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86화
19장 유격!(4)
“저 새끼 왜 저래?”
“네?”
“대철이 말이야. 왜 항상 열외하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식 요령 피우는 거 아니야? 이등병이 벌써부터 빠져가지고!”
김일도 상병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김우진 상병이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이 새끼, 어제 그렇게 말했는데.”
PT 체조 중간에 10분간 휴식이 주어졌다. 김우진 상병이 강대철 이병을 보며 말했다.
“너 이 새끼, PT 체조 중에 자꾸 요령 피울래? 너 일부러 PT 체조 받기 싫어서 열외하는 것을 모를 줄 알아?”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겁니까?”
강대철 이병이 당당하게 나갔다. 그 당당함에 김우진 상병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곤 어이없어하며 웃었다.
“이런 미친 새끼! 그게 이등병이 할 말이냐. 그리고 같은 이등병인 최강철을 봐. 저 녀석이 어디 요령 피우냐?”
“아, 왜 자꾸 최강철과 비교합니까.”
“너 이 자식…….”
김우진 상병이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어느새 조교가 나타났다.
“잡담하지 않습니다.”
김우진 상병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나중에 두고 봐!”
그렇게 PT 체조를 끝낸 후 1소대는 곧바로 장애물 코스로 이동했다.
“유격, 유격, 유격!”
이곳 유격장에서는 절대로 걷는 곳이 없었다. 무조건 뛰어다녀야 했다. 그에 맞춰 ‘유격’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뛰어가야 했다.
“모두 제자리에 섯!”
“유격, 유격, 유격대!”
각 장애물마다 교관이 있었다. 1소대원들의 눈빛이 반짝이며 제1코스에 들어왔다. 제1코스는 엮어가기 코스였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께서 보고 있는 장애물 코스는 제1코스로 엮어가기 코스입니다. 장애물 통과에서 가장 쉬운 코스입니다. 조교의 시범을 보고 따라 해주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아주 쉬운 코스라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조교 앞으로!”
조교가 장애물 앞에 섰다.
“0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도하!”
“유격, 유격…….”
여러 개의 나무 봉을 위아래로 통과하며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실격이다. 조교는 FM으로 확실한 동작을 보여주며 장애물을 아주 간단히 통과를 했다.
“0번 올빼미 도하 끝!”
“위치로!”
“유격, 유격, 유격…….”
간단하게 딱 한 번 시범을 보여주고 사라졌다. 교관은 흡족한 얼굴로 말했다.
“조교의 시범을 잘 봤을 것입니다. 이 장애물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목과 허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을 꼭 잡고,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좋습니다. 그럼 장애물 통과를 하기 전에 몸부터 풀고 시작합니다.”
교관의 한마디에 1소대원들의 인상이 굳어졌다. 교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교관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 하고자 하는 의지만 보여준다면 간단하게 몸 풀고 바로 코스로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악!”
“목소리가 맘에 안 듭니다. 그냥 코스 중단하고 몸만 계속 풉니까?”
“악!”
“좋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가 아주 맘에 듭니다. 그럼 간단하게 팔 벌려 높이뛰기, 10회! 몇 회?”
“10회!”
“목소리가 아주 맘에 듭니다. 9회! 시작!”
“하나 둘 셋, 하나! 하나 둘 셋, 둘!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여덟! 하나 둘 셋…….”
1소대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아홉 번째 구호를 생략했다. 순간 교관이 당황했지만 표현을 하지 않았다.
“으음, 여러분의 의지는 잘 받았습니다. 교관은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곧바로 장애물 코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헤쳐모여!”
“악!”
교관이 1소대원들을 쭉 훑어봤다.
“자, 자신 있는 올빼미 손을 듭니다.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겠다 하는 올빼미 거수!”
“…….”
1소대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교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충성 대대 올빼미들은 자신감이 없습니까? 정말 아무도 없습니까.”
박중근 하사가 참지 못하고 손을 들려고 했다. 옆에 있던 오상진이 말렸다.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소대장님께서?”
박중근 하사가 눈을 깜빡였다. 오상진은 피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2번 올빼미!”
“오오, 일어납니다.”
2번 올빼미는 오상진이었다. 오상진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교관 앞에 섰다.
“2번 올빼미 자신 있습니까?”
“악!”
“좋습니다. 코스 앞에 섭니다.”
“악!”
오상진은 옛 기억을 더듬어 호기롭게 앞에 나섰다. 하지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오상진이 낮게 숨을 내쉬었다. 교관이 옆에 섰다.
“2번 올빼미는 자신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럼 자신 있습니까?”
“자신 있습니다.”
“좋습니다. 목소리도 맘에 듭니다. 코스 출발 장소에 섭니다.”
오상진이 유격대를 외치며 코스 출발선에 섰다. 교관이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애인 있습니까?”
순간 오상진이 멈칫했다. 교관이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부터 두 번 묻지 않겠습니다. 애인 있습니까.”
“이, 있습니다.”
“애인 예쁩니까?”
“예쁩니다!”
순간 1소대원들이 눈빛이 반짝였다.
“어? 우리 소대장님 애인 있으셨어?”
“김소희 중위랑 사귀지 않습니까?”
“야, 그게 언제 적 소문인데?”
“두 분이 사귀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닐걸? 헤어졌다고 하던데?”
“설마 다시 만나시는 건?”
“그것보다 새 여자 친구가 생기신 거 같은데?”
“우와, 부럽다.”
“배신자! 솔로 만세, 커플 지옥!”
오상진이 김소희 중위와 헤어졌다는 소문을 누구보다 기뻐했던 김일도 상병은 마치 배신자라도 보는 듯 흉흉한 기운을 뿜어대며 오상진을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교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많이 보고 싶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2번 올빼미 도하 준비!”
교관의 구령이 떨어졌고, 오상진은 장애물 앞에 섰다.
‘후우, 좋아. 모든 이론은 머릿속에 다 있어.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이론대로 하면 되는 거야.’
오상진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을 굳힌 후 입을 뗐다.
“2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애인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도하!”
“소희야! 사랑한다!”
오상진이 힘차게 한소희를 외친 후 장애물 코스에 들어갔다.
순간 오상진의 여자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소대원들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유격, 유격, 유격.”
바짝 군기가 든 오상진은 엮어가기 코스 초반을 무난하게 통과를 했다. 한 두 번 해본 게 아니라 이쯤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중간쯤 갔을까? 그때부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제, 젠장……. 힘이 빠졌어. 어젯밤에 잠 못 잔 것이 컸나?’
그 과정에서 자세가 흐트러졌지만 오상진은 이를 악물고 끝까지 완주를 했다.
“2번 올빼미 도하 끝!”
“좋습니다. 모두 박수를 보내줍니다.”
짝짝짝!
“자, 다음 도전자!”
교관의 한마디에 이번에는 여러 명의 도전자가 나왔다. 그 뒤로 전부다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오상진은 속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 내가 본보기를 잘 보였어.’
오상진은 자신이 처음에 나서서 일이 잘 풀렸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장애물 코스만 나오면 오상진은 제일 먼저 나섰다.
“2번 올빼미!”
오상진은 서서히 자신감이 붙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몸이 따라주면 고맙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옆에 있던 박중근 하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이번만 하면 점심시간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 소대장님은 많이 지쳐 보입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앞장서야 우리 소대원들이 더 나서지 않겠습니까.”
오상진이 애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때 박중근 하사가 말릴 때 그만뒀어야 했다.
다음 장애물 코스는 제5코스인 그네넘기였다. 그네넘기는 밧줄에 매달린 통나무에 올라타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본 코스는 그네 넘기로 통나무에 잘 올라탄 후 반대편에 안전하게 착지하면 된다. 아주 쉬운 코스라고 말할 수 있다.”
어김없이 조교의 시범이 나왔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조교의 시범만 본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이곳에서 유의할 점은 양손을 봉에 밀착시킨다. 몸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리고 신속히 뛰어내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도하 시 우측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다. 알겠습니까?”
“악!”
“좋습니다. 그럼 제일 먼저 도전할 사람!”
“2번 올빼미!”
오상진은 이번에도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박중근 하사가 걱정스레 쳐다봤지만 오상진은 괜찮다고 말했다.
“좋습니다. 2번 올빼미 앞으로.”
오상진이 출발선 앞에 섰다. 거대한 봉이 왔다 갔다 했다.
“후우…….”
오상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네가 넘어오면 다리를 앞뒤로 벌리고 손을 통나무 그네를 짚으면 된다. 그리고 앞뒤로 벌린 허벅지 사이에 끼고 넘어가면 되는 거야. 아주 쉬워!’
오상진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물레이션을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답이 서자.
“2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있는 힘껏 소리쳤다.
“도하!”
교관의 지시가 떨어지고 오상진은 다가오는 통나무를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시뮬레이션 한 대로 균형을 잘 잡은 후 반대편에 내려서면 끝이었다. 하지만 허벅지에 힘을 지고 빠져나와야 하는데 조금 힘이 부쳤다.
‘아, 안 돼…….’
오상진이 속으로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제대로 힘을 실지 못하면서 그대로 웅덩이에 빠져 버렸다.
“아아…….”
소대원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까지 잘 넘어왔지만 마지막에서 안타깝게 놓쳤다.
오상진은 안타까움 보다는 쪽팔림이 컸다.
‘아, 젠장! 내가 잘했어야 하는데, 내가!’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수습하기는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동안 열심히 한 오상진의 노력을 소대원들이 인정해 줬다는 점이다.
“와아아! 멋지십니다.”
“잘하셨습니다.”
“한 번 더! 한 번 더!”
소대원들이 박수를 치며 오상진을 독려했다.
오상진은 솔직히 민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었다.
“한 번 더 도전하고 싶습니다.”
교관 역시도 소대원들의 격려에 살짝 감동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본 교관은 솔직히 감동받았다. 여러분들의 의지! 패기가 너무 맘에 든다. 좋다, 한 번 더 도전할 기회를 주겠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출발선에 다시 섰다.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외쳤다.
“2번 올빼미 도하 준비 끝!”
“도하!”
그렇게 오상진은 재도전 끝에 간신히 성공을 한 후 복귀를 했다.
한 번에 끝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떻게든 성공을 한 모습을 보여줬으니 소대장의 체면은 조금 차린 것 같았다.
박중근 하사도 감동한 얼굴로 오상진을 반겼다.
“수고하셨습니다.”
소대원들도 한 목소리로 오상진을 추켜 세웠다.
“소대장님 멋졌습니다.”
“오, 소대장님 생각보다 몸이 날쌘 것 같습니다.”
소대원들의 칭찬에 오상진은 괜히 멋쩍어졌다.
‘그래, 다음번에 만회하면 돼.’
오상진은 속으로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