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13화
21장 꼬리가 길면 밟히지 말입니다(1)
1.
그다음 날 오상진은 외부 업무를 보러 잠깐 외출했다가 다시 부대에 복귀했다. 그런데 위병소 앞에 검은색 세단 하나가 멈춰서 입구를 막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 차량을 지켜보았다.
곧 운전석의 문이 열렸고, 위병 근무자와 운전자가 실랑이를 시작했다.
“어허, 나 들어가야 한다니까.”
“안 됩니다. 이곳은 민간이 통제구역입니다. 혹시 면회를 오신 거라면 저쪽 면회자 주차장으로 주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면회가 아니라, 대대장을 만나러 왔다니까 그러네.”
“대대장이라면 어느 부대 대대장님이십니까?”
“어디 보자……. 어, 그래. 충성대대장.”
“아, 충성대대장님 만나러 오셨습니까? 그럼 저희가 충성대대에 연락을 드려보겠습니다. 확인 후 면회소에 대기하고 계시면 담당자가 마중 나올 것입니다.”
“내가 직접 차를 몰고 가면 안 되나?”
“죄송합니다. 허가받지 않은 차량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거참, 깐깐하게 구네. 그냥 통과시켜 주지.”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위병 근무자의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상진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입니까?”
“아, 이분이 막무가내로 들어가려고 해서 말입니다.”
위병조장이 나와서 상황을 설명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 남자를 보며 물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이십니까?”
“아, 여기 장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마침 잘 만났소. 아니, 충성대대장 좀 만나러 왔는데 통과를 안 시켜주네.”
“아, 여기는 민간인 통제구역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전에 혹시 저희 대대로 공문을 보냈습니까?”
“공문? 그런 거 없는데?”
오상진이 다시 한번 위병조장에게 물었다.
“혹시 이 차량 허가증 나온 것 있습니까?”
“저도 혹시나 해서 확인은 했지만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다시 세단에 탄 사람을 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 대대에 협조공문을 보낸 후 다시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상진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참,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곤란하단 말이야. 대대장하고 이미 약속을 잡았는데……. 잠시만 기다려 보시게.”
그 남자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아, 대대장님. 박 사장입니다. 지금 부대에 왔는데 위병소에서 날 통과 안 시켜주네. 그런데 여기 오상진 소위라고 있는데……. 아! 잠깐 바꿔 달라는 말이죠. 잠깐만요.”
박 사장이 휴대폰을 오상진에게 건넸다.
“전화 좀 받아 보시겠소.”
“네.”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오상진 소위입니다.”
-오 소위, 대대장이야.
오상진은 휴대폰 너머 들려오는 한종태 대대장의 목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충성.”
-내 목소리 기억하고 있지?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 오늘 내가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하고 말을 못 했네. 자네가 어떻게 좀 통과 좀 시켜봐.
“대대장님 아시지 않습니까. 위병소 관할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위병소에 누구 있어?
“현재 최 중사가 위병조장으로 있습니다.”
-뭐? 최하윤 중사?
“네, 그렇습니다.”
-아, 하필 최 중사가 있는 거야. 최 중사 엄청 깐깐하잖아.
“네. 그렇죠.”
-이것 참 난감하네. 그분 멀리서 오셨는데…….
“대대장님, 그럼 제가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
-아, 오 소위가 그래 주겠나?
“네.”
-그래, 그럼 수고 좀 해줘.
“네. 충성.”
오상진이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박 사장이 물었다.
“뭐라고 합니까? 통과시켜 준다고 하죠?”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뭐야, 대대장이 승낙했다면서.”
“아무리 대대장님이라고 하셔도 위병소는 사단 관할이라…….”
“에이 씨, 뭐가 이리 빡빡해.”
박 사장이라는 자가 투덜거렸지만 오상진은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차는 저쪽 면회자 주차장에 주차하시고, 제 차로 올라가시죠.”
“쩝, 어쩔 수 없지.”
박 사장은 구시렁대며 면회자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오더니 위병 근무자에게 한마디 했다.
“저 차 잘 지켜봐 줘. 비싼 차니까.”
“네네.”
위병 근무자는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대답은 했다. 오상진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위병소에 가셔서 방문자 작성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 것까지 해야 해? 귀찮게.”
“네.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대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박 사장은 조금 귀찮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방문자 작성까지 했다. 그리고 오상진 차에 올라탔다.
“이제 가시죠.”
오상진의 차가 떠나고 위병소 근무자가 한마디 했다.
“뭐야, 저 사람! 우리가 뭐 자기 차 지켜주는 주차 관리원인 줄 아나.”
“됐어. 무시해! 돈 좀 있다고 저러는 것 같은데.”
“어이가 없지 말입니다. 여기가 무슨 무작정 차 밀고 들어온다고 되는 곳인 줄 아나.”
그렇게 한참 동안 위병소 근무자들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2.
오상진은 박 사장을 옆에 태운 채 천천히 차를 몰아 충성대대로 향했다. 조수석에 앉은 박 사장은 힐끔힐끔 오상진을 바라봤다.
‘군인치고는 멀끔하게 생겼네. 말도 잘 통하고. 그런데 대대장하고 서로 아는 사이인가? 대대장 라인쯤 되는 건가.’
운전을 하던 오상진은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박 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박 사장에게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오 소위라고 했나?”
“네.”
“참 싹싹하니 좋네.”
“하하, 감사합니다.”
“그보다 소위면 임관한 지 얼마 안 되었겠네.”
“네.”
박 사장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따지고 보면 박 사장의 나이는 오상진에게 있어서 아버지뻘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육사 나왔고?”
“네.”
“이야, 공부 잘했나 보네.”
오상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그보다 어르신께서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응? 나? 뭐…… 자네 대대장이랑 얘기나 할까 해서 왔지.”
“아, 저희 대대장님이랑 잘 아시나 봅니다.”
“아니,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고……. 그냥 이래저래 알게 되었어.”
“아, 그렇습니까?”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말하는 거로 봐서는 한종태 대대장과 상당한 친분이 있어 보이는데 또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러자 박 사장이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참. 요즘 군대 말이야. 어때?”
“군대야 다 똑같죠. 그런데 무엇 때문에 물어보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말이야. 내가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는데, 금이야 옥이야 소중히 키운 내 아들이 이번에 군대를 간다네. 맘 같아서는 보내고 싶진 않지만 어디 우리나라에서 그게 가능한가. 안 그런가?”
“네, 그렇죠.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군대는 가야죠.”
“그건 그런데…… 이번에 우리 아들이 영장이 나왔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오해는 말게. 내가 괜히 청탁하고 그러려는 것은 아니니까. 그냥 대대장님 만나서 군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묻고 싶고 그래서 말이지.”
오상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솔직히 군 생활이 어떤지 물어보기 위해 대대장을 찾아왔다는 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아, 네에.”
박 사장이 한종태 대대장을 찾아온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됐지만 오상진은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확실하지 않은 일로 한종태 대대장의 손님을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대에 도착한 후 오상진이 직접 박 사장을 데리고 대대장실로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아, 고맙네.”
“아닙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대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다.
“들어와.”
오상진이 박 사장을 보며 말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네.”
오상진은 끝까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가는데 저 멀리서 대대 행보관인 민용기 상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어, 오 소위님.”
“네. 행보관님.”
“방금 대대장님 손님 한 명 태우고 오셨죠?”
“네.”
“아이고, 그냥 대충대충 보내주지.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는지.”
민용기 상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방금 대대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그래요, 수고했습니다.”
민용기 상사가 손을 들어 오상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제 딴에는 고마운 마음에 한 행동이었지만 오상진은 살짝 기분이 나빴다. 군대 짬밥은 민용기 상사가 훨씬 많을지 몰라도 계급은 오상진이 위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참 소위였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과거 대대장까지 하다 왔다 보니 자신을 깔보는 듯한 민용기 상사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아무리 짬밥이 있어도 이건 아닌데…….’
오상진이 애써 짜증을 되삼키며 몸을 돌렸다.
3.
한종태 대대장이 문을 열고 나타난 박 사장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 박 사장님. 먼 길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뭐, 고생까지야 있겠습니까.”
“어서 이쪽으로 와서 앉으십시오.”
한종태 대대장이 자리를 권했다. 잠시 후 C.P병이 들어왔다.
“차 두 잔 가져와.”
“네.”
C.P병이 나가자 박 사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대대장님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위병소는 이해해 주십시오. 그쪽도 나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
“대대장님 만나러 왔다고 몇 번을 말해도 들어먹질 않으니 원.”
“원칙이 그래서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 사장의 얼굴엔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한종태 대대장은 그의 표정을 읽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대대장실로 민용기 상사가 들어왔다.
“아, 행보관 왔나.”
“네, 대대장님.”
“이리 와서 앉게.”
“네.”
민용기 상사가 박 사장과 인사를 나눈 후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차가 나오고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그냥 우리 아들 빼주소.”
“하하하……. 역시 우리 박 사장님……. 바로 말씀을 하시니 좀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이런 거로 말 돌리고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말이오. 얼마면 되겠소?”
“아이고, 요새는 그렇게 하시면 큰일 납니다. 그보다 아드님 입영통지서는 가져오셨습니까?”
“여기 있소.”
박 사장은 냉큼 입영통지서를 꺼내 보였다. 한종태 대대장이 박 사장이 내민 통지서를 확인해 보니 현역 1급이었다. 3급이라면 어떻게든 손을 써 볼 수도 있을 텐데 1급은 답이 없었다. 장난을 치기에는 너무 건강했다.
“아드님 어디 아프신 곳은 없습니까?”
“멀쩡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너무 건강하죠.”
“하핫! 그렇습니까.”
한종태 대대장이 멋쩍게 웃으며 통지서를 민용기 상사에게 건넸다. 민용기 상사도 통지서를 확인했는데, 현역 1급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