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87화
19장 유격!(5)
7.
노현래 이병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작부터 우물쭈물하는가 싶더니 결국엔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대원들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번졌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유독 한 명만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야, 강대철.”
이해진 일병이 옆에 있는 강대철을 낮게 불렀다.
“이병 강대철.”
“너 방금 고참이 실패를 했는데 비웃었냐?”
“비웃지 않았습니다.”
앞에 있던 김우진 상병이 조용히 말했다.
“뭐야? 왜?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해진 일병은 고자질할 성격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우진 상병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야, 강대철 뭐야?”
군 생활을 잘하는 신병이라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아닙니다. 제가 약간 실수를 했습니다’라며 수습하려고 했을 것이다. 고참은 잘잘못을 가려 주는 솔로몬이 아니니까.
그러나 눈치 없는 강대철 이병은 마치 자신이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노현래 이병을 비웃은 거 아닌데 이해진 일병이 비웃었다고 뭐라 하지 뭡니까.”
강대철 이병이 김우진 상병에게 항변하듯 말했다. 순간 김우진 상병이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 비웃었어?”
“아닙니다.”
강대철 이병이 아니라고 하지만 김우진 상병은 대번에 알아챘다. 이해진 일병이 괜히 그런 말을 할 녀석이 아니라는 것과 강대철 이병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놔, 이 새끼 진짜 왜 이러지?’
김우진 상병은 여기서 큰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이를 갈았다.
강대철 이병도 평소 든든한 빽으로 여겼던 김우진 상병의 표정이 달라지자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내 말을 안 믿는다는 표정인데.’
김우진 상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대철 이병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8.
훈련이 끝나고 점심을 먹기 전 김일도 상병은 따로 김우진 상병을 불렀다.
“야, 김우진.”
“상병 김우진.”
“너 진짜 강대철이 관리 제대로 안 하냐.”
“아, 제가 처음이라서…….”
“너 새끼, 내가 경고했지. 강대철 한번 밟아놓으라고. 오늘도 말이야. 몇 번이나 내 눈에 걸렸어. 아니면 네가 당할래?”
“아닙니다.”
“김대식 병장은 좋게좋게 넘어갈지 몰라도 나는 아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음은 없어.”
“네, 알겠습니다. 저녁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그래, 인마.”
김일도 상병이 물러나고 자리에 남은 김우진 상병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하아, 진짜 이대로는 안 되겠어.”
김우진 상병이 뭔가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모든 일과가 끝이 나고, 저녁 먹기 전 잠깐의 휴식 시간이 되었다. 김우진 상병은 강대철 이병의 일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강대철.”
“이병 강대철.”
“너, 잠깐 나 좀 보자.”
강대철 이병이 김우진 상병에게 갔다. 김우진 상병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너, 요즘 왜 그러냐?”
“뭐가 말입니까?”
강대철 이병은 일단 모르쇠로 나갔다. 김우진 상병이 바로 말했다.
“새끼야, 너 요새 하는 짓 보면 맘에 안 들어. 이등병이 군기가 빠져서는…….”
“…….”
강대철 이병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너보다는 지금의 최강철이 훨씬 낫다. 처음에는 좀 어리바리했지만 최근에는 이등병답게 군기가 바짝 들여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더구만. 원래 저 모습이 이등병의 모습이야. 너처럼 군기 쫙 빠진 이등병이 아니라. 제대로 좀 하자, 제대로!”
김우진 상병이 최강철 이병과 비교하며 강대철 이병을 타박했다. 강대철 이병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뭐야, 시발! 또 최강철과 날 비교해! 다른 사람도 아닌 나와 최강철을! 아주 X같네!’
“인마! 이등병답게 행동해. 진짜 마지막 경고다.”
“네, 알겠습니다.”
“가서 볼일 봐.”
돌아서는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9.
씻고 온 병사들은 양말을 텐트 줄에 걸었다.
“잃어버리지 않게 잘해.”
“네, 알겠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텐트 안에서 손전등에 의지한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야, 너희들도 들어와 쉬고 있어. 아직 저녁 먹을 때 안 되었잖아.”
“네.”
저녁 먹기 전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이해진 일병과 최강철 이병이 자리했다. 조영일 일병은 잠시 옆 텐트에 가 있었다.
“유격 이틀간 받아본 소감이 어때?”
이해진 일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냥 PT 체조만 한 것 같습니다.”
최강철 이병의 목소리가 어느새 잔뜩 쉬어 있었다. 이해진 일병도 마찬가지였다.
“목은 좀 어때?”
“쉰 것 빼고는 괜찮습니다.”
“꾸준히 물을 많이 먹어둬. 수통에다가 항상 물을 넣어 놓고.”
“네, 알겠습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누워서 지켜보는 김대식 병장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땡땡땡!
“식사하십시오.”
이해진 일병이 일어났다.
“강철아 밥 가지러 가자!”
“넵!”
두 사람은 식판 두 개와 반합을 챙겨서 내려갔다.
다른 조도 저녁밥을 가지러 내려갔다.
노현래 이병과 강대철 이병이 야외 취사장에 나타났다.
“어, 현래 왔어?”
이해진 일병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충성.”
“맛나게 먹어라.”
“네.”
그러곤 최강철 이병과 밥과 반찬을 퍼서 먼저 올라갔다. 그 뒤로 노현래 이병과 강대철 이병이 움직였다.
강대철 이병이 먼저 앞서가는데, 그러다가 강대철 이병이 앞으로 넘어졌다.
“아, X팔!”
강대철 이병이 엎어진 식판을 보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노현래 이병이 다가와 그 모습을 봤다.
“어떻게 된 거야?”
“아, 그게 말입니다. 길이 미끄러워서…….”
엎질러진 반찬과 반합을 보며 노현래 이병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태로 가지고 가면 선임병들에게 한 소리 들을 게 뻔했다.
“대철아.”
“이병 강대철.”
“여기 대충 정리하고, 너 먼저 밥만 가지고 올라가. 반찬이랑 국은 내가 다시 퍼서 갈 테니까.”
“어? 알겠습니다.”
강대철 이병이 밥이 든 식판을 받았다.
“조심해서 올라가.”
“네.”
노현래 이병은 식판과 반합을 들고 다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강대철 이병이 바닥에 엎어진 반찬을 대충 발로 휙휙 저은 후 올라갔다.
노현래 이병이 다시 취사장에 나타났다. 대대 행보관이 노현래 이병을 보며 물었다.
“어? 너 어느 소대냐?”
“……1소대입니다.”
“1소대? 아까 다 가져가지 않았었냐?”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왜 또 왔어?”
“가다가 반찬을 엎질렀습니다.”
“뭐? 이런 미친놈을 봤나. 귀하고 귀한 반찬을 엎어! 네가 엎은 건 말이야, 너희 부모님이 피땀 흘려서 낸 세금이야. 알아!”
“죄송합니다.”
“지금 죄송하다고 될 일이야! 얻다가 정신을 팔고 있어.”
노현래 이병은 자신이 그러지 않았음에도 대대 행보관에게 욕을 들어먹고 있었다. 한참을 야단맞은 후에야 대대 행보관이 다시 반찬을 퍼 주었다.
“다음에는 국물도 없어!”
“네, 알겠습니다.”
노현래 이병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반찬과 국을 가지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10.
강대철 이병이 밥을 가지고 올라가는 와중 저 멀리서 노현래 이병이 대대 행보관에게 엄청 욕을 들어먹고 있는 것이 들려왔다.
하지만 강대철 이병은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신의 실수로 선임병이 욕을 먹는데도 조금의 미안함이 없었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텐트로 복귀했다.
“밥 가져왔습니다.”
“오오, 밥이 왔구나.”
김우진 상병이 텐트 안에서 쉬다가 밥 가져왔다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밥만 있고, 반찬이 없었다. 게다가 노현래 이병도 보이지 않았다.
“어? 왜 밥만 왔냐? 현래는?”
“어, 그게 반찬을 엎으셔서…….”
강대철 이병이 말을 얼버무렸다.
“뭐? 현래가 반찬을 엎었다고?”
김우진 상병이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지금 상황에서 김우진 상병은 노현래 이병이 반찬을 엎은 것으로 착각했다.
“노현래 그리 안 봤는데……. 그런 실수를 해? 이거 짬밥을 거꾸로 먹었나.”
그러자 조영일 일병이 두둔하며 말했다.
“여기 올라오는 길이 좀 미끄럽습니다.”
“그래도 이런 일 한두 번 하냐.”
“그건 아니지만…….”
조영일 일병이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김우진 상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즘 좀 편하다 싶지, 이것들이 말이야.”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쓰고 있을 때 노현래 이병이 텐트로 복귀를 했다. 그의 두 손에는 새로 받은 반찬과 국이 들려 있었다. 대대 행보관에게 욕을 먹고 어렵게 다시 얻은 반찬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노현래 이병이 조심스럽게 반합과 반찬을 내려놓았다. 김우진 상병이 그런 노현래 이병을 불렀다.
“야, 노현래.”
“이병 노현래.”
“넌 진짜 생각이 있냐, 없냐? 후임 앞에서 그게 뭔 꼴이냐?”
“네? 무슨 말씀인지…….”
“너 반찬 엎었다면서!”
노현래 이병이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강대철 이병을 쳐다보았다. 강대철 이병은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딴청을 피웠다.
“……죄송합니다.”
노현래 이병은 차마 강대철 이병이 그랬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참이 바로 밑 후임을 고자질한다는 것이 웃긴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야, 정신 차려. 알겠어?!”
“네.”
노현래 이병이 야단을 맞고 있는 모습을 이해진 일병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해진 일병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절대로 노현래 이병이 반찬을 엎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해진 일병 역시 나서지 않았다. 나중에 따로 강대철 이병이랑 얘기를 나눌 생각이었다.
노현래 이병은 억울한 얼굴로 따로 앉았다. 그 옆으로 손주영 이병이 다가왔다.
“현래야.”
“이병 노현래.”
“왜? 무슨 일 있어?”
“그게 말입니다.”
노현래 이병은 너무나도 억울했던지 울먹였다.
“무슨 일인지 말해봐.”
노현래 이병은 조금 전에 있었던 얘기를 소상히 말했다. 순간 손주영 이병이 인상을 썼다.
“정말이야?”
“네.”
“이 새끼가 진짜…….”
손주영 이병이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곧바로 강대철 이병을 불렀다.
“야, 강대철.”
“이병 강대철.”
“나 좀 보자.”
손주영 이병은 강대철 이병을 구석진 자리로 데리고 갔다.
“왜 그러십니까?”
“너 아까 반찬 누가 엎었어.”
“네?”
강대철 이병이 순간 당황했다. 손주영 이병이 다시 물었다.
“반찬 누가 엎었냐고.”
“그건 노현래 이병님께서…….”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
손주영 이병이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강대철 이병이 너무나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오니 울컥 올라오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강대철 이병이 말을 얼버무렸다. 손주영 이병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니 네가 실수해서 엎었으면서 고참이 했다고 일러바쳐? 이런 생각도 없는 새끼를 봤나. 너 인마 김우진 상병이 오냐오냐해 주니까, 살판났지? 그래서 안하무인격으로 나오는 거지?”
손주영 이병은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강대철 이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때 화장실 뒤편으로 김대식 병장이 나타났다.
“밥을 누가 엎었다고?”
순간 손주영 이병이 당황하며 얼른 경례했다.
“충성.”
“손주영 다시 말해봐, 뭐라고?”
“이병 손주영, 그게 말입니다.”
손주영 이병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김대식 병장이 강대철 이병을 바라보았다. 강대철 이병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X발, 못해 먹겠네. 이것이고 저것이고 죄다 맘에 안 들어! 그깟 반찬이 뭐라고…….’
그렇게 1소대의 불화가 싹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