”
“에이, 군대 체질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하는 거죠.”
오상진의 말에 한대만이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한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생.”
“왜?”
“넌 어때? 네 남친이 계속 군인 해도 괜찮아?”
“뭐 어때? 난 상진 씨 멋있기만 한데.”
“그래?”
한대만은 한소희의 의외의 대답에 살짝 놀란 반응이었다. 그것은 오상진도 마찬가지였다. 한소희가 ‘난 상진 씨가 빨리 제대하고 다른 일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대만이 갑작스럽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한소희가 오상진이 다른 직업을 선택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김소희와도 엮어서 얘기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동생이 괜찮다고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 형님께서 김 중위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구나.’
한대만의 의도를 눈치챈 오상진은 한대만을 대신해 김소희 중위에게 슬쩍 물었다.
“참, 김 중위님은 군 생활 요즘 어떻습니까?”
“뭐가 어때. 괜찮지. 나쁘진 않아.”
“그런데…… 김 중위님은 언제까지 군에 계실 겁니까?”
오상진의 질문에 김소희 중위가 힐끔 한대만을 쳐다봤다. 한대만도 김소희의 대답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지?”
“들어보니까 요즘 여성 군인이 진급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것 같아서요. 김 중위님은 어떤 생각이신가 궁금해서 물어본 겁니다.”
“그래도 기왕 군인을 한다고 맘을 먹었는데 최소한 대위까지는 달아봐야지.”
“그러십니까?”
“응, 최근에 진급 시험도 준비 중이고.”
“아, 네에……. 그럼 대위까지만 할 생각입니까?”
“모르지, 그건 그때 가 봐야 알겠지.”
김소희 중위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김 중위님은 뭐든 잘하실 것 같습니다.”
“고마워.”
오상진은 질문을 끝냈다. 그 대화를 듣던 한대만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오상진은 혼자 속앓이를 하는 한 대만이 남자로서 안쓰러웠다. 그때 잠깐 경치를 구경하던 한소희가 몸을 작게 떨었다.
“밤이 되니까, 좀 춥네요.”
“그래요?”
오상진이 재빨리 거실로 가서 얇은 담요를 챙겨왔다. 물론 김소희 중위 것도 함께 말이다.
“고마워요.”
“고마워, 오 소위.”
“자, 그럼 저녁도 다 먹었고. 이거 치울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들이 나섰다.
“치우는 건 저희 둘이 할 테니까 남자분들은 먼저 올라가서 쉬고 계시죠.”
“어어, 그래도 돼?”
한대만이 물었다. 김소희 중위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어서 올라가요.”
“아, 알았어.”
“추운데 괜찮겠어요?”
이번에는 오상진이 한소희에게 물었다.
“금방 치워요. 그러니 먼저 올라가요.”
“알았어요.”
오상진은 한대만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오상진이 한대만에게 말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뭐가?”
“김 중위님 말입니다. 의지가 확고한 것 같습니다.”
“아! 매제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솔직히 여자가 소령 달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냥 지켜봐 주시는 것이…….”
오상진이 위로의 말을 꺼내는데 한대만의 눈빛이 어느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괜찮아. 나에게 플랜 B가 있어.”
“네? 플랜 B요?”
“그래.”
“어떤 건데요?”
“아, 그거……. 후후후, 나중에 말해줄게. 그보다 매제!”
“네.”
“혹시 그건 준비했나?”
“어떤 걸…….”
“에헤이. 정녕 몰라?”
“네.”
“그거 말이야. 콘돔!”
“예에?”
오상진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을 본 한대만이 오히려 놀라고 있었다.
“뭐야? 안 챙겼어?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아, 아니. 그것이…….”
오상진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아니, 오빠라는 사람이 대놓고 그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오상진은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한대만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매제, 보기보다 대범하네. 안 챙겨도 되는 거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뭐야. 여행 오면 그 정도는 기본이지. 에효, 혹시나 싶어서 내가 미리 챙겨왔으니 망정이지. 기다려 봐.”
한대만이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한대만이 주머니에서 사각형의 박스를 건넸다.
“자! 이거 가지고 있어.”
“형님. 이건…….”
“아껴서 사용해.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니까.”
“에이, 이 정도면 많습니다.”
“뭐? 많아? 우리는 부족하던데. 이틀 있을 거잖아.”
“그, 그렇긴 한데…….”
“가만 너희 설마……. 아직까지 손만 잡고 자는 건 아니지?”
오상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형님 저희는 아직……. 진도를 못 나갔습니다.”
“뭐라고? 세상에 너 거기에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아, 아닙니다.”
“설마 첫 키스도 안 했어?”
오상진은 살짝 망설였다.
‘여기서 키스까지 안 했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까? 그래. 그냥 키스는 했다고 하자.’
“키스는 했습니다.”
“확실해?”
“네.”
“소희한테 물어본다?”
“물어보십시오.”
오상진이 바로 답했다. 한대만이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키스까지 했다면서 왜 진도를 못 뺀 거어?”
“소희 씨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제가 바쁘기도 했고요.”
“하긴……. 가만 그러면 너희 둘. 첫날밤이라는 거네.”
한대만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간에, 꼭 이걸 사용해. 사실 내가 오 소위 자네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 동생이 우선이야. 물론 두 사람이 결혼까지 했으면 좋겠어. 다만, 결혼 전까지 애는 절대 안 돼! 게다가 우리 소희는 아직 학생이잖아. 그러니 피임은 꼭 하라고. 알았지?”
오상진이 가만히 듣다가 입을 열었다.
“형님은 소희 씨 친오빠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까지 챙겨주십니까?”
“왜? 이상해? 난 말이야. 우리 소희 아무에게나 줄 생각 없어. 그런데 자네라면 돼! 자네라면 믿고 우리 소희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절 너무 좋게 보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사람 하나는 참 잘 본다. 너는 괜찮은 놈이야. 자네 소희 좋아하지?”
“물론입니다.”
“그래, 소희도 널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끼리 같이 잘 수도 있는 거지. 안 그래? 나도 그리 꽉 막힌 사람은 아니야. 다만, 우리 소희가 아직 학생이니까. 조심해 달라는 것이지. 그것까지만 부탁할게.”
“예, 알겠습니다.”
오상진도 한대만의 진심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한대만이 슬쩍 미소를 띄웠다.
“에잇, 기분이다. 부족하면 말해. 조금 더 챙겨줄 테니까.”
“혀, 형님!”
25.
오상진이 방으로 돌아와서 주머니에 있는 콘돔을 꺼냈다. 상자 안을 확인해 보니 콘돔이 6개나 들어 있었다.
“이거 좋은 것 같은데. 울트라씬 0.01mm? 이야, 이 시절에 이런 것도 있었나? 많이 발전했네.”
오상진이 이것저것 구경하고 있는 문이 열리며 한소희가 들어왔다. 오상진이 화들짝 놀라며 콘돔을 숨겼다.
“소, 소희 씨 왔어요?”
“네. 그런데 뭘 숨긴 거예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하하하…….”
오상진이 어색하게 웃자 한소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예요? 솔직히 말해봐요.”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저에게 숨기는 거예요?”
“수, 숨기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럼 빨리 보여봐요. 뭐예요?”
한소희가 손을 내밀자 오상진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콘돔을 보여줬다.
“하아…….”
한소희가 콘돔을 확인하고 살짝 놀랐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머나! 이게 뭘까?”
“…….”
“세상에, 우리 상진 씨 이런 것도 가지고 다녔어요?”
“아,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혀, 형님께서…….”
“네에? 우리 오빠가 줬다고요?”
“네.”
오상진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한소희는 살짝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우리 오빠도 참! 어떻게 이런 걸 줄 생각을 했지.”
“제, 제 말이요. 저도 황당했다니까요. 쓸 일도 없을 텐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네?”
“왜 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