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22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3)
“많이 먹어라.”
“형도 많이 먹어.”
고기를 가위로 자르던 오상진이 슬쩍 물었다.
“학교에서는 별일 없는 거지?”
“없어.”
“그런데 너 얼굴은 왜 그래?”
“그냥 장난치다가 맞은 거야.”
“장난 맞아? 막 괴롭힘당하거나 그런 거 아냐?”
“아니래도.”
“아니면 아니지 왜 성질이야?”
오상진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
“그래,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그런데 정진아, 혹시라도 누가 널 괴롭히면 형에게 말해. 만약 또 이런 일이 반복되면 형 진짜 학교 찾아간다.”
“알았어.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래, 형은 너 믿는다.”
“…….”
오정진은 말없이 냉면에 고기 한 점을 올려서 후루룩 먹었다. 오상진 역시 고기 한 점을 먹은 후 조용히 물었다.
“그보다 너 그 친구 있지?”
“친구? 누구?”
“있잖아, 너 시험공부 한다고 우리 집에 왔던 여자 친구 말이야.”
“아, 수현이.”
“그 애 이름이 수현이었어?”
“응, 정수현. 그런데 왜?”
“아직도 잘 지내지?”
“잘 지내지.”
“그런데 둘이 뽀뽀는 했어?”
순간 오정진은 냉면을 뿜을 뻔했다.
“뭔 소리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거든!”
“했네, 했어. 뽀뽀를 안 했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어.”
“아, 안 했거든.”
“말 더듬는 거 보니까. 했네.”
“…….”
오정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에 장난기가 발동한 오상진이 조용히 말했다.
“있잖아, 정진아. 아무리 좋아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안 된다.”
“뭘 안 돼?”
“그거 말이야. 그거!”
오상진의 음흉한 얼굴을 본 오정진이 얼굴을 붉히며 버럭 했다.
“아, 진짜! 우린 그런 사이 아니라고. 안 해! 안 한다고!”
“알았어, 알았다고. 어서 먹기나 해.”
오상진은 오정진을 놀리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려는데 오정진이 갑자기 멈춰 섰다.
“왜?”
“형 먼저 집에 가. 나 잠깐 서점 좀 들를게.”
“서점? 책 살 것 있어?”
“응.”
“그럼 같이 가자.”
“됐어, 나 이것저것 고를 것도 많아. 시간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래? 알았어. 이리 와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지갑을 꺼내 20만 원을 건넸다.
“나 돈 있어.”
“너 참고서 사려고 하는 거 아냐?”
“맞아.”
“그럼 이걸로 사. 그건 너 용돈 하라고 준 건데. 누가 그걸로 참고서 사래.”
“괜찮은데…….”
“그래서 싫어?”
“아니, 잘 받을게.”
오정진은 돈을 받은 후 표정이 밝아졌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빨리 집에 와. 어디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알았어.”
오정진이 어딘가로 뛰어갔다. 오상진은 피식 웃은 후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 뛰어가던 오정진은 서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상진이 멀어진 걸 확인하고 합기도 도장으로 들어갔다.
“어? 자네는…….”
“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벌써부터 운동하게? 아직 도복도 마련 안 되는데…….”
“아뇨, 그게 아니라 환불받으려고요.”
“무슨 그런 섭한 말을 하냐. 왜? 형이 환불받아오래?”
“아니요.”
“그럼?”
“저 솔직히 내일모레면 고3인데 운동할 시간 없어요.”
“아니! 넌 운동해야 하는데. 지금 몸 상태는 영 아니야.”
“그래도 저 운동할 시간 없어요. 환불해 주세요.”
관장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솔직히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형이 걱정 많이 하더라. 맞았다며!”
“…….”
오정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너 그 녀석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오, 자식! 다 컸네. 그런데 말이다. 계속 만만하게 당하고만 있으면 계속 당할걸? 그러다가 운동이 아니라 걔네들한테 공부하는 시간을 뺏길 수도 있는 일이야. 안 그래?”
“…….”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래도 네 한 몸 지킬 호신술 정도는 배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래야 그 녀석들도 널 괴롭히지 못하지.”
관장이 하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매일같이 운동할 시간은 없어요.”
“누가 매일같이 운동하래?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너한테 특별히 속성으로 가르쳐 줄게, 일주일에 한 번! 딱 30분만 나에게 투자해. 어때?”
오정진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관장을 바라봤다.
“야,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여기 있는 관장을 한번 믿어보는 것은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 같은데.”
“그래도…….”
“인마, 관장도 이런 제안 잘 안 해. 형의 부탁이니까 이러는 거지. 일주일에 30분이야. 그 정도는 충분히 시간 뺄 수 있잖아.”
“그렇긴 한데…….”
오정진이 흔들렸다. 관장이 더 밀어붙였다.
“고민하지 말고, 그냥 해. 그리고 환불하라는 소리는 하지 말고. 양심적으로!”
“그럼 반만이라도 돌려주세요.”
“야, 도복 공짜에 30% 할인도 했잖아. 너무하네.”
“저 일주일에 30분 하기로 한 거잖아요. 관장님도 양심적으로 그에 합당하게 계산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네가 시간이 없다고 하니까, 그 정도로 타협을 본 거지.”
“그럼 저 안 할래요. 그냥 돈 전부 환불해 주세요.”
오정진이 오히려 강하게 나가자 관장이 움찔했다.
“아, 진짜! 형이나 동생이나 징하네. 알았어.”
관장이 50%를 환불해 주었다.
“그리고 너 무조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와야 해. 그래야 너희 형에게 뭐라도 가르쳤다고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알겠어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오정진의 비밀과외가 시작됐다.
13.
그다음 날 아침.
오상진이 일어나 거실로 나갔는데 구수한 냄새가 온 집안 가득 풍겼다. 곧장 부엌으로 갔더니 신순애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엄마, 무슨 냄새예요?”
“어, 일어났니? 지난번에 가족들끼리 국밥 시식해 보자고 해서 준비해 봤는데.”
“아, 오늘 하시게요?”
“그래.”
“오호, 냄새 좋다.”
오상진이 가스레인지에서 뽀글뽀글 끓고 있는 국밥을 바라봤다. 신순애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냄새 좋아?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해서 끓여 봤는데……. 좀 비릴지도 몰라.”
“아뇨, 냄새가 좋은 것을 보니 맛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
신순애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오정진과 오상희도 냄새에 잠에서 깼다. 두 사람 다 거실로 나왔다. 오상희는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인상을 썼다.
“아, 진짜! 잠도 못 자게. 이게 무슨 냄새야.”
오상희는 가스레인지에 끓이는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손으로 코를 막았다.
“아침부터 무슨 국밥이야. 싫어!”
그런 오상희의 행동에 오상진이 눈을 부릅떴다.
“쓰읍! 오상희! 엄마가 힘들게 끓였는데 너 이럴 거야?”
“왜, 나한테만 그래.”
“이 집에서 너만 그러니까 그렇지. 너 자꾸 이러면 용돈 없다.”
“아이 씨, 또! 만날 용돈으로 협박해. 치사하게.”
“제발 오빠가 있을 때만이라도 효도하자.”
“진짜, 오빠가 언제 효도를 했다고!”
오상희는 버럭 고함을 지르고는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긴 인마……. 회귀하고부터지.’
오상진이 멋쩍게 웃었다.
잠시 후 신순애가 국밥 국물을 퍼서 오상진 앞에 뒀다.
“일단 먹고 평가해 줘.”
“네.”
오상진은 맑은 국밥 국물을 보다 숟가락을 들었다.
“어디 한번 먹어 볼까?”
오상진은 다진 양념을 적당히 풀어 간을 맞춘 후 국물을 한 숟갈 떴다. 국물이 시원한 것이 나름 괜찮았다.
“어? 국물이 시원하고 좋은데요.”
아직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오상희도 마지못한 듯 한 숟갈 떠먹었다. 그런데 순간 오상희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어? 괜찮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여러 번 국물을 떠서 먹었다. 신순애는 살짝 긴장했다가, 좋은 반응이 나오자 얼굴이 풀어졌다.
오상진이 오상희를 보며 물었다.
“어때? 괜찮지?”
“난 뭐, 그냥 그렇네.”
“그냥 그렇기는, 아까 괜찮다고 했으면서.”
“아니거든.”
오상희는 ‘흥!’ 하며 몇 번 더 국물을 떠먹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신순애에게 시선이 갔다.
“엄마 국물은 괜찮아요. 다만 조금 감칠맛만 더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바로 장사해도 되겠어요.”
“그러니? 아니야, 좀 더 연구해서 네가 말한 감칠맛도 좀 더 하고, 국물도 풍성하게 만들어야지. 무엇보다 메뉴도 좀 더 추가해야 하니까 엄마가 좀 더 연구해 볼게.”
“알겠어요.”
“그런데 상진아.”
“네?”
“가게는 잘 알아보고 있는 거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오상진이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식사를 마친 오상진은 자신의 방으로 와서 휴대폰을 들었다.
“네, 소희 씨 저예요.”
-어라? 상진 씨, 무슨 일이에요? 오늘 집에 있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집이에요.”
-정말 집이에요?
“네? 그, 그럼 집이죠.”
오상진은 살짝 당황했다. 갑자기 한소희가 저런 식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다.
-뭐예요? 왜 말을 더듬어요? 집 아니죠?
“아니에요. 집입니다. 갑자기 소희 씨가 물어봐서…….”
-알겠어요. 믿어줄게요.
오상진이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소희 씨 잠깐만 끊을게요.”
-네?
한소희가 되물었지만 오상진은 이미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것도 화상 통화로.
-여, 여보세요?
화상 통화를 하자 들려오는 목소리는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낯선 벽들이 먼저 눈이 들어왔다.
“소희 씨! 봤죠? 저 집이에요.”
-뭐예요? 갑자기……. 저 화장도 안 했는데…….
“그래도 예쁜 소희 씨, 얼굴 한번 보여주세요.”
-안돼요. 엄청 이상하단 말이에요.
“괜찮아요. 좀 보여주세요.”
오상진의 부탁에 한소희가 슬쩍 화면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도 반만.
-부끄럽게…….
“우와! 우리 소희 씨는 화장을 안 해도 예뻐요. 왜 화장을 해요? 이렇게 예쁜데.”
-정말요? 이상하지 않아요?
“전혀요. 너무 예뻐서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도 힘을 얻었는지 완벽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벌써부터 이런 모습 보여주면 안 되는데…….
한소희는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평소에 화장한 얼굴보다는 지금의 얼굴이 훨씬 좋았다.
“아뇨, 전 지금의 얼굴이 훨씬 예쁘다고 생각해요.”
-칫, 거짓말.
“전 태어났을 때부터 거짓말이란 걸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뭐야.
한소희가 피식 웃었다. 그 웃음마저 오상진은 너무 보기 좋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엄마가 슬슬 장사를 할 모양이에요. 혹시 그 건물 경매 어떻게 되었어요?”
-아, 안 그래도 얘기하려고 했는데요. 그거 지난번에 유찰되었어요.
“유찰이요? 왜 자꾸 유찰을 시켜요?”
-아, 이모 말로는 가격이 불합리하게 나와서 유찰된 것이라고 해요.
“그래요? 그 건물 사려고 하는 사람이 저뿐인가요?”
-아마도 유찰되는 것을 보면 그렇겠죠? 게다가 이모는 좀 더 가격을 떨어뜨릴 생각인가 봐요.
“으음, 그렇구나. 그래도 그렇게 싸게 할 필요는 없는데요.”
-이모 입장에서는 최대한 싸게 하고 수수료를 얻으시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안 해주셔도 되니까. 이모님에게 이번 경매 때는 꼭 신청해 달라고 하세요.”
-으음, 좀 더 많이 나와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알겠어요. 이모에게 말할게요. 그건 그렇고 다음 주에는 우리 만날 수 있죠?
“아, 그럼요.”
-그런데 상진 씨!
“네?”
-장교는 휴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