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20화
22장 진지하게 진지 공사?(1)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일병을 따라 움직였다. 한편 오상진은 길 보수 작업하는 곳에 있었다. 김일도 상병이 손수 삽을 잡으며 흙을 퍼내고 있었다.
“일도야. 잘 되냐?”
“어? 소대장님. 여긴 제가 맡아서 하겠습니다. 소대장님께서는 들어가십시오.”
“됐어! 나도 좀 도와줄게.”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한 손이라도 더 거들어야지.”
“그게 아니라…….”
사실 김일도 상병은 지난번 텐트 망치 사건이 떠올라 오상진을 말린 것이었다.
이번에도 삽질에서 삐끗해 다칠 게 걱정되어 순순히 삽을 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의 속도 모르고 호기롭게 팔을 걷어붙였다.
“삽 줘봐.”
기어코 삽을 하나 뺏어 든 오상진이 힘을 주며 흙을 퍼냈다.
“오오…….”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은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오상진은 그 반응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봤지? 삽질은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거야.”
오상진은 삽질이 잘 되자 기분이 좋았다. 주위에 있던 장병들도 인정을 해주니 더욱 신이 났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박중근 하사가 끼어들었다.
“어? 소대장님! 왜 삽을 들고 있으십니까?”
박중근 하사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인마! 소대장님께 삽을 주면 어떻게 해.”
“그게 소대장님께서…….”
김일도 상병이 막 말을 꺼내려는데 박중근 하사가 끼어들었다.
“소대장님 삽 주십시오. 아니, 왜 소대장님께서 삽질을 하고 계십니까. 이런 것은 저나 여기 있는 소대원들에게 맡기십시오.”
“아, 아니……. 박 하사…….”
박중근 하사는 오상진이 들고 있는 삽을 낚아챘다. 오상진은 순식간에 삽을 빼앗긴 후 뒤로 밀려났다. 뒤로 밀린 오상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닌데…….”
오상진의 아쉬운 목소리는 박중근 하사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박중근 하사가 팔을 걷어붙이자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렸다.
“오오오…….”
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박중근 하사가 삽을 땅에 팍 꽂자 삽자루가 그대로 땅에 깊숙이 박혔는데, 조금 전 오상진이 삽질하던 그 깊이와는 차원이 달랐다.
“흡!”
박중근 하사가 힘을 팍 주며 흙을 퍼내자 오상진이 퍼 올린 흙의 두 배 정도가 퍼졌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역시! 박 하사님 대단하십니다.”
“이 정도면 포크레인인 줄 알겠습니다.”
“이 녀석들아! 구경났냐? 어서 작업하지 못해.”
“네, 알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오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말했다.
‘후우……. 애들에게 멋진 모습 좀 보여주고 싶었는데……. 박 하사가 오늘따라 참 얄밉네.’
오상진이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고생하는 병사들을 살폈다. 그때 강대철 이병이 눈에 들어왔다. 나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하고 있었다.
“대철이 열심히 하네.”
오상진의 중얼거림을 듣고 김일도 상병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철이가 열심히 합니다.”
오상진이 움찔하며 김일도 상병을 봤다.
“너 인마. 왜 여기 있어? 가서 흙 안 파?”
“에이, 좀 봐주십시오. 초반에 삽질 많이 했습니다. 게다가 저 내일모레면 병장입니다.”
“병장은 군인 아니야? 병장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것 아니야.”
“소대장님, 왜 그러십니까? 저 좀 예뻐해 주십시오.”
“김대식 병장이나 너나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헤헤, 이날만 기다렸습니다.”
오상진은 그저 웃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강대철 이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대철이는 어때?”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좀 더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래?”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대철 이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데 설마 사고 치겠습니까.”
“하긴. 이러다가 대철이 전출 못 보내면 어떻게 할래?”
김일도 상병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흐흠, 이미 결정 난 겁니까?”
“아니, 아직 확실히는 아닌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저희가 끌고 가 봐야죠.”
“가능하겠냐?”
“가능하지 않더라도 해야죠. 그리고 대철이가 지금처럼만 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김일도 상병의 솔직한 말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내일이면 대식이도 제대를 하고, 너도 곧 분대장 달 건데 잘해야지. 안 그래?”
“당연합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알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기 가서 파!”
“예?”
“가서 흙 좀 파라고!”
“아, 진짜 너무하십니다.”
김일도 상병은 투덜거리면서도 작업하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삽질을 했다. 오상진은 그런 김일도 상병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11.
김대식 병장은 저녁을 먹기 전 깔끔한 전투복으로 갈아입었다. 김일도 상병이 그 모습을 보며 부러운 얼굴이 되었다.
“밖에 나가십니까?”
“소대장님께서 술 한 잔 사 주신다고 하네.”
“이야, 부럽습니다.”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너도 몇 개월 후면 똑같지 않겠냐.”
“그날이 오겠습니까?”
“오지, 암 오고말고.”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을 때 오상진이 나타났다.
“대식아 준비 다 되었냐?”
“네.”
“그럼 가자!”
김대식 병장이 일어나며 말했다.
“갔다 올게.”
“네.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오십시오.”
“오냐!”
김대식 병장이 오상진과 함께 나섰다. 오상진은 김대식 병장과 밖으로 나가기 전 중대장실에 들렀다.
똑똑.
“어, 들어와.”
“중대장님, 같이 소주 한잔하시죠.”
“오늘? 갑자기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그리운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우리 1소대 김대식 병장 있지 않습니까.”
“오, 김 병장. 왜?”
“내일 전역입니다. 그래서 술이라도 한잔 사 줄까 해서 말이죠.”
“아, 김 병장. 벌써 전역이야?”
“뭡니까? 모르셨습니까?”
“모, 모르긴. 알고 있었지.”
김철환 1중대장이 움찔했다. 오상진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깨끗이 무시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김철환 1중대장이 전투모와 가방을 들며 말했다.
“가자고.”
“네.”
밖에 나가니 김대식 병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충성.”
“오오, 김 병장. 내일 제대지?”
“네.”
“축하한다. 물론 내일 전역식 신고할 때 또 만나겠지만.”
“감사합니다.”
“가자, 너네 소대장이 삼겹살에 소주 산단다.”
“에이, 고작 삼겹살에 소주입니까?”
“그렇지? 김 병장 제대하는데 최소한 소고기는 쏴야 하는데 말이지.”
“전 소고기를 기대하고 있었지 말입니다.”
“너네 소대장이 가끔 보면 좀 쪼잔해.”
“아, 그렇습니까?”
김철환 1중대장과 김대식 병장이 쿵짝을 맞춰 오상진을 놀려댔다. 뒤에서 그 소리를 듣는 오상진은 어이가 없었다.
“다 들립니다.”
“어? 들렸냐?”
김철환 1중대장이 짐짓 모르는 척했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2.
세 사람은 사이좋게 부대 앞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소주병을 들었다.
“자, 김 병장. 중대장이 주는 술 한 잔 받아라.”
“넵!”
김철환 1중대장이 김대식 병장에게 술을 따랐다. 김대식 병장이 바로 입에 털어 넣은 후 곧바로 잔을 김철환 1중대장에게 건넸다.
“중대장님께서도 한 잔 받으십시오.”
“오오, 당연히 그래야지!”
김철환 1중대장이 술을 받은 후 역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오상진이 옆에서 잘 익은 삼겹살을 내밀었다.
“김 병장, 제대하니 좋아?”
“네, 너무 좋습니다. 뭔가 살 것 같습니다.”
“자식, 너무 좋아한다. 아무튼 그동안 군 생활한다고 고생 많았다. 사회 나가서도 생활 잘하고.”
“네.”
그렇게 세 사람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밤 10시에 가까운 시간이 되었다. 오상진은 술이 알딸딸하게 취한 김대식 병장을 부대에 데려다줬다.
김대식 병장은 상황실에 복귀 신고를 한 후 터벅터벅 내무실로 향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부대는 이미 저녁 점호를 마치고 모두 잠자리에 들어 있었고, 불침번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태수 일병이 첫 번째 불침번 근무를 서고 있다가 김대식 병장을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이제 오십니까?”
“어? 태수냐.”
“네. 술 많이 드셨습니까?”
“아니다. 애들은?”
“벌써 잠들었지 말입니다.”
“그래?”
김대식 병장이 약간 씁쓸한 얼굴이 되며 한태수 일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고생해라.”
그리고 내무실로 들어갔다. 소대원들 모두 잠자리에 들어 있었다. 김대식 병장은 어둠 속에서 소대원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후우…….”
술에 조금 취해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전투화를 다 벗고 난 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내무실을 쭉 훑어봤다.
“이제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김대식 병장이 쓸쓸한 독백을 내뱉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태수냐?”
김대식 병장은 문 쪽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런데 주위에 있던 소대원들이 하나둘 일어났다.
“어?”
김대식 병장이 놀랐다. 그리고 문 쪽에서 불침번 근무를 서던 한태수 일병의 손엔 환하게 켜진 촛불이 들려 있었다. 그 밑에는 초코파이가 층을 이루어 있었고, 그 위로 요플레가 뿌려져 있었다.
“야, 뭐냐?”
김대식 병장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김일도 상병이 일어나며 환한 얼굴로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김 병장님!”
“축하드립니다.”
비록 내무실에 불은 켜지 못하지만 모두 잠도 자지 않고 김대식 병장의 제대를 축하했다.
“뭐냐고, 자식들아…….”
김대식 병장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김대식 병장은 어둠 속이라 소대원들에게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슬쩍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저희가 준비를 좀 했습니다. 어서 촛불 끄십시오.”
“고맙다.”
김대식 병장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촛불을 후 불어 껐다. 그때 김일도 상병이 한태수 일병에게 말했다.
“태수야.”
“네. 괜찮습니다.”
한태수 일병이 망을 보며 내무실 불을 켰다. 커튼을 확실하게 쳐서 창문을 나가는 빛을 차단했다. 그사이 김대식 병장은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바라봤다.
“다들 고맙다.”
김대식 병장은 이 말밖에 할 것이 없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들이 감사합니다. 밖에 나가셔서 몸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그래.”
다들 다시 한번 작게 박수를 쳐줬다. 김대식 병장은 또다시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애써 참았다.
“자식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김대식 병장은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고맙다. 생활 잘하고!”
“네.”
그렇게 마지막으로 강대철 이병 앞에 섰다.
“김 병장님 제대 축하드립니다.”
김대식 병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대철아. 앞으로 사고 치지 말고, 군 생활 열심히 해. 그리고 제발 성격 좀 죽이고 살아. 여기서 네 성격대로 살아봤자 너만 손해야. 알았니?”
강대철 이병이 약간 짜증 섞인 대답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김대식 병장이 강대철 이병의 어깨를 툭툭 쳤다. 순간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맞은편에 있던 이해진 일병이 보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