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66화
17장 체육대회는 끝이 났지만(6)
순간 한소희는 헛웃음이 났다.
“자주 못 만나는 거 아닌데? 우리 이번 주말에도 만나기로 했는데.”
“뭐? 또 만나? 휴가가 긴가? 그 뭐냐, 상이라도 받았어요?”
안경을 쓴 여자가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휴가는 아니고, 잠깐 외출한 겁니다.”
“외출? 군인이 외출도 가능한가?”
“그러게.”
한소희는 두 군알못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들은 군대에 별 관심이 없으니 잘 모르는 것까진 이해하지만 자신들이 아는 게 전부인 것처럼 함부로 떠들어대는 건 꼴불견이었다.
“우리 상진 씨는 병사가 아니고, 장교야. 그래서 가끔 외출도 나오고, 주말이면 얼굴도 볼 수 있어.”
“장교? 장교가 뭐래?”
“좀 높은 병사인가?”
“나도 모르겠는데.”
여자 동기들이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그것도 오상진이 빤히 보는 앞에서 바보 짓을 하니 한소희는 그저 기가 막혔다.
“그냥 말을 말자.”
“그건 그렇고 그쪽은 대학은 나왔어요? 아니면 휴학인가?”
“육사 나왔어.”
“육사는 뭐야?”
“육군 사관학교 몰라?”
“육군 사관학교? 들어봤어?”
“민사고는 들어봤어도 육사는 처음인데? 새로 생긴 지방대인가?”
두 사람은 또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상진은 육군 사관학교가 어떤 곳인지 차분히 설명해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한소희는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여기에 더 있다간 울화통이 터지겠어요. 우리 가요, 상진 씨.”
“어어, 네네…….”
“혜선아. 나중에 봐.”
“그래. 데이트 잘해.”
한소희가 팔짱을 끼며 오상진을 데리고 갔다. 그러자 안경 쓴 여자가 소리쳤다.
“야, 육사가 어디 있는 대학이냐니까?”
“몰라, 네가 찾아봐.”
두 사람은 멀어지는 한소희의 뒷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야, 잘난 척은!”
“저년은 자기 잘난 맛에 살잖아. 재수 없어.”
“딱 보니까 창피해서 도망친 거야. 어디인지도 모르는 지방대잖아.”
“쟤는 어쩌다 저런 남자를 만난 거니?”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어대는 두 동기를 보며 임혜선도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들 진짜 육군 사관학교가 뭔지 몰라?”
“뭐야, 너는 알아?”
“그래. 말해봐. 어딘데?”
“하아. 됐다. 말을 말자.”
그때 저 멀리 동아리 선배가 지나가고 있었다.
“오빠, 상철이 오빠!”
박상철이 다가오는 여자 후배를 보며 말했다.
“왜? 나 밥 먹었다. 너희 커피 사줄 돈도 없어.”
“에잇. 누가 보면 우리가 만날 밥 사달라 커피 사달라 하는 줄 알겠네.”
“사실이잖아.”
“그것보다 오빠, 혹시 육사라고 알아요?”
“육사? 혹시 육군 사관학교?”
“오올! 알아요?”
“당연히 알지. 거기 모르는 사람도 있냐?”
“혹시 거기 지방대예요? 난 처음 들어보는데?”
통통하게 생긴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박상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너희 육사를 몰라?”
“네.”
“육군 사관학교는 우리나라 장교들을 배출하는 학교야. 아마 거기 가려면 고등학교 때 못해도 전교에서 10등 안에는 들어야 할걸?”
박상철의 말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정말요?”
“그래!”
“근데 전교에서 10등 하고 왜 그런 곳을 가요?”
“이유야 많은데 일단 거기 졸업하면 장교로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그리고 학비가 면제라 가정 형편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가려고 하고.”
“그러니까 돈 없으면 가는 곳이라는 거죠?”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혜택이 좋다는 거야. 내 친구의 친구에게 들었는데 자기 친구가 육사에 지원을 했대. 그 이유가 4년 내내 장학금이 나온다고 해서 간 거래.”
박상철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말에 꽂혀 있었다.
“소희 남친도 잘 못 사나?”
“그럴 수도 있겠지.”
“설마 소희 돈 보고 만나는 건가?”
“에이. 그럴 거면 호빠를 가지 뭐하러 군인 남친을 만나냐?”
“그래도 제법 괜찮게 생기지 않았어?”
“부러운 년!”
두 친구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걸어갔다. 박상철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래 흔들었다.
한편, 오상진과 한소희는 팔짱을 낀 채 영세대 캠퍼스를 거닐고 있었다.
“상진 씨. 혹시 영세대에 와본 적 있어요?”
한소희가 물었다.
“예전에 한 번요.”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순간, 한소희의 발걸음이 뚝 하고 멈췄다.
“예전에 한 번 언제요?”
오상진과 사귀게 된 이후에도 한소희의 질투는 실시간으로 발동했다.
“예전에 대학 원서 넣을 때 서울 시내 몇몇 학교 돌아본 적 있어요.”
오상진이 냉큼 변명했다.
“그래요?”
잠시 오상진의 표정을 살피던 한소희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이었지, 아마. 육사에 입교하기 전 고구려대와 영세대 캠퍼스를 한 번 돌아다녔었는데.’
가정 형편 때문에 육사에 지원 원서를 넣은 오상진은 고구려대와 영세대 캠퍼스를 와봤다. 원래 육사를 가지 않았다면 이 두 곳 모두에 원서를 넣었을 터라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때 육사 말고 이 두 곳에 원서를 넣었다면 또 어땠을까?’
과거로 회귀한 오상진의 시점에서는 20년이 훌쩍 지난 옛 일이었다. 하지만 회귀를 해서일까. 실제로는 4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그때랑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았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말에 모순을 발견하고 또 웃었다.
‘맞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거지?’
한소희가 힐끔 오상진을 바라봤다. 오상진이 웃고 있자 바로 물었다.
“뭔데요? 무슨 생각해요? 혹시 다른 여자 봤어요?”
“그게 아니라, 예전 생각이 나서 그랬습니다.”
“뭐예요. 혹시 나 말고 영세대에 숨겨둔 여자 친구 있었던 거 아니죠?”
“있죠, 숨겨둔 여자 친구!”
“네?”
한소희의 눈이 치켜 떠졌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잖아요. 바로 내 옆에!”
“뭐야.”
한소희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졌던지 한소희는 오상진을 끌고 캠퍼스 이곳저곳을 소개시켜 주었다.
“저기가 바로 제가 강의 듣는 곳이고요. 저기는 도서실, 그리고 저기는…….”
솔직히 오상진은 영세대 캠퍼스에 대해서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와보기도 했고 이제 와 다시 본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한소희의 학교라고 해서 마지못해 따라다니고 있긴 하지만 머릿속에 남을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것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짧아 보이는 한소희의 미니스커트였다. 거기에 하이힐까지 신고 있으니 괜한 고생을 시키는 기분이었다.
“소희 씨, 발목 안 아파요?”
“발목요? 왜요?”
“아니, 하이힐이 너무 높은 거 같아서요.”
“괜찮아요. 이 정도면 누구나 신고 다녀요. 보세요, 여자들은 다 신고 다니죠?”
한소희가 주변 여자들을 가리켰다. 실제로 상당수가 하이힐을 신고 다녔지만 한소희처럼 굽이 높은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 저쪽에 앉아서 좀 쉴까요?”
“그래요.”
오상진의 제안에 한소희는 군말 없이 벤치로 가서 앉았다.
“좀 오래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긴 하네요.”
한소희가 배시시 웃으며 다리를 주물렀다.
“나 오늘 괜히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나?”
그러고는 오상진만 들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말했으니 업어주려나?’
한소희가 내심 기대를 했다. 그러나 눈치 없는 오상진은 그걸 또 다르게 착각을 했다.
“으음, 그럼 우리 학교 구경 그만하고 우리 어디 좀 가요.”
“어디요?”
“따라와 보면 알아요.”
오상진이 한소희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갔다.
“타세요.”
“어? 이 차는 뭐예요?”
“지난번에 통화로 얘기했던 중고차요.”
“아, 지난번에…….”
한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구경했다. 다행이 뒤에 교통사고가 났던 곳은 이미 깔끔하게 수리를 마친 상태였다.
“어? 괜찮네.”
한소희가 오상진 차를 쭉 훑더니 말했다. 그리고 조수석에 올라타며 말했다.
“저 옆자리에 앉아도 되죠?”
“그럼요.”
한소희는 미리 마련된 쿠션에 만족감을 나타내며 안전벨트를 맸다.
“그럼 출발합니다.”
오상진이 차를 몰았다. 한소희가 차량 내부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불쑥 물었다.
“혹시 이 차에 나 말고 누가 또 탔어요?”
“후후, 여자는 소희 씨가 처음입니다.”
“어멋, 진짜요? 어머님도 안 타셨어요?”
“네.”
“오홍, 이 차 은근히 맘에 드네.”
한소희 대답에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차는 어딘가를 향해 출발했다.
7.
오상진의 차가 도착한 근처 백화점이었다.
“어? 백화점이네. 여기서 밥 먹게요?”
한소희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러자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 뭔데요?”
“일단 올라가요.”
오상진은 한소희를 데리고 유명 신발 브랜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네. 제 여자 친구가 신을 건데 혹시 맞는 신발 있을까요?”
“어떤 것을 원하세요?”
“운동화요.”
오상진의 말에 한소희가 살짝 표정을 굳혔다.
‘이 남자 뭐야? 내가 하이힐 신고 다녀서 맘에 안 들었던 거야? 칫, 그냥 말로 하지. 그런데 사귄다고 벌써부터 간섭하려고 하는 걸까? 그럼 조금 실망인데.’
한소희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때문일까. 무작정 간섭하는 남자는 질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소희는 오상진이 좋았다.
‘뭐, 그래도 상진 씨가 나 생각해 준 건데 티 내지 말자.’
한소희는 속으로 생각한 후 오상진을 바라봤다.
“상진 씨가 사 주는 거예요?”
“그럼요.”
“그럼 비싼 거 골라야겠다.”
“가격 신경 쓰지 마시고 소희 씨 맘에 드는 거로 고르세요.”
한소희가 피식 웃고는 신발을 구경했다. 그러다 맘에 드는 운동화 하나를 골랐다.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됐다는 최신상품이었다.
“이걸로 할게요.”
“어머나 고객님 역시 보는 안목이 있으세요. 이게 며칠 전에 나온 따끈따끈한 최신상품이거든요.”
“바로 신어볼 수 있죠?”
“네.”
종업원이 곧바로 신발을 가져다줬다. 한소희가 운동화를 신은 후 자신의 발을 거울에 비춰봤다.
“나쁘진 않네요. 이 옷차림이랑 안 어울리지만.”
“어머, 아니에요. 고객님처럼 미니스커트에 운동화 신고 다니는 사람 많아요.”
“그래요?”
한소희는 피식 웃었고 종업원은 물주인 오상진을 바라봤다.
“이걸로 하시겠어요?”
“네.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어 하니까 이걸로 주세요.”
“그럼 결제는 어떻게…….”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상진이 잠시 신발을 보더니 종업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남자 것도 있죠?”
“물론이죠. 커플로 신으시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종업원이 서둘러 매장 창고로 가서 신발을 꺼내왔다. 색깔만 약간 다를 뿐 디자인은 똑같았다.
오상진은 전투화를 벗어 운동화를 신어봤다.
“소희 씨 이거 어때요?”
한소희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물었다.
“뭐예요?”
“혹시 커플 신발은 별로입니까?”
오상진이 오히려 되물었다.
“그게 아니라, 이런 것이라면 미리 얘기를 해주시지. 그럼 내가 상진 씨 것까지 생각해서 골랐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