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81화
18장 신병 받아라!(13)
5분 동안 걸어가자, 곧바로 수신호가 들려왔다.
“꼼짝 마, 손들어! 태양, 태양.”
“달.”
“누구냐?”
“근무자!”
“용무는?”
“근무교대!”
“세 발 앞으로.”
이해진 일병이 손을 든 채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뒤를 최강철 이병이 따라 움직였다.
최강철 이병은 탄약고 근무도 처음이지만 근무교대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충성,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해진 일병이 경례를 했다. 전 근무자는 김일도 상병과 한태수 일병이었다.
“그래, 고생들 해라.”
“네. 충성!”
이해진 일병이 경례를 하고 최강철 이병은 그 뒤에 섰다.
“강철아, 근무 서자.”
“네.”
원래 정 자세 근무라면 개머리판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우고 똑바로 선 자세로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FM대로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걸어오는 방향 알지?”
“네, 그렇습니다.”
“그곳을 잘 봐. 언제 어느 때 순찰이 올지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최강철 이병은 눈을 부릅뜨고 그곳을 응시했다. 이해진 일병은 총을 한곳에 세워놓고 편안한 자세로 있었다.
“강철아.”
“이병 최강철.”
“자대에 온 지 얼마나 되었지?”
“10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어때? 할 만하냐?”
“…….”
최강철 이병은 바로 말을 하지 못했다. 이해진 일병이 이해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하긴. 할 만하겠냐. 힘들고 지치지. 그래도 버텨라, 버티면 분명 좋은 날이 온다.”
“네.”
“그보다 아직도 유격할 걸 생각하면 무섭냐?”
“지금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나 그 생각뿐입니다.”
“강철아. 내 말 잘 들어. 이등병 때는 말이야. 그냥 고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자기 주장도 펼치지 마. 그럼 무난하게 이등병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거야.”
“네.”
“이러는 내가 너무하다 싶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이해진 일병은 자신의 겪었던 그대로를 최강철 이병에게 전해 주었다. 자신도 얼마 전까진 이등병이었기 때문에 이등병으로 고참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었다.
“그건 그렇고, 솔직히 말해봐. 누가 가장 싫냐?”
“네?”
“아니, 우리 내무실에서 누가 가장 싫어?”
“어, 없습니다.”
“없긴! 솔직히 말해봐, 괜찮아.”
순간 최강철 이병은 갈등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끝까지 없다고 우겨야 하나? 최강철 이병은 결국 후자 쪽을 선택했다.
“진짜 없습니다.”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혹시 나는 아니지?”
“아, 아닙니다!”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봐.”
“절대 아닙니다!”
“생각보다 잘 안 넘어오네?”
“네?”
“아니야. 그보다 두 시간 근무 서는 거 지루하지 않냐?”
“저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루해, 인마. 너 밖에서 뭐 했냐?”
“대학생이었습니다.”
“오오, 대학생! 어느 학교?”
“고구려 대학입니다.”
“뭐? 고구려? 너 공부 좀 했구나.”
이해진 일병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최강철 이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야, 고구려 대학은 한국대, 영세대 다음으로 알아주는 곳이잖아. 새끼, 공부 좀 했네.”
최강철 이병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해진 일병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좀 웃어라. 너 자대 배치받고 웃는 걸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말이야.”
“제가…… 그랬습니까?”
“그래!”
“몰랐습니다. 다만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말입니다.”
“알아, 이등병 때는 다 그러니까. 아무튼 이제 좀 웃고 살자! 그보다 너 누나나 동생 있냐?”
“누나가 있습니다.”
“그래? 몇 살이야?”
“저보다 8살 많습니다.”
“뭐? 8살이나 많아? 그럼 나보다 7살 많다는 거잖아.”
이해진 일병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들며 다음 질문을 했다.
“그래서 예뻐?”
“제가 보기에는 별로입니다.”
“그래? 다른 사람은 뭐라고 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야, 넌 누나에 대해서 아는 게 뭐냐?”
“으음, 그냥 누나다. 용돈을 잘 준다. 그 정도입니다.”
“자식이 누나에 대해서 너무 무신경하네. 혹시 사진은 있어?”
“아뇨, 없습니다.”
“없어? 나중에 누나 사진 좀 보내달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이야…….”
이날 최강철 이병은 이해진 일병이 말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탄약고에서 바라본 밤하늘에 별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그렇게 군대에서의 또 하루가 지났다.
그다음 날.
김대식 병장은 오상진의 부름을 받고, 행정반에 나타났다.
“충성, 병장 김대식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상진이 김대식 병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와 김 병장. 일단 나랑 나가자.”
“네.”
김대식 병장은 오상진을 따라 PX에 갔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아니면 시원한 캔 커피?”
“캔 커피로 하겠습니다.”
오상진은 캔 커피 두 개를 사서 PX 밖에 있는 벤치로 갔다. 나무 그늘이 있어 앉아 있으면 시원했다.
“자, 마셔!”
“감사합니다.”
오상진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입을 열었다.
“대식아, 너도 이제 말년이다. 제대 며칠 남았니?”
“아마 20일 좀 넘게 남았습니다.”
“그래? 이제 다 되었네. 내가 자대 배치받은 지 몇 개월도 안 되었는데, 넌 벌써 제대라니…….”
오상진은 감회가 새로운 듯 피식 웃었다.
“내가 자대에 왔을 때 대식이 넌 상병이었나?”
“네, 맞습니다. 제가 상병 때 소대장님께서 오셨지 않습니까.”
“그러네.”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참 대식아. 하나만 물어보자.”
“네. 말씀하십시오.”
“네가 기억하는 나는 어땠어? 처음에 말이야.”
오상진의 물음에 김대식 병장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왜 그런 것을 물어보십니까.”
“궁금해서 그래. 어땠어? 솔직히 많이 어리바리했지?”
“……솔직히 말씀드립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봐.”
“어느 소대장님이든 처음은 다 그렇죠. 우리 이등병 때나 다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대장님께서 확 달라지셨습니다.”
“그래? 어느 때부터?”
“제가 병장 달고 얼마 안 있었으니까. 아마 4월, 5월쯤이었나?”
김대식 병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상진이 눈을 반짝였다.
‘맞아. 그때 내가 회귀했을 때지.’
오상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어떻게 바뀌었지?”
“으음, 그냥 확 바뀌었습니다. 그 전에는 뭐든지 무관심해 보였습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지더니, 내무실에 관심도 가지고, 멧돼지 사건도 그렇고…… 아무튼 좋은 쪽으로 바뀌셨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전에는 형편없었다는 거네.
“그, 그건…….”
“알아, 인마. 내가 처음에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말이야.”
“그래도 지금은 정말 좋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상진도 미소를 지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소대장도 대식이 네가 정말 맘에 든다. 솔직히 대식이 너 때문에 내가 많이 편해진 것도 사실이지.”
“그리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소대장님이 좋습니다.”
“좋아해 주니 나도 좋네. 이참에 너 제대하면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라.”
“정말 그래도 됩니까?”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편하게 해.”
“네. 알겠습니다.”
김대식 병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오상진도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대하면 뭐할 생각이야.”
다 마신 캔 커피를 내려놓으며 오상진이 화제를 돌렸다.
“일단 복학부터 할 생각입니다.”
“그래? 전공이 뭔데?”
“컴퓨터 학과입니다.”
“오오, 그래? 프로그래밍 같은 것도 할 줄 알아?”
“네. 조금.”
“짜식. 대단한데? 여자 친구는?”
“헤어졌습니다.”
김대식 병장이 씁쓸하게 웃었다.
“언제 헤어졌는데?”
“상초 때 헤어졌습니다.”
“너도 일말 상초를 이겨내지 못했구나.”
“네.”
“힘내, 세상에 여자는 많다.”
“그럼 소대장님께서 소개시켜 주시면 안됩니까?”
“내가? 뭐……. 알았어. 내가 나중에 한번 알아볼게.”
오상진이 살짝 머뭇거리자 김대식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됐습니다. 그냥 한번 해본 소리입니다.”
“아니야, 진짜 해줄게.”
“괜찮습니다.”
“자식……. 그건 그렇고 소대장이 널 보자고 한 이유는 너 이번에 말년 휴가 취소했더라.”
“네.”
본래 김대식 분대장은 다음 주부터 말년 휴가를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유격 훈련 일정이 잡히자 말년 휴가를 취소해 버렸다. 유격 훈련에 참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말년에 유격 훈련은 쉽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빠지면 1소대를 이끌 사람이 없습니다.”
“일도가 있잖아.”
“일도도 조만간 병장을 달지만 아직은 힘들 겁니다. 원래라면 상식이가 책임을 져야 했지만 없기 때문에 일도의 부담감이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가 분대장인데 그 책임을 나눠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대식 병장의 말을 듣고 오상진은 눈을 크게 떴다.
세상에 이런 병사가 또 어디 있을까.
어떻게든 힘든 훈련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써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김대식 병장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 기특하기만 했다.
“이래서 내가 김 병장을 좋아해. 너처럼 이런 생각을 가진 장병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닙니다.”
“고맙다. 분대장으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오상진이 솔직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솔직히 저도 최 병장이랑 강 상병에 짓눌러 있었는데, 소대장님 때문에 저도 당당히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 점은 아직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저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짜식. 아무튼 고맙다.”
두 사람이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대식이 네가 내가 소대장으로 부임하고 첫 제대시키는 병장이다.”
“어? 진짜 그렇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 대식아 남은 군 생활 잘해보자.”
“네.”
“그리고 너 다음이 김일도 상병이지? 일도도 잘 챙겨주고.”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제대 전날 소대장이랑 술 한잔하자!”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오상진과 김대식 병장은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눴다.
14.
지이잉.
김대식 병장과 헤어진 후 행정반으로 향하던 오상진의 핸드폰이 무겁게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뭐 해요?
한소희에게서 온 문자였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지금 통화 괜찮아요?
한소희의 목소리가 핸드폰을 타고 귓가에 울렸다.
“네. 괜찮습니다. 소희 씨는요?”
-저도 수업 끝나고 쉬고 있었어요.
“제가 딱 맞춰서 전화했네요.”
-상진 씨는 뭐 하고 있었어요?
“다음 주에 있을 훈련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 그래요? 통화 오래 못해요?
“아뇨, 지금은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