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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214화 (214/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214화

21장 꼬리가 길면 밟히지 말입니다(2)

“후우, 통지서를 확인해 보니 현역 1급이네요. 이건 뺄 방법이 없습니다.”

“뺄 방법이 없다니? 이야기가 다르잖소!”

“박 사장님. 진정하시고…….”

“아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민 상사 당신이 그랬지 않소. 대대장만 만나면 된다고 말이오. 그게 아니면 더 위로 올라가야 합니까?”

평소 누군가에게 앓는 소리를 거의 해본 적이 없던지 박 사장은 말을 높였다 낮췄다 해가며 언성을 높였다.

그런 박 사장이라면 정말로 장성급 군인과 접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한종태 대대장의 표정도 난감하게 변했다.

그러자 민용기 상사가 냉큼 말했다.

“아, 박 사장님. 아마 더 위로 올라가셔도 힘들 겁니다.”

“……?”

“아시잖습니까. 요즘 분위기. 예전처럼 면제를 받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방법이 꼭 없지 않지만…….”

“뭡니까?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 귀하디귀한 아들 잘 좀 빼주소.”

민용기 상사가 가만히 통지서를 보다가 말했다.

“아드님께서 논산훈련소에 입소할 예정인 것 같습니다. 마침 논산훈련소에 우리 대대장님께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대장님.”

“그렇지.”

“그럼 이렇게 하시죠. 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돌릴 때 아드님은 우리 부대로 오게 만들겠습니다. 그럼 제가 최대한 편한 보직으로 배치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민 상사 말은 그래도 군대는 가야 한다. 이거지 않소.”

“네. 그렇죠. 편한 보직으로…….”

“편한 보직이라고 해도 군 생활을 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잖아요. 하아. 답답들 하시네. 그럴 거면 내가 왜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우리 아들이 군대 가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박 사장이 답답해하는 것처럼 민용기 상사도 다소 어이가 없었다. 아들의 병역 문제로 고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소개를 받긴 했는데 이 정도로 막무가내일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거래를 깨뜨릴 수는 없는지라 민용기 상사가 살살 달래듯 말을 이었다.

“박 사장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 당장 군대를 빼 드릴 수는 없습니다. 요즘 병역법이 강화되어서 다들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드님께서 워낙에 건강하셔서 이건 빼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건강한 거랑 빼는 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당연히 상관있죠. 그나마 질환 쪽으로 빼야 나중에 탈이 안 날 텐데 이런 식이면 정신 쪽으로 빠져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정신 쪽이면 정신병 말이오?”

순간 박사장이 정색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하나뿐인 자식놈을 정신병 환자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가 제안할 수 있는 최고는 현재 저희 대대장님의 당번병이나 아니면 테니스 병으로 빼는 것입니다. 군 생활은 해야겠지만 속된 말로 꿀보직 중에서도 최고의 꿀보직입니다. 거기에 대대장님이 적당히 한마디 해주시면 아마 제대할 때까지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을 거고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아니, 대대장님께서 힘써주시면 T.O 하나 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이게 저희가 낼 수 있는 최선입니다.”

민용기 상사가 최후의 제안을 했다. 박 사장이 심각하게 생각을 하더니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훈련소에 들어가면 이 부대로 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죠?”

“네, 물론입니다.”

“고생 안 하는 편한 보직으로 빼주고?”

“네.”

“알겠소. 그럼 그리 해주소.”

박 사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적으로 면제가 어렵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한종태 대대장과 민용기 상사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박 사장님, 그럼 전화로 말씀드렸던 금액은…….”

“뭐, 어쩌겠소. 이렇듯 윗분들께서 수고를 하시는데 해드려야죠. 그보다 우리 아들은 군대 안 가는 줄 알 텐데…….”

“하핫, 이것만 되면 신교대에서부터 자대배치 받고, 2년 동안만 참으면 됩니다. 저희가 무사히 군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군대 안 다녀오는 것도 흠입니다.”

민용기 상사가 박 사장의 비위를 맞추며 살살 달랬다.

“알겠소. 뭐,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은밀한 대화를 끝내고 민용기 상사가 박 사장을 직접 위병소까지 태워주었다.

다시 민용기 상사가 돌아왔을 때는 30분쯤 후였다.

“박 사장인가 뭔가 하는 양반은 잘 데려다줬어?”

“네.”

“그보다 행보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어쩌겠습니까. 요즘 고철 장사도 잘 안 되는데.”

“그러게 지난번에 적당히 좀 해 먹지. 이게 뭐야? 모양 빠지게.”

“아, 또 그 말씀 하십니다. 저 혼자 해 먹었습니까. 제가 대대장님 진급시켜 드리려고 이래저래 기름칠하고 다닌 거 정말 모르십니까?”

“알았어, 알았어. 그 일 가지고 어지간히 생색내네. 아무튼 이번 일만 하면 되는 거지?”

“에이, 이번 한 번으로 되겠습니까. 한 명으로 돈도 안 됩니다.”

“뭐야, 그럼 또 있어?”

“두세 명은 더 만나야 합니다.”

“아이고…….”

한종태 대대장이 골을 짚었다. 그게 장난처럼 보였던지 민용기 상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일이 돈이 많이 남습니다.”

“많이 남는 대신 위험도 크잖아.”

“걱정 마십시오. 입단속 잘하고 있습니다.”

“하아, 내가 이러려고 대대장 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한종태 대대장은 그래도 대대장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종태 대대장과 함께해 온 민용기 상사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흥, 지랄하고 있네. 돈 받을 때는 좋아라 하더만.’

민용기 상사가 뭔가 생각이 났는지 입을 뗐다.

“참, 아까 오면서 오 소위를 만났습니다.”

“알아. 차가 못 들어와서 때마침 오 소위가 있어서 데리고 들어오라고 했어.”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박 사장, 딱 보니까. 입이 싼 것 같은데 이상한 말은 하지 않았겠죠?”

“하면 어때. 알잖아, 오 소위 내 라인인 거.”

“대대장님 라인입니까?”

“그렇지. 내가 또 내 라인에 꽂아 줬지.”

한종태 대대장이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 당사자인 오상진은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4.

오상진은 행정반으로 바로 가지 않고, 1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당분간 훈련에도 일절 참여하지 못하고 내무실 대기를 명받은 강대철 이병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오상진이 내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강대철 이병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경례를 했다.

“충성.”

“그래, 대철이 별일 없지?”

“이병 강대철. 별일 없습니다.”

“그래도 내무실에만 있으려고 하니 많이 답답하지 않아?”

“네. 좀 그렇습니다.”

“조금만 참아, 아마 다음 주부터는 훈련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 거야.”

“네.”

“참, 고참들은 어때? 잘 챙겨줘?”

“잘 챙겨줍니다.”

강대철 이병이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상진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자식, 거짓말하네.”

“아, 아닙니다.”

강대철 이병이 당황하며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어차피 소대장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야. 하지만 이런 일로 네가 실망하고 그러면 안 돼. 어느 정도는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래, 선임들의 맘을 여는 것도 네 몫이야. 그러니 노력해 봐. 그러면 선임들도 충분히 다가와 줄 테니까.”

“네.”

“알았다. 무슨 일 있으면 소대장 찾고.”

“네.”

“쉬고 있어.”

“충성.”

고개를 끄덕인 후 내무실을 나온 오상진의 입가엔 슬쩍 미소가 번져 있었다.

“다행이네, 아직은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행정반으로 향하는데 손에 든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응? 은지 씨?”

오상진은 냉큼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박은지하고는 참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네, 여보세요.”

-저예요, 상진 씨.

“네, 은지 씨. 알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은지 씨는요?”

-저는 항상 바쁘게 보내죠. 그보다, 들리는 말로는 상진 씨 연애하신다면서요?

“어…… 예에.”

오상진이 살짝 움찔했다.

-어떻게 저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 연애를 할 수 있어요.

“미안합니다.”

-상진 씨가 왜 미안해해요. 축하할 일이죠. 그리고 연애를 해도 우리 둘…… 친구인 건 맞죠?

“그럼요.”

-그래요. 그럼 됐어요. 우리 앞으로도 편하게 지내요.

“당연하죠.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오늘 부대에 누구 찾아오지 않았어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안 그래도 오늘 대대장님 찾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혹시 그분 인상착의 좀 알 수 있을까요?

“얼굴에 살집 좀 많고, 후덕한 인상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지방에서 오신 분 같더라고요.”

-아, 그래요? 지방에서 온 분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요?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그랬구나. 혹시 같이 오면서 다른 말은 없었어요?

“대대장님 만난다고 하고, 조만간 자기 아들 군대 간다는 것 정도요.”

-아, 그럼 맞네요.

“은지 씨가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드린 겁니까?”

-네. 번번히 상진 씨 신세만 지네요.

“신세는요. 그럼 얘기 좀 해주시죠. 무슨 일입니까?”

오상진은 박은지가 이번에 뭘 조사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종태 대대장의 뒤를 캔다는 건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지만 정확하게 어떤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박은지도 기자로서 취재 중인 걸 함부로 떠들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아직도 조사를 더 해야 해서요. 제가 좀 더 확인을 한 후에 말해줄게요.

“그럼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뇨, 이건 절대 손대지 마세요. 큰일 나요. 이건 제가 따로 조사하고 있으니까요. 상진 씨는 모르는 척해주세요. 부탁해요.

“그래요, 알겠어요.”

-네. 그럼 전 이만 나가봐야 해서요.

“수고해요, 은지 씨.”

-상진 씨도요.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잠깐 동안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내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그보다 우리 대대장님 청탁받으시나? 에이, 아니겠지. 청탁할 거면 장군급에게나 가야지. 우리 대대장님이 뭐 할 것이라도 있나.”

그러면서 오상진은 자신의 대대장 시절을 떠올렸다. 그 당시 솔직히 청탁 문의가 많이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설사 청탁을 받는다 해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려면 여러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이, 아닐 거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상진은 다시 부대로 향했다. 요즘 매일 잔업을 해야 할 정도 업무량이 많았다. 박중근 하사가 옆에 붙었다.

“식사하셨습니까?”

“어? 박 하사.”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박 하사도 식사했습니까?”

“네.”

“그런데 왜 퇴근하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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