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65화
17장 체육대회는 끝이 났지만(5)
-됐어요! 그보다 저 상진 씨하고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뭘 하고 싶은데요?”
-내 친구들은 CC라서 같이 학교에서 밥도 먹고 그러거든요.
한소희가 슬쩍 운을 뗐다. 남들 연애하는 거 다 따라 할 생각은 없지만 대학생으로서 오상진과 오붓하게 캠퍼스 데이트를 해보고 싶긴 했다.
“그럼 토요일 날 학교 가요. 밥도 먹고, 구경도 시켜주고 그래요.”
오상진이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당장 해외여행을 가자는 것도 아니고 캠퍼스 데이트가 딱히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대답해서일까.
-에이, 무슨 학교에요. 됐어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
한소희는 김이 빠져 버렸다.
“왜요?”
-아니에요. 그냥 토요일 날 봐요.
“그래요…….”
한소희가 전화를 끊었다. 오상진은 끊어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목소리가 좋지 않은데……. 내가 실수했나?”
오상진은 수건을 든 채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소희가 말하는 걸 봐서는 캠퍼스 데이트를 하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토요일이라서 그러나? 하긴 토요일은 강의가 없으니까 느낌이 좀 다르긴 하겠구나. 그럼 평일? 평일은 시간 빼기가 쉽지 않은데…….”
오상진이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혹시 친구들에게 날 소개시켜 주고 싶었던 건가? 그럼 진즉에 말을 하지. 아무튼 여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낸 오상진은 씩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조만간 서프라이즈를 한번 해줘야겠네.”
시원한 물에 샤워를 마친 오상진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책상에 앉았다. 그때 책상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이 울렸다.
“소희 씨인가?”
오상진이 냉큼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오상진의 기대와는 달리 부동산에서 온 연락이었다.
“네. 여보세요. 오상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으뜸 부동산 한 사장입니다.
“네. 한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전에 부탁하셨던 가게 자리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괜찮은 곳이 나왔나요?”
-몇 군데 나왔는데 아무래도 한 번 보시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없어도 내야죠. 혹시 내일도 가능할까요?”
-내일 오시면 저야 좋죠.
“일정을 확인해 봐야 하니까 내일 오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오상진이 전화를 끊고 중얼거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으니까. 그보다 중대장님께서 외출을 허락해 줄지 모르겠네.”
그다음 날 오상진은 곧바로 중대장실을 찾았다.
“충성, 좋은 아침입니다.”
“오오, 상진아. 좋은 아침! 그래 아침 일찍부터 무슨 일이야?”
“저 오늘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을 했으면 합니다.”
“외출?”
“네.”
“너는 일과 없고?”
“이제 곧 유격훈련이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전에 부대 정비를 하고, 정신교육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래? 알았어. 갔다 와. 체육대회 때 고생했는데 외출하고 싶으면 보내줘야지.”
김철환 1중대장은 대수롭지 않게 외출을 허락했다.
솔직히 식사를 핑계로 바깥 일을 보는 간부들도 적지 않은데 오상진 정도면 양반이었다.
“감사합니다.”
오상진이 인사를 하고 중대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은 뒤에 다시 한소희에게 톡을 보냈다.
-소희 씨. 오늘 뭐 해요?
-뭐 하긴요. 강의 듣죠.
-오늘 오후에 수업 있어요?
-오후요? 왜요?
-그냥요. 우리 소희 씨 뭐 하나 궁금해서요.
-1시에 하나 있어요. 2시쯤 끝나고요.
-그 이후에는 없어요?
-네. 그런데 왜요?
-아니에요. 알겠어요. 수업 잘 들어요~
오상진은 휴대폰을 주머니 속에 넣고 피식 웃었다.
“설마 내가 오늘 학교에 갈 줄은 상상도 못 하겠지.”
자신을 본 한소희가 깜짝 놀랄 걸 상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 시각, 한소희는 대화 내용을 다시 훑으며 입가를 실룩거렸다.
“무슨 좋은 일 있어?”
“그냥. 남자 친구가 귀여워서.”
“귀여워? 지난번에 말한 그 군인 아저씨가?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다고 투덜거려놓고선.”
오하영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소희의 기분이 들쑥날쑥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방금 전까지 외롭다고 툴툴거리던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좀 이따가 아무래도 남자 친구가 올 것 같은데?”
“뭐? 학교로 온다고? 진짜?”
“볼래?”
한소희가 톡을 보여 주었다. 그 내용을 확인한 오하영이 피식 웃었다.
“뭐야, 네 남친 귀엽다?”
“그렇지. 아무튼 재미있는 남자야.”
한소희는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하영아, 내 머리 어때? 옷은?”
“괜찮아. 예뻐!”
“너무 수수하지 않아?”
“아니야. 아주 양호해.”
“그래? 그럼 됐어!”
한소희는 예고도 없이 나타날 오상진을 생각하며 열심히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화장실로 가서 화장과 머리를 다시 한번 고쳤다.
“어? 소희야.”
“어, 왜?”
“계집애. 너 오늘 유난히 예쁘다. 옷도 예쁘게 입고 말이야. 오늘 무슨 날이야?”
“날은 무슨, 평소처럼 입고 왔잖아.”
“아니야, 오늘은 뭔가 달라!”
여자 동기들이 한소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한소희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이었지만 그 모습이 유난히도 새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여자 동기 중에서 한소희를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계집애, 아주 명품으로 치장을 했네.”
“집 잘 산다고 자랑하나.”
“그런데 요즘 들어 쟤 좀 꾸미는 거 같지 않아? 혹시 복학한 상태 오빠 때문에 그러나?”
“야, 그 오빠 진즉에 까였거든?”
“언제?”
“그 오빠 군대 간 게 한소희 쟤 때문이잖아. 오티 때 들이댔다가 아주 처참하게 까여서 쪽팔려서 군대 간 거 몰라?”
“그랬어? 아무튼 저게 문제라니까.”
주변에서 자신을 험담하는 소리가 다 들렸지만 한소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예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도 아닌 데다가 괜히 과민반응해 봐야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치근대는 건 병적으로 싫어했다.
“오오, 한소희. 너 오늘 좀 예쁘다.”
지나가던 남자 선배가 툭 하고 한마디 내뱉자 한소희는 살짝 인상을 구긴 채 입을 다물었다.
그냥 칭찬으로 한 말이라면 고맙다고 웃어넘겼겠지만 상대는 예쁜 여자 후배들을 볼 때마다 상습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질 낮은 선배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남자 선배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한소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야, 소희 너 원래 예뻤지만 오늘은 더 예쁘네. 설마 나에게 잘 보이려고 예쁘게 입고 온 거야?”
그러자 오하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설마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했겠어요?”
“정말 아니야?”
“당연히 아니죠.”
“그러지 말고 소희야. 나하고 오늘 영화나 보러 갈래?”
“좀 이따 소희 남자 친구 올 거니까 꿈 깨요.”
“뭐? 남자 친구?”
순간 남자 선배의 표정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러자 한소희가 오하영을 보며 말했다.
“뭐하러 그런 말을 해.”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한소희는 자신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알려지는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남자 선배는 도리어 화를 냈다.
“야, 한소희. 그게 정말이야?”
“뭐가요?”
“남자 친구 말이야.”
“네. 맞아요.”
“와, 너 정말 너무한다. 내가 뻔히 너 좋아하는 거 알면서 어떻게 남자 친구를 만들 수가 있냐?”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선배가 나 좋아하면 나는 무조건 선배하고 사귀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도 인간적으로 이건 아니지…….”
남자 선배가 절망하던 그때 어떤 학생이 지나가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아까 봤어? 군인 아저씨. 은근 잘생겼던데?”
“그러게. 여자 친구 만나러 왔나?”
“으아. 누구 남친인지 몰라도 부럽다. 내 남친도 군복입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우연찮게 그 대화를 엿들은 한소희는 그 군인이 오상진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챘다.
이 세상에 군인은 많았지만 은근 잘생긴 군인이라면 역시 오상진이라고 확신했다.
“하영아. 나 먼저 갈게.”
“야, 소희야!”
“한소희, 어디 가!”
당황하는 오하영과 남자 선배를 뒤로한 채 한소희는 남자 친구를 맞으러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6.
오상진은 전투모를 쓴 채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의 여학생들이 힐끔힐끔 오상진을 쳐다봤다. 오상지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 그러나?’
오상진도 마음 같아서는 평상복으로 환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근무 중에 외출을 한 것이다 보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가면 되나?”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걸음을 옮기며 오상진이 건물들 쪽을 살폈다.
마음 같아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경영학과가 어디인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다들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처럼 보고 있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때 저 멀리서 예쁜 여자가 걸어왔다. 예쁜 여자들 사이에 두어도 바로 눈길이 갈 만큼 특별히 더 예쁜 그녀는 바로 한소희였다.
“소희 씨!”
한소희를 발견한 오상진의 입가로 미소가 번졌다.
한소희도 정말 오상진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소희가 쪼르르 달려와 오상진에게 앞에 섰다.
“이제 왔어요? 찾기 힘들지 않았어요?”
순간 오상진이 깜짝 놀랐다.
“어? 내가 올 줄 알았어요?”
“그럼요.”
“어떻게요?”
“제가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요.”
그때 두 사람 사이에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머나, 소희야. 이분 누구야?”
갑작스런 친구의 등장에 한소희가 움찔 놀랐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어떻게 알긴. 소문 듣고 왔지.”
“소문? 하아. 하영이 고게 고새를 못 참고 다 말했구나?”
“그런데 나 소개 안 시켜줄 거야?”
친구의 닦달에 한소희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오상진에게 정식으로 소개를 해주었다.
“상진 씨. 제 친구 혜선이에요. 여긴 내 남자 친구.”
“말씀 많이 들었어요.”
임혜선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한소희와 임혜선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상진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잘생기셨네요.”
임혜선이 빤히 오상진을 바라봤다.
한소희에게 듬직하단 소릴 들었을 땐 평범한 외모를 상상했는데 군복 입은 모습이 촌스럽지 않고 멋지게 느껴지는 남자는 오랜만이었다.
그때 한소희와 같은 과 여자 동기 두 명이 팔짱을 낀 채로 다가왔다. 그 잘난 한소희의 남자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온 것이다.
“어머, 소희야. 안녕.”
불청객의 등장에 한소희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친구들은 오상진을 보며 위아래로 훑었다.
“어머, 한소희 남자 친구가 온다고 하더니 그쪽이에요?”
오상진이 먼저 대답하기도 전에 한소희가 그녀들 앞으로 나섰다.
“맞아, 내 남자 친구야.”
“어머! 군인이야? 소희 너 힘들겠다.”
“왜?”
“제대할 때까지 한참 동안 못 만나잖아.”
“맞아, 나 아는 동생도 군대 가서 아직 못 만나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소희 너 남친는 휴가 나왔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