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94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3)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오해 마십시오.”
“아니야? 그럼 너 누구랑 사귀는데? 진짜 김소희 중위랑 사귀는 거야? 아니면 병사들 앞이라서 김소희 중위 이름을 거론한 거야?”
“그게 아닙니다.”
“그럼 인마, 속 시원하게 말해봐! 뭐야?”
오상진이 살짝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저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이름이 소희입니다.”
“소희? 김소희 중위가 아니고?”
“네.”
“중대장 속이려는 거 아니지?”
“정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또 다른 소희 씨와 연애 중입니다.”
“그래? 신기하네. 그런데 넌 어떻게 소희하고만 엮이냐. 그래서 은지 씨는? 은지 씨하고는 잘 안 되고?”
“은지 씨랑은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네 형수가 알면 많이 서운해하겠는데?”
“형수님하고는 지난번에 이야기했잖습니까.”
“그땐 여지라도 있었지. 네가 다른 여자랑 연애 중인 거 하고 상황이 다르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하긴 네 형수도 어쩌겠냐? 여자 친구가 생겨 버린 것을.”
김철환 1중대장도 이해를 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다시 얘기를 꺼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집으로 넘어와.”
“또 그럽니까? 좀 쉬면 안 됩니까?”
오상진의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이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이랑 지금은 다르지. 인마, 형님 몰래 여자 친구를 만들었으면 소개는 못 해줄망정, 썰은 풀어야 할 것 아냐.”
“좀 봐주십시오. 정말 피곤합니다. 다음에 하시죠.”
“좋아. 그럼 다음에 해. 대신 적당히 넘어갈 생각은 말고.”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대로 넘어가면 한동안 엄청 시달릴 것 같았다.
“하아. 그럼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네. 긍정적으로요.”
“그래, 어차피 할 것 미리 승낙하면 얼마나 좋아. 서로 진 뺄 필요 없고 말이지.”
“네네.”
오상진은 대답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지난 유격에 힘들었던 시간이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3.
오상진이 관사에 오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 피곤하다.”
오상진은 회귀를 한 후 이렇듯 몸이 피곤했던 적은 없었다.
이제 이 모든 일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과거의 기억과 추억들이 가물가물해졌다.
“유격을 이렇게 제대로 받아본 적이 있었나?”
오상진이 회귀 전의 일을 떠올려봤다. 그때는 어떻게든 요리조리 빠졌었다. 설령 유격을 받더라도, 중간에 슬쩍 빠졌다. 유격을 잘 받는다고 해서 진급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대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병사들과 함께 다 받았다.
오상진의 가슴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밀려왔다.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좋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천정을 바라보았다. 온몸의 욱신거림이 성장통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가 알던 군대의 삶은 달라졌어. 앞으로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인 거야.”
그러면서 유격을 받던 때를 떠올렸다.
“훗, 물웅덩이에 빠졌을 때는 정말 당황했지. 비록 애들이 웃었지만 나도 나름 열심히 했고……. 물론 흑역사로 남겠지만 후회는 없어.”
오상진은 이 모든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뭔가를 떠올리고는 황급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맞다. 소희 씨에게 먼저 문자라도 보내야지.”
오상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소희 씨, 저 유격 끝나고 지금 관사에 들어왔어요.
오상진은 휴대폰을 바라보며 잠깐 기다렸다. 그런데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다.
“어? 수업 중인가?”
그러면서 다시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미안해요. 답장 못 기다리겠어요. 지금 너무 졸려서 한숨 잘게요. 깨어나면 다시 연락할게요.
오상진이 휴대폰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그렇게 오상진은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상진이 눈을 떴다.
아직 피곤이 가시지 않았지만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다.
“으으으윽……. 하아.”
가볍게 한숨을 내쉰 후 곧바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때마침 한소희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아까 수업 중이라 못 봤어요. 상진 씨, 많이 피곤하시겠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봐요.
그리고 하트 두 개가 나란히 있었다.
공식적인 데이트는 내일이지만 유격이 끝나는 대로 만나기로 했으니 한소희가 원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소희는 어찌 알았는지 오상진을 배려해 주었다.
오상진은 히죽 웃었다.
“역시 우리 소희 씨는 센스가 있다니까. 그럼 중대장님께 맘 편히 갈 수 있겠다.”
오상진은 혼잣말을 하며 한소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희 씨, 혹시 화 난 건 아니죠?
-에이, 화는요. 우리 오빠에게 물어보니까. 밤새 행군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유격도 하고, 완전 피곤해서 뻗었을 거라 말하더라고요. 제 컨디션도 아닐 거라면서요. 컨디션 회복하시라고요. 옆에 있으면 뽀뽀라도 해주면서 충전시켜드릴 텐데……. 아쉬워요.
오상진은 뽀뽀라는 단어에 눈이 번쩍 떠졌다. 곧바로 ‘아니요, 당장에라도 뽀뽀 받으러 가겠습니다.’ 이런 문자를 치다가 황급히 지웠다.
“내가 지금 무슨…….”
그러면서 오상진은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역시 우리 소희 씨가 최고예요. 알겠습니다. 빠르게 컨디션 회복해서 내일 최고의 모습을 뵙겠습니다. 충성!
오상진은 휴대폰을 닫고 피식 웃었다.
“아무튼 나이도 어린 사람이 이런 배려까지 해주고 말이야. 내가 무슨 복인지 모르겠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 누구지?”
오상진이 확인을 해보니,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아, 이 양반! 그새를 못 참고…….”
오상진은 화장실 가던 것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네. 오상진입니다.”
-나다.
“알고 있습니다.”
-언제 일어났냐?
“방금 일어났습니다.”
-지금 건너와, 네 형수가 맛난 거 해 준단다.
“역시 우리 형수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그럼 하지 말라고 할까?
“제가 안 가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에이, 나쁜 녀석! 빨리 건너오기나 해.
“네. 샤워하고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올 때 소주 몇 병 사와라. 여기서 마시자.
“네.”
오상진 전화를 끊으려는데 김철환 1중대장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기 상진아.
“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말실수를 조금 했다.
“네?”
-아니, 너희 형수에게 네가 여자 친구 생겼다고 말해버렸어.
“아, 왜 그러셨습니까?”
-뭐, 어때 인마. 우리가 남도 아니고. 이왕 듣는 거 네 형수도 같이 들으면 좋지. 안 그러냐?
“하아. 어쩔 수 없죠.”
오상진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끊었다.
“뭐, 어차피 얘기할 참이었으니까. 그보다 중대장님 내가 먼저 얘기할 때까지 조용히 계시지. 이 양반도 은근히 입이 가벼워! 그보다 형수가 서운해하지 않아야 할 텐데…….”
오상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둘러 외출할 준비를 했다.
4.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의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식사와 함께 술자리가 이어졌다.
“저기, 형수님…….”
김선아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은지랑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안 되어서 조금 아쉽네요.”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김선아는 쿨하게 넘어갔다. 남녀 사이의 일은 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상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보다 여자 친구에 대해서 얘기 좀 해줘요.”
김선아와 김철환 1중대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상진은 순간 부담이 되었지만 웃으며 얘기를 해줬다.
“네, 이름은 한소희구요. 대학생이에요.”
“뭐? 대학생! 와, 이 부러운 자식……. 아얏!”
김철환 1중대장이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그러다가 김선아의 따끔한 꼬집힘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계속 얘기해 봐요.”
“네. 형수님.”
오상진 간략하게 한소희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다.
잠자코 얘기를 들은 김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괜찮은 분인 것 같아요. 우리 도련님이 고른 여자 친구인데 어련하시겠어요.”
“감사합니다. 형수님.”
“아니에요. 그리고 여자 친구 생긴 기념으로 제 술 한 잔 받으세요.”
“네.”
오상진은 김선아가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그 앞에 김철환 1중대장이 슬그머니 술잔을 들이밀었다.
“여보, 나도…….”
“당신은 알아서 따라 먹어요.”
“여보…….”
“아까 부럽다면서요. 그럼 저랑 이혼하고 파릇파릇한 대학생이나 만나세요.”
“아니야. 여보! 난 당신밖에 없어요. 당신 없이 못살아. 정말 못살아.”
김철환 1중대장은 노래까지 부르며 김선아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선아는 오상진에게만 술을 따라 주었다.
“참 형수님.”
“네?”
“세나는요?”
“아, 세나요.”
김선아가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그사이 김철환 1중대장이 바로 끼어들었다.
“우리 처제, 오디션 보러 갔어. 오디션! 만날 주말이면 서울로 출퇴근을 하신다.”
“네. 아마 오늘 늦게 들어올 거예요.”
“아…….”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셋이서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김선아가 시계를 바라봤다.
“어? 세나가 온 모양이에요.”
“아.”
세 사람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김세나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김선아가 현관 앞으로 나갔다.
“계집애가 왜 이렇게 늦게 다녀!”
“9시가 뭐가 늦었다고 그래.”
그러면서 거실로 들어왔다. 술상을 보며 말했다.
“어? 술 드시고 계셨네요.”
오상진을 발견하고 인사를 했다.
“오빠, 오셨어요.”
“어어…….”
오랜만에 보는 김세나의 모습에 오상진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김세나는 술상을 보다가 히죽 웃었다.
“그럼 나도…….”
그때 김선아가 김세나의 팔을 붙잡았다.
“어디 학생이 여기에 끼려고 그래. 어서 방에 들어가!”
“칫!”
김세나가 입술을 쭉 내밀며 자신의 방으로 갔다. 오상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슬슬 눈치를 살폈다.
“저기 형수님…….”
“네?”
“저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벌써요?”
“네.”
“좀 더 마시고 가요.”
“그래, 인마! 좀 저 먹자.”
“아니요, 술도 다 떨어졌고, 세나도 왔으니까. 이만 가 봐야죠.”
“술이야 사 오면 되고, 세나는 무슨 신경을 쓰고 그래.”
김철환 1중대장이 한마디 했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뇨, 오늘 술 많이 마신 것 같아요.”
김선아가 재빨리 일어났다.
“네. 그런 것 같아요. 훈련받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오래 붙잡는 것도 예의가 아니죠. 알겠어요.”
“네. 형수님 그럼 가 보겠습니다. 형님, 저 갑니다.”
“인마, 어디가! 이리 안 와!”
“여보, 조용히 있어요!”
김선아의 으름장에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김선아는 오상진을 보며 말했다.
“저이는 걱정 말고, 어서 가 보세요.”
“네, 형수님. 그럼 잘 먹고 갑니다.”
오상진이 아파트를 나서며 밖으로 나왔다. 약간 취기가 오른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은 수많은 별로 반짝이고 있었다.
“여긴 여전히 별이 많네.”
오상진은 그 말을 하며 터벅터벅 관사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