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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15화 (215/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15화

21장 꼬리가 길면 밟히지 말입니다(3)

“저도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있어서요.”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일찍 집에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소대장님 퇴근하실 때 겸사겸사 저도 같이 하려고 했죠, 뭐.”

“그래도 됩니까? 박 하사 아내분께서 많이 기다리지 않습니까?”

순간 박중근 하사가 움찔했다.

“하하, 하하하. 뭐, 그런 것 때문에 좀 늦게 가려는 것도…….”

“……?”

“아, 아닙니다. 그냥 아직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제가 또 일을 미루고 그러는 성격이 아니라서…….”

박중근 하사는 괜히 크게 웃음을 흘렸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연히 일은 마무리 지어야죠.”

보아하니 부부싸움을 거하게 한 것 같았지만 오상진은 일부러 모르는 척해줬다.

그렇게 두 사람이 4소대 앞을 지나가는데 시끌벅적했다.

“어?”

박중근 하사도 오상진을 따라 멈춰 서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박 하사 먼저 가십시오.”

“아, 네에…….”

박중근 하사는 갑작스럽게 멈춰 선 오상진의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4소대 내무실 안에서 TV로 엔카 뮤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오늘 엔카 뮤직 할 시간이구나.”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4소대를 지나쳐 1소대로 향했다. 1소대 역시 마찬가지로 엔카 뮤직에 빠져 있었다.

심지어 강대철 이병도 똑바로 앉아서 힐끔힐끔 TV 쪽으로 시선이 가고 있었다.

“후후…….”

오상진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때마침 TV에 이요리가 나왔다. 순간 내무실에 있던 소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이요리 나왔다! 이요리! 이요리! 이요리!”

소대원들이 떼창을 부르며 이요리를 반겼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행정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긴 좋을 때다.”

한편, 4소대에서도 난리였다.

“이요리 나왔습니다. 이요리!”

“진짜? 나왔어?”

“네. 나왔습니다.”

“비켜, 비켜봐!”

후임병들이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그 누구도 TV 반경 2미터 근처에 가지 않았다.

“야, 볼륨 좀 높여봐. 어서!”

“네!”

곧바로 볼륨을 높였다. 그 순간 김이중 상병이 누군가를 찾았다.

“재민아!”

“일병 이재민!”

“준비해!”

“이미 준비 끝냈습니다.”

4소대 이재민 일병은 춤을 잘 췄다. 특히 여자 아이돌 그룹의 춤은 거의 다 출 수 있다고 봐야 했다. 이번에 나온 이요리의 춤까지도 마스터한 상태였다.

“오오오! 역시 이재민 일병님!”

“이야, 재민아 멋있다.”

이재민 일병은 활동복 차림이었다. 먼저 바짓단 한쪽을 무릎까지 올리고, 상의는 배꼽을 드러낸 채 묶었다. 그 상태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붙인 한쪽 다리를 발끝으로 세운 후 춤출 준비 동작을 마쳤다.

“좋았어! 시작한다!”

그때 TV 화면에 이요리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재민 일병 역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텐 미닛! 텐 미닛! 텐 미닛!”

소대원들은 노래를 떼창하면서 이요리와 이재민 일병의 춤을 번갈아 보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소대 전체가 즐겁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김이중 상병이 벌떡 일어났다.

“야, 잠깐!”

“왜 그러십니까?”

“조용히 해봐.”

내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김이중 상병이 TV를 보며 말했다.

“야, 텔레비전 왜 저래?”

갑자기 잘 나오던 TV 화면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한창 흥이 올라 왁자지껄했던 내무실 안에 마치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아이 씨. 갑자기 왜 이래!”

내무실에 있던 이등병 한 명이 재빨리 TV 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만지다가 툭툭 쳐 보았다. 그 충격에서인지 살짝 화면이 돌아왔다.

“야, 돌아왔다. 비켜봐!”

“네, 알겠습니다.”

이등병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화면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아이, X발! 진짜 왜 이래? 짜증 나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벌써 고장 났나?”

“에이, 무슨 소리입니까. 이거 이번에 체육대회 부상으로 받은 새 TV인데 말입니다.”

심도민 일병이 참지 못하고 TV 앞으로 갔다.

“제가 한번 만져보겠습니다.”

“그래, 도민이가 한번 봐봐.”

심도민 이병은 나름 전자과를 다니는 대학생이었다. 그래서 전자제품을 조금 만질 줄 알았다.

“어디 보자.”

심도민 이병이 심각한 얼굴로 이것저것 만지고, TV를 껐다가 켰다가 했다.

“잘 나오냐?”

“안 나옵니다.”

“그래?”

TV 뒤에 꽂아 둔 케이블 선까지 뽑아서 상태를 확인 한 후 다시 꽂아보았지만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잘 나와?”

“아뇨.”

“아, 진짜 왜 이래?”

“야, 준수야.”

심도민 이병이 김준수 이병을 불렀다.

“이병 김준수!”

“너 다른 소대도 이러는지 확인해 봐.”

“네. 알겠습니다.”

김준수 이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다른 소대를 돌아다니며 확인을 했다. 모두 TV 화면이 정상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어때?”

“다른 소대 전부 이상 없이 깔끔하게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우리 소대 TV가 문제라는 거네.”

김이중 상병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 진짜 왜 이러는 거야!”

급기야 김이중 상병이 참지 못하고 TV를 주먹으로 강하게 쳤다.

쾅쾅!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오상진이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내무실로 들어왔다.

“이중아, 왜 그래?”

“충성!”

“무슨 일인데?”

“그게 말입니다. TV가 잘 안 나옵니다.”

“야, 그런다고 무식하게 TV를 치면 잘 나오냐?”

“…….”

“어디 한번 봐봐.”

오상진이 TV 상태를 확인했다. 화면 전체가 보라색으로 되어 있었다.

“TV 껐다가 다시 켜봤어?”

“네.”

“케이블 선을 잘못 꽂은 거 아니야?”

“조금 전 심도민 일병이 확인을 해 봤습니다. 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래?”

“아무래도 TV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거야? 다른 소대는?”

“조금 전에 확인해 보니까, 다른 소대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으음, 그럼 A/S라도 받아야 하나?”

오상진이 TV 상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김이중 상병이 슬쩍 말했다.

“벌써 말입니까? 이거 체육대회 때 받은 상품입니다. 새것인데 벌써 고장 난다는 것이 말이 안 됩니다.”

“맞습니다.”

“맞아, 그랬었지? 거참 이상하네. 고작 한 달도 안 지났는데 고장이 났다고? 가만, 너희들 설마 여기에 물 뿌리고 그런 건 없었지?”

“전혀 없었습니다. 얼마나 애지중지했는데 말입니다.”

김이중 상병이 곧바로 답했다. 오상진이 잠깐 생각을 하더니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행보관님 1소대장입니다.”

-네, 1소대장님

“지금 통화 가능하십니까? 괜히 퇴근했는데 전화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다름이 아니라 전에 체육대회 때 부상으로 받았던 TV가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 그거 새것 아닙니까?

“네.”

-그럼 A/S 맡기는 것이 좋을 겁니다. A/S 기간도 있을 텐데 괜히 우리가 건드려서 상황을 나빠지게 할 필요가 없죠.

“그게 좋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일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쉬시는데 전화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고생하십시오.

“네.”

오상진은 전화를 끊은 후 김이중 상병을 봤다.

“이중아.”

“상병 김이중.”

“이거 내일 아침에 행정반으로 TV 가져와. A/S 맡기게. 불편하더라도 하루만 참자.”

“네, 알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오상진은 TV를 들고 서비스센터로 가지고 갔다. 서비스 직원이 TV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고객님. 이거 서비스 기간이 지났습니다. 혹시 언제 구매하셨습니까?”

“예? 그럴 리가요. 최근에 구매했습니다.”

“네? 그럼 중고로 구입하셨습니까?”

“아뇨, 새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것이요? 아닌데, 이 제품 출시된 지가 4년이나 되었는데…….”

“4년이요?”

오상진은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4년이나 지난 제품을 상품으로 주셨대.’

오상진이 괜스레 민망해져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서비스센터 직원은 그런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이거 수리하면 수리비가 좀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

“대략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습니까?”

“일단 뜯어서 내부를 확인해야겠지만 픽셀 쪽 문제라 그 부분을 수리하면 50만 원 이상은 생각하셔야 합니다.”

“네? 50만 원요?”

오상진은 생각보다 엄청난 수리비에 차라리 새것으로 하나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 접수해 드립니까?”

“아뇨. 일단 그냥 두세요.”

“네.”

오상진은 TV를 가지고 다시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수리비 50만 원을 주고 수리할 수는 없었다.

“이거 뭔가 찝찝한데.”

오상진은 잠깐 생각을 하다가 휴대폰을 꺼내 김도진 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행보관님 오 소위입니다.”

-네.

“제가 지금 서비스센터에 왔는데, 어제 말씀드린 그 TV가 출시된 지 4년이 지났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체육대회 부상으로 받은 새 TV가 알고 보니 4년이나 묵은 놈이었다 이겁니까?

“네. 서비스센터 직원 말로는 그렇습니다.”

-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서 수리는 맡기셨습니까?

“맡기려고 했는데 수리비가 50만 원이나 든다고 합니다. 무료 A/S 기간도 끝났고요. 이대로 수리를 맡기는 건 아닌 거 같고…… 아무래도 부대로 도로 가지고 가야 할 듯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돈을 주고 수리를 맡길 수는 없죠. 가만, 혹시 그런 건가?

“네?”

-딱히 의심하려는 건 아닌데, 제가 알기로는 이번 체육대회 때 사단에서 지원금을 꽤나 많이 받은 것으로 알거든요. 그런데 4년 지난 TV를 상품으로 내걸었다? 이거 좀 찝찝합니다.

중대 행보관인 김도진 중사의 의심은 충분히 그럴듯했다. 군부대에 보급되는 전자제품이니 당연히 최신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출시된 지 4년이나 된 제품을 들여온다는 건 뒷거래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상진도 김도진 중사의 의심에 공감하듯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혹시 바로 부대에 들어오셔야 합니까?

“아닙니다. 중대장님께 허락받고 나온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제가 잘 아는 중고상이 있습니다. 기왕 나가신 김에 그 사람에게 가 보십시오.

“그분에게 가서 검증 같은 걸 받아보라는 말씀이시죠?”

-네. 혹시 간단하게 수리할 만한 거라면 그 사람이 고쳐 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 소위님, 이거 제가 한번 대대 행보관 슬쩍 떠볼까 하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혹시라도 전화 오면 잘 대처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김도진 중사가 전화를 끊고 슬쩍 웃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자마자 우리를 쥐어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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