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202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11)
“아놔, 이 자식. 진짜 손 많이 가네.”
“다 되었습니다.”
“헬멧도 써!”
“네.”
얼추 다 준비를 마친 후 시계를 확인해 보니 50분 가까이 되었다.
“야, 빨리 가자! 늦었다.”
구진모 일병은 헬멧을 챙겨 부랴부랴 상황실로 갔다.
똑똑똑.
“충성, 일병 구진모 외 1명 상황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상황실로 들어간 구진모 일병이 당직사관에게 말했다.
“17초소 다음 근무조입니다.”
“네.”
당직사령인 5중대장은 옆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구진모 일병이 조용히 말했다.
“당직사령님 주무십니까?”
“네.”
“알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피식 웃은 후 총을 챙겨서 근무지로 이동했다. 5분 정도 걸어가자 곧바로 수하가 들려왔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화랑, 화랑.”
구진모 일병이 곧바로 답어를 해 줬다.
“담배.”
“누구냐?”
“근무자.”
“신원 확인을 위해 3보 앞으로.”
구진모 일병과 강대철 이병이 두 손을 든 채 앞으로 이동했다. 그때 김우진 상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자식들아. 빨리빨리 안 와? 감히 고참을 기다리게 해!”
“죄송합니다.”
구진모 일병은 서둘러 사과를 했지만, 눈치 없는 강대철 이병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정확하게 새벽 2시입니다.”
“아놔, 이 자식 봐라. 구진모.”
“일병 구진모.”
“너 안 알려줬냐?”
“네.”
“인마, 그런 건 알아서 알려줘야지.”
“알겠습니다.”
“제대로 가르쳐! 그리고 강대철, 넌 제발 토 달지 말고, 머릿속에 새겨들어라.”
“…….”
강대철 이병은 입을 꾹 다물었다. 김우진 상병이 근무지를 내려가며 말했다.
“아무튼 고생해라.”
“수고하셨습니다. 충성.”
“그래!”
김우진 상병과 노현래 이병이 복귀를 했다. 그러자 강대철 이병이 물었다.
“아니, 정확한 시간에 왔는데 왜 늦게 왔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구진모 일병이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 앞선 근무자가 나보다 고참이면 10분 먼저 가서 교대를 해주는 것이 예의라는 거지.”
“그럼 후임이면 어떻게 합니까?”
“그야 정식 시간에 맞춰서 가는 거지. 뭐, 조금 늦어도 되고 말이야.”
“그런 겁니까?”
“그래, 그런 거다. 잔말 말고 와서 근무나 서.”
구진모 일병이 말을 한 후 자신은 총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근무 잘 서라. 누가 오면 수하 제대로 하고. 너 수하는 할 줄 알지?”
“수하가 뭡니까.”
“꼼짝 마. 손들어. 암구호! 아까 배운 거 하라고.”
“아, 넵.”
“아무튼 난 좀 쉴 테니까 똑바로 서.”
“저만 말입니까?”
“그럼? 이등병인 네가 쉬고 일병인 내가 보초 설까?”
“아, 아닙니다.”
“아무튼 잘 해라.”
부사수에게 경계근무를 맡겨놓고 옆에서 자는 것. 구진모 일병이 자신이 사수가 되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일도 상병의 부사수로 있던 구진모 일병은 매번 똑바로 경계근무를 서며 김일도 상병이 자는 모습을 봐야 했다.
‘아무튼 자기만 자고……. 나도 똑같이 해봐야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잠은 잘 수가 없었다. 도저히 강대철 이병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 때문에 불안해.’
강대철 이병은 입이 댓 발 나와 있었다.
‘뭐냐? 자기는 고참이라고 땅바닥에 편히 앉아 있고, 나만 이렇게 경계를 서게 해도 돼?’
강대철 이병이 투덜거렸다. 그러기를 잠깐 바닥에 앉아 있던 구진모 일병이 입을 열었다.
“졸지 말고, 근무 잘 서.”
“잘 서고 있지 않습니까.”
“아, 녀석 거 참! 어떻게 한 번을 안 지고 매번 말대꾸하냐?”
“구 일병님이 물어보셨지 말입니다.”
“하아. 말을 말자. 그건 그렇고 2시간 동안 근무 서야 하는데 심심하지 않냐? 재밌는 얘기 좀 없어?”
구진모 일병 물음에 강대철 이병은 전방만 응시했다.
“진짜로 재미난 얘기 없냐?”
“없습니다.”
“야,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봐. 아, 너 밖에서 좀 놀았다며.”
구진모 일병의 이번 질문에 그제야 강대철 이병이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네.”
“그럼 밖에 있었던 얘기 좀 해 봐라.”
“아이, 됐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야, 그럼 두 시간 동안 말 한마디도 안 하고 근무 설 거야? 이렇게 경계 서면서 서로서로 얘기 주고받고 원래 그러는 거야.”
“아, 그런 겁니까?”
“그래, 해봐.”
“무슨 얘기부터 합니까.”
강대철 이병은 어떤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 구진모 일병은 옆에서 얘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너 군대 오기 전에 잘 나갔다며. 그 얘기부터 해봐. 아니면 싸움 얘기는 어때? 솔직히 몇 대 몇까지 이겨봤냐?”
강대철 이병이 피식 웃었다.
“원래 저 싸움 가지고 자랑하고 그러는 사람 아닌데 구 일병님께서 궁금하시다고 하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 그래.”
구진모 일병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강대철 이병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어디 보자, 그때가 몇 명이었지? 17명이었나? 18명이었나? 적들에게 둘러싸였던 적이 있습니다.”
“뭐? 17명? 말도 안 돼. 야, 구라를 치려고 해도 좀 말이 되는 걸 쳐야지.”
“구라 아닙니다. 진짜 17 대 1로 붙었습니다.”
“그래, 그랬다고 쳐. 어떻게 싸웠는데?”
구진모의 물음에 강대철은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열변을 토해냈다.
“제가 말입니다. 그 당시…….”
강대철 이병은 한때 동대문파에 몸담았다. 나이트클럽 지분을 놓고 크게 싸움이 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3 대 1로 싸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고작 3 대 1로는 성에 안 차니 적들을 잔뜩 부풀려서 말했다. 마치 무협지에나 나오는 주인공이라도 된 듯 자신의 화려함을 뽐내며 떠들어 댔다.
“그때 저의 주먹에 한두 명씩 나가떨어지는데…….”
강대철 이병은 자기가 말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자기가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야기도 산으로 가는 것 같았다.
구진모 일병은 처음에는 관심 있게 듣다가 나중에는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이 자식, 허풍이 엄청나네. 게다가 자기 잘난 맛에 떠들고 있으니 재미도 없고…….’
구진모 일병은 한창 열을 올리며 말을 하는 강대철의 말을 잘랐다.
“야, 됐고! 다른 얘기는 없냐?”
“네? 이제부터가 하이라이트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니, 그 얘기는 됐고, 다른 얘기는 없어?”
강대철 이병은 순간 기운이 쭉 빠졌다.
‘뭐야? 한창 얘기 중인데, 기운 빠지게…….’
강대철 이병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떤 다른 얘기 말입니까?”
“그 뭐냐, 여자 얘기? 너 여자 친구는 만나봤냐?”
“여자야 엄청 많이 만나봤죠.”
“오오, 그래? 여자 몇 명 만나봤냐?”
구진모 일병이 갑자기 흥미를 가지며 눈을 반짝였다. 강대철 이병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턱을 매만졌다.
“으음, 잔 여자까지 다 셉니까?”
“같이 잔 여자?”
“네.”
“와, 몇 명이나 같이 자봤는데?”
“에이, 손가락으로도 다 세도 모자랍니다.”
“와, 이 씨……. 부러운 자식.”
구진모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서? 누구하고 자봤는데?”
“그때 저는 나이 안 따졌죠.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열 살 위 하고도 해봤습니다.”
“몇 살 때?”
“고등학생 때 말입니다.”
“와, 진짜. 너도 대단하다.”
솔직히 허풍은 여자 이야기 쪽이 더 심했지만, 구진모 일병은 눈빛을 더 반짝이며 강대철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군대에서 여자 이야기는 거부할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구진모 일병의 표정을 본 강대철 이병은 피식 웃으며 또 자랑스럽게 얘기를 늘어놓았다.
“제가 말입니다. 한 여자를 만났는데 말입니다. 잔뜩 술을 먹고…….”
그때 구진모 일병의 귀에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구진모 일병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잠깐 조용히 해봐.”
강대철 이병은 또다시 한창 재미있게 얘기를 하려는데 입을 막자 짜증이 났다.
“또 뭡니까?”
“조용히 해봐.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말입니까?”
“빨리 일어나봐. 누가 왔는지 보란 말이야.”
“아무 소리 안 났는데…….”
강대철 이병이 투덜거리며 일어나 밖의 상황을 확인했다. 그런데 밖은 고요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데 말입니다.”
“진짜 확실해?”
“네. 구 일병님이 직접 보십시오.”
구진모 일병이 총을 들고 확인을 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구진모 일병은 고개를 갸웃하며 몸을 돌리는데 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헉!”
바로 당직사령인 5중대장이 초소에 올라와 뒤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너희들 뭐 하냐?”
갑작스러운 5중대장의 등장에 강대철 이병도 깜짝 놀랐다. 구진모 일병은 너무나 당황스러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다.
“아, 저……. 그게…….”
“내가 분명히 근무 제대로 서라고 했지. 실전이었으면 너희들은 그냥 사망이야! 알아?”
“…….”
“아니, 어떻게 경계근무 서는 녀석들이 근무는 서지 않고, 앉아서 노가리를 까!”
“죄송합니다.”
“죄송은 됐고! 너!”
“이병 강대철.”
“수하 해봐. 아니, 어떻게 하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봐.”
강대철 이병이 구진모 일병의 눈치를 살피다가 경계근무요령을 시작했다.
“꼼짝 마! 손들어! 그리고…….”
강대철 이병은 그다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구진모 일병이 당황하며 속삭였다.
“암구호, 암구호를 대야지.”
“아, 맞다. 암구호…….”
“답답하다, 진짜! 근무도 제대로 안 서, 수하도 제대로 못 해.”
강대철 이병의 어리바리한 행동에 5중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너희들 진짜 가지가지 한다. 내가 1중대장님을 봐서 수하만 제대로 잘했어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더니. 아주 엉망이구만. 너희들 아주 개판이야.”
5중대장이 구진모 일병을 쳐다봤다. 구진모 일병이 움찔하며 바로 관등성명을 댔다.
“일병 구진모.”
“넌 사수 아냐?”
“맞습니다.”
“그런데 뭐 하고 있었냐?”
“…….”
“이 자식들이 말이야. 경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사수라는 녀석은 부사수를 제대로 교육시키지도 못하고 수다를 떨고 있어? 여기가 수다 떨라고 오는 데야?”
“아닙니다.”
“너희 1소대지?”
“네.”
“오 소위가 이러는 거 아냐? 아니면 이렇게 하라고 시키디?”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래? 이것들이 벌써부터 이런 못된 것만 배워 가지고.”
“…….”
구진모 일병의 얼굴이 더욱더 굳어졌다.
“너희들 내가 수하만 잘했어도 어느 정도는 봐주려고 했는데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이번 건에 대해서는 보고 올라갈 거야. 각오해야 할 거다.”
5중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초소를 벗어났다. 구진모 일병이 멀어지는 5중대장을 향해 경례했다.
“충성.”
“시끄러워! 경계나 똑바로 서.”
“…….”
구진모 일병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강대철 이병도 마찬가지였다.
“구 일병님 우리 이제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X된 거지. 아, 미치겠네!”
구진모 일병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괴로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