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4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3)
강대철 이병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진모 일병은 내무실로 들어가서 군장과 헬멧, 장구류를 벗었다. 다른 소대원들은 이미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간 모양이었다.
“너, 총 지키고 있어.”
구진모 일병은 말을 하고는 상황실로 가서 총기 거치대 열쇠를 챙겨서 왔다.
“네 총 빨리 꽂아.”
“네.”
구진모 일병이 다시 총기 거치대를 잠근 후 수저를 챙겨 내무실을 나섰다. 그 뒤를 강대철 이병이 따라 움직였다.
대대 식당에 도착한 강대철 이병은 손과 발이 후들거렸다. 어깨는 군장 무게 때문에 너무 아팠다.
‘하아, 진짜 힘들어 뒤지겠네.’
두 사람은 식판을 챙겨서 배식 줄을 섰다.
‘미치겠네. 다리와 팔이 후들거려서 식판도 제대로 못 들겠네.’
강대철 이병은 축 늘어진 채 속으로 투덜거렸다.
반면 구진모 일병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배식을 받았다. 점심 이후 다시 연병장을 돌려면 어떻게든 밥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강대철 이병은 배식 줄에 서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미쳤다, 미쳤어. 소대장이 미친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오후에 또 뛰라고 할 수 있지? 이 날씨에, 이 더위에 일사병으로 쓰러지면 책임을 질 건가?’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저으며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걱정하는 것 같은 일은 일어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강대철 이병은 오전 내내 뛰었음에도 멀쩡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젠장, 쓸데없이 몸은 튼튼해서는…….’
그렇게 투덜거리다 보니 어느새 강대철 이병의 차례가 되었다. 잔뜩 인상을 쓰며 식판을 내밀었다. 배식하던 취사병 선임이 움찔했다.
‘뭐야? 이 자식! 식판을 왜 이렇게 기분 나쁘게 들이밀어?’
취사병 선임이 일단 모른 척하며 말했다.
“식판 낮춰. 밥 푸기 힘들잖아.”
그 말에 강대철 이병이 식판을 살짝 낮췄지만 취사병 선임은 이미 기분이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강대철 이병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강대철 이병은 식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인상을 쓰고 있는 줄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 식판 똑바로 들어.”
취사병 선임의 한마디에 강대철 이병이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똑바로 들고 있지 않습니까.”
“이 자식 봐라.”
취사병 선임이 다시 뭐라고 하려다가 뒤에 늘어서 있는 줄을 보고 일단 참고 넘어갔다.
“너, 기억해 뒀다.”
강대철 이병은 취사병 선임의 그 한마디가 나중에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도 모른 채 신경도 쓰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김치, 소시지 케첩 볶음, 멸치를 푼 후 국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사이 밥을 푸고 있는 취사병 선임은 강대철 이병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했다.
‘어디 나중에 보자.’
강대철 이병은 반찬을 다 받고 마지막으로 국이 남았다. 오늘 점심 국은 된장국이었다. 부대에서는 일명 똥국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아, 똥국이야?’
강대철 이병이 된장국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리곤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말했다.
“국은 조금만 주십시오.”
그러나 지금 국을 담당하는 취사병 역시도 조금 전 강대철 이병이 행했던 행동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자식이 감히 그따위로 말을 해?’
그러면서 국자로 된장국을 휙휙 젓더니 식판 가득 국을 담아 주었다.
“어?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인마! 감히 이등병 녀석이 이래라저래라 할 짬밥이야?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
강대철 이병은 다시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내가 참는다. 내가 참아.’
강대철 이병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이동했다. 워낙에 많은 된장국을 받아 온 것이라 조금만 걸어도 국물이 옆으로 줄줄 샜다.
“아, 시발!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시비 거는 사람들이 많지? 진짜 짜증 지대로네.”
강대철 이병이 혼잣말을 하며 자리로 가는데 바로 앞에서 식사를 마친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어어…….”
강대철 이병이 깜짝 놀라며 그 사람을 피했다. 그러다가 된장국이 출렁거리며 바로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타 중대 선임에게 된장국을 흘렸다.
“아, 뭐야!”
갑작스럽게 된장국 테러를 당한 타 중대 선임은 잔뜩 짜증이 묻어난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타 중대 선임과 강대철 이병의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당연히 사과할 줄 알았던 강대철 이병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버렸다.
“이 자식아! 거기 안 서!”
“저 말입니까?”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타 중대 선임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그래,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인마, 국물을 흘렸으면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안 그래도 기분 더러운데 이등병 녀석이 그냥 지나가?”
“아이 씨…….”
순간 강대철 이병이 인상을 팍 쓰며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타 중대 고참이 바로 들었다.
“뭐? 이 자식아, 너 방금 뭐라 했어! 아이 씨?”
“아닙니다.”
강대철 이병은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타 중대 선임은 그 모습마저 기분이 나빴다.
“너 이 자식! 이리와! 너 몇 중대야?”
그러자 주위에 있던 타 중대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참으십시오.”
“저 미친 또라이가 된장국을 흘렸으면 사과부터 해야지. 뭐? 아이 씨? 너 이리와! 이리 안 와!”
순식간에 식당 안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노현래 이병이 불쑥 튀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1소대 신병인데 아직 뭘 몰라서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타 중대 선임은 노현래 이병을 알아보고는 말했다.
“1소대 신병이야?”
“네, 그렇습니다.”
“야, 이 자식아. 아무리 신병이라 뭘 모른다고 해도, 잘못을 했으면 바로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쟤도 당황해서 그런 걸 겁니다. 그러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그런데 왜 네가 나서? 네가 윗선임이야?”
“네.”
“아니,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저래? 아니면 내무실 너희 선임에게도 저런 식이야?”
“아닙니다. 아마 당황해서 그럴 겁니다.”
노현래 이병이 계속해서 변명을 했다. 강대철 이병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노현래 이병은 계속해서 타 중대 선임에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야, 똑바로 좀 하자! 이러니까 너희 소대가 욕을 먹는 거야.”
그때 뒤에서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방금 뭐라 했냐?”
타 중대 선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김우진 상병이 매섭게 노려보며 서 있었다. 순간 움찔한 그 사람이 입을 뗐다.
“김 상병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저 미친 이등병 녀석이 저에게 한 짓을 말입니다.”
“못 봤다. 그리고 너 왜 우리 소대 애 잡지? 네가 뭔 권리로 우리 소대 애를 잡냐고.”
“그, 그건…….”
“깝치지 말고 조용히 밥 처먹어라!”
김우진 상병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정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타 중대 녀석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이 상황은 이제 자존심 문제가 되어버렸다.
“김 상병님. 아니, 애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기에, 이등병 녀석 입에서 ‘아이 씨’가 나옵니까?”
순간 김우진 상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야, 박 일병.”
“네.”
“넌 인마, 네가 뭔데 우리 애들 교육에 대해 지랄이야! 네가 우리 애들 교육시키는데 보태준 거라도 있어? 그리고 넌 어떻게 교육받았기에 나에게 그딴 소리를 지껄이지?”
순간 박 일병이 당황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닥쳐 자식아! 우리 애는 우리가 잘 교육시킬 테니까. 넌 지랄 말고, 밥이나 처먹고 꺼져.”
김우진 상병의 말에 박 일병의 얼굴이 굳어졌다. 기분이 잔뜩 상한 박 일병은 그대로 식판을 들고 세면대로 향했다. 김우진 상병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노현래!”
“이병 노현래.”
“빨리 와서 밥이나 먹어!”
“네, 알겠습니다.”
노현래 이병이 강대철 이병을 데리고 후다닥 자리로 갔다. 강대철 이병이 자리에 앉아 김우진 상병을 보았다. 순간 강대철 이병은 울컥했다.
‘뭐야? 갑자기 잘해주고 있어.’
그때 김우진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강대철! 어깨 펴고 먹어! 네가 죽을죄를 지었어? 이거 더 먹어!”
김우진 상병이 자신의 식판에 있던 소시지 볶음을 퍼서 강대철 이병 식판에 올려주었다.
“아닙니다.”
“먹어!”
강대철 이병은 자신의 식판에 수북이 쌓인 소시지 볶음을 보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뭐야? 갑자기……. 날 못 잡아먹을 때는 언제고 치사하게. 설마 이게 전우애인가?’
강대철 이병은 처음 겪는 상황에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히며 밥을 우걱우걱 쑤셔 넣었다.
하지만 자신이 대단한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점심을 다 먹고 난 후 내무실에 복귀하자마자 선임병의 갈굼이 시작되었다.
“야, 강대철.”
“이병 강대철!”
“넌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 하루에 하나씩 사고를 안 치면 살 수가 없냐?”
“네?”
“야, 인마. 내가 식당에서 널 챙겨 준 게 네가 예뻐서 그런 줄 알아? 착각하지 마! 우리 소대 녀석이 타 중대 애들한테 당하는 꼴을 보는 게 싫어서 그런 거지, 네가 예뻐서 그런 게 아니야. 혼내도 내가 혼내야지!”
“…….”
순간 강대철 이병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듯 띵 했다. 조금 전까지 가졌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X발……. 그럼 아까 그건 가짜였어?’
강대철 이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우진 상병의 갈굼은 계속됐다.
“그리고 식당에서 무슨 짓이야. 국물을 흘렸으면 바로 사과부터 해야지. 타 중대 선임에게 대들어? 그게 이등병이 할 짓이야?”
“…….”
“지금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소대 고참들 다 나서게 만들고 말이야. 아무튼 이 자식은 정이 안 가!”
강대철 이병이 표정을 잔뜩 구긴 채 서 있었다. 김우진 상병은 그 모습마저 꼴 보기 싫었다.
“넌 진짜 답이 없다.”
김우진 상병은 강대철 이병이 한 번 싫다고 생각이 드니까 계속 싫어졌다. 그때 김일도 상병이 들어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내가 진짜 쪽팔려서……. 넌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애냐? 너의 뇌 속이 궁금하다, 진짜!”
김일도 상병의 한 소리에 강대철 이병이 참지 못하고 몸을 홱 돌려 내무실을 나가 버렸다.
“에이 씨!”
“뭐? 저 자식 뭐라 했어? 에이 씨?”
김우진 상병이 나섰다.
“참으십시오. 저 자식 또라이 아닙니까.”
“와나, 진짜 군 생활하면서 저런 녀석은 진짜 처음이다. 뭐 저런 녀석이 들어와서는…….”
김일도 상병은 너무 기가 막혔다. 김일도 상병은 옆에 있던 김우진 상병을 보며 말했다.
“우진아, 저 녀석 어떡하면 좋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
김우진 상병이 계속해서 김일도 상병을 달랬다.
“참으십시오. 저 녀석 신경 쓰면 머리만 아픕니다.”
김우진 상병이 김일도 상병을 진정시키는 사이 노현래 이병이 슬그머니 일어나 내무실을 나갔다. 그 모습을 이해진 일병이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