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23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4)
14.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오상진은 산뜻한 기분으로 부대에 출근을 했다. 행정반 문을 열며 말했다.
“좋은 아침입니…….”
하지만 오상진은 행정반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했다. 행정반 안에서 장재일 2소대장과 3소대장이 언쟁을 벌이는 통에 냉랭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보해.”
“싫습니다.”
“야, 지금 개기냐? 양보하라니까.”
“안 됩니다. 정말 왜 그러십니까? 제가 먼저 정했지 않습니까.”
3소대장이 억울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이 어이가 없다며 한마디 했다.
“야! 3소대장. 지금 내 말이 우스워? 그리고 여긴 어떻게 된 것이 위아래가 없어.”
장재일 2소대장이 버럭 짜증을 냈다. 순간 오상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위아래가 없다는 발언에 한마디 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와, 누구 보고 저러는지.’
일단 오상진은 속으로 중얼거린 후 자신의 자리로 갔다.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르고 끼어드는 것보다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3소대장이 잔뜩 억울한 듯 말했다.
“아니, 분명히 그날 제가 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리고 2소대장님도 상관없다고 했고 말입니다.”
“그날은 괜찮았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잖아. 그래서 처음부터 부탁을 했고 말이야.”
“지금 이게 부탁하는 겁니까? 협박하는 거지.”
“뭐? 협박? 지금 협박이라고 했어?”
장재일 2소대장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3소대장 역시 잔뜩 인상을 구기며 입장을 고수했다. 오상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4소대장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그럽니까?”
“그게…… 휴가 날짜 때문에 그럽니다.”
“휴가 날짜?”
“네, 원래 3소대장이 먼저 휴가 날짜를 정했는데, 오늘 갑자기 2소대장이 그날 휴가 가겠다며 양보를 하라고 하지 뭡니까. 당연히 3소대장은 안 된다고 했는데, 2소대장이 지금 저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으음, 겹쳐서 사용하기는 힘들죠.”
“당연하죠. 예전에는 두 명까지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번에 대대장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번 년부터 휴가도 한 명씩 안 겹치게 가라고 말입니다.”
“아, 맞다. 그랬죠.”
오상진은 그제야 기억이 나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전 내려온 한종태 대대장의 특별 전달 사항이었다. 장재일 2소대장과 3소대장의 휴가 날짜가 겹쳐서 이런 사달이 난 모양이었다.
모든 것을 전해 들은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고작 휴가 날짜 때문에 소대장들끼리 언성을 높인다는 게 솔직히 한심하기만 했다.
“후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막말로 3소대장이 먼저 휴가를 날짜를 정했는데, 2소대장이 억지를 부려서 그 날짜를 양보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진짜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
“3소대장은 그날 꼭 가야 한답니까?”
“네?”
“아니, 그게 아니라…… 2소대장 성격상 끝까지 고집을 부릴 거 같아서 말입니다.”
“3소대장 말 들어보니 예전부터 그날 여자 친구랑 휴가 가려고 잡아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 말입니다. 3소대장이 양보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뭡니까?”
“만날 훈련이다, 뭐다 하면서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예전부터 휴가 때문에 몇 번 다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친구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에도 또 같이 못 가면 끝이라고 엄포를 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러니까 3소대장이 저렇듯 나서지 않습니까. 원래라면 벌써 양보를 했을 텐데 말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올해 초반에도 이런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아, 그랬습니까?”
오상진은 초반에 와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억을 하지 못했다. 4소대장 말을 들어보니 그때도 2소대장이 억지를 부려 양보를 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두 사람 다 양보는 못 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오상진이 가만히 듣다가 두 사람에 다가갔다. 이렇게 하다가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2소대장.”
“네.”
“이번에는 2소대장이 양보하시죠. 3소대장이 먼저 휴가를 신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너무 몰아세우지 마십시오. 우리 그때 휴가 정할 때 이미 다 끝난 얘기 아닙니까.”
오상진의 말에 장재일 2소대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제가 오죽하면 그러겠습니까, 오죽하면! 나도 어지간하면 다른 날짜 잡으려고 했는데 와이프 휴가가 그때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부부가 따로 휴가를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상진은 장재일 2소대장 말을 들어보니 그렇긴 했다. 하지만 3소대장도 양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3소대장도…….”
오상진이 막 입을 떼려는데 3소대장이 바로 나섰다.
“2소대장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번에 여자 친구랑 가지 못하면 헤어집니다. 그럼 2소대장님께서 책임져 주실 겁니까?”
“뭐? 그걸 왜 내가 책임져!”
“그럼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저 이번에도 약속 못 지키면 끝입니다. 끝!”
“여자 친구랑 끝나면 다른 사람 만나면 되지. 난 와이프라고, 와이프! 이것 가지고 몇 달을 와이프에게 시달려 봤냐? 안 당해봤으면 말을 말아!”
“와, 2소대장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여자 친구랑 헤어지라는 말씀입니까?”
3소대장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순간 장재일 2소대장이 움찔했다.
“아니, 내 말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
“됐습니다. 남의 일 아니라고 그렇게 막말하는 거 아닙니다.”
“내가 오죽 급하면 그러겠냐!”
“저도 급합니다. 아무튼 전 이번 일 양보 못 합니다.”
3소대장은 단호했다. 장재일 2소대장 역시 절박해 보였다. 오상진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생각을 했다.
‘2소대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그렇다고 이미 그날 휴가 날짜를 잡은 3소대장에게 양보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상진이 생각해도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장재일 2소대장이 3소대장에게 다시 말했다.
“좋은 말 할 때 양보해라.”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번에는 절대 양보 못 합니다.”
“이 자식이 진짜!”
장재일 2소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이곳이 행정반이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3소대장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예전이었다면 지레 겁을 먹었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장재일 2소대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너 진짜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네.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자식이 진짜…….”
장재일 2소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때 행정반 문이 벌컥 열리며 김철환 1중대장이 들어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무슨 일이야?”
“충성, 중대장님 오셨습니까.”
오상진이 바로 경례를 하며 말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움찔하며 도로 앉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말했다. 그는 항상 저런 식으로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도 밖에서 이미 어느 정도 대화를 들은 상태였다.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이미 밖에까지 다 들렸는데. 너희들 이러는 거 장병들에게 창피하지도 않냐!”
김철환 1중대장의 호통에 장재일 2소대장과 3소대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김철환 1중대장은 그런 두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쯧쯧쯧, 한 소대의 소대장이라는 녀석들이 말이야. 장병들 다 지나가는데 큰 목소리로 싸우기나 하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곧바로 사과를 했다.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일을 숨길 수는 없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 밖에서 들어보니 휴가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뭐야?”
장재일 2소대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자신이 얘기를 해봤자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3소대장이 냉큼 나서서 말했다.
“사실은 제가 휴가 날짜를 먼저 정해서 가려고 하는데 오늘 갑자기 2소대장이 그날 자기가 가겠다고 양보하라고 억지를 부리지 않습니까.”
“야, 억지는…… 아니지.”
장재일 2소대장이 큰소리를 치려다가 김철환 1중대장을 보고 낮게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의 시선이 2소대장에게 향했다.
“2소대장. 3소대장이 한 말이 사실이야?”
“……맞습니다. 그런데 저도 사정이…….”
“사정은 나중에 듣고! 그래도 그건 아니지. 예전에 내가 그랬지. 휴가를 잘 논의해서 말하라고. 그런데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말하고 그래!”
“그게 말입니다…….”
사정을 설명하려던 장재일 2소대장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사실을 말해도 왠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오상진이 나서서 상황을 설명했다.
“2소대장 와이프 휴가가 그날이랍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맞춰서 가야 한다는데, 그날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오상진의 말을 듣고 김철환 1중대장이 물었다.
“맞아?”
“네.”
“와이프 휴가 변동 안 된데?”
“네. 와이프 회사에서 정해놓은 것이라…….”
“야, 3소대장. 2소대장이 그렇다는데 양보 힘들어?”
“중대장님 저도 웬만하면 양보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도 이번이 아니면 여자 친구와 헤어져야 할 판입니다. 살려주십시오.”
3소대장 역시 죽을상을 하며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2소대장 내가 생각해도 그렇네. 3소대장이 이미 정해놓은 휴가를 빼앗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사정이 급해도 다른 사람 사정도 있지 않나. 왜 꼭 3소대장에게만 양보하라고 해.”
“그게 되었으면 벌써 했지 말입니다. 이번에 못 가면 저도 와이프에게 몇 달간 시달려야 합니다.”
장재일 2소대장도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도 순간 이해가 되었다.
“인마, 너의 맘도 모르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이게 억지 부린다고 될 일이야?”
“…….”
장재일 2소대장이 시무룩해졌다. 김철환 1중대장이 3소대장을 바라봤다.
“3소대장도 안 되겠지?”
“네.”
“2소대장도 꼭 그날 가야겠고?”
“그렇습니다.”
“절대로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는 거지?”
“…….”
“…….”
둘 다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타올랐다. 이 상태는 화가 났다는 의미였다.
“이 자식들! 중대장이 가만히 있으려고 했더니 아주 개판이네. 게다가 장병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간부들이 이런 거로 싸워? 좋아, 그럼 둘 다 가지 마!”
“네?”
“중대장님?”
두 사람 다 눈을 크게 떴다.
“이것들아, 지금 뭐하는 짓들이야. 됐어, 휴가 취소야. 아니, 둘 다 휴가 잘라 버릴 거야.”
“중대장님!”
“저…… 중대장님?”
장재일 2소대장과 3소대장이 화들짝 놀라며 김철환 1중대장을 불렀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너희 둘 말이야. 병사들도 하지 않는 휴가 싸움을 하고 있어. 이 모습을 장병들이 봤으면 얼씨구나 좋다고 하겠다.”
“…….”
“…….”
장재일 2소대장과 3소대장은 부끄러움에 입을 꾹 다물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다시 한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