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19화
21장 꼬리가 길면 밟히지 말입니다(7)
“현래야, 왜?”
“대철이는 안 나옵니까?”
“대철이는 안 보낼걸?”
“예?”
“거기에 삽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삽 말고 뭐 가지러 가냐?”
“낫! 아…….”
노현래 이병은 뭔가 깨달았는지 바로 수긍을 했다. 구진모 일병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철이 손에 낫을 쥐여주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래도 대철이 많이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최강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구진모 일병이 바로 말을 받았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 군대는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야. 괜히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자.”
“네.”
이해진 일병이 힐끔 내무실을 한 번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창고로 향했다.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돌아와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역시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환복을 했다. 그 모습을 행정반으로 들어오던 박중근 하사가 봤다.
“어? 뭐 하십니까?”
“아, 1소대 길 보수 공사를 하는데 제가 빠질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말이죠.”
“어? 그럼 저에게도 말씀해 주시지.”
“박 하사는 다른 일로 바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얼추 마무리되어갑니다. 저랑 같이 가시죠.”
“괜찮습니다. 박 하사! 그냥 일 마무리하십시오.”
“에헤이, 소대장님 우리들 사이에 그러는 거 아닙니다. 기다리십시오. 저 빼고 무슨 보수 공사를 하십니까?”
박중근 하사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자리로 가서 바로 준비를 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이 그 모습을 부럽다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와, 세상에 저 두 사람 진짜 호흡 잘 맞는다. 어쩜 저럴 수가 있지?’
‘나도 부소대장이랑 저런 식으로 호흡이 맞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두 사람은 허공에서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던 3소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4소대장이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저도 우리 부소대장하고 잘 지내고 싶은데……. 아아, 꼭 그렇다고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부럽긴 하다는 거죠. 하하하.”
4소대장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3소대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한편, 멀리서 지켜보던 장재일 2소대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콧방귀를 꼈다.
“흥, 지랄들 하고 있네.”
그때 2소대 부소대장인 김 하사가 다가와 말했다.
“소대장님. 훈련 갈 시간인데 안 가십니까?”
“훈련?”
“네.”
장재일 2소대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김 하사야.”
“네.”
“훈련 네가 좀 해라.”
“또 말입니까?”
김 하사가 인상을 썼다.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뭐가 또야, 또는! 지난번에 내가 했잖아. 이번에 김 하사가 좀 하면 안 돼?”
“하아…….”
김 하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번 주에 훈련 한 번도 참석 안 하셨지 말입니다. 제가 다 했습니다.”
“이야, 그걸 세고 있었냐? 사람이 바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거지. 저기 좀 봐봐. 저 두 사람 말이야.”
장재일 2소대장이 입을 떼자 김 하사는 또 시작이라는 얼굴로 심드렁하게 있었다.
“김 하사, 너 말이야. 박 하사 반만 좀 닮아봐라. 박 하사가 1소대장에게 하는 거 보면 너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김 하사는 가만히 듣다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걸핏하면 박중근 하사와 자신을 비교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소대장님. 그럼 소대장님께서도 1소대장님께서 신경 써주시는 반만큼 저를 좀 봐주십시오. 만날 박 하사와 비교만 하지 마시고.”
“뭐? 너 인마 지금 뭐라고 했어? 어?”
“하아, 진짜 내가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김 하사는 확 빈정이 상해 화를 내곤 그 길로 행정반을 나가버렸다. 장재일 2소대장은 그 상황이 너무 황당해 김 하사를 불렀다.
“야, 김 하사!”
하지만 김 하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장재일 2소대장이 인상을 쓰며 투덜거렸다.
“그래, 이놈이나 저놈이나 내가 제일 만만하지. 진짜 못해 먹겠다. 못해 먹겠어!”
장재일 2소대장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행정반 문이 열리며 김철환 1중대장이 나타났다.
“뭐? 뭐가 또 못해 먹겠는데?”
김철환 1중대장은 장재일 2소대장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장재일 2소대장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 주, 중대장님…….”
“야, 장재일.”
“네.”
“너 아직도 그러냐?”
“네?”
“아직도 만사가 불만이고 그러냐고!”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입으로 방금 못해 먹겠다면서.”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진짜 좀 너 잘 좀 해라! 내가 너 때문에 못 살겠다.”
“중대장님은 왜 또 저에게 그러십니까.”
“네가 잘해야 뭐라고 안 하지! 뭐야 만날! 행정반 분위기만 흐리고 말이야. 잘 좀 하자, 2소대장 아니냐.”
“아, 예에…….”
괜히 아침부터 김철환 1중대장의 잔소리를 듣게 된 장재일 2소대장은 표정을 굳힌 채 슬그머니 일어나 행정반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김철환 1중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휴, 저 화상을 어찌하면 좋을지.”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오상진을 바라봤다.
“1소대장.”
“네.”
“저기 길 보수 공사하는 데 네가 나가냐?”
“네.”
“네가 고생이 많다.”
김철환 1중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까 전에 김 중사 만났는데, 김 중사가 아주 그냥 2소대장 욕을 한 바가지 하더라.”
“2소대장이요? 왜요?”
“아니, 네가 맡은 보수 공사 있잖아. 그게 사실 김 중사가 2주 전부터 2소대원들한테 말했다더라. 한가해 보이니 좀 도와달라고. 그런데 2소대장이 이리 빼고 저리 빼고 미루더란 말이지. 그래서 엄청 화가 난다고, 다음부터 2소대 보급품 제일 늦게 주겠다며 길길이 날뛰더라.”
김철환 1중대장의 이야기를 들은 오상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다 결국 그 일이 지금 1소대로 간 거잖아.”
“후후, 그럴 수도 있죠. 보수 작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오상진은 보수 관련 일로 장재일 2소대장을 탓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의 말은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야, 그게 아니야. 내가 알아봤는데 그거 지난번에 2소대가 개판으로 해서 무너진 거잖아.”
“아, 그런 겁니까?”
“아무튼 일도 똑바로 하지도 못하고, 만날 징징거리기만 하고. 그냥 확 징징이로 불러버릴까!”
“에이, 중대장님.”
“아무튼 하나에서 열까지 하나도 맘에 안 들어!”
김철환 1중대장이 한소리 하고는 몸을 홱 돌려 행정반을 나갔다. 그 모습을 오상진이 보며 피식 웃었다.
“자, 박 하사. 우린 작업하러 갑시다.”
“네, 소대장님.”
두 사람이 행정반을 나와 작업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와중에 박중근 하사가 입을 뗐다.
“솔직히 작업할 의욕이 확 떨어집니다.”
“2소대가 해야 할 것을 우리가 해서 그럽니까?”
“막말로 좀 그렇습니다. 누구 뒤치다꺼리하는 기분이라서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중대 일이라고 생각하고 합시다. 다르게 생각하면 2소대가 못한 것을 우리 1소대가 잘해놓으면 그 또한 플러스 요인 아니겠습니까.”
“역시, 우리 소대장님은 생각하는 자체가 다르십니다.”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보살인 것 같습니다. 저번에 대철이 사건도 그렇고 말이죠.”
“보살은 무슨……. 다 그렇게 합니다.”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 멋쩍게 웃었다.
10.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와 함께 연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1소대원들이 먼저 와 대기해 있었다.
“준비는 다 했지?”
“네.”
“그럼 가자.”
17-4초소는 부대 건물 뒤쪽으로 조금 걸어가야 했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초소로 가는 길이 험한 편이었다.
“자, 작업 시작하자!”
오상진이 작업지시를 내리고, 김일도 상병이 인원 배치를 했다.
먼저 길에 난 풀을 베는 작업은 김우진 상병을 비롯해 5명을 투입시켰다. 그 외 나머지는 무너진 길을 보수했다.
먼저 무너진 길을 삽으로 파냈다. 모래주머니에 흙을 넣고 그것을 반듯하게 놓아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였다.
“자, 모래주머니에 흙을 넣고, 너희 둘은 삽을 들어서 여기 좀 파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지시하에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그때 저 멀리서 어슬렁어슬렁 누군가가 다가왔다. 바로 김대식 병장이었다. 오상진이 땀을 훔치며 김대식 병장을 봤다.
“야, 김대식.”
“병장 김대식.”
김대식 병장은 말년 병장답게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관등성명을 댔다.
“야, 인마. 너 뭐하러 왔어. 내일 제대할 놈이.”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심심해서 말이죠. 간만에 삽질이나 할까 해서 나왔습니다.”
“됐어. 들어가! 무슨 말년 병장이 삽질이야. 제대하기 전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녀석이.”
“에이, 그거 다 미신입니다.”
김대식 병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모습에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 저쪽으로 가서 애들 좀 봐줄래?”
“아, 그럴까요?”
“야, 인마! 아직 너 군인이야. 벌써부터 말투가 편해진다.”
“에이, 좀 봐주십시오. 그리고 편하게 형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제대하고 나서부터고.”
“제대 내일입니다. 하루 당겨서 하면 안 됩니까?”
“이야, 대식아. 너 그동안 이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냐?”
“저도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년 휴가를 너무 길게 썼나 봅니다. 며칠 푹 쉬다가 어제 부대 복귀하는데 잠깐 탈영할까? 그 생각도 했습니다.”
김대식 병장의 대담한 발언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인마, 제대 하루 남겨두고 어떤 미친놈이 그런 생각을 하냐.”
“저도 그 생각하면서 어거지로 왔습니다.”
“참, 대식아.”
“네.”
“오늘 저녁에…….”
“어? 술 한잔 사 주시는 겁니까?”
“자식, 눈치는 빨라서는 그래 중대장님이랑 한잔하자.”
“넵, 좋습니다. 솔직히 저 부대 복귀하면서 소대장님과 술 한잔할 생각으로 들어왔습니다.”
“으그, 김대식이 이렇게 뺀질뺀질한 줄도 모르고…….”
“군대가 절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오상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저쪽 가서 애들 좀 봐줘. 마지막으로 말이야.”
“넵!”
김대식 병장이 풀을 베고 있는 곳으로 가며 소리쳤다.
“야, 풀은 그렇게 베는 것이 아니라. 이리 줘봐.”
그런 모습을 최강철 이병이 바라보다가 옆에 있는 이해진 일병에게 말했다.
“우리 김 병장님 저런 모습이 있으셨습니까?”
“나도 오늘 처음 보네. 그런데 이해는 간다. 내일이면 제대인데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
“정말 부럽습니다. 내일이면 민간인 아닙니까.”
“강철아,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그리고 이제 갓 전입 온 이등병이 내일 제대하는 말년 병장을 부러워하면 어떻게 해.”
“그러면 안 됩니까?”
“그래도 되는데 티는 내지 말아야지.”
“아…….”
“자식, 풀이나 베러 가자!”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