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30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11)
“군 부대에서 종종 지뢰가 발견되기도 하니까요. 아닐 거 같지만 조심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럼 소대장님!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뇨, 박하사! 일단 주위에 있는 병력들 뒤로 멀찍이 물리시죠.”
“소대장님!”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상진이 비장한 얼굴로 노현래 이병에게 다가갔다.
“현래야. 겁내지 마. 소대장이 옆에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가만히 있어!”
“네, 소대장님.”
노현래 이병은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땅을 봤다.
‘그래 예전에 전방에 있을 때 지뢰를 본 적이 있어. 그때 기억을 되살려서 확인을 해보자.’
오상진은 아주 조심스럽게 흙을 들어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박중근 하사가 소리쳤다.
“소대장님! 제가 내려가서 지뢰 제거반을 불러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부대에 지뢰 제거반 없습니다. 다른 타 부대에 요청을 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주위는 고요했다. 오상진이 신중한 자세로 흙을 들어냈다. 그사이 김일도 병장은 일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당혹스러웠다.
‘어어, 이게 아닌데…….’
이해진 상병이 조심스럽게 김일도 병장에게 다가갔다.
“김 병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나, 나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어서 소대장님께 말씀하십시오. 가짜라고!”
“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말해!”
“그래도…….”
이해진 상병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야, 가만있어 봐. 말해도 내가 말해.”
“계속 시간 끌수록 더 이상해집니다.”
“알았어!”
김일도 병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얘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박중근 하사가 막았다.
“야, 아직 위험해! 들어가지 마.”
“그, 그게 아니라…….”
김일도 병장은 오상진에게 말하려다가 또 막히자 더욱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사이 오상진은 노현래 이병에게 말을 붙이며 흙을 매우 조심스럽게 파냈다.
“현래야, 소대장만 믿어. 겁먹지 말고.”
“네, 소대장님.”
오상진이 흙을 들어내자 원반형 물건이 나타났다. 그런데 지뢰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이상했다.
‘지뢰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6·25 때 지뢰라면…….’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조심히 좀 더 흙을 들어냈다. 그리고 확연히 드러나는 원반형의 물건.
“어? 이건…….”
오상진이 살살 흙을 들어내며 나타난 상표를 확인했다. 아니, 상표만 보더라도 이것이 지뢰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Balgsuks 스포츠? 이거 운동기구 상표인데.”
오상진은 일단 노현래 이병에게 말했다.
“현래야, 발 치워봐.”
“네? 그러다가 터지면…….”
“지뢰 아니야. 발 치워.”
“아, 네에.”
노현래 이병이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구나. 다행이네.”
오상진이 원반형 운동기구를 빼냈다.
“이거 뭐야? 이게 왜 여기 있지?”
박중근 하사도 지뢰가 아닌 것을 알고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와, 지뢰 아니었습니까?”
“네. 운동할 때 쓰는 기구입니다.”
“아, 이렇게 보니 그렇네요. 그보다 이게 왜 여기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그러게요.”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가 서로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결과는 허탈했지만 지뢰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사이 김일도 병장이 조용히 이해진 상병을 따로 불러 말했다.
“너, 입 다물고 있어. 알았지!”
“그, 그래도…….”
“인마,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아무도 몰라.”
“강철이는 알고 있습니다.”
“그건 네가 입단속 시키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은 이런 일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김일도 병장은 그저 잠깐의 웃음을 유발하려고 준비한 것이 이렇듯 큰일이 될 줄은 몰랐다.
‘젠장, 소대장님 때문에 장난도 맘 편히 못 치겠어.’
한편 박중근 하사는 오상진을 보며 놀라워했다.
“소대장님, 아까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오상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현래가 무서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기에 몸이 먼저 반응을 했나 봅니다.”
오상진도 말을 하면서 뿌듯해했다. 진짜 지뢰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지뢰였다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만 해도 암담했다. 무엇보다 노현래 이병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오상진이 그렇게 말하니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김일도 병장과 이해진 일병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
“김 병장님. 이 일은…….”
“절대 비밀이다. 한 마디도 뻥긋하면 안 돼. 알았지?”
“물론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무덤까지 비밀을 가지고 가기로 약속했다.
“소대장님 멋지십니다.”
내려오는 길에 김일도 병장은 괜히 큰소리로 외쳤다.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소대원들도 오상진을 향해 박수를 쳤다. 그때 벽돌을 가지고 올라오고 있던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마침. 잘 왔다. 강철아.”
“……?”
“잠깐 나 좀 볼까?”
김일도 병장이 최강철 이병의 어깨를 감싸며 어디론가 끌고 갔다.
그렇게 한동안 1소대원들에게 회자될 지뢰 오인 사건은 완벽하게 조작됐다.
21.
5일간의 진지 공사 일정이 지나고 1소대원들은 무사히 참호 보수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오상진이 내무반으로 피자와 콜라를 들고 나타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 진지 공사를 하느라 고생 많았다. 피자와 콜라는 소대장이 쏜다. 많이들 먹어라!”
“와아아아! 감사합니다.”
1소대원들은 신이 난 얼굴로 피자와 콜라를 마셨다. 오상진은 그런 소대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참, 진지 공사 도중 다친 사람 있으면 손들어 봐라!”
오상진이 물었지만 다들 먹느라 정신이 없던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정말 다친 사람 없어?”
“지금은 없지 말입니다.”
“그러다 나중에 아프다고 해도 의무실 못 간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봤는데 딱히 다친 애들은 없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김일도 병장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일도야.”
“병장 김일도.”
“내일 진지 공사 때 사용했던 장비는 깨끗이 정비해 놓고.”
“알겠습니다.”
“그래, 주말 잘 보내고. 소대장은 2박 3일 휴가라 화요일에나 볼 것 같다.”
“오오, 소대장님 휴가 가십니까?”
“그래, 인마! 너희들도 휴가가 있는데 소대장도 있어야지. 아무튼 소대장이 없다고 사고 치지 말고!”
“에이, 저희가 무슨 사고만 칩니까.”
“조심하라는 뜻에서 말하는 거다. 아무튼 주말 잘 보내라.”
“넵! 휴가 잘 다녀오십시오. 충성.”
“그래, 쉬어라.”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내무실을 나왔다. 행정반으로 들어가서 짐을 챙긴 후 관사로 가려고 했다. 이미 휴가 신고도 마친 상태였다.
“그럼 휴가를 떠나볼까?”
오상진은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한소희였다.
“어? 소희 씨!”
-상진 씨 혹시 오늘 시간 돼요?
“지금 부대에서 퇴근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요? 잘 됐다! 그럼 오늘 우리 좀 만나요.
“안 그래도 엄청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 박력 뭐죠?
“하하. 제가 원래 한 박력 합니다.”
-칫. 알았어요. 이따가 봐요.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행정반에 들어갔다. 한소희를 만날 생각을 하니 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오상진은 한소희와 약속된 장소에 도착을 했다.
“소희 씨!”
“상진 씨, 차 주차장에 대고 오세요.”
“아, 네에.”
오상진은 차를 주차장에 대고 나왔다. 한소희가 자연스럽게 오상진의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아, 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소희 씨. 그런데 여긴 아울렛 아니에요?”
“아, 제가 남자 친구 생기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거든요. 저 따라와요.”
한소희가 오상진의 팔을 붙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오상진이 들어간 곳은 수영복 가게였다. 그중에서 비키니가 잔뜩 진열되어 있는 핫코너였다.
“소, 소희 씨 여긴…….”
오상진이 당황하며 뒤로 몸을 뺐다. 한소희가 팔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아, 왜요. 저 남자 친구 생기면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그, 그래도 여긴 제가 눈 둘 곳이…….”
“그냥 수영복이에요. 수영복!”
“하지만 비키니인데요.”
“비키니가 어때서요. 여자라면 다 입는 것을요. 그리도 제 몸매에 비키니가 어울리지 않겠어요?”
한소희는 잔뜩 몸매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러자 여종업원이 거들었다.
“어머나, 손님 너무 몸매가 좋으세요.”
“거봐요. 그러니 잔말 말고 이리 와요.”
오상진은 어쩔 수 없이 한소희에게 이끌려왔다. 사실 한소희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어제저녁 한소희는 한대만이 커플 수영복을 장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자신도 질 수 없다며 오상진을 데리고 와 커플 수영복을 장만하려는 것이었다.
“상진 씨 이건 어때요?”
“네? 좋아요.”
“이건요?”
“그것도 아름답네요.”
한소희가 부지런히 맘에 드는 수영복들을 골라 봤지만 그때마다 오상진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못내 못마땅한지 한소희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상진 씨 너무해요.”
“미안해요. 소희 씨. 제가 워낙에 이런 것에는 젬병이라…….”
“그래도 우리 오빠는 여자 친구랑 커플 수영복으로 장만했던데.”
“네? 그럼 설마…….”
오상진은 그제야 눈치를 챘다. 한마디로 한소희도 오상진과 커플 수영복을 입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거면 진즉 말을 하죠. 이번에는 제대로 볼게요.”
“정말이죠?”
“네.”
한소희는 한 번만 더 믿어보기로 하고 비키니를 골랐다. 오상진은 이번에는 제대로 확인을 했다.
“이거 어때요?”
한소희가 내민 비키니를 확인한 오상진은 살짝 얼굴을 붉혔지만 시선은 피하지 않았다.
“어엄, 괘, 괜찮은데요.”
“그래요?”
“난 이게 좋은 것 같은데…….”
한소희가 살짝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손님께서는 가슴이 조금 크셔서 이것보다는 이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가슴을 좀 더 돋보이게 해주거든요.”
“아, 그래요?”
한소희가 눈을 반짝이며 그 수영복을 몸에 댔다. 오상진은 곧바로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어험…….”
“상진 씨, 이거 봐봐요. 전 이게 맘에 드는데!”
“소, 소희 씨가 맘에 든다면 저도 좋아요.”
오상진은 어떻게든 최대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했다. 그 모습에 한소희 역시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수영복을 골랐다.
“그럼 일단 이건 킵해놓고……. 다른 거 더 둘러봐도 되죠?”
“그럼요.”
한소희가 다른 수영복을 꺼냈다. 이번 건 저번 것보다는 덜 야한 디자인의 수영복이었다.
“상진 씨 이건요?”
“오오, 그거 괜찮네요.”
“상진 씨는 섹시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 그게 소희 씨 몸매가 워낙에 좋아서요.”
“……?”
“충분히 야합니다. 저한테는.”
“아하? 그랬구나? 내가 그걸 미처 몰랐네?”
한소희가 짓궂게 웃어댔다. 그리고는 오상진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