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28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9)
“자자, 내가 하는 것 봤지? 이렇게 하는 거다.”
“네, 알겠습니다.”
김우진 상병의 지시를 받은 후임병들이 모두 삽과 야삽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그 작업이 오후 늦게까지 진행되었다.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박중근 하사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외쳤다.
“자, 오늘 작업은 여기까지 하자. 모두 장비 챙겨서 집합!”
“집합!”
그렇게 진지 공사 첫날이 무사히 지나갔다.
19.
고된 하루가 가고 진지 공사 둘째 날이 밝아왔다.
흙벽돌을 만드는 작업은 여전히 산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참호 공사를 하는 인원들은 올라갈 때 잘 말린 흙벽돌을 두 개씩 들고 올라갔다. 그냥 맨몸으로 올라가도 힘든데 무게가 제법 나가는 흙벽돌 두 개씩 들고 가는 것은 몇 배는 더 힘들었다.
“와, 무게가 장난 아닙니다.”
“이걸 들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갑니까?”
1소대원들은 물론 다른 소대원들 역시 두려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일도 병장이 마른 흙벽돌을 만지고 있는 강대철 이병에게 다가갔다. 강대철 이병은 생각보다 열심히 흙벽돌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한 차례 사고를 쳐서일까. 김일도 병장은 강대철 이병이 좀처럼 미덥지 않았다.
“대철아.”
“이병 강대철.”
“너, 흙벽돌 가지고 이상한 생각 하면 안 돼.”
“네?”
“그거 공사할 때 쓰는 벽돌이니까 다른 용도로 쓰면 안 된다고.”
“저 이제 안 그럽니다.”
“알았어. 그러니까, 그냥 하지 말라고.”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흙벽돌을 가지러 온 김우진 상병이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김일도 병장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김 병장님,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뭐하러 건드리십니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저 녀석 나에게 딱 걸렸잖아.”
“뭘 말입니까?”
“설마 너 몰랐냐?”
“네?”
“아니, 저 녀석 김 대식 병장님 마지막 날에 표정 썩어들어간 거 말이야.”
“그랬습니까?”
김우식 상병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강대철 이병을 보았다. 그러자 김일도 병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저 녀석 지금 저러고 있는 거 순 연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인다고.”
“그러니까 지금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다 가식이란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내가 계속 경고를 해줘야지. 다 지켜보고 있다면서 말이야.”
“에이, 그러다가 저 녀석 확 돌아서 진짜 벽돌 들고 덤비면 어떻게 합니까.”
“벽돌 들고 난리 치면 네가 말려야지.”
“네? 제가 말입니까?”
“내가 맞을 수는 없잖아. 네가 사수잖아.”
“아니 김 병장님이 건드려놓고, 왜 저보고 뒷감당을 하라고 합니까.”
“어쨌든 네가 막는 거다.”
“싫습니다.”
“야, 고참이 말하는데! 까라면 까야지.”
“와, 여기서 계급으로 미는 겁니까?”
“왜? 꼬우면 네가 먼저 들어오지 그랬어.”
순간 김우진 상병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보고 김일도 병장이 눈을 부릅떴다.
“어? 그 표정 뭐냐? 아니꼽냐?”
“네? 제 표정이 어땠는데 말입니까? 저 항상 웃는 얼굴이지 않습니까. 보십시오.”
김우진 상병이 일부러 입가를 찢어 올리며 말했다.
“야, 그게 더 억지스럽거든?”
“억지웃음 아닙니다. 김 병장님을 향한 사랑이 가득 담긴 웃음인 거 안 보이십니까?”
“이 자식이!”
“아, 좀 놓으십시오. 그리고 저 빨리 벽돌 들고 올라가야 합니다.”
김우진 상병이 헤드락을 걸려는 김일도 병장의 손을 걷어내며 말려놓은 흙벽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야, 너 원래 여기에 농땡이 피우려고 온 거 아니야? 그럼 좀 더 쉬다가 가!”
“됐습니다. 김 병장님 때문에 농땡이도 못 부리겠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투덜거리며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김일도 병장이 미소 지으며 김우진 상병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진아, 쉬고 싶으면 또 내려와. 나랑 놀게!”
“됐습니다.”
김우진 상병의 메아리 소리를 저 멀리서 들려왔다. 김일도 병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20.
시간이 지나 본격적인 보수 작업이 시작되면서 위에서는 흙벽돌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흙벽돌을 만드는 쪽에서 벽돌 지게를 지고 보급을 해주기로 했다.
“대철아, 너 몇 개까지 가능하냐?”
“그냥 많이 주십시오.”
“많이? 이거 꽤 무게 나간다.”
“괜찮습니다.”
“알았다.”
김일도 병장이 벽돌 지게를 지고 있는 강대철 이병에게 3개를 올렸다. 한 개만 해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네. 하나 더 올려주십시오.”
“하나 더? 좋아. 어때?”
“하나 더 올려주십시오.”
“욕심부리지 말고 4개만 일단 해봐.”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너 잘못하다가 허리 나간다!”
“절대 안 나갑니다.”
“후회 없지?”
“네. 없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5개 까지 해보자.”
“하나 더 올려 주십…….”
“그만 까불어라.”
“넵.”
김일도 병장은 강대철 이병이 쓸데없이 호기를 부린다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병 때 강대철 이병처럼 힘쓰는 거로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호기를 부렸었기 때문이다.
“준비됐으면 천천히 일어나.”
“네, 알겠습니다.”
노가다 경혐이 많은 강대철 이병은 자신만만했다. 흙벽돌의 크기가 일반 벽돌에 비해 몇 배는 크다고 해도 노가다 판에서 벽돌을 산처럼 지고 옮기기도 했으니까 이 정도쯤은 껌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어…….”
생각보다 무게가 나갔는지 왼쪽 다리가 휘청했다.
결국 벽돌 지게 맨 위에 있던 흙벽돌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며 깨졌다.
“야, 인마! 그러게 내가 욕심부리지 말라고 했지!”
김일도 병장의 핀잔에 강대철 이병은 당황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너 때문에 애써 만든 벽돌 다 깨졌잖아. 이거 어떻게 해?”
“제가 다시 붙여 놓겠습니다.”
“붙이기는……. 됐어! 4개, 아니, 3개만 가지고 올라가.”
“네,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은 흙벽돌을 3개만 지고 올라갔다. 5개보다는 3개가 훨씬 가벼웠다. 하지만 반쯤 올라가다 보니 점점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와, 젠장! 5개 가지고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강대철 이병은 한참을 더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참호 공사로 한창이었다.
“야, 이쪽을 조금만 더 파!”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벽돌 가져가고!”
“넵!”
진지 공사에 합류한 오상진은 적재적소에 소대원들을 투입시켰다. 경험이 많지 않은 소대장들은 멀뚱히 서서 부소대장에게 맡기곤 했지만 오상진은 과거 대대장까지 해 봤기 때문에 진지 공사쯤은 빠삭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나서진 않았다. 적당히 끼어들었다가 다들 열심히 하는 거 같으면 슬그머니 한발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소대원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다.
“예전에는 마대자루 있지?”
“네.”
“거기에 흙을 파서 진지를 세웠지! 아, 폐타이어도 있었다. 요즘 군대는 그래도 환경을 많이 생각하네.”
“아, 하긴 흙벽돌로 세우니까. 다시 흙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다시 매번 진지 공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환경도 지키고 얼마나 좋냐! 잡담 끝, 다시 시작하자.”
“넵!”
오상진이 박수를 치며 다시 소대원들을 격려했다. 자연스럽게 소대원들도 분주하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그때 1중대 행보관인 김도진 중사가 한창 작업 중인 곳에 올라왔다. 그는 공사 상황을 꼼꼼히 확인을 하더니 어느 한 곳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얘들아 하는 김에 저쪽에 새로 참호 하나만 팠으면 좋겠는데.”
“저쪽은 저희 구역이 아닙니다.”
김우진 상병이 다가와 말했다.
“인마, 행보관이 하라면 하는 거지. 가서 파! 그리고 너희 소대장에게 허락받았어.”
“정말입니까?”
“왜? 불러서 확인시켜줄까?”
“아닙니다.”
김우진 상병이 하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다가왔다. 그리고 이해진 상병을 보며 말했다.
“해진아.”
“상병 이해진.”
“너, 저쪽에 구덩이 하나만 파라.”
“저쪽 말입니까?”
“그래!”
“갑자기 저쪽은 왜?”
“몰라! 행보관님이 파라는데, 까라면 까야지. 애들 두 명 데리고 가서 파.”
“네. 알겠습니다.”
이해진 상병이 최강철 이병, 조영일 일병을 데리고 가서 구덩이를 팠다. 조영일 이병이 삽질을 하다가 물었다.
“얼마 정도 파야 합니까?”
“글쎄다, 나도 잘 모르겠네. 뭐, 저쪽 참호 정도면 되지 않겠냐.”
“헐……. 저 정도면 오늘 내로 다 못 팝니다.”
“이번 주 안으로만 파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말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오늘 내로 다 파란 말도 없었잖아?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이해진 상병이 은근슬쩍 말했다. 그러자 조영일 일병이 눈빛을 반짝였다.
“오오, 이 상병님도 농땡이를 부리시는 겁니까?”
“야, 그럼 나도 사람인데…….”
“예전에는 이러지 않으셨는데 말입니다.”
“예전하고 다를 거 없는 거 같은데?”
“아닙니다. 상병 달고부터 뭔가 모르게 달라진 것 같습니다.”
“시끄럽고! 파기나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는 최강철 이병은 피식 웃기만 했다. 그렇게 한창 땅을 파고 있는데 저 밑에서 누군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왔다.
“어? 김 병장님 올라오시는데 말입니다.”
조영일 일병이 힐끔 보며 말했다.
“어? 저 양반이 왜 올라와? 그냥 밑에서 얌전히 벽돌이나 만들 것이지.”
최강철 이병이 움찔했다.
“조 일병님, 듣습니다.”
“뭐 어때? 안 보이는 데서 대통령 욕도 한다는데.”
“그건 그렇지!”
이해진 상병도 동참을 했다. 그렇게 되자 최강철 이병이 살짝 무안해졌다.
“아무튼 심심해서 올라오는 것 같네. 신경 쓰지 말고 땅이나 파자.”
“네.”
그렇게 다시 땅 파는 데 집중했다. 조영일 일병이 땅을 파다가 뭔가 ‘띵’ 하고 걸렸다.
“어? 여기 뭐 있는 것 같은데.”
조영일 일병이 땅을 파서 확인을 했다. 그런 검은 물체에 타원형의 물건이었다.
“어? 이거 지뢰?”
“뭐 지뢰라고?”
“지뢰입니까?”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 그때 김일도 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뢰 같은 소리 하네.”
“어? 김 병장님. 이거 지뢰 아닙니까?”
“이게 어떻게 지뢰냐! 그냥 원통형 쇠구만.”
조영일 일병이 막 땅을 다시 팠다. 본체 들어내니 김일도 병장이 한 말이 맞았다.
“어? 맞습니다.”
“그래, 인마. 더군다나 여기에 왜 지뢰가 있냐? 서울 한복판에. 안 그래?”
“생각해 보니 또 그렇습니다.”
조영일 일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진 상병과 최강철 이병 역시 지뢰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이해진 상병이 말했다.
“자자, 마저 일하자.”
“네.”
최강철 이병이 대답을 하고는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조영일 일병은 자신이 파낸 원반형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일도 병장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야, 조영일.”
“일병 조영일!”
“그거 줘봐. 좋은 생각이 났다.”
“네?”
“주라고.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