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7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6)
“어험……. 밖에 볼일이 있었지. 나가봐야겠네.”
장재일 2소대장이 도망치듯 행정반을 나갔다. 오상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
오상진이 내뱉은 한숨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그러자 3소대장이 다가와 한마디 건넸다.
“잘하셨습니다.”
“제가 잘한 걸까요?”
“가끔 싫은 소리를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 하면 저래도 되는 줄 알 테니까요.”
“진짜 2소대장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
오상진에게는 지금 2소대장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해진 일병과 강대철 이병의 일이 우선이었다.
오상진이 4소대장에게 물었다.
“4소대장이 제일 먼저 현장에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때가 어땠냐면 말입니다.”
4소대장은 자신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놓았다. 약간의 과장도 섞어 가면서 말이다.
“담배 한 대 피울까 해서 밖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노현래 이병이 헐레벌떡 뛰어 왔습니다. 마치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부르는 겁니다.”
“현래가 말입니까?”
“네. 정말 겁에 잔뜩 질린 얼굴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물었죠, 무슨 일이냐고. 그러자 현래가 사람이 죽어간다고 하지 뭡니까.”
4소대장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제가 무슨 일인가 해서 현래를 따라 창고로 갔습니다. 그리고 창고 안을 봤는데, 세상에 강대철 이 미친 녀석이 군홧발로 이해진 일병을 밟고 있었습니다.”
“군홧발로 말입니까?”
“네네, 이해진 일병은 바닥에 쓰러진 채 잔뜩 웅크리며 일방적으로 맞고 있더란 말입니다.”
“이 자식이…….”
오상진이 주먹을 쥐며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군화로 사람을 가격하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짓이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4소대장이 더욱 열을 내며 그 상황을 설명했다.
“이게 단순히 밟는 거면 저도 그러려니 했을 건데 딱 보니까 발을 들어 올린 위치가 이해진 일병의 머리 쪽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다급히 뛰어들어 멈추게 했죠.”
그 말을 들은 3소대장이 놀라며 말했다.
“와, 하마터면 사람 잡을 뻔했습니다.”
“네! 강대철 이 자식은 눈깔이 돌아가지고 내가 뭐라 한마디 했다고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는데. 딱 보니 한 대 칠 것 같더란 말입니다. 그래도 내가 또 소대장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 하나 처리 못 하면 소대장이 아니죠. 그래서 강대철에게 다가가 딱 밀치고 현래에게 빨리 해진이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오상진이 다 듣고 난 후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감사합니다, 4소대장 덕분에 큰일을 면했습니다.”
“무슨 감사입니까. 당연한 것이죠. 우리 해진이가 그냥 1소대 애입니까? 우리 1중대 애죠. 안 그렇습니까?”
4소대장은 실실 웃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3소대장도 피식 웃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오상진의 표정은 심각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그보다 강대철 이병은 어디 있습니까?”
“내부반으로 보내면 사고 칠 거 같아서 일단 통신과에 격리시켜 놨습니다.”
“네. 잘하셨습니다. 그럼 전 그 녀석 좀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네. 그러십시오. 그리고 따끔하게 혼 좀 내십시오.”
오상진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인 후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19.
그 시각, 통신과에 일병 한 명이 들어왔다.
“김 상병님, 김 상병님.”
“왜 호들갑이야.”
“혹시 그 소식 들었습니까?”
“뭐?”
“아니, 1중대 1소대에 어떤 또라이 이등병이 선임을 두들겨 팼다고 합니다.”
“뭐? 1중대 1소대에 또라이가 있었어?”
“네.”
김 상병은 얘기를 듣고 스윽 시선을 뒤쪽으로 돌렸다. 그곳 구석진 자리엔 떠들고 있는 일병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강대철 이병이었다.
‘후후, 꼴에 지 얘기한다고 날이 섰네. 그보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면 또 재미가 없지.’
김 상병은 보통 같으면 ‘야 저 녀석 아냐?’ 그렇게 말하겠지만 왠지 장난기가 발동되었다. 김 상병의 입가로 스윽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문제의 이등병이 저기 있다고 말하지 않고 일병에게 시선을 돌려 짐짓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그래? 좀 더 자세히 말해봐.”
“최근에 1중대 1소대에 새로 신병이 오지 않았습니까.”
“혹시 그 녀석 건들건들하게 생겼냐? 싸가지 좀 없어 보이고.”
“어? 어떻게 알았습니까?”
“왠지 그럴 거 같았다. 아무튼 계속 얘기해 봐.”
“그 자식 자기 소대에서 고문관이었나 봅니다. 이해진 일병 아십니까?”
“어어, 알지.”
“이해진 일병이 훈육 좀 하는데 그걸 못 참고 주먹 휘둘렀다지 뭡니까.”
“오오, 그래? 무슨 그런 미친놈이 다 있냐?”
“그렇지 말입니다. 아무튼 그 주먹에 맞고, 이해진 일병은 바로 의무대에 실려 갔다고 합니다.”
“와, 미친! 진짜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어떻게 후임병이 선임병을 때릴 수가 있지?”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전 감히 생각도 못 하는데…….”
“오오, 왜? 너도 생각한 적은 있나 보지?”
그러자 일병이 손을 황급히 저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전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전 언제나 선임병의 말씀을 아주 잘 듣는 착한 후임병입니다.”
“후후, 그래. 넌 그렇지.”
김 상병이 웃었다. 일병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녀석 이제 영창 가는 거 아닙니까?”
일병의 입에서 영창 얘기가 나오자, 구석에 있던 강대철 이병이 움찔했다. 4소대장이 봤으니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영창을 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보던 김 상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창은 당연한 거고…….”
김 상병이 옆에 있던 자신보다 선임병인 전 상병을 보며 물었다.
“전 상병님! 사건이 이 정도이면 최소한 영창에다가 전출 아닙니까?”
전 상병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김 상병의 겁 주는 것에 장단을 맞춰줬다. 막말로 이들 입장에서는 그런 짓을 벌인 강대철 이병이 싸가지 없는 일개 이병일 뿐이었다.
“당연히 전출 보내야지. 아마도 최전방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데.”
“워, 최전방 말입니까? 거긴 엄청 빡센 곳 아닙니까? 진짜 북한군과 맞닿아 있어서 진짜 총싸움도 벌어진다고 하던데…….”
김 상병은 말을 하면서 일부러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강대철 이병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에 전 상병도 바로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알기론 그것이 끝이 아니야. 사고 치고 전출 간 녀석들은 휴가고 외박이고 다 잘린다고 들었어.”
“아, 그렇습니까? 그 녀석 완전 X됐습니다.”
“그렇지.”
그들의 대화를 들은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잔뜩 굳어졌다.
‘아, X발! 진짜야? 정말 그런 거냐고.’
강대철 이병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통신과 문이 열리며 오상진이 나타났다.
“충성.”
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수고가 많다. 여기 강대철 이병 있냐?”
신나게 떠들던 일병은 순간 깜짝 놀라 고개를 홱 돌려 구석진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강대철 이병이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앉아 있었다.
“헙!”
일병은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사이 전 상병이 오상진을 향해 말했다.
“저기 뒤에 있습니다.”
전 상병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강대철 이병이 있었다. 오상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강대철 이병에게 말했다.
“강대철 이리 나와.”
“네.”
강대철 이병이 어슬렁어슬렁 나오며 일병을 향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일병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오상진과 강대철 이병이 나가고 일병은 김 상병을 향해 말했다.
“김 상병님, 그 녀석이 있던 거면 있다고 좀 말해주시지 그랬습니까.”
“걱정 마. 저 녀석이랑 엮일 것 같아? 저 녀석 조만간 딴 부대로 전출 갈 거야.”
“정말이죠?”
“그래. 걱정 마. 저 녀석 인생 X됐다고 봐야지.”
“그런데 말입니다. 1소대장님 워낙에 사람이 좋아서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모르지. 네 말대로 1소대장님 성격이 워낙 좋으니 한 번은 봐줄 수도 있지. 근데 보통 저런 녀석은 봐준다고 해도 인간 안 된다. 분명히 또 사고를 친다. 두고 봐!”
“에이, 설마 또 사고 치겠습니까.”
“친다니까. 나랑 내기할래?”
“이런 거로 무슨 내기입니까.”
그렇게 통신과에서는 한참 동안 강대철 이병의 뒷담화가 이어졌다.
20.
오상진과 강대철 이병은 빈 내무실에서 따로 면담을 가졌다.
“강대철.”
“이병 강대철.”
“너 소대장에게 할 말 없어?”
“억울합니다.”
오상진이 묻기가 무섭게 강대철 이병은 잔뜩 억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뭐가 억울해?”
“이해진 일병이 먼저 치라고 했습니다.”
“들었어, 그것에 대한 것은.”
“네?”
“들었다고. 그게 억울해? 그럼 너는 선임병이 치라고 하면 그냥 쳐도 되는가 보다 생각하는 거야? 너 지금 이 자리에서 소대장이 쳐보라고 하면 나도 치겠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왜? 이해진 일병이 치라고 할 때는 쳤으면서?”
“그건…….”
“됐고, 이해진 일병도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하지만 이해진 일병이 너에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너의 행동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오상진의 물음에 강대철 이병은 입을 다물었다.
“…….”
“왜 말을 못 해? 잘못한 게 없으면 지금 소대장에게 말해 봐.”
“…….”
강대철 이병은 이번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상진이 강대철 이병을 무섭게 노려봤다.
“좋아! 소대장이 말한 게 틀리면 틀리다고 말해. 너 노현래 이병에게 함부로 대했다면서. 맞아?”
“…….”
“군인은 상명하복 몰라? 설사 노현래 이병이 편히 대하라고 했다 하더라도 어디 갓 전입 온 이등병이 선임병에게 함부로 굴어?”
“그건 아닙니다. 그건 노 이병이…….”
“시끄러워! 아무튼 그런 행동을 했어, 안 했어!”
“그건 그렇지만…….”
“그럼 네가 잘못했다는 거네.”
“네?”
“그렇잖아. 네가 잘못을 했고, 그걸 지적한 선임병한테 네가 또 주먹질을 한 거잖아. 아니야?”
“그건 이해진 일병이…….”
흥분한 오상진은 강대철 이병이 변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소대장도 안다니까? 이해진 일병이 때리라고 했다는 것. 그런데 때리라고 했다고 진짜 때리는 놈이 어디 있어?! 그것도 선임병을 말이야.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만약 너희 둘이 진짜 치고받고 싸웠다면 말도 안 해. 얘기 들어보니까 네가 일방적으로 이해진 일병을 폭행했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또 변명하려고? 이해진 일병이 널 때렸어? 한 대라도 때렸냐고!”
“아닙니다.”
“거봐! 따지고 보면 네가 일방적으로 때린 거네. 그리고 4소대장 얘기 들어보니까 너 이해진 일병을 군홧발로 밟기까지 했다면서!”
“그건 어쩌다 보니, 사정이…….”
“사정? 무슨 사정? 군홧발로 밟았다는 것은 아예 끝장을 내버리겠단 생각이 강했던 거 아니야?”
“…….”
강대철 이병은 쏘아붙이는 오상진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아니, 딱히 변명할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