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99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8)
8.
노현래 이병은 1소대 내무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겠지?”
그때 저 멀리서 강대철 이병이 잔뜩 주눅이 든 상태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짠해 보였다.
‘어깨가 축 처진 것을 보니 한소리 들었나 보네.’
노현래 이병은 아무래도 강대철 이병이 걱정되었다. 처음으로 자신 밑에 들어온 후임이기도 했으니 어쨌든 자신이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내무반 선임들의 눈 밖에 나 미움을 받는 강대철 이병을 챙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았다. 때문에 노현래 이병 본인만이라도 중간에서 좀 더 챙겨줘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한편으로는 좀 더 많이 챙겨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컸다. 유격 훈련 때 밥상 사건은 유감이지만 자신이 좀 더 감싸줬더라면 이렇게까지 미움을 받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라도 내가 좀 더 신경 써 주면 좋아질 거야.’
노현래 이병이 그리 마음을 먹고 힘없이 걸어오는 강대철 이병을 불렀다.
“대철아.”
땅만 보고 걷던 강대철 이병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노현래 이병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잠시 주위를 둘러보곤 조용히 말했다.
“일단 날 따라와 봐.”
“지금 말입니까?”
“그래!”
강대철 이병은 노현래 이병을 따라 건물 구석진 곳으로 갔다. 노현래 이병은 강대철 이병을 걱정스레 바라보며 물었다.
“대철아 괜찮아?”
“지금 제가 괜찮아 보입니까?”
“많이 혼났어?”
“말 시키지 마십시오. 저 지금 기분 최악입니다.”
“알아, 그래서 묻는 거잖아.”
“그보다, 이우영? 아까 그 녀석 뭡니까? 왜 남의 소대까지 와서 횡포를 부립니까?”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 팬티 때문에…….”
“그건 저도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짜증을 냈다. 다른 사람의 팬티를 훔쳐서라도 챙겨 입으라는 꾸중을 듣고 저지른 일이었다. 그걸 지적한다면 애당초 자신의 팬티를 훔쳐 간 것부터 따져야 했다.
“아무튼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노현래 이병이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자 강대철 이병이 콧방귀를 꼈다.
“이우영 그 자식은 절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강대철 이병이 함부로 떠들자 노현래 이병이 당황하며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야, 말조심해. 아무리 그래도 고참이야.”
“우리 소대 고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중대 고참이야. 예의는 차려야지.”
노현래 이병의 한마디에 강대철 이병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너 화난 건 알겠는데 그래도 진정해. 무엇보다 이우영 일병님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그분 밖에서 운동했대.”
“운동? 무슨 운동 했답니까?”
“유도를 했다고 하던데?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들었다고 하더라. 부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은퇴했는데, 힘이 장난 아니래.”
노현래 이병의 말에 강대철 이병이 발끈했다.
“X발, 저는 뭐 밖에서 놀다 왔습니까?”
“알아, 알고 있어. 그래도 고참이야! 네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안 되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고 하면 되죠.”
“안 돼! 그러지 마.”
발끈한 강대철 이병이 내뱉는 말에 노현래 이병은 깜짝 놀라며 강대철 이병을 말렸다.
사실 강대철 이병은 지금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전 이우영 일병의 눈빛과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든 게 사실이었다. 그것을 노현래 이병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강하게 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입니다. 운동하는 녀석들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들 X밥입니다. 막상 붙으면 제 주먹에 다 나가떨어집니다.”
강대철 이병이 주먹을 쥐어 보여줬다.
“아까 진짜 고참만 아니었으면……. 제 주먹이 참았습니다. 진짜 저런 녀석 밖에서 만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휴, 계급이 깡패입니다. 후려 패고 싶었던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래, 그래. 잘했어. 그보다 이거 받아.”
노현래 이병이 조심스럽게 건빵 주머니에서 초코파이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초코파이지 않습니까.”
“그래. 너 주려고 하나 감춰 뒀어. 어서 먹어.”
“에이, 무슨 초코파이입니까.”
“왜? 싫어?”
“누가 싫답니까. 주십시오.”
강대철 이병은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손은 초코파이의 봉지를 까고 있었다. 튕기는 척은 했지만 기분이 살짝 좋아졌는지 밝아진 얼굴로 얼른 초코파이를 입안으로 넣어버렸다.
강대철 이병이 초코파이를 우물거리는 동안 노현래 이병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무튼 이제 좀 잘하자. 네가 자꾸 그럴수록 너만 힘들어져.”
“그냥 저만 안 건드리면 됩니다. 안 건드리면!”
“야, 너는 이등병이야. 그냥 고참이 시키면 시키는 것만 잘하면 아무런 문제 없어.”
“어떻게 시키는 것만 합니까.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게 이등병이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 그럼 중간은 가. 너처럼 자꾸 그러면 큰일 나. 봐봐, 바로 고참들에게 찍혀서 지금 곤욕스럽잖아.”
“곤욕은 무슨……. 전 괜찮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한 번 더 허세를 부리며 말했다. 노현래 이병은 그런 강대철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대철아. 그래도 해야 해. 그래야 네 군 생활이 편해져.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에게 말해. 도움이 많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바로 윗선임이잖아.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줄게.”
“정말입니까?”
“그래.”
노현래 이병은 진심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훈계를 해주었다. 하지만 강대철 이병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손에 묻은 초코를 쭉쭉 빨던 강대철 이병은 문득 생각난 듯 노현래 이병에게 물었다.
“그럼 지난번에 밥상 엎은 것은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어어, 그거……. 그건 그냥 미안하다. 사실 나도 내가 한 거로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앞으로 그런 일 있으면 확실하게 커버쳐 주십시오.”
“알았어. 내가 노력할게.”
“그리고, 노현래 이병님.”
“응?”
“초코파이 하나 더 없습니까?”
“…….”
그 시각 오상진은 행정반에서 최강철 이병의 누나인 최강희와 통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생하고 방금 전 통화를 했는데, 유격인가 뭔가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본인이 엄청 잘했다고 뿌듯해했어요. 상진 씨가 보기에도 우리 강철이 정말 잘했나요?
“네. 이병 치고는 엄청 잘했습니다. 이번이 첫 유격이고, 쉽지 않았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해줘서 소대장으로서 정말 기특하게 생각합니다.”
-강철이가 잘하긴 잘했나 보네요. 고마워요, 상진 씨.
“네? 뭐가 고맙습니까?”
-강철이가 소대장님께 칭찬 많이 들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잘해서 칭찬해 줬습니다. 특별히 강철이만 칭찬한 건 아닙니다.”
오상진이 냉큼 선을 그었다. 혹시라도 최강희가 다른 오해를 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도 강철이 신경 써주시는 거 알고 있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아버지가 소대장님 한번 뵙고 싶어 해요.
“네? 아버님이시면 최 의원님께서요?
-예, 혹시 부담스러우신가요? 별 뜻은 아니고, 저희 아버지도 소대장님께서 강철이 잘 챙겨 준다는 얘기 듣고 상진 씨가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신가 봐요.
“아, 최 이병 아버님으로 만나는 것이라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용건 때문이라면 좀…….”
-저희 아버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번에 면회 갈 때 얼굴 한번 뵐 수 있는 거죠?
“예,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상관없습니다.”
-네. 그럼 다음에 꼭 봬요.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오상진은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으음, 회귀하니까 국회의원도 보게 되네.”
그때 4소대장이 그 소리를 듣고 살짝 놀라며 물었다.
“네? 1소대장님 국회의원 만납니까?”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에이, 뭡니까?”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그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박 하사, 우리 저녁이나 먹으러 갑시다.”
“저녁 말입니까?”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네. 오랜만에 저녁이나 같이 먹죠.”
“좋습니다.”
박중근 하사는 흔쾌히 수락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전투모를 챙겼다.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행정반을 나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했다.
“혹시 오늘 저녁 뭔지 아십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 애들한테 물어보려다가 깜빡했지 뭡니까.”
“기왕이면 맛있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통 입맛이 없어서 말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새 간부 식당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9.
저녁을 먹은 오상진은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부대로 올라왔다. 그러다가 슬쩍 1소대 내무반에 들렀다.
“뭐 하냐?”
오상진의 등장에 휴식을 취하며 TV를 시청하고 있던 김일도 상병이 벌떡 일어나며 경례했다.
“충성, 1소대 휴식 중.”
“그래. 별일 없지?”
“네, 없습니다.”
오상진은 침상에 털썩 앉아 소대원들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저번 주에는 유격에 화생방에 행군까지, 다들 힘들었지?”
“네.”
“그래, 다들 고생 많았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일도 상병이 웃으며 물었다.
“소대장님은 어떻습니까? 괜찮으십니까?”
“나? 어떨 것 같냐?”
“그야 힘들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연히 힘들지. 나도 죽을 것 같아. 진짜 유격 두 번은 못하겠더라.”
오상진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들 피식 웃었다.
“그래도 소대장님은 내년부터는 따로 훈련을 안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모르지, 대대장님께서 간부도 예외 없이 받아라! 이러면 또 해야지. 에고고…….”
오상진은 허리가 아파오는지 손으로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허리 아프십니까?”
옆에 있던 이해진 일병이 발 빠르게 다가와 물었다.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일시적인 현상이야. 그보다 개인정비는 다들 잘했지?”
“네.”
오상진은 대충 훑어보았다. 군장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그 외 장구류 전투화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래. 참, 민무늬 전투복은?”
“아직 건조대에 있습니다. 내일 거둬서 정리한 후 행정반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오상진이 다시 쭉 훑어보다가 김일도 상병과 눈이 마주쳤다.
“일도야.”
“상병 김일도.”
“대식이 휴가 갔지?”
“네. 오늘 갔습니다.”
“그럼 이제 실직적인 왕고는 너네.”
“네, 그렇지 말입니다.”
김일도 상병이 살짝 쑥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본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대식이가 복귀하면 이틀 안에 제대해서 나갈 거고. 뭐, 대식이에게 이런저런 것은 다 배웠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조만간 정식으로 분대장 안장 달아도 되겠네.”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도 내무반에 분대장은 있어야지. 참, 그보다 너 병장 언제 다냐?”
“다음 달입니다.”
“오오, 그럼 이번 달이 상병 마지막 달이네.”
“그렇습니다.”
“기분이 어때? 상병 때 분대장 안장도 차고 그러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떨떠름합니다.”
“소대장이 보기에는 우리 일도가 잘할 거라 생각해.”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김대식 분대장의 뒤를 잇는 게 김일도 상병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