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9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8)
“여러분 말씀이 다 맞습니다. 영창 보냈다가 전출 보내면 가장 깔끔하게 해결되겠죠. 하지만 그냥 바로 전출 보내기에는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뭔가 아직 더 해보지도 않은 것 같고 말입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전출 보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가만히 듣더니 입을 뗐다.
“1소대장, 굳이 그럴 필요 있어? 그런다고 그 녀석이 널 좋게 봐줄 것 같아?”
“뭘 바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소대장으로서, 한 번 더 강대철 이병에게 기회를 줘서 사람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소리쳤다.
“야, 그 자식 사람 안 돼!”
경험상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친 병사 중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뉘우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상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소대장으로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줬는데 또 그러면 그때는 두말없이 전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십시오. 중대장님.”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전출을 보내고 싶은데 오상진이 또 저렇게 간절히 말을 하니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1소대장, 만약에 그 녀석이 또 사고 치면 너의 커리어에 치명적이야. 그런데 1소대장도 알잖아, 그런 놈들은 또 사고를 친다니까? 절대 안 바뀌어!”
“안 바뀌면 저의 자질 부족이고 말입니다. 그래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김철환 1중대장을 비롯해 다른 소대장들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상진의 뜻을 꺾고 싶지도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아…….”
김철환 1중대장은 생각하면 할수록 깊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것 참 난감하네. 물론 상진이 입장에서는 자기가 관리하는 1소대니까 찜찜하긴 하겠지. 그냥 기회를 줄까? 하긴, 이 일을 대대장님께 보고 올리면 괜히 욕만 먹을 것 같고……. 아직 경계근무 사건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대대장님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
김철환 1중대장의 마음 역시도 복잡했다.
‘아, 상진이 이 녀석에게도 괜히 똥 치우라고 하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한데…….’
김철환 1중대장은 강대철 이병을 다시 한번 맡긴다는 게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도 저렇게 완고하게 나오니 승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1소대장 다시 한번 해봐.”
그런 김철환 1중대장의 말에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보겠습니다.”
“대신에 정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말해. 중대장이 어떻게든 전출 보내는 쪽으로 해볼 테니까.”
“네.”
“그리고 이 녀석 영창 보내야겠지.”
“당연합니다.”
“보내야죠.”
“그럼 며칠을 보내야 할까?”
“최대로 보내야 합니다.”
“보름?”
“네, 아마도 15일이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이건 내가 바로 보고하도록 할게.”
“네, 알겠습니다.”
다음 날 김철환 1중대장은 강대철 이병을 군기 문란으로 15일짜리 영창에 보낸다는 보고를 올렸다.
다행히 한종태 대대장은 대수롭지 않게 바로 사인을 했다. 강대철 이병이 지난날 경계근무를 서다 사고를 쳤던 이병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경계근무 잘못으로 보내는 건가?”
한종태 대대장의 물음에 김철환 1중대장은 흠칫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에. 그렇습니다. 그 외도 군기가 워낙에 빠져 있어서…….”
“그래도 이등병인데 영창 보낸다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이등병이라고 해도 군 기강에 크게 해를 입히면 당연히 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 우리 1중대장. 원래 이러지 않았잖아. 냉정해졌어.”
“군 기강에 대해서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 알았어.”
한종태 대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강대철 이병은 군 헌병대로 15일짜리 영창에 보내졌다.
“와, 강대철 드디어 갑니까?”
“이제 좀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지 말입니다.”
“나도. 잠자다 저 자식이 미친 짓 하진 않을까 엄청 불안했거든.”
“그런데 대철이 영창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야! 그런 사고를 쳤는데 무슨 수로 다시 돌아오냐?”
1소대원들은 대부분 앓던 이가 빠졌다는 반응이었다. 오직 오상진만이 강대철 이병이 복귀했을 때 어떤 식으로 교화시키면 좋을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아, 일단 영창은 보내긴 했는데……. 복귀하면 어떻게 하지?”
오상진은 일단 강대철 이병의 전출은 막아 놓은 상태였다.
“으음…….”
꽤 깊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박중근 하사가 말을 걸어왔다.
“고민되시죠.”
“네. 솔직히 강대철 이병이 15일 후 복귀했을 때 전출 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소대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걱정됩니다.”
“애들은 아마 전출 가는 줄 알고 있을 겁니다.”
“하아, 그럼 전출 보내는 것이 맞는 겁니까?”
“제가 소대장님이라도 고민될 겁니다. 막말로 전출 보내는 것이 맞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출 보내는 그 부대는 또 무슨 잘못입니까? 고문관 보냈다고 또 우리 부대 욕할 것 아닙니까. 이래저래 고문관 병사들 돌리고 하니까, 사고가 터지는 겁니다. 전 무조건적인 전출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중근 하사가 오상진의 생각에 힘을 실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저 녀석 사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일단 지켜보시죠. 영창 갔다 와서 안 바뀌는 녀석도 있고 그나마 바뀌는 녀석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녀석이 복귀하고 생각하죠.”
“네.”
그렇게 두 사람의 짧은 의견을 주고받았다.
강대철 이병이 영창으로 간 지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1소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훈련에 한창이었다.
이해진 일병의 얼굴에 난 멍도 거의 사라지고 부기도 빠져 있었다. 그렇게 그 날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려던 찰라.
끼이이익.
오전, 충성 대대로 헌병대 차량이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린 사람은 강대철 이병이었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은 지난 15일간 영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22.
오상진은 강대철 이병이 부대에 복귀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행정반을 나섰다. 때마침 부대 외곽에 헌병대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네. 강대철 이병 인계하러 왔습니다.”
“네.”
오상진이 대답을 한 후 강대철 이병을 바라봤다. 어딘지 초췌한 느낌이 들었다.
“확인하셨으면 저희들은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헌병대 차량이 가고, 오상진은 강대철 이병을 보며 말했다.
“고생했다. 들어가자.”
“이병 강대철.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강대철 이병을 데리고 부대로 들어갔다.
“어깨에 메고 있는 더플 백은 내무실에 두고, 나 따라와라.”
“네,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은 예전과 달리 군기가 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오상진은 이제야 이등병다운 모습을 보이는 강대철 이병이 살짝 낯설었다.
‘뭐, 약간 적응은 안 되지만…….’
오상진이 속으로 중얼거린 후 내무실에 더플 백을 놓고 나온 강대철 이병을 봤다.
“따라와.”
“네.”
오상진이 강대철 이병을 데리고 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그곳에서 면담을 하기 위함이었다.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워. 소대장은 괜찮으니까.”
“네.”
강대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며 오상진이 물었다.
“그래, 교육은 잘 받고 왔어?”
“네.”
“안 힘들었냐?”
“엄청 힘들었습니다.”
강대철 이병은 망설임 없이 바로 말했다. 그런 강대철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오상진이 살짝 걱정되어 물었다.
“너 목소리에 힘이 없다. 혹시 영창에서 가혹 행위라도 받은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강대철 이병은 오상진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은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말하는 것이 딱딱했다. 예전과 확 달라진 말투와 눈빛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너 어디 아픈 것은 아니고? 의무대 보내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야, 너 말투도 그렇고 왜 그래? 갑자기 소대장 적응이 안 된다.”
“제 말투가 불편하십니까?”
“불편하다기보다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말이야.”
“아, 저 이번에 영창 가서 정말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반성?”
“네, 가만히 앉아서 홀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생활에 대해서 고민을 좀 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어차피 군 생활 2년은 채워야 한다. 그렇다면 조용히 지내자. 이렇듯 고참들에게 잘못하고 개기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영창뿐이다. 이런 식으로 군 생활을 계속 늘릴 수는 없다.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 그곳에서 깊은 자아성찰을 했단 말이야?”
“네? 자아성찰이 뭡니까?”
강대철 이병이 곧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오상진이 바로 정정하며 입을 뗐다.
“아니, 너에 대해서 되돌아봤냐 이 말이야.”
“아…… 네, 그렇습니다. 아주 깊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뭐 좋은 일인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한데…….”
오상진은 뒷말을 흐렸다. 솔직히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을 거라 생각했었고, 그래서 강대철 이병이 부대로 복귀하면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해 서서히 바꿔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180도로 바뀌어서 오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자식이, 영창이 무섭긴 무서웠나 보네.’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강대철 이병이 조심스럽게 오상진을 불렀다.
“소대장님.”
“왜?”
“부탁 한 가지 해도 됩니까?”
“뭔데?”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를 달라?”
“네.”
“사실 다른 부대 가서 적응할 자신도 없고, 이 부대에서 다시 잘해보고 싶습니다.”
“흠…….”
오상진은 강대철의 말을 듣곤 깊게 생각에 잠긴 듯 침음하며 턱을 매만졌다. 사실 강대철 이병이 이곳에 남을 것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이 먼저 저렇게 나오니, 오상진은 이 기회를 잘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기회라……. 물론 기회는 줄 수 있지. 그런데 너 이해진 일병이랑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같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예, 문제없습니다.”
“인마, 너는 당연히 때린 입장이니까 가능하겠지만, 이해진 일병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어. 만약에 이해진 일병이 너랑 생활 못 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
“제가 이해진 일병에게 잘못을 빌겠습니다.”
“잘못을 빌겠다고? 진심으로?”
“예.”
“그럼 소대장이 이해진 일병 불러줄까? 소대장 앞에서 할래?”
“아뇨, 그러면 진심으로 잘못을 비는 것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이해진 일병을 따로 만나 진심으로 사과하겠습니다.”
“그래? 알겠어. 일단 네가 사과를 하고 싶다고 이해진 일병에게 말해볼게. 이해진 일병의 얘기도 들어봐야 하니까.”
“아, 그렇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만약 이해진 일병이 같이 지내기 어렵다고 하면 자신은 전출을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