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8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7)
“어쨌든 전부 네가 한 짓이 맞네. 아니야?”
“……맞습니다.”
강대철 이병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똑똑한 녀석이었다면 모른다, 절대 그런 적 없다며 딱 잡아뗐을 텐데, 강대철 이병은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위의 내용을 모두 인정해 버렸다.
오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들었던 얘기들에 대한 사실 확인이 필요했는데 강대철 이병이 모든 것을 인정했으니 이제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후우, 알았다. 어쨌든 소대장이 한 말이 다 맞는 거네.”
“…….”
강대철 이병은 침묵을 지켰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보이는 강대철 이병을 바라보는 오상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강대철 이병은 이제야 사태 파악이 된 건지, 눈치를 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왜 이제 와서 겁이 나냐?”
“그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 영창은 피하기 어려울 거다.”
“영창? 영창은 얼마나 가야 합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
“그럼 영창 갔다 오면 저 최전방으로 전출 가는 겁니까? 진짜 갑니까?”
“무슨 소리야?”
“아니, 아까 통신과에서 최전방으로 전출 갈지도 모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 고생할 거라고 했습니다.”
오상진은 속으로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생은 하고 싶지 않은가 보네.’
그런데 오상진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왜? 최전방은 가기 싫어?”
“예, 가기 싫습니다.”
“그럼 뭐 하러 사고를 쳐?”
그제야 강대철 이병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상진이 보기엔 강대철 이병의 사과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상진은 강대철 이병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지. 내가 너무 최강철에게만 신경을 쓰고, 이 녀석은 신경을 안 썼나? 하긴 좀 그랬긴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심정이 이런 걸까. 오상진은 그저 속이 쓰렸다.
“아무튼 모든 상황은 알았고, 처분이 내려지기 전까지 내무실에 자숙하고 있어.”
“내무실 말입니까?”
“왜?”
“그냥 아까 그곳에 가 있으면 안 됩니까?”
“인마, 그게 말이 돼? 이 자식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직도 모르고 있네. 잔말 말고 내무실로 가! 네가 전출을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전출을 가게 되더라도 그때까지는 1소대원이야. 당연히 1소대 내무실에 있어야지. 군말 말고 내무실에 가 있어. 딴 곳으로 새기만 해.”
오상진이 단호하게 얘기를 한 후 방을 나갔다. 강대철 이병도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1소대로 향했다.
21.
강대철 이병은 1소대 내무실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가야 하는데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아, 미치겠네.”
강대철 이병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잔뜩 인상을 쓰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까짓것 잠깐 불편하고 말지.”
그렇게 마음먹고 내무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내무실은 의외로 조용했다.
‘어? 아무도 없나?’
강대철 이병은 내심 다행이라 여기며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너무 조용해서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무실 안에는 소대원 모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시선이 내무실에 들어선 강대철 이병에게 향해 있었다.
강대철 이병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너무나도 살벌했다. 아니, 사람이 아닌 것을 쳐다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모두의 눈빛엔 ‘넌 인간도 아니다’라고 써 있는 것 같았다.
‘쳇…….’
강대철 이병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막상 당하고 나니 씁쓸했다. 그때 최강철 이병과 눈이 마주쳤다. 최강철 이병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외면해 버렸다.
‘X발, 너 그런 녀석이었지.’
강대철 이병은 최강철 이병에게 괜히 섭섭함을 느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때 김일도 상병이 입을 뗐다.
“와, 군대 진짜 많이 좋아졌다. 그렇지 우진아.”
“상병 김우진. 네,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난다. 안 그래?”
“무슨 생각 말입니까?”
“너도 예전에 고참들 맘에 안 든다고 지랄하고 그랬잖아.”
“아,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김일도 상병이 시치미를 뗐지만, 최용수 병장과 강상식 상병이 있을 때 내무반 분위기는 엉망이었다. 그 시절 두 사람에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은 소대원이 없을 정도였다.
“너 그랬잖아. 그때 강상식 상병을 들이받고 영창 가겠다고 말이야.”
“왜 또 옛날 이야기를 하고 그러십니까.”
“옛날얘기는 무슨. 얼마나 됐다고. 그리고 그때 강상식 상병이 칠 수 있으면 쳐보라고 했잖아.”
“그때 치면 치는 놈이 미친놈이죠. 군대에서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합니까.”
“그렇지. 그거 치는 놈이 미친놈이지?”
“당연하죠.”
“그럼 네가 정상인 거지?”
“네. 제가 정상이죠.”
“난 또 잠시 헷갈렸다. 요새 군대가 달라진 줄 알고.”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군대가 개판이라고 해도 어떻게 후임이 선임에게 주먹질을 합니까.”
“그렇지? 와, 그런데 그런 미친놈이 있네. 진짜 군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안 그러냐?”
“왜 안 그러겠습니까.”
김우진 상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강대철 이병은 잔뜩 불편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돌려 말했지만 결국 자신을 비난하는 이야기였다.
김일도 상병은 그런 강대철 이병을 힐끔 보더니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 재수 없는 놈 때문에 저녁 밥이 넘어가려나 모르겠다. 얘들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넵!”
김일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무실을 나갔다. 다른 소대원들도 각자 수저를 챙겨서 나갔다. 그 누구도 강대철 이병을 챙기는 사람은 없었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모두가 다 나간 텅 빈 내무실에 홀로 남은 강대철 이병은 고민에 휩싸였다.
“어떻게 하지? 배고픈데 나도 밥 먹으러 가야 하나? 그런데 소대장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는데……. 누가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아이 씨 배고파.”
이 와중에도 강대철 이병은 허기짐에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 시각.
상황을 보고받은 김철환 1중대장은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중대 회의를 소집했다.
“다 모였습니다.”
중대장실에 모인 소대장들의 표정 역시 그다지 좋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 감히 어떻게 후임이 선임을 쥐어 팰 수가 있지?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말이 안 됩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힐끔 장재일 2소대장을 바라봤다. 일반적인 대답이라기보다는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김철환 1중대장은 살짝 인상을 쓰고는 다시 오상진을 보며 물었다.
“1소대장, 이 녀석이 그때 그 녀석이지?”
“네?”
“경계근무 서다가 사고 친 놈 말이야.”
“네, 맞습니다.”
“하아, 뭐 이런 꼴통 녀석이 다 있지? 원래 이런 애였냐?”
그러자 4소대장이 바로 끼어들었다.
“그 녀석 장난 아닙니다. 제가 지나가도 인사도 안 하는 녀석입니다. 게다가 만날 건들거리며 다닙니다. 가끔 보면 노현래 이병이랑 같이 다니는데 그 선임을 아주 우습게 봅니다.”
“아, 그랬어?”
김철환 1중대장이 다시 오상진에게 시선이 갔다.
“1소대장 그런 일이 있었으면 바로 말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제가 신병 관리를 잘 못 했습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강대철 이병이 원래 신교대에서부터 문제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지! 이게 어디 1소대장 잘못이냐? 이런 녀석을 보내 신교대 그 녀석들이 문제지.”
김철환 1중대장은 말을 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4소대장이 바로 그 말을 듣고 의문을 가지며 물었다.
“원래 신교대에서부터 문제였습니까?”
“그런 거 같아.”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신교대를 걸고넘어진 이유는 오상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오상진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신교대를 끌어들인 것이다.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신교대 그놈들 뭐라고 써놓은 줄 아냐? 꼴통이라고 조심하란다.”
“와, 대박이네. 꼴통이면 신교대에서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보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니면 쫓아내 버리든가. 그런데 그냥 보낸 겁니까? 꼴통인 줄 뻔히 알면서? 우리가 뭐 그런 녀석들 교화해 주는 곳입니까?”
4소대장이 열을 내며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말을 받았다.
“내 말이 그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사정이 있더라.”
“네? 무슨 사정 말입니까?”
4소대장을 비롯해 다른 소대장들도 궁금해했다.
“솔직히 중대장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거기서 들려오는 답변이 뭔 줄 아냐?”
“뭐라고 합니까?”
“그 녀석 이미 두 번이나 퇴소를 당했다고 하더라고. 한 번 만 더 하면 자기들이 문제 생길 것 같으니까 억지로 밀어 넣었다고 하더라.”
“와, 신교대 그런 식으로 일하면 안 되죠.”
김철환 1중대장은 그런 오상진을 보며 위로의 말을 했다.
“우리 1소대장 진짜 맘고생 많았다. 어떻게 그런 놈을 관리하고 있었냐.”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면죄부를 주니 오상진은 왠지 이 자리가 찝찝했다. 사실 오상진은 최강철 이병만 신경을 썼지 강대철 이병에게는 그다지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듯 김철환 1중대장이 자신을 싸고도니 더욱 이 자리가 불편해졌다.
3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이 녀석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4소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뭘 어떻게 합니까. 영창 보낸 후 전출 보내야죠.”
김철환 1중대장도 동의를 했다.
“그래, 영창 보내고 난 후 전출 보내자. 내가 대대장님께 욕 한 번 들어먹더라도. 이 녀석은 우리 중대에 놔둘 수가 없어.”
그런데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김철환 1중대장을 불렀다.
“저기 중대장님.”
“왜?”
“영창은 보내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습니까?”
“왜? 그냥 전출 보내!”
“맞습니다. 1소대장님. 전출 보내시죠.”
4소대장이 말했다. 곧바로 3소대장도 합류했다.
“네. 전출 보내고, 신병 새로 받으면 됩니다. 그 녀석 데리고 있어 봤자, 1소대에 오히려 마이너스일 겁니다.”
하지만 오상진은 달랐다.
“중대장님과 여러 소대장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도 소대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싶습니다.”
다른 소대장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왜 그럽니까? 그냥 전출 보내면 깔끔한데.”
“맞습니다. 그런 녀석 데리고 있어 봤자 머리만 아픕니다.”
“으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강대철 이병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오상진의 생각이 궁금했던 3소대장이 물었다. 오상진은 그에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