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5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4)
강대철 이병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화장실 세면장으로 왔다. 너무 화가 나 세수로 열을 식힐 생각이었다.
“와, 내가 바보네. 바보야. 그래도 날 위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강대철 이병은 왠지 모를 배신감에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노현래 이병이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돌려 노현래 이병을 봤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
“대철아…….”
“아, 됐습니다. 갑자기 또 친한 척하십니까.”
“무슨 소리야.”
“이제 와서 챙겨 주는 척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노현래 이병은 물러서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초콜릿을 꺼내 내밀었다.
“화가 날 때는 단것을 먹으면 좀 괜찮아진다고 했어. 우선 이거 먹어볼래?”
“아이 씨! 내가 거지입니까? 이런 거 준다고 내 맘이 풀리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너무 놀란 노현래 이병이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야, 대철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걱정되어서…….”
“걱정되었다면 아까 내무실에서 날 감싸줬어야죠. 고참들이 뭐라고 할 땐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왜 이제야 위하는 척합니까? 노 이병님 위선자입니까?”
노현래 이병은 위선자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위선자라니. 그리고 나도 이등병인데 어떻게 거기서 널 감싸줄 수가 있었겠어.”
“됐습니다. 말 걸지 마십시오.”
“대철아, 아무리 그래도 넌 내 후임이야. 게다가 아까는 네가 잘못한 거야.”
“와, 그러니까. 결국에는 내가 다 잘못한 겁니다. 네네, 알겠습니다. 와, X발! 더러워서 못해 먹겠네.”
강대철 이병은 거침없이 막말을 내뱉었다. 노현래 이병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고 했다.
“대철아…….”
“시끄럽다고, 말 걸지 마십시오.”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이해진 일병이 나타났다.
“야, 강대철!”
노현래 이병과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돌렸다.
“너 고참에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해진 일병이 대뜸 강대철 이병에게 소리쳤다.
“왜? 내 입으로 말도 못 합니까?”
강대철 이병은 아예 막 나가기로 했다.
이해진 일병이 무서운 눈으로 강대철 이병을 노려봤다.
“너 이 새끼! 이러려고 군대 왔어?”
“저도 군대가 이렇게 X같은 줄 알았으면 안 왔습니다.”
“너 말조심해라. 여기 사회 아니고 군대다.”
“군대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다시 말하지만 말조심해. 경고다!”
“지금 경고라고 하셨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코웃음을 쳤다. 밖에서는 자신의 눈조차 쳐다보지 못할 것처럼 생긴 이해진 일병이 경고 운운하니 그저 가소롭기만 했다.
“내 말이 우스워?”
“그렇다면 어쩔 겁니까? 한 대 치기라도 하실 겁니까?”
강대철 이병이 겁박하듯 이해진 일병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면 보통 움츠러들게 마련인데 이해진 일병이 처음으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나랑 한판 뜰까?”
그 소리에 노현래 이병이 깜짝 놀랐다.
“이해진 일병님…….”
반면 강대철 이병은 살짝 비웃음을 흘렸다.
“훗! 방금 뭐라 했습니까? 저랑 한판 뜨자는 말씀입니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감당하고 안 하고는 내가 결정해.”
“뭘 모르시나 본데, 저 밖에서 조직 생활 했습니다. 모르십니까?”
“알아. 그래서 싸움 잘해?”
“네, 잘합니다. 주먹 좀 쳤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이해진 일병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다.
“나도 밖에서 싸움 좀 했거든. 그러니까 한판 뜨자!”
이해진 일병이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오자 강대철 이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색하게 말아 쥔 이해진 일병의 주먹을 보고는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뭐지? 아무리 봐도 별거 없어 보이는데. 알았어, 원한다면 해주지. 너 이제 죽었다.’
강대철 이병이 속으로 말하며 어금니를 빠득 깨물었다.
17.
1중대 창고로 자리를 옮긴 이해진 일병과 강대철 이병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그 가운데서 노현래 이병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정말 후회 안 하시겠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해진 일병은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후회? 후회 안 해. 그러니까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니까.”
강대철 이병은 어이가 없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 진짜 그렇게 나오는 겁니까? 정말 계급장 떼고 한판 붙습니까?”
“그래, 인마! 붙자니까? 왜, 막상 붙으려니까 쫄려?”
“제가 말입니까? 허, 내가 겁먹을 사람처럼 보입니까?”
“그러니까 잔말 말고 덤벼. 왜 그렇게 혓바닥이 길어?”
강대철 이병과 팽팽하게 맞서는 이해진 일병을 바라보는 노현래 이병의 얼굴에 순간 놀라움이 번졌다.
‘와, 이해진 일병님 이런 면도 있었어? 나름 조용하고 착한 말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저런 모습은 처음이네.’
처음 보는 이해진 일병의 모습에 강대철 이병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강대철 이병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향해 날을 세우는 이해진 일병의 모습에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평소와는 전혀 딴판인데? 설마 진짜로 주먹 좀 쳤나?’
강대철 이병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이해진 일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판 붙어, 말아? 왜? 못하겠어? 못하겠으면 지금이라도 사과해. 여기 노현래 이병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리고 앞으로 농땡이 부리지 않고, 군 생활 똑바로 하겠다고 약속하면 용서해 주마.”
하지만 당황도 잠시, 이해진 일병의 말을 듣는 순간 강대철 이병은 자존심이 팍 상했다.
‘뭐라고? X발! 사과? 아니,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해? 뭔 잘못을 했다고? 그리고 네가 뭔데 날 용서한다 만다야?’
강대철 이병이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정말 계급장 떼고 한판 붙습니까?”
“그러자니까!”
“후회 없지 말입니다.”
“너야말로 후회하지 마. 아니면 괜히 허세 부리는 거냐? 그러지 말고 네가 봐서 안 될 것 같으면 그냥 얌전히 선임병들 말 잘 듣고 조용히 군 생활해.”
이해진 일병은 끊임없이 강대철 이병을 도발했다. 이에 강대철 이병이 울컥했다.
“네, 좋습니다. 한판 붙으시죠.”
이해진 일병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야, 너 나 칠 자신 있냐?”
“제가 못 칠 것 같습니까?”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쳐봐. 쳐봐, 쳐보라고!”
이해진 일병이 얼굴을 내밀며 도발했다. 결국 참지 못한 강대철 이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날렸다.
“에이 씨!”
퍽!
강대철 이병이 날린 주먹이 이해진 일병의 얼굴을 때렸다. 얼굴을 맞은 이해진 일병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이 흠칫 놀랐다.
‘뭐야?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 같던 녀석인데, 이걸 버텨?’
이해진 일병의 고개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그러곤 손으로 맞았던 곳을 어루만지며 코웃음을 쳤다.
“훗, 고작 이따위 주먹으로 큰소리쳤던 거냐? 별거 아니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강대철 이병의 자존심이 한 번 더 구겨졌다. 단순히 자신을 무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먹에 맞고도 버텨낸 걸 보니 더더욱 열이 올라왔다.
“그럼 어디 한 대 더 맞아 보시죠.”
“그래, 들어와!”
주고받는 대화는 코미디나 다름없지만 상황은 제법 심각했다.
퍽!
강대철 이병이 다시 주먹을 날렸고 그 주먹이 이해진 일병의 오른쪽 광대 밑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이해진 일병은 피하지 않았다. 애당초 피할 생각이 없었던 듯 강대철 이병이 휘두르는 주먹을 그대로 받았다.
그렇다고 반격을 가하지도 않았다. 마치 얼마나 주먹이 센지 보자고 도발하듯 계속해서 얼굴을 내밀었다.
‘이 새끼가? 좋아, 어디 죽어 봐라!’
강대철 이병은 이를 악물고 이해진 일병의 얼굴만 집요하게 노렸다.
퍽! 퍽, 퍽!
계속해서 같은 부위를 얻어맞는 게 부담스러웠던지 어느 순간부터 이해진 일병도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몸을 움츠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반격 안 합니까?”
“…….”
반격 없이 맞기만 하는 이해진 일병은 말을 잃은 듯했다. 그 모습에 강대철 이병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야, 괜히 놀랐네. 난 또 진짜 싸움 좀 하는 줄 알았네. 그런데 이거 뭐 샌드백이 따로 없는데요? 아니지, 일방적인 공격에 제대로 반격할 타이밍도 못 잡습니까?”
그러자 이해진 일병의 말이 들려왔다.
“지랄하지 마! 내가 왜 공격을 안 하겠어? 너한테 주먹 휘두르기 쪽팔려서 그래, 쪽팔려서! 무슨 애들 주먹도 아니고, 하나도 안 아프잖아. 그런데 굳이 반격할 필요가 있을까?”
“뭐? 애들 주먹? 지금 내 주먹이 애들 주먹이라고 했습니까?”
“그래!”
이해진 일병의 도발에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오히려 더 일그러졌다.
다른 말보다 애들 주먹이라는 말이 강대철 이병의 자존심을 산산 조각냈다.
“지금 나 따위는 공격할 가치도 없다 이 말입니까?”
“잘 알고 있네.”
“이익!”
강대철 이병은 급기야 이해진 일병의 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쿵!
이해진 일병은 잘 버티다가 강대철 이병의 발길질 한 방에 바닥에 넘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현래 이병이 소리쳤다.
“어엇! 이 일병님!”
이해진 일병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노현래 이병에겐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에 더욱 열이 받은 강대철 이병이 다시 이해진 일병에게 다가갔다.
그때 강대철 이병의 앞을 노현래 이병이 막아섰다.
“강대철! 그만해! 그만하라고!”
“놔! 말리지 마요!”
“너 이러면 안 돼, 정말로 이러면 안 되는 거야.”
“비키십시오.”
“강대철 잘 생각해. 너 진짜 이러면 힘들어져.”
“이미 힘들어졌습니다. 비키십시오.”
“강대철!”
“비키라니까!”
강대철 이병이 고함을 지르며 노현래 이병을 밀쳤다. 노현래 이병이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찍었다.
쿵!
노현래 이병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강대철 이병은 그런 노현래 이병을 신경 쓰지 않고 이해진 일병에게 다가갔다.
“현래야!”
이해진 일병이 넘어진 노현래 이병을 보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이 군홧발로 이해진 일병의 가슴을 퍽 찼다.
“윽!”
이해진 일병이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굴렀다.
“지금 다른 사람 신경 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독기가 오른 강대철 이병이 군홧발로 이해진 일병을 밟기 시작했다. 이해진 일병은 다시 잔뜩 몸을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어! 죽으란 말이야. 죽어!”
강대철 이병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이해진 일병의 몸 여기저기를 밟았다. 하지만 딱히 개운하지 않았다. 자신이 일방적으로 구타를 하고 있음에도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X발! 뭐야? 뭐냐고! 도대체 왜 이런 더러운 기분이 드냔 말이야!’
퍽, 퍽!
강대철 이병이 미친 듯이 발길질을 해댔지만 이해진 일병은 아까와 같이 잔뜩 웅크린 채 방어만 할 뿐 아무런 반격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넘어졌던 노현래 이병이 엉덩이를 매만지며 일어났다. 그리고 이해진 일병을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있는 강대철 이병을 말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