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3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2)
12.
아침 점호가 끝날 때쯤 당직사관이 1소대에 들어왔다. 온도를 체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안면이 있는 김일도 상병을 보며 말했다.
“일도야.”
“아, 네.”
“너희 소대 X됐다.”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지난 밤 경계근무조가 제대로 사고 쳤어. 지금 보고 올라갔을걸?”
“무슨 말씀입니까?”
“그건 저기 저 녀석에게 물어봐. 아무튼 난 간다, 수고해라.”
당직사관이 가고 김일도 상병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냐? 구진모. 간밤에 무슨 일 있었어?”
“일병 구진모. 그게…….”
구진모 일병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차마 입을 떼지 못했다. 김일도 상병이 버럭 했다.
“야, 뭔 일이 있었던 거냐고!”
“…….”
김일도 상병이 구진모 일병을 닦달하는 동안 김철환 1중대장은 어제 경계근무조에 관한 일로 대대장으로부터 엄청나게 야단을 맞아야 했다.
“하아, 미친 녀석들! 경계를 그따위로 서! 1소대장 어디 있어? 1소대장 당장 내 방으로 오라고 해.”
김철환 1중대장이 버럭 고함을 지른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1중대 분위기가 좋지 않자,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때 화장실을 갔던 오상진이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4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1소대장님.”
“네.”
“중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중대장실로 가려는데 다시 4소대장이 말했다.
“중대장님 잔뜩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네? 화가 많이 나셨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중대장실로 갔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오상진은 중대장실 문을 두드린 후 들어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전투모를 거칠게 책상 위로 던졌다.
“야, 오상진!”
“네.”
“내가 지금 대대장님에게서 뭔 소리를 듣고 온 줄 아냐?”
“무슨 일이십니까?”
“경계 서는데 자기들끼리 노가리 까다가 당직사령 순찰 온 줄도 몰랐단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예? 도대체 누가 그랬다는 겁니까?”
“그걸 나한테 물어? 네가 알고 나한테 보고를 했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똑바로 해! 너 지금 내 뒤통수를 친 거나 마찬가지야. 알아?”
평소와 다른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에 오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김철환 1중대장도 자신이 심했나 싶어 잠시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살짝 꺾인 목소리로 잔소리를 이어갔다.
“요새 소대 관리 너무 대충 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사고를 쳐? 군기가 완전히 빠졌잖아!”
“죄송합니다.”
“너 요즘 소대원들 그냥 막 풀어주는 거 아니야? 그래서 아주 엉망 된 거 아니냐고!”
“아닙니다.”
오상진 역시 기분이 안 좋아졌다. 여태까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좋은 소리만 들었지, 이렇듯 야단맞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1절로 끝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너 말이야. 요새 오냐오냐해 줬더니……. 중대장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어! 이래서 널 믿고 어떻게 맡길 수 있겠어!”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무엇보다 김철환 1중대장의 큰 목소리는 옆 방 행정실까지 들려왔다. 다른 소대장들이 잔뜩 긴장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박중근 하사도 뭔 일인지 궁금해 했다.
“중대장님 엄청 화나신 것 같은데 무슨 일입니까?”
“어제 1소대 경계근무조 중에서 사고를 친 것 같습니다.”
“그럼 그게 저희 소대였습니까?”
“네? 박 하사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니, 어제 정신 나간 이등병이 당직사령 순찰을 나갔는데 제대로 암구호도 못 대고, 노가리 까다가 들켰다고……. 설마 저희 소대인 줄은 몰랐습니다.”
때마침 행정실로 돌아 온 오상진이 그 소리를 들었다.
“지금 이등병이라고 했습니까?”
“아, 네. 소대장님.”
오상진이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이등병이라면 설마 강대철?’
13.
1소대 내무실 역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김일도 상병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야, 이 자식들아! 그게 말이 되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
“야, 구진모!”
“일병 구진모.”
김일도 상병이 구진모 일병 앞에 섰다. 그는 구진모 일병의 가슴을 툭툭 밀치며 말했다.
“너 인마, 사수라는 녀석이 이등병이랑 같이 노가리를 까? 노가리를 까더라도, 근무를 서면서 까야지. 어떻게 당직사령이 오는 줄도 모를 정도로 노가리를 까!”
“죄송합니다.”
“X발! 죄송하면 끝이야? 이미 상황은 벌어졌는데! 내가 분명히 말했지. 5중대장이 당직사령이면 분명히 순찰 돈다고! 내 말은 완전히 씹어버렸냐? 아니면 개X으로 들은 거야?!”
“아닙니다.”
구진모 일병은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어제 일은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었다. 첫 사수이기도 했고, 17초소면 구석진 곳이라 순찰도 잘 안 돌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에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와, 나 군 생활 중에 이런 적은 처음이다. 아무리 개념이 없기로서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김일도 상병은 구진모 일병과 강대철 이병이 벌인 일이 정말 어이없었다.
그때 내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김일도 상병이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엔 잔뜩 인상을 구긴 오상진이 서 있었다. 김일도 상병이 당황하며 바로 경례했다.
“충성!”
하지만 오상진은 경례를 받아주지도 않고, 구진모 일병과 강대철 이병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구진모, 강대철 너희 둘 완전군장 차림으로 연병장으로 튀어나와!”
오상진이 강하게 소리를 친 후 몸을 홱 돌렸다.
14.
충성대대 연병장에는 완전군장 차림의 두 병사가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뛰고 있었다. 바로 구진모 일병과 강대철 이병이었다.
이제 두 바퀴밖에 돌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저기 구 일병님.”
“왜?”
“우리 오늘 몇 바퀴 돕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잔말 말고 뛰기나 해.”
“너무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힘들어서.”
“몇 바퀴 돌았다고 힘든 소리를 하고 그래.”
“그래도 너무 힘듭니다.”
“시끄러워, 그냥 입 닥치고 돌기나 해.”
구진모 일병의 타박에 강대철 이병이 입을 다물었다. 구진모 일병은 굳이 얘기를 하면서 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구진모 일병은 힐끔 단상에 서 있는 오상진을 바라봤다. 팔짱을 낀 채 무미건조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전 내내 돌릴 것 같은데……. 제기랄.’
구진모 일병이 앞으로의 고난을 예상한 듯 인상을 팍 썼다. 그런데 뒤에서 강대철 이병이 눈치도 없이 또다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 더워. 젠장, 왜 이따위 것을 해야 해. 아, 짜증 나.”
구진모 일병이 작게 소리쳤다.
“이 자식아. 그만 좀 투덜거려. 그럴 힘이 있다면 달리는 것에 집중하란 말이야.”
“그러니까, 언제까지 달리냔 말입니다.”
“몰라! 대철아, 제발 좀 부탁이다. 한동안만이라도 입 좀 닥치고 달리면 안 되겠니.”
구진모 일병의 타박에 강대철 이병이 입술을 씰룩였다. 그때 박중근 하사의 호통이 들려왔다.
“야, 이 녀석들아! 빨리빨리 안 뛰지!”
박중근 하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오상진이 고개를 돌려 박중근 하사가 내려오는 것을 봤다.
“오셨습니까.”
“네. 이곳은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소대장님께서는 그만 들어가십시오.”
“아닙니다, 박 하사가 들어가십시오. 제가 있겠습니다.”
오상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상진의 단호한 태도에 박중근 하사도 더 이상 들어가라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박중근 하사 본인도 냉큼 들어가진 않았다. 그저 오상진의 옆에 서서 군장 차림의 두 사람을 봤다.
“나쁜 녀석들! 소대장님께서 얼마나 잘 챙겨 줬는데 이렇듯 뒤통수나 치고 말이야. 안 그렇습니까? 저 녀석들 이렇게 좋은 소대장님을 만난 게 복인 줄도 모르고 참 한심한 짓거리를 했습니다.”
오상진이 입을 뗐다.
“이게 다 제가 부족해서 생긴 일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게 다 소대장님 잘못입니까.”
오상진도 속이 상하고, 박중근 하사도 답답해서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 막말로 따지면 소대장님을 천사로 만드는 것과 악마로 만드는 것 역시 소대원들의 몫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상진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중근 하사가 슬쩍 오상진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소대장님, 그래도 애들 너무 많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후우……. 알고 있습니다.”
오상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곳이 있었다. 바로 1중대 행정반 창가 쪽이었다. 그곳에서 2소대장, 3소대장, 4소대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훗! 1소대장, 만날 잘난 듯이 그러더니 고작 그 일 가지고 완전군장으로 연병장을 돌릴까. 이렇게 더운 날씨에 말이야. 이해가 안 되네, 이해가!”
장재일 2소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마디 한 후 행정반을 나갔다. 4소대장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3소대장 제가 방금 뭘 들었습니까? 2소대장은 예전에 더 심했으면서 안 그렇습니까? 완전 내로남불이지 않습니까?”
3소대장도 2소대장의 말과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1소대장이 싫어도 그렇지 저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소대장의 말에 3소대장이 쓴웃음으로 대답했다.
“참,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2소대장은 계속 우리 중대 있는 겁니까?”
“어쩌겠습니까. 위에서 보내줘야 가는 거죠.”
“세상에 3중대로 간다고 그렇게나 막 나가더니……. 솔직히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2소대장 3중대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4소대장의 말에 3소대장은 멋쩍게 웃으며 입을 뗐다.
“저도 지금 같으면 3중대로 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3소대장이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15.
오상진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 될 터였다. 오상진은 연병장을 돌고 있는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선두 제자리.”
두 사람이 뛰는 것을 멈췄다.
“단상 앞으로 와.”
구진모 일병과 강대철 이병이 잔걸음 뛰기로 단상 앞으로 왔다. 두 사람의 숨소리는 매우 거칠었다.
솔직히 살짝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강대철 이병의 시선을 접하는 순간 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상진이 다시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점심 먹고, 오후에도 이 자리에 집합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오상진의 뒷모습에서 찬바람이 쌩하니 불어왔다.
16.
구진모 일병은 힘겹게 터벅터벅 1소대 내무실로 향했다. 강대철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소대장님 말 진심입니까? 진짜 오후에도 또 돕니까?”
“말 못 들었어? 돌라면 돌아야지.”
“하아, 젠장! 오후에도 또 돈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