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84화
19장 유격!(2)
“맛있게 드십시오.”
“그래, 많이 먹어라.”
소대원들은 4인 1조가 되어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최강철 이병은 이렇게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밥을 한술 떠서 입안에 넣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이렇게 먹는 거 처음이지?”
“네.”
“적응해야지. 앞으로 5일동안 이렇게 먹을 텐데…….”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먹으니 정말 맛있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이해진 일병이 남은 밥과 반찬을 보며 말했다.
“강철아, 남은 거 더 먹어.”
“아닙니다. 배부릅니다.”
“더 먹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오후부터 있을 유격 훈련 받으면 엄청 힘들어진다. 나 이등병 때 죽는 줄 알았다.”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끄덕인 후 남은 잔반을 모두 처리했다.
3.
점심을 먹은 후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소대원들은 텐트 안에서 유격용 훈련복으로 다 갈아입은 상태였다.
“이걸 입고 있으니까 이제 좀 실감이 나네.”
김우진 상병이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상진이 나타났다.
오상진 역시 민무늬 전투복으로 갈아 입은 상태였다.
“자, 입소식하러 연병장으로 향하자.”
“네!”
짧은 휴식을 뒤로 하고 1소대원들 전부 연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지정된 곳에 줄을 섰다.
그렇게 오상진과 소대원들은 유격 대장의 주관하에 입소식을 마쳤다.
그리고 잠깐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공포의 PT 체조 시간이 시작되었다.
유격의 꽃은 바로 PT 체조였다. PT 체조로 시작해서 PT 체조로 끝난다고 봐야 했다. 화생방도 힘들지만 그건 보너스 개념이랄까.
어쨌거나 최강철 이병은 자대 배치 후 처음 받아보는 유격 훈련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후 검은 모자를 쓴 교관이 단상에 올랐다.
“여러분 유격 훈련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교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지옥에서 올라온 저승사자로 불리고 있으며 여러분께서 본 교관의 말에 잘 따라와 준다면 순한 천사로 있을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누가 유격장에서 ‘네’라고 대답하나. 여기서는 모두 ‘악’으로 통일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그리고 여러분들은 계급이 없습니다. 올빼미로 통일합니다. 알겠습니까.”
“악!”
“목소리 봐라, 이것밖에 안 나옵니까.”
“악!”
“교관 뒤에 있는 산등성이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지게끔 악을 지릅니다. 알겠습니까!”
“악!”
“어쭈, 교관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지.”
“…….”
“초반부터 여러분의 모습 교관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뒤에 보이는 골대 보이십니까? 거기까지 선착순 5명!”
순간 후다닥 장병들이 뛰어갔다.
“슬슬 걷는 사람이 나옵니다. 안 뜁니까?”
장병들이 재빨리 달려와 교관 앞에 섰다.
“하나, 둘, 셋, 네, 다섯!”
“자, 다섯 명 뒤로 빠져! 빠지라고! 다시 선착순 5명! 뛰어!”
후다다다닥!
선착순을 3번 정도 더 하고서야 다시 줄을 섰다. 교관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교관이 다시 한번 말합니다. 저기 산이 들썩일 정도로 목소리를 냅니다. 알겠습니까.”
“악!”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교관이 다음 말을 이어갔다.
“본 교관은 여러분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단 두 가지!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목소리와 패기입니다. 알겠습니까.”
“악!”
“또 목소리 봐라.”
“악!”
“좋습니다. 그럼 5일간 여러분과 함께 할 조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조교 앞으로!”
그러자 12명의 조교가 줄지어 단상에 올랐다. 교관은 조교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께선 조교의 통제 잘 따라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까?”
“악!”
“좋습니다. 조교 위치로!”
교관의 한마디에 붉은 모자를 쓴 조교들이 일제히 단상을 내려가 각자 위치에 섰다.
“지금부터 PT 체조에 대해서 알려 주겠다. 시범 조교 앞으로.”
조교 두 명이 단상 위에 섰다. 그리고 1번 높이뛰기부터 시작해 악명 높은 8번 온몸 비틀기를 지나 마지막 반 뜀뛰기로 마무리를 하였다.
“유격!”
유격장에서는 모든 경례 구호는 ‘유격’으로 통일되어 있다. 오후의 땡볕 아래에서 구르면 땀과 먼지가 어울려 더욱 괴로워진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PT 체조를 실시하도록 하겠다.”
순간 연병장에 있던 장병들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무려 1시간 넘도록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닌 것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럼 간단히 PT 체조 1번! 준비!”
“악!”
1번 높이뛰기를 준비했다.
“본 교관의 구령에 맞춰서 한다. 최소 20회, 몇 회?”
“20회!”
“목소리 봐라. 몇 회?”
“20회!”
교관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지막 구령은 하지 않습니다. 19회 시작!”
삐삐빅! 하나! 삐삐빅! 둘! ……삐삐빅! 열여덟! 삐삐빅 열아홉!
“누굽니까. 마지막 구호 외친사람? 뒤로 열외!”
그러자 몇 명이 우르르 나갔다. 교관은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말했다.
“분명 교관이 말했습니다. 마지막 구호는 외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나왔습니다. 정신을 안 차리고 있다는 거죠. 다시 합니다. 1번 높이뛰기, 준비!”
“악!”
연병장에 있던 수백 명의 장병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10회, 몇 회?”
“10회!”
“8회 시작!”
삐삐빅 하나!
그렇게 PT 체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공포의 8번 온몸 비틀기 차례가 되었다.
“자, 다음은 8번 온몸 비틀기 준비!”
“악!”
장병들 모두 뒤로 벌러덩 누워서 팔을 벌리고 두 다리를 직각으로 올렸다. 시선은 자신의 혁대를 바라보았다.
“자세 갖춥니다. 누가 다리 구부리라고 했습니까! 다리 폅니다.”
“으으으윽.”
“윽!”
“으윽!”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관은 전혀 봐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분의 자세가 똑바로 잡혀야 진행시킵니다. 자세 바로 안 잡습니까.”
장병들은 인상을 쓰며 자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한두 사람 때문에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지금 장난합니까?”
“악!”
“장난하는 겁니까? 똑바로 안 합니까?”
“악!”
“좋습니다. 온몸 비틀기 15회, 몇 회?”
“15회!”
“목소리 그것 받게 안 나옵니까. 다시 15회!”
“15회.”
“14회 시작!”
삐비빅, 하나.
한 번 반복될 때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옆에서 닦달했다. 최강철 이병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으으윽.”
억지로 자신의 다리를 붙잡으며 용을 썼다. 하지만 점점 다리가 굽혀지고, 급기야 고개마저 땅바닥에 누워 버렸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조교가 나타났다.
“지금 뭐합니까. 다리 폅니다. 다리 폅니다.”
최강철 이병이 억지로 다리를 폈다.
“자세 바로 합니다. 고개는 어디를 보라고 했습니까. 시선 똑바로 합니다.”
조교는 최강철 이병 옆에 서서 얘기를 계속했다. 최강철 이병은 이때만큼은 제발 다른 곳으로 가 주길 원했다.
그의 옆에 있는 상병과 병장들은 느긋하기만 했다. 앞선 유격 훈련을 통해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도 다 노하우지.”
“네, 맞습니다.”
“오히려 열외 되는 것이 좀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이때는 열외가 답이다.”
군대에서 먹은 짬밥이 경험이 되어 이 순간 발휘되고 있었다.
그런데 고참들만큼이나 후임병 하나가 열외를 밥먹듯 했다. 바로 12번 올빼미, 강대철 이병이었다.
“12번 올빼미!”
“악!”
“조교 앞으로 옵니다. 이곳에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닙니까?”
“악!”
“다음에 저랑 만나지 않길 빕니다. 쪼그려 뛰기 준비, 20회 실시.”
그 모습을 1소대 고참들이 지켜봤다. 강대철 이병이 열외가 되는 과정에서 실실 쪼개며 웃고 있었다.
‘저 자식이…….’
딱 봐도 실수가 아닌 고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열외가 되어서 쉬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선임병들이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특히 김우진 상병은 더 그랬다.
“저 자식이…….”
물론 힘들면 열외를 통해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고참들도 그러하니까 그걸 따라 하는 신병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다만 지나치게 악용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어느 군대에서 고참보다 신병이 더 농땡이를 부린단 말인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김우진 상병은 점점 강대철 이병의 잘못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도 그러더니…… 언제 한번 진짜 손을 봐줘야겠네.’
그러는 와중에도 PT 체조는 계속됐다. 교관은 약 3시간가량 PT 체조를 진행했다. 모든 병사들의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힘도 점점 빠졌다.
“하아, 하아. 진짜 힘드네.”
최강철 이병도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지금 당장에라도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 뒤에서 이해진 일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참아. 넌 할 수 있어.”
“네.”
그 말이 격려가 되었을까? 최강철 이병은 또다시 힘을 냈다. 한편, 열외에서 다시 돌아온 강대철 이병은 슬슬 화가 났다.
‘X팔! 내가 이따위 것을 왜 받고 있어야 하지? 그냥 도망쳐? 아놔, 짜증 나네.’
이 감정이 점점 쌓이더니 나중에는 악이 되고, 깡이 되어버렸다.
‘그래, 시팔! 누가 이기는지 한번 두고 보자. 젠장, 끝까지 한번 가 본다.’
교관은 단상에 서서 낮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집니다. 그것밖에 안 나옵니까?”
“악!”
조교는 연신 농땡이 부리는 장병들을 찾아 뒤로 열외를 시켰다.
“지금 장난합니까? 뒤로 열외!”
“누가 마지막 구호 외쳤나. 뒤로 열외!”
이런 순번이 반복되었다. 나중에 장병들의 눈에는 독기밖에 남지 않았다. 몇몇은 벌써부터 목이 쉬는 장병들이 나오기까지 했다.
삐이이익!
“40번 올빼미 기준!”
“기준!”
“헤쳐 모여!”
“악!”
20열 종대로 헤쳐 모였다. 먼지가 자욱하게 휘날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교관은 자신을 바라보는 악에 받친 눈빛을 보며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본 교관은 여러분의 그 눈빛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앞으로 5일 동안 계속해서 그 눈빛을 교관에게 보여주기 바랍니다.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상!”
“교육대장을 향해 경례!”
“유격!”
그렇게 첫날 유격 훈련과 악에 받치는 PT 체조가 끝이 났다.
장병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자신들의 텐트로 돌아갔다.
그들의 전투복은 이미 흙먼지에 범벅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고생들 했다. 고생했어.”
서로를 격려하며 돌아오는 길에 한 사람이 가래를 내뱉었다.
“까아아악, 퇫!”
최우석 상병이었다.
“와, X발. 봤냐? 가래를 뱉었는데 먼지 봤냐?”
“네, 빨리 씻고 싶습니다.”
그때 뒤에서 오상진이 나타났다. 오상진 역시 엄청 뒹굴렀는지 지친 얼굴이었다.
“와, 오랜만에 PT 체조 하니까. 죽겠네.”
오상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소대원들 앞에서 지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자자, 오늘 고생들 했다. 저 밑에 간이 샤워장에서 빨리 샤워를 마친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각자 텐트로 돌아가 현재 입고 있던 민무늬 전투복을 벗고 텐트 줄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 활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세면 가방을 들었다.
“자, 빨리 가자!”
“네!”
샤워를 마친 후 다시 텐트로 복귀했다. 그리고 곧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 식판과 반합을 들고 야외 취사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