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60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22)
정대만 상병이 다급히 몸을 날려 손을 뻗었지만 공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손끝을 스치며 그대로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삐이이이익!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득점이 인정됐다.
“크아아아!”
김일도 상병이 손을 번쩍 들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저 멀리 오상진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1중대 선수들이 달려들었지만 김일도 상병이 손을 휙휙 저었다.
“비껴! 잡지 마! 잡지 말라고!”
김일도 상병이 오상진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소대장님!”
오상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김일도 상병이 그대로 오상진에게 점프하며 안겼다.
마치 2002년 월드컵 때 박주성이 골을 넣고 감독에게 안긴 것처럼 말이다.
오상진이 김일도 상병의 등을 힘껏 두드렸다.
“그래, 그래! 잘했어. 일도야! 정말 잘 했어!”
뒤늦게 달려온 1중대 선수들이 오상진과 김일도 상병을 부둥켜안았다.
경기 막판에 터진 결승 골에 한종태 대대장은 흐뭇해하며 박수를 쳤다.
작전과장 역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야,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어서 모여!”
하지만 심판인 작전장교는 아직 경기 종료 호각을 불지 않았다.
1중대는 환해진 얼굴로 다시 연병장에 모였다. 그사이 전의를 다진 3중대가 공을 잡고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나에게 공을 넘겨! 알았지! 나에게 꼭 공을 넘겨야 해!”
박정태 상병이 소리치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뻥!
공을 잡은 우창호 상병은 그대로 전방을 향해 공을 찼다. 박정태 상병이 그걸 보고는 속도를 높였다.
“내 공이야!”
가까스로 공을 잡아낸 박정태 상병은 앞을 가로막으러 달려온 하영진 일병을 가볍게 제쳐냈다. 그리고 골대 오른쪽으로 빠르게 공을 몰았다.
“안 돼! 가람아! 막아!”
박정태 상병의 속내를 알아챈 김성진 상병이 크게 소리쳤고 박가람 일병이 즉시 박정태 상병에게 달려들었다.
“공간을 주지 마! 공간을 주지 말라고!”
김성진 상병이 다시 소리쳤다. 슈팅을 할 각도만 주지 않는다면 그 어떤 슈팅이라도 막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박가람 일병은 마음이 앞섰다.
여기서 박정태 상병의 공격이 끊긴다면 바로 경기가 종료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덤벼들었고 그러다 박정태 상병의 페이크 동작에 넘어가고 말았다.
“어어!”
박정태 상병이 순식간에 자신을 벗겨내자 당황한 박가람 일병이 손을 뻗어 박정태 상병을 붙잡았다.
그 순간 김성진 상병이 외쳤다.
“파울하지 마! 페널티 지역 안이야!”
순간 깜짝 놀란 박가람 일병이 손을 거뒀고 그 과정에서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이 만들어졌다.
‘멍청한 놈. 패널티 킥을 주더라도 수비로 끊었어야지.’
절호의 득점 기회를 맞이한 박정태 상병이 씩 웃었다.
하지만 김성진 상병은 당황하지 않았다.
박우람 일병을 제치는 과정에서 박정태 상병의 슈팅 각도가 확연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저 상태로 파 포스트는 불가능해. 무조건 니어 포스트야.’
김성진 상병은 일부러 골대 옆쪽으로 나와 박정태 상병의 슈팅을 유도했고 그걸 빈틈이라 여긴 박정태 상병은 어거지로 김성진 상병과 골 포스트 사이를 향해 공을 밀어넣었다.
하지만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공은 재빨리 몸을 날린 김성진 상병의 손에 걸려 버렸다.
툭!
김성진 상병이 막아낸 공을 센터백 김우진 상병이 길게 걷어냈고
“아, 안 돼…….”
박정태 상병은 머리를 감싸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작전 장교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호각을 입에 가져가 불렀다.
삐이이이익!
“경기 끝!”
그와 동시에 1중대 선수들이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와아아아아아!”
박중근 하사가 운동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1중대 선수들과 부둥켜안으며 기뻐했다. 박중근 하사에게 선수를 뺏긴 오상진은 김철환 1중대장과 함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상진아. 마지막에 골 먹는 줄 알았다.”
“제가 뭐랬습니까? 선수들이 알아서 해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쨌거나 우리가 종합 우승이다! 고생했다, 상진아.”
“축하드립니다. 중대장님!”
1중대가 극적인 축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최종 순위가 바뀌었다.
축구 결승 전까지 큰 점수 차이로 1위를 달리던 화기중대가 2위로 내려앉았고, 1중대가 20점 차이로 1위 자리를 탈환하면서 종합 우승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선수들 간에 인사를 끝내고 돌아 온 1중대 선수들은 오상진에게 달려왔다.
오상진이 환한 얼굴로 그들을 독려했다.
“잘했어. 잘했어!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오상진은 선발과 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들을 끌어안고 칭찬했다.
그러자 병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소대장님 헹가래 받으십시오.”
“아니야, 됐어! 됐어!”
하지만 1중대 선수들이 오상진에게 우르르 달려가 헹가래를 쳐줬다.
“와아아아! 하나, 둘, 셋!”
그다음은 부소대장 박중근 하사도 헹가래를 쳐줬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철환 1중대장은 내심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박 하사까지 해줬으니까 다음은 난가?’
그런데 박중근 하사의 헹가래를 끝낸 선수들은 김철환 1중대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깜빡 하고 말았다.
김철환 1중대장이 슬쩍 다가갔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김철환 1중대장은 민망하면서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자식들이 너무하네…….’
그런데 때마침 이근우 병장이 김철환 1중대장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어? 우리 중대장님 저기 계신다. 중대장님 헹가래 받으십시오.”
“아니야. 됐어! 됐어! 무슨 헹가래는…….”
김철환 1중대장이 손사래를 쳤지만 달려드는 병사들에게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준비 됐지? 하나, 둘, 셋!”
그렇게 김철환 1중대장 마저 헹가래를 받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김철환 1중대장의 입가가 가득 찢어졌다.
11.
체육대회의 모든 일정이 끝나자 취사병들은 회식 준비를 서둘렀다.
“야, 상추! 상추는 제대로 씻고 있어?”
“네. 그렇습니다.”
“빨리빨리 준비해!”
“네.”
취사장의 언성에 취사병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각 테이블에 부스터랑 불판이 놓여졌고, 깨끗하게 씻은 상추가 나왔다.
“각 테이블마다 제대로 셋팅이 되었는지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빠진 거 없어?”
“네. 없는 것 같습니다!”
“없는 것 같다니! 네가 정신이 나갔지?”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나중에 봐서 딴소리 나오면 넌 오늘 죽었다고 복창해야 할 거야.”
“시, 시정하겠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취사병들을 닦달하던 취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회식은 진짜 싫다.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아.”
“그런데 이걸 꼭 저희가 준비해야 합니까?”
“그럼 인마! 당연한 거 아냐? 솔직히 밥 안 하는 것이 어디야.”
“그래도 700명이 넘는 회식에 상추까지 씻으려고 하니 죽겠습니다.”
“잔말 말고 어서 준비나 해. 시간 다 됐다.”
“네.”
후임병의 투덜거렸지만 취사장은 받아주지 않았다. 투정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우, 역시 대대 회식은 할 게 못 돼!”
취사장이 중얼거리면서 테이블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야! 파채는? 파채 아직 멀었어?”
“아, 아닙니다. 지금 버무리는 중입니다.”
“빨리빨리 꺼내서 세팅해!”
“네, 알겠습니다.”
그때 체육대회를 마친 병사들이 하나 둘 대대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서둘러!”
취사장이 취사병들을 독촉하는 사이 대대 식당은 밀려드는 장병들로 가득 채워졌다.
“우와! 고기다. 세상에…….”
“이거 정말 실화입니까? 어떻게 군대에서 삼겹살을 먹을 수 있는 겁니까?”
이제 갓 전입 온 이등병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모두 침을 질질 흘리며 삼겹살을 응시했다.
“대박! 막걸리까지 나옵니까?”
“아까 김 상병님 말씀 못 들었어? 체육대회 때는 원래 막걸리 준다잖아!”
“그런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야야, 오늘은 뭘 해도 되는 날이니까. 맘껏 먹어!”
“네, 알겠습니다.”
“대신 술 취해서 욕한다거나, 꼬장 피우면 알지?”
선임병의 한마디에 후임병들은 바짝 긴장했다.
“야야, 애들 불안하게 뭔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그냥 편히들 먹어.”
“안 됩니다. 이렇게 못을 박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됐어. 어서 고기 굽기나 해.”
“알겠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병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다. 몇몇 병사들은 벌써 상추에 고기를 싸서 먹고 있었다.
“뭐야? 벌써 고기 떨어졌어?”
“야, 주영아.”
“이병 손주영!”
“저기 가서 고기 좀 가져와라.”
“네, 알겠습니다.”
“파채도 듬뿍 가져오고.”
“네!”
삼겹살과 막걸리 덕분에 식당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갔다.
간부들 역시 따로 한자리를 차지하며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그때 곽부용 작전과장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자! 다들 주목!”
“주목!”
곽부용 작전과장의 한마디에 소란스럽데 식당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들리는 소리라곤 불판 위의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전부였다.
“지금부터 대대장님께서 한 말씀 하실 테니 모두 경청할 수 있도록!”
사실 곽부용 작전 과장은 대대장의 훈화를 생략할 생각이었다.
간부들이 입장했을 때 병사들의 식사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체육대회 시작 때 이미 한 차례 훈화를 했으니 그냥 넘어가도 될 거라 여겼는데 한종태 대대장이 보란 듯이 눈치를 주니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곽부용 작전 과장이 자리에 앉고 한종태 대대장이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흠흠, 오늘 우리 대대가 체육대회를 했다. 모두들 훈련하느라 고생이 많다는 것은 안다. 우리의 고생이 너희들의 부모 형제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리고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기 바란다. 이상!”
“넵 알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던지 간단하게 한마디를 하고 끝냈다.
길게 이야기하기에는 불판 위에 올려놓은 고기들이 전부 타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한종태 대대장의 속내를 읽은 곽부용 작전과장이 다시 권했다.
“대대장님. 그래도 기왕 일어나셨으니 건배 제의는 한 번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허험, 그럼 그럴까?”
곽부용 작전과장이 다시 일어나 앞에 놓인 종이컵을 들었다.
“자, 모두들 컵에 술을 따른다. 대대장님께서 선창을 하시면 너희들이 후창을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한종태 대대장을 바라봤다. 한종태 대대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종이컵을 들었다.
“충성 대대를!”
“위하여!”
대대 식당이 떠나갈 듯 장병들이 외쳤다. 그리고 종이컵에 담긴 막걸리를 단숨에 비웠다.
“크으, 역시 맛나는구만.”
“여기 상추쌈 준비했습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은 또 언제 준비를 했는지 한입 크기의 상추쌈을 한종태 대대장 앞에 내밀었다.
“대대장님. 드십시오.”
“허허, 역시 작전과장이야.”
“감사합니다.”
그렇게 왁자지껄했던 체육대회가 마무리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