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6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5)
“강대철, 그만해! 그러다가 이 일병님 죽겠어.”
하지만 노현래 이병이 강대철 이병을 뜯어말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이성을 잃은 것 같은 강대철 이병의 귀에는 노현래 이병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 안 돼. 이러면 안 돼.”
노현래 이병은 결국 창고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딘가로 정신없이 뛰어갔다.
“알려야 해. 알려서 말려야 해.”
그때 4소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노현래 이병이 재빨리 4소대장을 향해 달려갔다.
“4소대장님, 4소대장님.”
“왜왜?”
“여기, 여기, 여기 좀 도와주십시오.”
“뭔데? 무슨 일인지 알아야……!”
“죽습니다! 사람이 죽습니다!”
“……뭐?”
노현래 이병이 다급하게 말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4소대장은 노현래 이병이 이끄는 방향으로 함께 달렸다.
18.
한편, 창고에서는 강대철 이병의 일방적인 구타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해진 일병은 끊임없이 자신을 밟는 군홧발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항복도, 저항도 없이 그저 맞고만 있을 뿐이었다.
“졌다고 하십시오! 어서 항복하시란 말입니다.”
“항복? 이딴 걸로?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진짜 이러다가 죽습니다.”
“절대 그럴 일 없어.”
“그럼 반격이라도 하던가!”
“내가 말했지. 너 따위에게 날릴 주먹은 없다고.”
“이 씨…….”
강대철 이병은 자신에게 맞으면서도 꿋꿋한 이해진 일병을 보며 자존심이 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씩 무서움을 느꼈다.
‘이 미친 녀석! 도대체 이렇게 맞고 있는데도 왜 항복을 하지 않는 거야, 왜!’
강대철 이병은 서서히 지쳐갔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 있는데 상대가 아랑곳하지 않으니 그 충격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항복해! 항복하라고!”
“안 해!”
“야, 이 씨…….”
그때였다.
쾅!
요란스럽게 창고 문이 열리며 4소대장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쓰러진 이해진 일병을 향해 군홧발을 높이 든 강대철 이병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렸다.
“이 자식이 지금 뭐 하는 거야!”
그 시각 오상진은 김도진 중사와 따로 일을 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준비해 드립니까?”
“으음, 글쎄요.”
“기존에 것을 조금 보수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죠.”
“알겠습니다. 이건 이렇게 추진하고, 그럼 다음은…….”
그때 오상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잠시만 전화 좀 받겠습니다.”
“네, 받아요. 받아.”
오상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오 소위. 나야, 한 대위.
“어? 한 대위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여기 오 소위 소대 애들이 의무대에 왔네. 상태 보니까, 제법 많이 다친 것 같은데…… 혹시 알고 있어?
“네? 저희 소대 애들이요? 아니, 무슨 일로……. 누가 다쳐서 온 겁니까?”
-이해진 일병인 것 같은데. 누구에게 맞고 온 것 같아.
“이해진 일병이 맞았단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오상진이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 일어났다.
“행보관님, 이 일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죠. 지금 급하게 의무대에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의무대는 왜요? 갑자기 무슨 일 생겼습니까?”
“일단 갔다 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네.”
오상진은 전투모를 챙겨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차를 타고 의무대로 몰았다.
의무대에 도착한 오상진은 재빨리 이해진 일병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해진!”
“소, 소대장님…….”
이해진 일병이 움찔 놀라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오상진이 이해진 일병의 얼굴을 확인했다. 왼쪽과 오른쪽, 광대와 눈덩이에 잔뜩 멍이 들어 있었다. 입술도 터져 얼굴이 엉망이었다.
“솔직하게 말해.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노현래 이병이 옆에서 거의 울먹이며 오상진을 불렀다.
“소, 소대장님…….”
오상진의 시선이 노현래 이병에게 향했다.
“뭐야? 노현래. 어떻게 된 일이야? 너도 같이 있었어?”
“네.”
오상진이가 재빨리 노현래 이병의 상태를 확인했다.
“너도 다쳤어?”
“아닙니다.”
“그런데 너는 왜 울어?”
“그게…….”
노현래 이병은 다치진 않았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울먹이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를 보며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알았어. 일단 넌 진정하고 있어.”
오상진이 시선을 다시 이해진 일병에게 뒀다.
“해진아, 심하게 다쳤냐?”
“괜찮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안 괜찮아 보이는데?”
“아닙니다. 금방 낫습니다.”
“아니야. 그래도 제대로 된 치료는 받아야지. 여기서 X-ray도 못 찍죠?”
한 대위를 보며 물었다. 한 대위가 씁쓸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그럼 소견서 좀 적어 주십시오.”
“알았어.”
오상진이 다시 이해진 일병을 봤다.
“일단 나가자, 밖에서 X-ray라도 찍어보게.”
“정말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딱 봐도 크게 다친 것 같은데.”
오상진의 걱정에 이해진 일병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대장님.”
“그래, 왜?”
“사실 이런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저 중학교 때까지 야구부였습니다.”
“뭐?”
“중학교까지 야구부에 있었다고 말입니다. 처음에 야구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감독님이 하도 야구를 못한다고 해서 그만뒀습니다. 그때 기합도 엄청 받고 선배들한테 많이 맞기도 해서요”
“……?”
“맞는 것에는 자신 있습니다.”
“……뭐?”
오상진은 그런 이해진 일병을 어이없게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 대위에게 말했다.
“한 대위님. 얘 지금 뭐라고 하는 겁니까? 혹시 머리를 크게 다친 것은 아닙니까?”
한 대위가 피식 웃으며 이해진 일병을 바라봤다.
“아, 너 야구부였어? 어쩐지……. 맷집 좋게 생겼더라.”
오상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한 대위님,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야구부라잖아.”
“아니, 야구부하고 다친 거 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원래 운동하던 애들은 맞아도 요령 있게 잘 맞아.”
“한 대위님!”
“어휴, 농담이야. 농담. 그보다 본인이 괜찮다잖아.”
“한대위님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닌 거 같아.”
“정말입니까?”
“나도 처음에 봤을 때는 집단 구타라도 당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네. 얼굴에 멍이 많이 들어서 조금 걱정이긴 한데, 그 외에 다친 데는 없어 보이니까 좀 지켜봐도 괜찮을 것 같아. 그래도 정 불안하면 시내 정형외과 가서 X-ray 한번 찍어보던가.”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대답을 한 후 이해진 일병을 바라봤다.
“정말 X-ray 안 찍어봐도 괜찮겠냐?”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잔뜩 멍이 든 얼굴로 웃으며 말하는 이해진 일병을 보며 오상진은 걱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알겠다. 네가 괜찮다고 하니까. 소대장은 믿고 넘어가마. 일단 여기서 좀 쉬고 있어.”
“네.”
오상진이 노현래 이병을 봤다.
“현래는 이제 그만 울고 따라 나와.”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나가고 그 뒤를 노현래가 따라나섰다. 오상진은 밖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서 노현래 이병에게 건넸다. 노현래 이병은 두 손으로 음료수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노현래 이병 옆에 앉으며 물었다.
“현래야, 지금부터 소대장이 물어볼 테니까. 제대로 대답해 줘야 한다.”
“네.”
“오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네가 직접 봤어?”
“네.”
“그래, 그럼 소대장에게 말해줄 수 있지?”
“네.”
“그럼 말해봐.”
“후우…….”
노현래 이병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음료수 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힘들게 얘기를 꺼냈다.
“그게 말입니다.”
노현래 이병은 자기가 본 것들을 그대로 말했다. 하지만 이해진 일병이 먼저 강대철 이병을 도발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노현래 이병도 이해진 일병이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 위해 나서준 이해진 일병님께 불리한 말은 할 수 없어.’
오상진이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대철이가 너에게 함부로 구니까 해진이가 따로 불러서 혼을 냈단 말이지?”
“네.”
“그러다가 강대철이가 계속 말을 안 들으니까 이해진이 한판 뜨자고 했고?”
“네.”
“그런 와중에 강대철이 냅다 주먹을 날렸고?”
“그렇습니다.”
오상진은 노현래 이병의 말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 자식 진짜 미친놈 아니야?”
오상진이 인상을 쓰며 열을 냈다. 그러다가 노현래 이병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래서 해진이도 대철이를 때렸어?”
“아뇨, 한 대도 때리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야?”
“네! 끝까지 안 때렸습니다.”
“정말, 확실하지?”
오상진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노현래 이병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에 이해진 일병이 강대철 이병에게 한 대 맞았을 땐 저도 반격할 줄 알았는데, 이해진 일병은 한 대도 때리지 않았습니다. 강대철 이병의 주먹이 아프지 않으니 반격할 가치도 없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노현래 이병의 말을 들어보니 이해진 일병은 정말 일방적으로 맞기만 한 것 같았다.
“이해진 이 녀석, 제법이네. 아무튼 해진이는 안 때렸다 이거지?”
“네.”
노현래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다음부터는 소대장이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부대에 복귀해서 얌전히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다시 한번 이해진 일병의 상태를 확인한 후 부대로 복귀했다.
1중대 행정반에 들어가자 이미 모든 얘기가 돈 후였다. 특히 장재일 2소대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고 1소대는 바람 잘 날이 없네.”
다른 소대장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4소대장이 기분 나쁜 얼굴로 말했다.
“2소대장은 꼭 말을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
“내가 뭘? 사실을 말했는데.”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죠!”
“네가 뭔데 나서! 너 좀 컸다고 말 막 한다?”
“아니, 그게…….”
“4소대장.”
오상진이 나긋이 불렀다. 4소대장이 오상진을 바라봤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아, 네에…….”
오상진이 표정을 굳힌 채 장재일 2소대장을 바라봤다.
“2소대장.”
“예?”
“지금 상황이 재미있습니까?”
“누가 재밌답니까,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말하시면 안 되죠.”
“내가 뭘…….”
평소와 다른 오상진의 강한 말투에 장재일 2소대장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제발 부탁이니까 앞으로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하십시오. 알겠습니까?”
“내가 뭔 말을 했다고 그럽니까. 사람 무안하게.”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 2소대에 무슨 일만 생기면 저도 2소대장이 했던 식으로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죠?”
“아니, 뭘 그렇게까지…….”
“정말 2소대장이 했던 말처럼 똑같이 해드립니까?”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이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