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85화
19장 유격!(3)
4.
저녁 식사 후 불침번 근무 조가 편성되었다.
다행히 최강철 이병은 오늘 불침번 근무조에 편성되지 않았다. 내일 두 번째 불침번 근무조였다.
저녁 점호는 오상진이 맡아서 했다. 1소대는 인원 체크와 부상자 확인으로 저녁 점호를 대신했다.
“오늘 고생 많았다. 푹 쉬고, 내일도 열심히 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그래, 푹 쉬어라.”
오상진이 저녁 점호를 마치며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자, 모두 취침!”
오상진은 저녁 점호를 마치고, 자신의 텐트로 향했다.
“우와, 진짜 힘들다.”
오상진이 자신의 텐트로 와서 앉았다. 그리고 전투화를 벗자 구릿구릿한 발 냄새가 확 풍겨왔다.
“으으, 냄새.”
오상진은 황급히 양발을 벗었다. 그리고 텐트 줄에 널었다. 찝찝하지만 어쨌든 내일 또 신어야 했다.
물론 양말을 빨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내일 되면 또 양말이 더러워지기 때문이었다.
“아, 씻으러 가기 귀찮네. 씻지 말까?”
오상진이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박중근 하사가 나타났다. 박중근 하사의 손에는 모기향이 들려 있었다.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박 하사도 고생 많았습니다.”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했다.
“박 하사도 어서 전투화를 벗고 쉬십시오.”
“네.”
박중근 하사도 텐트 앞에 앉아서 전투화를 벗었다.
“와, 간만에 유격을 받으니 정말 힘들었습니다.”
오상진이 운을 뗐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소대장님 유격 받아보셨습니까? 이번이 처음 아니십니까?”
“아하……. 처, 처음이죠. 교육 받을 때, 그때 말하는 겁니다.”
오상진이 깜짝 놀라 황급히 둘러댔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겠구나.”
박중근 하사가 이해를 했다. 오상진은 가슴 한편을 쓸어내렸다.
“그건 그렇고 내일부터 장애물 코스인데 소대장님도 참여하실 겁니까?”
“물론입니다.”
오상진이 주먹을 불끈 쥐며 답했다. 그 모습에 박중근 하사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대장님은 좀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네, 뭐랄까? 다른 소대장님하고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이요?”
“행동하시는 거나, 소대원들을 대하는 모습 등 말입니다.”
“나쁘다는 겁니까? 아님 좋다는 겁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박중근 하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좋은 뜻으로 말한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쭉 이런 자세로 임해주십시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오상진이 웃으며 세면도구를 챙겼다. 박중근 하사가 저리 말하는데 씻지도 않는 소대장이 될 순 없었다.
“씻으러 가실 거죠?”
“네.”
“같이 갑시다.”
“알겠습니다.”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나란히 세면장으로 향했다.
5.
취침 준비를 마친 최강철 이병이 텐트에 누웠다. 그 옆에 이해진 일병도 누웠다.
“정말 우리 여기서 잡니까?”
“이미 누워놓고 무슨 말이야.”
“아니, 진짜인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그럼 진짜지. 왜? 이런 텐트에서 자는 건 처음이야?”
“네.”
“헐, 너는 식구들이랑 캠핑 가 본 적 없어?”
이해진 일병의 물음에 최강철 이병이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아버지가 정치에 입문한 이후로 아버지는 얼굴 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회사 일이 바빠 가정에 소홀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방학 때 친구들이 캠핑을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렇게 부러웠다.
“네,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진짜?”
“네.”
“그럼 이참에 해보면 되겠네.”
이해진 일병이 웃으며 말했다.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편이라…….”
최강철 이병이 낮게 말했다. 그때 김대식 병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잡담 그만하고 빨리 자라. 내일 훈련에 지장 안 주게.”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감았다. 유격장의 밤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부엉, 부엉, 부엉.
최강철 이병은 부엉이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이해진 일병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일병님 부엉이 소리 아닙니까?”
“맞아.”
“부엉이 소리 들으니까 더 무섭습니다. 마치 전설의 고향인 것 같습니다.”
“괜찮아. 무시하고 자.”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다시 눈을 감았지만 쉽사리 잠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시 30여 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해진 일병이 살짝 뒤척이며 최강철 이병을 보았다.
“강철아, 자니?”
“…….”
이해진 일병이 다시 최강철 이병을 부르려는데 어디선가 낮게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최강철 이병에게서 들렸다.
“훗,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더니……. 하긴 피곤함이 그런 것들을 가뿐히 이기지.”
이해진 일병이 피식 웃으며 잠을 청했다. 게다가 막상 부엉이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잠을 못 자게 하는 진짜 소음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오상진도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네.”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박중근 하사의 코골이 때문이었다. 마치 천둥소리가 따로 없었다.
“크어어어어엉, 컥! 컥! 푸하아아.”
그럴 때마다 오상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제발 잠 좀 잡시다.”
오상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박중근 하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오상진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일어나십시오. 기상입니다.”
불침번의 기상 소리와 함께 유격 훈련의 둘째 날이 밝았다. 오상진은 구부정한 자세로 텐트에서 나왔다. 그리고 앞에 있는 바위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하아, 잠을 한숨도 못 잤어.”
오상진의 눈 밑에 다크써클이 깊게 내려와 있었다. 곧이어 잠을 푹 잔 박중근 하사가 나왔다.
“으으으윽, 잘 잤다.”
박중근 하사는 기지개를 펴며 옆의 오상진을 보았다. 눈이 퀭한 상태로 서 있는 모습에 박중근 하사가 걱정스레 물었다.
“소대장님 어디 안 좋으십니까?”
“아닙니다.”
“잠을 못 주무셨습니까?”
오상진이 홱 고개를 돌려 박중근 하사를 노려보았다.
‘네. 누구 때문에 잠을 못 잤습니다.’
오상진은 차마 이 말을 하지 못하고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닙니다.”
오상진은 옷을 갈아입은 후 힘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때 지나가던 장재일 2소대장이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1소대장 어제 잠 못 잤습니까?”
“아, 예에. 잠자리가 바뀌어서 잘 못 잔 것 같습니다.”
“에이, 군인이 잠자리를 따지고 그러면 됩니까.”
장재일 2소대장이 빈정거렸다. 오상진은 바로 대꾸해 주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요즘 들어 다시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괜히 타박했다간 예전으로 돌아가게 될지 몰랐다.
확실히 제3자처럼 겉도는 것보다 서로 대화도 주고받으며 지내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다만 한 가지. 오상진이 좀 편하게 대해주니까 장재일 3중대장이 예전 버릇 못 고치고 다시 오상진을 만만하게 대하는 게 문제였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김철환 1중대장이었다.
“뭐야? 아침부터…….”
“어? 아닙니다.”
장재일 2소대장은 김철환 1중대장이 나타나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럼 전 아침 점호 하러 내려가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이 그런 장재일 2소대장을 보며 인상을 썼다.
“아, 저 새끼. 내 앞에서 말도 못할 것이, 입만 살아서는.”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들었습니까?”
“당연히 들었지. 그보다 너 왜 잠 못 잤어? 정말 잠자리 때문에 그래?”
“사실은 박 하사 코골이 때문에…….”
“아, 박 하사가 코골이가 심해?”
“네.”
“그럼 나랑 자자.”
오상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중대장님 하고 자는 것도 싫습니다.”
“아니, 왜?”
“중대장님도 코 엄청 곱니다.”
“뭐? 내가? 말도 안 돼! 니 형수도 나랑 같이 자면서 한 번도 코 곤다는 말 하지 않았어.”
김철환 1중대장은 펄쩍 뛰었지만 오상진도 없는 소릴 지어낸 건 아니었다. 이미 같이 잠을 자봤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그거야 형수님이 워낙에 착하셔서 그랬겠죠. 그때 술 먹은 날 저랑 같이 자지 않았습니까. 그때 코를 어찌나 크게 골던지.”
오상진은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말했다.
오상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형수님께서 아무런 말씀 없으셨습니까?”
“네 형수?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김철환 1중대장도 슬슬 불안한지 휴대폰을 꺼냈다.
“어, 여보. 나 코골아?”
김철환 1중대장이 귀엽게 물었다.
“그렇지? 아니지. 상진이 이 자식이 이상하게 몰아가. 아니, 상진이가 나보고 코 엄청 곤다고 하잖아. 알았어, 자기야, 사랑해.”
김철환 1중대장은 아침부터 달콤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오상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을 향해 말했다.
“봐, 이 자식아. 아니라고 하잖아.”
“우리 형수님 엄청 착하시네.”
“뭐, 인마?”
“아무튼 전 아침 점호 때문에 먼저 내려갑니다.”
오상진이 연병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철환 1중대장이 말했다.
“저 자식, 감히 날 코골이로 몰아가. 어디 두고 보자.”
6.
둘째 날 오전 훈련은 PT 체조로 시작했다.
“어젯밤 잘 잤습니까?”
“악!”
“목소리 봐라, 어제의 그 패기는 어디 갔습니까. 잘 잤습니까.”
“악!”
“지금과 같은 목소리를 항상 유지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히 PT체조를 한 후 장애물 코스로 가 보겠습니다.”
“앞에 기준!”
“50번 올빼미 기준!”
“유격대형으로 펼쳐!”
“유격대!”
좌우로 쫙 펼쳐서 유격대형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꼭 한두 명이 굼뜨게 움직였다.
“동작 봐라! 기준!”
“50번 올빼미 기준!”
“헤쳐 모여!”
“유격대!”
다시 우르르 달려와 모였다. 교관은 잔뜩 인상을 구겼다.
“여러분 아침부터 교관이랑 싸우자는 겁니까? 굼벵이가 기어가도 이렇게 천천히 가지는 않을 겁니다. 다시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유격 대형으로 펼쳐!”
“유격대!”
이번에는 조금전과 달리 재빨리 움직였다. 그러자 교관이 한마디 했다.
“아니,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왜 그랬습니까? 지금 교관이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악!”
“그렇습니까?”
“악!”
“이번 한 번만 넘어가겠습니다. 자, 그럼 간단히 팔 벌려 뛰기 20회! 몇 회?”
“20회!”
“19회 시작!”
“삐비빅 하나! 삐비박 둘! ……삐비빅 열 아홉!”
“누가 마지막 구호를 외치라고 했나. 뒤로 열외!”
그러자 강대철 이병이 뒤로 뛰어갔다.
“다시 준비!”
이 이후로도 PT 체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꼭 강대철 이병은 열외를 받았다. 아니, 열외하는 곳에 꼭 강대철 이병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선임병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