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91화
19장 유격!(9)
“하아, 미치겠네.”
다급하게 손을 움직여봤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물과 콧물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손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미칠 노릇이었다.
최강철 이병은 마지막으로 다시 방독면 쓰는 것에 도전했다. 그때 옆에 있던 강대철 이병이 그것을 보곤 최강철 이병의 몸을 툭 건드렸다.
“어어…….”
균형을 잃은 최강철 이병의 그대로 방독면을 떨어뜨렸다.
‘꼴 좋다. 병신 새끼.’
방독면을 다 쓴 강대철 이병이 방독면 뒤로 히죽 웃었다. 이미 자신도 눈물 콧물 다 쏟아냈지만 최강철 이병을 골려 먹었다는 생각에 기분은 좋았다.
“아아…….”
최강철 이병은 바닥에 주저앉아 어딘가에 떨어진 방독면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달리 손이 자꾸만 허공을 맴돌았다.
그때 최강철 이병 얼굴로 방독면이 씌워졌다.
‘누가…….’
최강철 이병은 방독면을 쓴 채 고개를 돌렸다. 눈물 때문에 제대로 눈이 떠지질 않았지만 흐릿한 시야 너머로 오상진의 모습이 보였다.
오상진은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는 와중에 애써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오상진이 최강철 이병을 독려한 뒤 떨어진 최강철 이병의 방독면을 주워서 재빨리 얼굴에 썼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교관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모두 퇴장!”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1소대원들은 재빨리 교장을 빠져나와 방독면을 벗었다.
“우엑! 우에에에엑!”
교장을 나온 1소대원 중 하나가 바닥에 엎드려 앞선 누군가가 토사물을 쏟아낸 곳에 또 한 번 토사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소대원이 달려와 그 토사물 위에 새로운 토사물을 쏟아냈다.
구토를 하지 않은 소대원들은 화생방 가스가 남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야, 빨리 방독면 벗고 수통에 있는 물을 얼굴에 뿌려! 절대로 비비거나 하지 마라. 알겠나!”
“네!”
“빨리빨리 물! 물 줘!”
박중근 하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하나둘씩 진정을 되찾아 갔다. 그사이 오상진도 구석으로 가서 눈물과 콧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으려 했다.
그때 김대식 병장이 다가왔다.
“소대장님 얼굴 대십시오.”
“김 병장?”
“네. 제가 물 부어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어.”
“빨리 대십시오.”
오상진이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자 김대식 병장이 자신의 수통에 담긴 물로 오상진의 얼굴에 뿌려 주었다.
“김 병장도 얼굴 대.”
“네.”
오상진도 답례하듯 수통에 담긴 물을 김대식 병장의 얼굴에 흘러내리게 뿌려 주었다.
“와, 화생방은 두 번이나 했는데 적응이 안 되네.”
“저도 두 번은 못하겠습니다.”
구진모 일병이 김대식 병장 옆에 와서 말했다. 김대식 병장이 피식 웃었다.
“두 번 못해도 한 번은 더 해야 하잖아. 안 그래?”
순간 구진모 일병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이 끔찍한 유격을 한번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최강철 이병도 얼굴에 물을 뿌리자 그나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와, 죽는 줄 알았네.”
최강철 이병이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린 방독면을 보았다.
“맞다, 방독면.”
최강철 이병은 오상진이 자신에게 방독면을 씌워줬던 것을 떠올렸다.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들어 오상진을 찾았다. 저 멀리 오상진이 얼굴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소대장님.”
최강철 이병이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소대장님.”
최강철 이병이 방독면을 건넸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방독면을 받았다. 그리고 들고 있던 최강철 이병의 방독면을 줬다.
“아까는 많이 당황했지?”
“네. 그렇습니다.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나와서 말입니다.”
“그래,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야. 그래도 고생했다. 잘 이겨냈어. 대견하다.”
“감사합니다.”
“이제 행군만 남았네.”
“네.”
“남은 행군까지 잘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자신의 방독면을 챙겨서 1소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오상진도 흐뭇한 얼굴로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자, 모두 낙오자 없이 화생방을 무사히 견뎌줘서 고맙다. 이제 행군만 남았다. 돌아가면 돌아갈 준비 하고 행군에 임할 수 있도록 하자.”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지시에 1소대원들은 텐트로 복귀했다. 그리고 텐트와 주변 정리를 서둘렀다.
“자자, 시간 없으니까 서두르자.”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상병이 중간에 서서 지시를 내렸다.
식사는 전투식량으로 대체했다. 김대식 병장은 전투식량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이 전투식량도 오늘로 끝이네.”
“고생하셨습니다.”
김일도 상병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김대식 병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도야. 지금처럼만 해. 그럼 넌 충분히 잘해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너도 다음 달에 병장 달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다.”
김대식 병장 역시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렇게 주변 정리를 모두 끝낸 후 퇴소식이 이어졌다.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모를 퇴소식 후에는 모두 육공트럭에 올라탄 채 이동했다.
“우리 어디로 갑니까?”
최강철 이병이 이해진 일병에게 물었다. 이해진 일병이 바로 답을 해줬다.
“한 30분만 가면 우리가 행군할 곳이 나와. 거기서부터 밤새도록 걸어서 아침 7시쯤 부대 위병소를 통과해.”
“아, 그렇습니까? 그럼 행군은 보통 몇 ㎞ 정도 합니까?”
“아마 40㎞ 정도 될걸?”
“40㎞…….”
최강철 이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말이 좋아 40㎞지, 시간당 4㎞를 간다 쳐도 10시간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그러자 이해진 일병이 최강철 이병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걷다 보면 어느새 해가 뜰 거고, 저 멀리 우리 부대가 보이는데 그때의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 행군을 끝냈다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렇습니까?”
“그래!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거야.”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는 사이 육공트럭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상진이 트럭에서 내리며 말했다.
“모두 이곳에 내려서 정렬한다.”
“네!”
잠시 후 한종태 대대장이 나타났다. 김철환 1중대장이 선두에 서서 지휘했다.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김철환 1중대장은 행군 시작을 알리는 신고를 했다. 그리고 한종태 대대장의 간단한 말이 이어졌다.
“충성대대 모든 중대원들, 출발 준비됐나?”
“준비됐습니다.”
각 중대원들의 시원한 대답에 한종태 대대장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무쪼록 부상자 없이 무사히 모두 완주할 수 있도록. 이상!”
“대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그래, 준비가 잘 된 것 같군. 좋아, 출발시켜!”
“네.”
김철환 1중대장이 1중대 1소대부터 출발을 시켰다.
“1소대 출발!”
“출발!”
그렇게 마지막 행군이 시작되었다.
모든 소대원들은 군장을 메고 총은 어깨에 걸친 상태로 2열 종대로 쭉 섰다. 선두에는 김철환 1중대장과 오상진이 붉은색 형광봉을 들었다.
“자, 모두 준비됐지!”
“네.”
“1중대!”
“화이팅!”
“1중대!”
“화이팅!”
“가자!”
힘찬 구호를 외치고 40㎞ 행군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 출발할 때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땀이 쏟아졌고, 점점 말이 없어졌다.
최강철 이병 역시도 호기롭게 행군의 첫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시간이 흐르자 어깨를 짓누르는 군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아, 우리 몇 시간 걸었냐?”
“3번 정도 쉬었으니까. 3시간은 걸었습니다.”
김우진 상병의 물음에 바로 뒤에 따라오는 구진모 일병이 대답했다.
“그래? 젠장, 아직 한참 남았네. 그보다 쉴 때 안 되었냐?”
“쉴 때 되었습니다.”
때마침 선두에서 손을 들며 소리쳤다.
“각 중대 10분간 휴식!”
휴식 지시가 뒤따라오는 중대들에게 차례대로 전달되었다. 각 소대원들은 도로 양쪽에 줄지어 앉아 담배도 피우고 다리도 주무르면서 휴식을 취했다.
“와, 발바닥에 열이 납니다.”
“야, 물집 안 잡혔냐?”
“아직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한 시간만 더 가면 저녁 시간이니까 그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은 돌아다니며 1소대원들을 체크했다. 그때 도로 중앙으로 의무 지원 차량이 지나갔다.
“아, 저 차 타고 가고 싶다.”
누군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분위기가 주위로 퍼져갔다.
“동감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진짜 어디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젠장! 내가 왜 유격 훈련을 한다고 해서는…….”
“김대식 병장님. 힘내십시오.”
“너나 힘내 인마.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꿀맛 같은 10분간의 휴식이 끝이 났다.
“휴식 끝 출발!”
오상진이 다시 소대원들 근처로 왔다.
“자자, 한 시간만 걸어가면 맛있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힘내자!”
“네. 알겠습니다.”
또다시 한 시간을 걸어갔다.
사방은 뉘엿뉘엿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좁은 도로 위 길게 늘어선 장병들의 거친 숨소리가 사방을 가득 채웠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장병들의 얼굴에선 굵은 땀방울이 흘렀지만 독기 어린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선 포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후우…….”
최강철 이병은 20㎏의 완전군장에 어깨가 짓눌리는 기분을 느꼈다. 참아보려 했지만 어깨 가득 느껴지는 무게의 고통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무겁다. 당장에라도 벗어 던져 버리고 싶다.’
최강철 이병이 질근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바로 앞에 걸어가는 강대철 이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군장은 왠지 모르게 가벼워 보였다.
‘저 자식은 아직 힘이 남아 있나?’
최강철 이병은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죽을 것 같은데 강대철 이병은 아직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조금만 버텨보자. 저녁 식사 시간 때 휴식을 더 취할 수 있을 거야.’
어느새 노을이 지고 점점 어둠이 찾아오는 밤이 되었다. 최강철 이병은 이미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아직 멀었나? 도대체 난 얼마나 걸었지?’
그 생각을 할 때쯤 선두에서 기분 좋은 말이 들려왔다.
“선두 정지!”
넓은 공터에 들어섰다. 그곳에 취사장 차가 도착해 있었다.
“와, 저녁 식사 시간이다.”
소대원들의 얼굴에 처음으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오상진의 인도하에 1소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뒤로 각 중대와 소대들이 속속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자, 모두 고생했다. 식판들 챙겨서 1중대부터 저녁 배식해라.”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그날 먹은 저녁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비록 만날 먹는 짬밥이지만 그곳에서 먹은 짬밥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했다.
그렇게 꿀맛 같은 저녁 시간이 지나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 모였다.
“자자, 출발 10분 전!”
“출발 10분 전!”
휴식을 취하던 소대원들은 하나둘 준비를 했다. 벗어 놓았던 군화를 다시 신고 무거운 군장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또다시 길고 긴 행군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