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27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8)
“아, 제기랄! 병장 달자마자 진지 공사라니…….”
김일도 병장이 머리를 잡아 뜯으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을 보며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상병에게 슬쩍 물었다.
“김 병장님 왜 저렇게 괴로워하십니까. 진지 공사가 그렇게 힘듭니까?”
“너는 우리 부대에서 가장 힘든 훈련이 뭐라고 생각해?”
“네?”
“들어봐. 군 생활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은 훈련은 유격과 행군, 그리고 겨울이면 행하는 혹한기 훈련 정도겠지?”
“네. 지난번에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과 거의 맞먹는 수준의 강도 높은 훈련…… 은 아니겠구나. 아무튼 거의 맞먹는 일이 바로 진지 공사야. 보통 봄하고 가을에 나뉘어서 하는 거지.”
“아, 네에.”
이해진 상병이 적절한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철 이병은 이해진 상병의 말이 딱히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진지 공사가 그렇게 힘듭니까?”
“힘들지! 너 혹시 밖에 있을 때 공사장 막노동으로 일해봤냐?”
“아, 아뇨…….”
최강철 이병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최강철 이병이야 어릴 적부터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 돈의 부족함도 몰랐다. 그래서 공사장 막노동이 어떤 건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 너 집 잘 사는구나.”
“못 살지는 않습니다.”
“짜식, 부잣집 아들이었네?”
“그, 그 정도는 아닙니다…….”
최강철 이병이 시선을 피했다. 이해진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진지 공사는 쉽게 말해서 군대판 노가다라고 보면 돼!”
“노가다 말입니까?”
“그래.”
이해진 상병은 그만하면 최강철 이병이 알아들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노가다를 해 본 적이 없는 최강철 이병은 썩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노가다가 그렇게 힘드나?’
역시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최강철 이병의 생각이었다.
그때 김일도 병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창고로 가서 장비 점검하자, 그리고 미리 흙벽돌제작도 해야 하니까.”
“네.”
김일도 병장의 지시에 소대원들이 바삐 움직였다.
18.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진지 공사를 하는 날이었다. 오상진이 나와서 말했다.
“저번 주에 소대장이 말한 것처럼 이번 주 내내 진지 공사가 있을 예정이다. 일도야.”
“병장 김일도.”
“준비는?”
“이미 다 해놨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은 흙벽돌 만드는 것부터 할까? 어차피 내일부터 참호 보수작업을 해야 하니까.”
“네.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명은 참호로 올라가서 땅 파야지. 안 그래?”
오상진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땅을 파는 일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곳까지 올라가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한 번 올라가면 시간을 아껴야 하기 때문에 오후까지 내려올 수 없었다. 점심식사도 올라갈 때 챙겨서 올라가야 했다.
“자자! 일도는 인원 추려서 준비시켜라. 벽돌 만들 사람과 오늘 참호 정리할 사람으로.”
“네.”
오상진이 가고 김일도 병장이 소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얘기 들었지? 누가 갈래?”
김일도 병장의 물음에 다들 눈을 피했다. 특히 상병들은 아예 딴청을 피웠다.
“이것들이 벌써부터 빠져 가지고. 그럼 내가 갈까? 그래. 좋다. 분대장인 내가 가야겠지?”
김일도 병장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소대원들은 계속 시선을 피했다. 김일도 병장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진지 공사 첫날부터 삽질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이해진 상병이 손을 들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올, 우리 해진이가 갈래?”
“네. 제가 하겠습니다.”
“그,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뒤이어 눈치를 보고 있던 최강철 이병도 손을 들었다. 사수가 가는데 부사수가 안 따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다른 지원자?”
김일도 병장이 물었다. 하지만 손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에이, 우리 이것밖에 안 돼? 너무하네!”
김일도 병장이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자 이해진 상병이 슬쩍 고개를 돌려 후임병들을 바라봤다.
선임병들을 끌고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는데 후임병들이 편하게 일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가지 말입니다.”
그제야 이해진 상병 밑으로 하나둘 손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들 표정이 굳어 있었다.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드는 것이었다.
“됐고! 내가 지정해 줄게. 김우진!”
“상병 김우진!”
“네가 인솔해서 데리고 가라. 여긴 나랑 우식이, 태수, 주영이 대철이 이렇게 남기고 다 데리고 올라가.”
“제가 말입니까?”
김우진 상병은 싫은 티를 팍팍 냈다.
“자식아, 그럼 내가 가리?”
“아닙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 갈 건데 뭘 그래?”
“알겠습니다.”
“그리고 박 하사님도 같이 올라가신다고 하니까. 박 하사님 식판이랑 수저도 잘 챙기고.”
순간 김우진 상병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박 하사님도 올라가십니까?”
“그래.”
“하아, 우리 진짜 죽었다.”
김우진 상병은 진짜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터미네이터 박중근 하사는 요령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 그런 박중근 하사의 페이스에 맞춰 일을 하다 보면 밤새 근육통에 시달리게 될지 몰랐다.
“괜찮아. 쉬엄쉬엄하면 돼.”
“그게 됩니까! 박 하사님인데!”
“그러니까 할 때 열심히 하고 쉴 때 쉬고 해. 박 하사님 스타일 알면서 그러냐.”
“박 하사님이 안 쉬시니까 그렇죠!”
“박 하사님도 사람인데 계속 일만 하시겠어?”
“진짜 안 쉬신다니까요.”
“쉬실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라.”
김일도 병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박중근 하사가 나타났다.
“일도야.”
“병장 김일도.”
“자, 진지 공사 갈 사람 정해졌냐?”
“네.”
“그럼 가자!”
“우진아, 애들 잘 데리고 가라. 장비 잘 챙기고!”
“네, 알겠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야, 해진아. 알아서 애들 보고 장비 챙기라고 해라.”
“네.”
이해진 상병이 창고에서 꺼낸 장비를 챙겨서 후임병들에게 건네주었다.
“삽하고 야삽도 몇 개 챙겼지?”
“네.”
“낫도 챙기고, 빠진 것 없는지 잘 확인해 봐.”
“이상 없습니다.”
“그럼 가자!”
“네.”
박중근 하사는 이미 저 멀리 올라가고 있었다. 그 뒤를 김우진 상병과 지목된 소대원들이 올라갔다.
김일도 병장은 남은 후임들을 보며 말했다.
“자, 우리도 일하러 가야지.”
“여기서 안 합니까?”
“흙을 여기까지 가지고 오게?”
“아, 아닙니다.”
“우식아.”
“상병 최우식?”
“너, 이거 처음 하냐?”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르는 척하고 그래. 네가 애들 데리고 우리가 흙벽돌 만들던 곳으로 가. 난 주영이랑 물통에 물 받아서 뒤따라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우식 상병이 장비를 챙겨서 이동했다. 바로 산 아래 그늘진 곳으로 말이다. 일단 좀 넓은 공터여야 했고, 흙을 삽으로 잘 풀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렇게 적당한 자리를 잡은 후 흙벽돌을 만들어야 했다.
“장비 설치는 끝냈냐?”
김일도 병장이 물통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최우식 상병이 바로 말했다.
“넵! 장비 설치 끝냈습니다.”
황토를 고운 입자만 고르게 고른 뒤 거기에 시멘트와 물을 잘 섞어야 제대로 된 흙벽돌을 만들 수 있었다.
“자, 잘 봐라. 어떻게 흙벽돌을 만드는지 말이다. 너희들 오늘부터 무조건 벽돌만 만들면 된다. 알았냐!”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병장은 삽을 들고 힘차게 땅에 박았다.
“자, 모두 잘 봐! 일단 황토를 삽으로 퍼서 불순물을 골라낸다. 여기 철망에 뿌리면 돌멩이와 나무뿌리 같은 것을 걸러지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이 황토로 시멘트와 잘 섞는다. 비율은 8 대 2로 하면 된다.”
“네.”
“그다음 저기 상자 보이지.”
김일도 병장이 벽돌 모양으로 된 상자를 가리켰다. 나무로 된 직사각형 틀이었다.
“이 안에 황토와 물 시멘트가 잘 비벼진 것을 넣고 벽돌 모양으로 만들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할 것은 물의 비율이다. 너무 묽으면 안 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보여줄 테니까. 잘 보고 따라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황토 흙은 누가 풀래?”
“제가 하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요 근래 강대철 이병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할 줄 알아?”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대철이가 해라.”
김일도 병장이 삽을 건넸다. 김우진 상병에게 간단하게 설명을 들은 강대철 이병이 삽을 받아들고 열심히 황토를 퍼서 흙을 골라냈다.
“잘 봐라.”
김일도 병장은 시멘트와 잘 섞어서 적당한 물 조절로 흙을 치댔다. 그리고 적당히 치댄 찰흙을 벽돌 형태의 틀에 넣었다.
팍, 파파파팍!
손으로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꾹 눌렀다.
“자, 이렇게 만들면 된다. 이걸 저기 자리 편 곳 있지?”
“네.”
“저곳에다가 조심스럽게 빼낸 후 말리면 된다. 잘 모르겠다는 사람 손!”
“없습니다.”
“좋아, 그럼 실시!”
김일도 병장의 지시에 일제히 움직였다.
한편, 참호로 향하는 김우진 상병과 후임병들은 숨을 헐떡이며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하아하아, 어디까지 갑니까?”
최강철 이병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이해진 상병이 힐끔 보고는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왔어. 저기 산 능선 보이지.”
“네.”
“저곳이야.”
“와, 엄청 먼 곳입니다.”
“멀기는 뭐가 멀어. 이제 고작 20분 올라온 것 가지고.”
“그래도 멉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올라가자!”
“네.”
그렇게 30분을 더 걸어 올라간 후 참호에 도착했다. 박중근 하사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다들 수고 많았다. 힘들지?”
“네, 죽겠습니다.”
“엄살은. 자, 10분간 휴식 후 작업을 하도록 한다.”
“네.”
“그리고 우진이는 날 따라와.”
“네.”
김우진 상병이 박중근 하사 곁으로 갔다. 박중근 하사는 참호 안에 먼저 들어와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이야, 작년에 손을 봤는데 또 이렇게 무너졌네.”
“매번 이렇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아무튼 일단 낫으로 주변 풀부터 정리한 후에 삽과 야삽으로, 이곳 있지?”
박중근 하사가 가리킨 곳은 참호 바로 위였다.
“이곳을 삽으로 파서 흙벽돌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저기 반대편 참고까지 파야 하죠?”
“그래야지.”
“네.”
김우진 상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중근 하사가 소매로 흐르는 땀을 훔친 후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10분간 휴식 끝!”
“휴식 끝!”
모두 휴식을 조금만 더 취했으면 하는 표정이었지만 상대가 박중근 하사다 보니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일 빨리 끝내고 내려가자.”
“네!”
“우진이는 몇 명 데리고 저쪽 참호에서 건너와. 나는 반대편 참호에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팀으로 나뉘어 진지 공사에 들어갔다. 우선 낙엽과 풀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다음은 흙벽돌이 들어갈 곳으로 야삽으로 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