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78화
18장 신병 받아라!(10)
“쓸데없이 방황하지 말고 내무실 들어와서 좀 쉬어. 오늘 저녁 점호는 아무래도 총기 수입일 것 같다.”
“네.”
그렇게 최강철 이병이 내무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강대철 이병이 김우진 상병과 함께 나왔다.
“어? 왔냐?”
“그래.”
“나 전화 사용하러 가는데 너도 갈래?”
최강철 이병이 김우진 상병을 보았다. 김우진 상병이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인마, 전화 통화는 네가 사격을 잘해서 상으로 주는 거야.”
“아, 그렇습니까?”
강대철 이병이 몰랐다는 듯 말을 하고는 최강철 이병을 봤다.
“미안하다. 포상으로 전화할 수 있게 해준다는 거였네.”
그러면서 히죽 웃는 강대철 이병의 얼굴이 정말 재수 없었다.
“괜찮아. 전화하고 와.”
그렇게 내무실로 들어갔다. 이해진 일병이 다가왔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화할 수 있게 해줄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강철 이병이 애써 웃었다. 지금 괜히 집에 전화를 했다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해진 일병은 또 한 번 가볍게 최강철 이병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김대식 병장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최강철.”
“이병 최강철.”
“너 담배 피우냐?”
“네, 그렇습니다.”
“그럼 나랑 담배 피우러 가자.”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대식 병장과 함께 최강철 이병이 휴게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강대철 이병이 신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밖에는 김우진 상병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충성. 담배 피우러 오셨습니까?”
“그래.”
김대식 병장이 담배를 꺼내 최강철 이병에게 줬다.
“자, 피워!”
“이병 최강철, 감사합니다.”
불을 붙여 한 모금 내뱉었다.
“후우.”
김대식 병장이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담배 다 피우고 나서 너도 전화 한 통 해.”
그러면서 전화카드를 내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전화해. 네 동기만 하고 넌 안 하면 서운하잖아.”
김대식 병장이 내민 전화카드를 봤다. 최강철 이병은 계속 거절할 수 없어 전화카드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때마침 전화를 마친 강대철 이병이 왔다. 김우진 상병이 말했다.
“통화 다 했냐?”
“네.”
“가자.”
강대철 이병이 힐끔 최강철 이병을 봤다. 마치 왜 여기에 내려와 있는지 물어보는 듯했다. 그때 김대식 병장이 말했다.
“가서 전화하고 와.”
“네.”
최강철 이병이 급히 담배를 끄고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수화기를 들고 카드를 넣었다. 집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에게 걸자.’
최강철 이병이 누나 핸드폰으로 걸었다.
-네, 최강희입니다.
“누나, 나, 강철이.”
-야, 최강철!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전화해도 돼?
“군대 선임이 전화시켜줬어.”
-그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없어. 그냥 잘 지내고 있어. 누나는?”
-으응, 아직 회사. 야근 중이야.
“그렇구나.”
최강희는 야근을 하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자료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솔직히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동생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는 정도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거니?”
-응. 잘 먹고 있어.
“정말 별일 없는 거지?”
-없어.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자대 배치받고 좀 힘들어서 그래.
“군 생활 어때? 해볼 만해?”
-해볼 만하긴. 군 생활 힘들어. 진짜 힘들다고.
“에고. 우리 강철이 고생이 많네. 그래도 조금만 버텨. 이런 말,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금방 갈 테니까.”
-알았어, 누나.
“참, 누나가 언제 시간 내서 면회 한번 갈까?”
-됐어! 누나가 여자 친구도 아니고 뭐하러 와?
“얘는? 누나 아직 안 죽었다. 혹시 아니? 누나 때문에 군 생활이 편해질지.”
최강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최강철 이병은 최강희의 농담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아이고 됐습니다. 그리고 나 이제 끊어야 해.
“벌써?”
-원래 신병은 오래 통화 못 해.
“그럼 엄마한테 전화하지.”
-아니야. 그냥 누나 목소리 들어서 됐어. 엄마한테는 내가 전화했다는 거 말하지 마.
“응, 그래. 알았어.”
-나중에 또 전화할게.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다. 최강희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말투인데…….”
그때 결재를 맡기 위해 김 대리가 들어왔다. 김 대리는 표정이 굳어진 최강희를 보며 물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김 대리, 원래 군대 처음 가면 다들 힘드나요?”
“힘들죠, 당연히 군대라는 것이 초반에 적응하지 못하면 좀 괴롭습니다. 그런데 아는 분이 군대 가셨습니까?”
“제 동생이 이제 막 자대 배치받았거든요. 그런데 목소리에 풀이 잔뜩 죽어 있던데.”
그 말을 들은 김 대리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뗐다.
“혹시 부대 안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적응? 우리 강철이 그런 성격은 아니에요.”
그러자 김 대리가 피식 웃었다.
“군대는요. 성격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곳에 어떤 놈들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이상한 고참을 만난다면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이상하게 변합니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동생분께 물어보면 말할 것 같습니까?”
“아뇨, 전혀요.”
“그럼 팀장님께서 직접 부대를 찾아가서 담당 소대장님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럼 너무 유난 떠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도 방치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하긴 그렇겠네요. 고마워요. 아, 그거 결재 서류죠?”
“네. 여기!”
김 대리가 결재 서류를 내밀었다.
그다음 날 오상진은 오전 일과를 마무리하고 전투모를 챙겼다.
“점심 드시러 가시죠.”
“네. 좋죠.”
4소대장이 먼저 대답을 했다. 3소대장과 2소대장도 전투모를 챙겼다. 그때 행정반으로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
“제가 받겠습니다.”
오상진이 재빨리 전화기를 들었다.
“통신보안 충성대대 1중대 오상진 소위입니다.”
-통신보안, 위병소입니다. 오상진 소위님 되십니까?
“네, 제가 오상진 소위입니다.”
-지금 위병소에 오 소위님을 만나러 오신 분이 계십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최강희 씨라고 여성분입니다.
“최강희? 어? 어디서 이름을 들어본 것 같은데. 확실히 오상진 소위라고 했습니까?”
-네. 충성대대 1중대 1소대장 오상진 소위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맞는데. 알겠습니다. 곧 내려가겠습니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아무래도 점심은 같이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위병소에 누군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서 가 보십시오.”
“네.”
오상진이 서둘러 위병소로 내려갔다. 그리고 면회소에 들어가니 아리따운 여성분 혼자 앉아 있었다.
“혹시 최강희 씨?”
“오상진 소위님?”
“네. 제가 오상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는지…….”
“저는 최강철 누나 되는 사람입니다.”
“아…….”
그제야 오상진은 책상 서랍 속 명함이 떠올랐다.
‘맞아, 최강희 서진그룹 홍보 팀장으로 되어 있었지.’
오상진은 표정을 고치고 맞은편에 앉았다. 최강희도 생각보다 멀끔한 오상진의 외모에 미소를 지었다.
“제가 오 소위님 연락처라도 알면 미리 연락을 드렸을 텐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하네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동생을 군대 보내고 나니까 걱정이 되어서요.”
최강희가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동생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자대 배치받은 지 일주일도 안 지났습니다. 지금 한창 적응 중입니다.”
“사실 저도 동생이 잘 적응을 했으면 좋겠는데, 어제 전화가 와서 통화를 잠깐 했거든요. 그런데 목소리가 많이 어두웠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순간 오상진도 움찔했다. 최강희가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니라면 최강철 이병에게 무슨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딱히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소대장으로서 제대로 신경을 써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부대 복귀하면 바로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별일 아닐 수도 있는데 제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오히려 죄송하네요. 다만 살면서 강철이 목소리가 그랬던 건 처음이었거든요.”
“어떤 느낌이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버지에게 혼이 나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많이 힘든 것 같았어요.”
“아직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하기 힘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누나분께서 걱정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조금 더 신경 쓰겠습니다.”
오상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래 병사들이 가족들 앞에서 많이 약해지긴 하지만 친누나인 최강희가 놀라서 달려올 정도였다면 자신이 직접 나서서라도 도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해요.”
“아닙니다. 소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
“저기, 괜찮으시다면 연락처 좀 알려 주실 수 있어요?”
“제 연락처 말입니까?”
“네. 실례일까요?”
“실례는 아니지만…….”
오상진이 왜 그러시냐고 묻는 듯했다. 최강희가 조용히 말했다.
“가끔 제 동생 일로 전화를 드려도 될지 싶어서요. 사적으로 연락해서는 안 되는 거라면 제가 죄송하고요.”
“아닙니다. 제 연락처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최강희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이건 제 명함이에요.”
“아, 네. 이건 안 주셔도 될 거 같습니다.”
“네?”
“예전에 최강철 이병에게 받았거든요.”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기억력이 좋은 최강희는 그 말을 단번에 알아챘다.
“아, 그럼 교통사고로 명함을 줬다는 분이 바로 오 소위님 이셨어요?”
“하하.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왜 연락을 안 주셨어요?”
“뭐, 뒷 범퍼만 살짝 찌그러진 정도였거든요.”
“그래도 수리비가 나왔을 텐데요. 계좌 번호 알려주시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말 수리비가 많이 나왔다면 저도 아마 연락 드렸을 겁니다. 그리고 최강철 이병 차가 더 망가졌을 겁니다.”
“제가 듣기로 우리 강철이가 100퍼센트 잘못했다고 하던데요?”
“그냥 살짝 부딪친 정도였습니다. 사고 난 이후로 직접 사과하고 책임지려는 최강철 이병의 모습도 맘에 들었고요.”
“아, 그랬군요. 저희 강철이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살짝 긴장했던 최강희의 얼굴이 비로소 풀어졌다.
어쩌면 오늘 본 오상진의 모습이 전부 가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최강철에게 들었을 때 최강희는 분명 귀찮은 전화가 걸려올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최강철이 훈련소에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며칠 간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오상진을 직접 만나고 나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동생을 맡겨 놓고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요.”
최강희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내자 오상진이 곧바로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