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93화
20장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어!(2)
“하하하. 김 상병님 너무 놀리지 마십시오.”
“맞습니다. 저 녀석 적응하기 힘들 겁니다.”
“그럴까?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김우진 상병이 웃으며 몸에 물을 뿌렸다. 그때 이해진 일병이 최강철 이병을 툭 건드렸다.
“이병 최강철?”
“김 상병님이 저러시는 건 그만큼 널 인정한다는 뜻이야. 아니지, 우리 소대원으로서 널 반긴다는 뜻이라고 해야겠지.”
“아…….”
이해진 일병의 말에 최강철 이병도 이해를 한다는 듯 살짝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실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을 때 강대철 이병이 들어왔다. 순간 모두의 표정이 굳어지며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왜 이래?’
웃는 얼굴로 들어왔던 강대철 이병도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보던 강대철 이병이 최강철 이병 옆에 슬그머니 섰다. 고참들 주변보다는 최강철 이병이 만만했기 때문이다.
“으흠…….”
그러면서 강대철 이병은 자신의 사수인 김우진 상병 쪽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매정하게도 김우진 상병은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강대철 이병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로 말이다.
‘아, 젠장. 뭐지? 아직도 화가 나 있나?’
강대철 이병은 속으로 생각하며 계속해서 주변 고참들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모두 씻는 데 열중하고 있어서 그런지 강대철 이병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쳇!’
강대철 이병은 애써 무시하며 샤워를 시작했다.
‘다들 웃긴 놈들이네. 그래,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누가 신경 써달라고 했어? 그보다 아직도 유격 사건 때문에 꽁해 있는 건가? 쪼잔들 하네.’
강대철 이병이 입이 댓 발 나온 채로 제 몸을 벅벅 문질렀다.
그 시각 먼저 샤워를 마친 김대식 병장과 김일도 상병은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담배 한 대를 피우기 위함이었다.
“담배 여기 있습니다.”
김일도 상병이 먼저 담배를 꺼내 김대식 병장에게 건넸다. 김대식 병장이 피식 웃으며 받았다.
“고맙다.”
두 사람은 서로 불을 켜며 담배를 피웠다.
김일도 상병이 허리를 만지며 말했다.
“이번 유격은 진짜 힘들었지 말입니다. 허리가 뻐근한 게 이러다 장가도 못 갈 거 같습니다.”
“여자 친구도 없으면서 장가 타령은. 허리 쓸 일은 있냐?”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제가 또 허리 놀림이 장난 아니지 말입니다.”
“축구 빼고는 네가 뭘 제대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와, 너무하시지 말입니다.”
김일도 상병이 서운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김대식 병장이 농담이라며 김일도 상병의 엉덩이 쪽을 툭 하고 때렸다.
“그건 그렇고 유격 세 번은 못 받을 거 같습니다.”
“야, 세 번 받은 사람 앞에서 그게 할 소리냐?”
“그러니까, 왜 세 번 받으셨습니까?”
“진짜로 X같다.”
“네?”
김대식 병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김일도 상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김대식 병장이 바로 말했다.
“너 유격 세 번 받아본 기분 물어볼 거잖아.”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암튼 기분 더럽다고, 그만해!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영창 갈 각오로 주먹 날릴 거 같으니까.”
“네.”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그러다가 김대식 병장이 입을 뗐다.
“그보다 일도 너 이번에 잘하더라.”
“제가 좀…… 잘했습니까?”
김일도 상병이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김일도 상병은 김대식 병장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듯 알아서 칭찬을 해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내일모레면 김 병장님 말년 휴가입니다.”
“그렇지.”
“그럼 진짜 제대하는 겁니까?”
“왜? 많이 아쉽냐?”
“당연하죠, 함께한 시간이 얼마인데.”
“난 징글징글하다.”
김대식 병장도 말은 저렇게 했지만 그 또한 감회가 새로웠다. 김대식 병장이 김일도 상병을 바라봤다.
“일도 넌 잘할 거다. 지금처럼만 해.”
“네, 알겠습니다. 김 병장님도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그래, 고맙다.”
김일도 상병이 담배를 끄며 말했다.
“그런데 전 언제 제대합니까? 앞이 깜깜합니다.”
“금방이야. 그래도 넌 나처럼 유격 세 번은 안 하잖아.”
“그건 모르죠. 위에 사람들이 이번에는 전반기에 해버리죠. 이래 버리면 저도 꼼짝없이 해야 할 판입니다.”
“에이, 설마 그게 어디 쉽게 바뀌겠어?”
“그렇죠?”
“그래도 또 모르지. 나도 3번 받았으니까.”
“…….”
2.
오상진은 각 소대장들은 행정반에서 힘들었던 하루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4소대장이 전투화와 양말을 벗으며 말했다.
“와. 행군은 두 번은 못하겠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그때 옆에 있던 2소대장이 인상을 잔뜩 구겼다.
“이봐, 4소대장. 문은 열고 양말을 벗지. 구린내가…….”
“아, 죄송합니다.”
4소대장이 미안한 얼굴로 황급히 창문을 열었다. 3소대장도 전투화를 벗어서 확인을 했다.
“저는 다행히 물집은 안 잡혔습니다.”
“그렇습니까? 우와, 대단합니다.”
4소대장이 놀라워했다. 하지만 오상진은 달랐다.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있었다.
“아, 큰일이네. 이번 주에 소희 씨 만나기로 했는데.”
오상진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집에 바늘을 꽂았다. 일단 응급처치를 한 후 다시 양말을 신었다. 그때 행정반 문이 열리며 김철환 1중대장이 들어왔다.
“뭐하냐, 퇴근하자!”
“네, 해야죠.”
“지금 준비해서 퇴근할 겁니다.”
“그래, 다들 고생했다. 관사로 가서 푹 쉬고! 월요일에 보자.”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중대장님.”
“그래!”
김철환 1중대장이 힐끔 오상진을 봤다.
“1소대장은 퇴근 안 해?”
“해야죠. 지금 할 겁니다.”
“같이 가자.”
“같이 말입니까?”
오상진이 주변 소대장들의 눈치를 살피며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1소대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들어가십시오.”
4소대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3소대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반면 2소대장은 힐끔 한 번 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오상진도 신경 쓰지 않고 김철환 1중대장에게 말했다.
“가시죠.”
“가자.”
두 사람이 행정반을 나갔다. 복도를 걸어가며 김철환 1중대장이 물었다.
“상진아. 이번에 고생 많았다.”
“중대장님이 더 고생하셨죠.”
“고생은.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래도 중대장님께서 중심을 잘 잡아주신 덕분에 훈련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짜식이 아부는. 그건 그렇고 바로 관사에 갈 거냐?”
“그래야죠.”
“그럼 한숨 자고 저녁에 건너와라. 같이 한잔하자.”
보통 힘든 훈련이 끝나면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은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독려하곤 했다. 그래서 김철환 1중대장은 이번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술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한소희와 데이트 약속이 있던 오상진은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안 하면 안 됩니까?”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솔직히 많이 피곤해서 말입니다.”
“야, 너 진짜 이러면 핵 서운하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주워들었습니까.”
“아무튼 튕기지 말고 넘어와! 간만에 한잔해야지!”
“좀 봐주십시오.”
“이야, 오상진! 이제 중대장 말이 우습다 이거지?”
“거기서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됐어, 인마. 중대장도 솔직히 엄청 졸려. 지난 밤 한숨도 못 잤단 말이야. 행군하다가 졸려 죽을 뻔했잖아.”
“왜 못 주무셨습니까?”
“박 하사 장난 아니더라. 넌 어떻게 거기서 잤냐?”
‘에이, 중대장님 하고도 잤는데 말이죠.’
오상진은 속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상진의 속도 모르고 김철환 1중대장은 하소연을 이어나갔다.
“아니, 박 하사. 너무하지 않냐? 뭔 코를 그렇게 심하게 고냐. 세상에, 옆에 탱크가 지나가는 줄 알았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결국 박 하사가 이긴 겁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피식 웃는 오상진을 보며 기분 나빠했다.
“뭐냐, 그 웃음? 기분이 참 거시기 하다.”
“아닙니다. 그보다 빨리 집에 가셔서 주무십시오.”
“말 나온 김에 네 관사에 가서 잘까?”
김철환 1중대장이 넌지시 말했다. 오상진을 집으로 초대한 적은 있지만 오상진의 관사에 정식으로 초대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좁아서 둘이 못 잡니다. 좋은 집 놔두고 왜 제 관사에서 주무시려고 그러십니까.”
“짜식이. 나 코 안 곤다니까?”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지 말입니다.”
“입으로는 안 했지만 눈으로 말했잖아! 나 코 곤다고!”
워낙에 잘 붙어 다녀서일까. 김철환 1중대장은 오상진의 눈빛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관사 가서 샤워하고, 편히 쉬고 싶단 말입니다.”
“알았어. 내가 거기까지는 양보할게. 그러니까 저녁 때 넘어와. 소주 한잔하게. 너한테 들을 이야기도 있으니까.”
“저한테…… 말입니까?”
오상진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김철환 1중대장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런 오상진을 빤히 바라보던 김철환 1중대장이 이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진짜 계속 그렇게 나올 거야?”
“네?”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무슨 말 말입니까?”
“이 자식 봐라. 아무리 중대장이 그냥 평화롭게 좋게좋게 넘어가려고 해도, 속일 걸 속여야지. 야, 오상진!”
“네!”
“솔직히 말해, 너 여자 친구 있어, 없어!”
순간 오상진이 당황했다.
“어, 아니, 그게 말입니다.”
“그게 말입니다? 이야, 오상진 너무하네. 난 또 네가 언제 말해주나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더니. 계속 말 안 해주더라.”
김철환 1중대장은 정말 서운한 듯한 표정이었다.
“중대장님. 그게 말입니다…….”
오상진 역시도 괜히 미안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날 잡아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듣기로 여자 친구가 박은지가 아니더라?”
“아, 네에…….”
“혹시 너 아직까지 김소희 중위랑 사귀고 있어?”
김철환 1중대장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너 유격에서 장애물 코스 건널 때 ‘소희야’라고 불렀다면서!”
“아, 그게…….”
오상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런 오상진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전부 쏟아냈다.
“난 네가 요즘 실실 웃고 다니기에 박은지랑 잘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고. 네가 유격 중에 김 중위 이름을 불렀다고 말이야.”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아니지? 둘이 정리한 거 맞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너 혹시……. 양다리야?”
“……네?”
“박은지와 김 중위 둘 다 만나고 있는 거야? 그래?”
“아니, 이야기가 또 왜 그렇게 갑니까?”
“와…… 이 자식 대단한데!”
김철환 1중대장이 짓궂게 웃었다. 그냥 농담하는 건 줄 알았는데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을 보니 정말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오상진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