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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18화 (218/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18화

21장 꼬리가 길면 밟히지 말입니다(6)

따르르릉!

“통신보안, 충성대대 1중대 1소대 행정반입니다.”

행정계원이 빠르게 전화를 받은 후 대답했다.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행정계원이 고개를 돌려 오상진을 불렀다.

“1소대장님.”

“왜?”

“위병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위병소에서?”

오상진이 곧바로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통신보안, 오상진 소위 전화 바꿨습니다.”

-통신보안, 여기 위병소입니다.

“네.”

-아침 일찍 오 소위님 앞으로 TV가 왔답니다.

“TV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네.

오상진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꺼냈다. 아무래도 민용기 상사가 무슨 행동을 한 것 같았다.

“행보관님, 1소대장입니다.”

-네네, 오 소위님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제 앞으로 TV가 도착했다고 위병소에서 연락이 왔는데 혹시 행보관님께서 하신 일입니까?”

-어이쿠, TV가 벌써 왔답니까?

“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안 그래도 어제 내가 전화로 크게 한바탕 했죠. 어떻게 이딴 것을 팔 수 있냐고 따졌더니, 미안하다며 오늘 아침에 가져다준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원래 저랑 오늘 같이 가서 따지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상진은 아무래도 민용기 상사의 뒤가 구린 것 같아 이참에 같이 가서 확인을 해볼 의도였다. 그런데 민용기 상사가 이렇듯 선수를 쳐버리니 오상진은 약간 당황스러웠다.

-에이, 그런 거 가지고 같이 가고 그럽니까. 내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그리고 부대 살림살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그런 일도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야 쓰겠습니까?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것보다 설마 내가 그 사람에게 뒷돈이라도 받은 건가 의심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민용기 상사가 대놓고 말을 하니 오상진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거기다 대고 ‘네, 맞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하니 제가 행보관님 의심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나도 일을 편하게 하자는 것이죠. 피차 서로 바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가 또 언제 오 소위랑 시간 맞춰서 갑니까.

“그건 그렇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제가 가서 TV 받아 옵니까?”

-바쁘시다면 제가 가서 받아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받아 오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자신이 당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능구렁이라니까.”

“네?”

옆에 있던 3소대장이 오상진의 혼잣말을 듣고 되물었다. 오상진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 잠깐 위병소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상진은 곧장 위병소로 내려갔다. 면회자 주차장쪽에 업체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차량을 자세히 보니 그냥 평범한 일반 트럭이었다.

대리점에서 쓰는 차량이라면 로고가 그려져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차량은 아니었다.

트럭 앞엔 업체에서 나온 것 같은 사람이 서 있었다.

“저기 연락받고 왔습니다.”

“아, 오상진 소위님?”

“네.”

“잠깐만요. TV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업체 사람은 차량 뒤에 올려놓은 TV 상자를 꺼내 주었다. 오상진이 눈으로 빠르게 스캔해 보니 새 상자로 보였다.

‘으음, 이번에는 문제가 없는 거 같긴 한데.’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린 후 자신의 차량 뒤 트렁크를 열었다.

“이곳에 넣어 주십시오.”

“네.”

업체 사람이 낑낑거리며 TV를 트렁크에 실었다. 오상진이 조용히 물었다.

“이번에는 별문제 없는 제품인 거 확실하죠?”

“그럼요. 제가 너무 죄송해서 이번에 나온 최신형으로 가져왔습니다.”

트렁크에 실은 TV를 한 번 더 확인한 오상진은 트렁크 문을 닫으며 업체 사람에게 물었다.

“그럼 고장 난 TV는요?”

“그건 민 상사님한테 보내십시오. 민 상사님께서 가져오기로 했으니까요.”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힐끔 업체 사람이 타고 온 차량을 봤다.

“그런데 엘씨에서 나오신 거 맞습니까? 차량도 그렇고 유니폼도 입고 있지 않고…….”

오상진의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업체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네네 맞습니다. 그리고 차는 제가 종합 대리점을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종합 대리점이요?”

“요즘 한 브랜드 팔아서는 먹고 살기 힘들거든요. 엘씨 것도 하고, 다른 삼송 것도 하고 그럽니다. 아시는 분이 그러십니다.”

업체에서 나왔다는 사람은 오상진의 질문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 했다. 그런 태도에서 오상진은 뭔가 찝찝함을 느꼈다.

“그럼 가전제품 이것저것 다 취급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럼 명함 있으시면 주시겠습니까?”

“명함은 왜요?”

순간 업체 사람이 움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제가 아는 형님이 모텔을 운영 중이신데 TV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이번에 대대적으로 교체를 하실 모양입니다.”

“모, 모텔요?”

업체 사람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가만…… 모텔이라면 최소한 방이 30개 정도는 될 거고……. 이거 돈 좀 되겠는데.’

업체 사람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계산기를 두들겨 봤다. 이건 무조건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이구, 그럼 드려야죠.”

업체 사람이 재빨리 지갑을 꺼내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네.”

오상진이 명함을 받은 후 확인을 했다. 가전월드라고 적힌 명함에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가 있었다.

“아, 최고금 사장님?”

“네. 맞습니다.”

“그럼 여기로 연락드리면 되는 거죠?”

“그럼요. 언제든지 연락 주시라고 하십시오.”

최고금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혹시 제 이름으로 연락이 가면은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떨떠름한 표정이었던 최고금 사장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돌아섰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오상진은 다시 명함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전 월드라. 상호부터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오상진은 그 명함을 휴대폰으로 찍어 박은지에게 보냈다. 곧바로 박은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아침부터 이건 뭐예요?

“그때 말씀드렸던 TV 말입니다. 민 상사님이 거기서 TV를 구매한 모양입니다.”

-아, 그래요?

“원래 같이 가서 TV를 바꾸기로 했는데, 민 상사님이 뒤가 켕기는 것이 있는지 업체 사람이 직접 와서 새것으로 교체해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새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럼 제가 이 사람 뒤를 좀 조사해 볼까요?

“그렇게 하실 수 있으면 해보시라고 명함 찍어 보내드린 겁니다.”

-알겠어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중얼거렸다.

“뭐, 이쯤 하면 됐겠지.”

솔직히 오상진도 궁금한 것이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 나서서 민용기 상사의 뒷조사까지 할 수는 없었다.

“뭐. 은지 씨가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까.”

오상진은 박은지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9.

TV를 받아 4소대에 주고 행정반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니 김도진 중사가 찾아왔다.

“저기 1소대장님.”

“네?”

“부탁 하나만 합시다.”

“네, 말씀하십시오.”

김도진 중사가 행정반까지 찾아와 부탁하는 건 이례적이라 오상진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도진 중사가 오상진 곁으로 와서 앉았다.

“저쪽 17-4초소 가는 길 아시죠?”

“네.”

“거기가 이번 장마 때 길이 좀 무너졌습니다. 거기를 보수해야 하는데 이번에 1소대가 좀 맡아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보수 말입니까?”

오상진은 다른 소대도 다 있는데 1소대에 일을 맡긴다는 게 신경 쓰였다. 오상진의 시선이 다른 소대장들을 향했지만, 모두 오상진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아, 네에. 알겠습니다.”

솔직히 오상진도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여태까지 김도진 중사에게 도움만 받았는데 거절한다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필요한 재료는 창고 있으니까 가져가십시오.”

“네.”

김도진 중사가 나가고, 오상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장 1소대 내무실을 찾아갔다.

“얘들아 뭐 하냐?”

“충성, 개인 정비 중이었습니다.”

“일도야.”

“상병 김일도.”

“다름이 아니라, 보수 공사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보수 공사 말입니까?”

“그래.”

“와, 삽질 해야 합니까?”

“그렇게 됐다.”

“이야, 이번에는 삽질 안 하고 넘어가나 했는데…….”

“군대 하면 삽질이지 말입니다.”

“야, 너 삽질 좀 한다고 갑자기 너무 좋아한다.”

“하하하. 제가 그랬습니까?”

훈련을 안 받아서 좋아하는 녀석도 있는 반면, 보수 공사라는 말에 인상부터 찡그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도 간만에 개인 정비를 하며 잠깐 휴식을 취하나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젠장, 개인 정비라고 해서 오늘은 좀 쉬나 했는데.”

“그걸 누가 지켜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래, 맞다.”

이래저래 군대는 장병들이 쉬는 꼴을 못 봤다. 오상진은 소대원들의 투덜거림을 보고 피식 웃었다.

“얘들아. 대신에 소대장이 일 끝나고 나면 시원하게 음료수 쏜다.”

“예,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김일도 상병에게 다시 말했다.

“17-4초소로 가는 길 알지?”

“네.”

“그곳이니까. 네가 애들 데리고 가서 준비시켜라. 모래주머니도 넉넉하게 챙기고.”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행정반으로 갔다. 그사이 김일도 상병이 지시를 내렸다.

“진모야.”

“일병 구진모.”

“너, 밑에 애들 데리고 가서 삽이랑 괭이 챙겨와. 아, 풀도 잘라야 하니까 낫도 챙겨오고. 빈 모래주머니 최대한 많이 챙겨서 그곳으로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다들 작업복으로 환복한 후 이동한다.”

“네.”

김일도 상병의 지시에 소대원들은 작업복으로 환복했다. 위에는 활동복에 바지는 전투복, 전투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 그리고 해진아.”

“일병 이해진.”

“넌 냉장고에 가서 얼음물 2개 정도 챙겨오고.”

“네,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사이 강대철 이병은 혼자 뻘쭘하게 앉아 있었다. 그 누구도 강대철 이병에게 일거리를 주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강대철 이병은 1소대에서 없는 사람이었다.

김일도 상병의 시선이 힐끔 강대철 이병에게 향했다. 그 시선을 느낀 강대철 이병이 움찔했다. 혹여 자신에게 시킬 일이 있다면 즉각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김일도 상병은 아무 말도 없이 시선을 돌렸다. 이에 강대철 이병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 상병님! 저도 구 일병 따라 가겠습니다.”

1소대원들의 움직임이 전부 멈췄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강대철 이병에게 향했다.

김일도 상병이 강대철 이병을 보며 물었다.

“뭘?”

“창고에 삽 가지러 가는 거 아닙니까? 저도 가겠습니다.”

김일도 상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넌 아니야. 그냥 여기에 가만히 있어.”

“네?”

“넌, 그런 거 하지 마.”

“무슨 말씀이신지…….”

강대철 이병이 뭔 말인지 모르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김일도 상병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네,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곧바로 시무룩해지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지시를 받은 소대원들이 하나둘 내무실을 나갔다. 그런데 노현래 이병이 나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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