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58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20)
사실 김성진 상병은 예선전과 준결승전 때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아무리 선수 출신이었다 하더라도 무작정 경기에 투입되는 건 부담이 큰 터라 일단 몸을 만들 겸 따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오상진은 매일같이 김성진 상병의 컨디션을 체크하다 결승전을 앞두고 김성진 상병의 최종 투입을 확정했다.
“오늘 결승전에 골키퍼 김성진 상병이다.”
“반갑다.”
오상진의 소개에 김성진 상병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같은 3소대원인 이근우 병장과 강유석 상병, 박가람 일병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야, 김성진. 뭐냐?”
“상병 김성진!”
“너 인마 축구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게…….”
김성진 상병이 난처해하자 오상진이 대신 나섰다.
“사실 김성진 상병은 중학교까지 선수로 뛰었다. 그것도 골키퍼로.”
“우오오오! 진짜입니까?”
“사실이야?”
“네. 죄송합니다. 사실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뒀습니다. 군대까지 와서 축구를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근우 병장이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이라 해도 고참을 오랫동안 속인 건 인간적으로 용서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근우 병장은 그럴 수도 있다며 김성진 상병을 이해해 주었다.
“자식, 난 그것도 모르고……. 어쨌든 환영한다.”
이근우 병장이 따뜻하게 맞아주자 나머지 선수들도 김성진 상병을 반겼다.
“그런데 김 상병님, 선수 출신인 게 사실입니까?”
“그럼 결승전은 이겼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닙니가.”
“아마 3중대 놈들 한 골도 못 넣을걸?”
“하하하. 진짜겠네. 우리가 당연히 이기겠네.”
“아니야, 아니야. 오랫동안 뛰지 않아서 경기 감이 없어. 큰 기대는 하지 마. 다만 최선은 다할게.”
“그게 어디야. 아무튼 우리 골키퍼가 다소 불안했는데 잘 됐어.”
1중대에는 전문 골키퍼가 없었다. 차출된 선수 중에서 골키퍼를 주로 봐 오던 이도 없었다.
그래서 후보로 밀린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골키퍼를 봤고 수준이 떨어지다 보니 2중대와의 경기에서도 실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중대 선수들은 골키퍼 출신이라는 김성진 상병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못했다. 김성진 상병도 말 대신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며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전반전에만 벌써 2골이나 먹었다.
김성진 상병의 어깨가 처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아, 미치겠네.”
물론 김성진 상병은 나름 분전했다. 처음 호흡을 맞춰 보는데도 수비 라인을 통제하며 실점 위기를 여러 차례 막아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두 골을 허용했다.
그리고 1중대는 2 대 1로 뒤진 채 전반을 마쳐야 했다.
“이게 무슨 추한 일이야.”
김성진 상병이 자책을 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저만치 앉아 있는 수비수들을 바라봤다.
자신의 지시에 맞춰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다녔는데 정작 자신은 골을 내줬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김성진 상병이 수비수들에게 가서 사과했다. 그러자 수비수들이 한목소리로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합니까? 김 상병, 정말 잘 했습니다.”
“맞습니다. 김 상병님 오늘 최고셨습니다.”
“솔직히 저희가 너무 못했습니다. 박정태 상병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에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수비수들은 김성진 상병을 위로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라 해도 수비수들이 제 역할을 다 해주지 못하면 골을 먹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태 상병에게 내준 두 골은 김성진 상병의 실수라기보다 수비수들의 실수로 봐야 했다.
하지만 김성진 상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너희 실수가 아니야. 내 실수야. 내가 큰소리까지 쳐놓고 못 막은 거야. 막을 수 있었는데…….”
3중대가 기록한 두 골은 자신처럼 선수 출신으로 알려진 박정태 상병의 발끝에서 나왔다.
첫 번째 골은 솔직히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정태 상병의 실력을 우습게 봤다. 그래서 지나치게 느긋하게 움직였고 그러다 반 박자 빠른 슈팅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여기까진 김성진 상병도 그럴 수 있다고 여겼다.
첫 골 때문에 바짝 긴장하게 됐고 그 결과 수많은 선방을 해냈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 골이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어.’
그도 그럴 것이 박정태 상병이 찬 공에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이 골포스트를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만약 늦게라도 몸을 날렸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굴절된 공이 골대에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든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확실히 두 번째 골은 먹지 않을 수도 있었던 골이었다.
그런 사실이 김성진 상병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러자 경기장 밖에서 경기를 지켜봤던 이재민 일병이 위로하듯 말했다.
“아닙니다. 김성진 상병, 솔직히 대단합니다. 박정태 상병이 슈팅을 열 개나 넘게 했는데 나머지는 다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정말이지 김성진 상병님 아니었으면 지금 두 골이 아니라 최소한 3골은 더 실점했을 것입니다.”
준결승전에서 골키퍼를 봤던 이재민 일병은 솔직히 김성진 상병이 얄미웠다.
실력과 계급에 밀려 골키퍼를 하게 됐는데 그마저도 김성진 상병에게 뺏기게 됐으니 다른 선수들처럼 마냥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전반을 지켜본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김성진 상병은 진짜 골키퍼였다. 그저 손 장갑을 끼고 흉내만 내는 자신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대단한 골키퍼가 두 골을 내줬다면 그건 상대 공격수인 박정태 상병이 잘했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김성진 상병은 그것만으로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그리 말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김 상병님도 신경 쓰지 마시고 쉬십시오.”
“그래.”
김성진 상병이 멋쩍게 웃고는 구석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힐끔 본 후 손으로 툭툭 쳤다.
“아, 시발. 다 나았잖아. 다 나았는데 왜 안 움직여. 좀 움직여라.”
그렇게 오른 다리를 보며 자책하고 있을 때 오상진이 다가왔다.
“성진아.”
“사, 상병 김성진.”
김성진 상병이 깜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곧바로 제지했다.
“됐어. 앉아 있어.”
김성진 상병이 눈치를 살피더니 앉았다. 오상진도 그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랜만에 경기를 뛰니 힘들지?”
“아닙니다.”
“아니긴. 너 고생하는 거 보니까 소대장 가슴이 다 미어지더라.”
“…….”
“그러니까 전반전의 두 골에 대해서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너 아니었으면 6골 정도는 내줬을 거야. 너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진짜다. 너 정말 잘하긴 잘하더라.”
오상진의 진심 어린 칭찬에 김성진 상병이 조금 기분이 풀렸다.
“그래도 저 말고 이재민 일병이 골키퍼를 보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김성진 상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오상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성진아. 소대장은 널 골키퍼로 뽑은 선택에 대해서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만약 다시 결승전 골키퍼를 고르라고 해도, 바로 너다!”
“소대장님…….”
김성진 상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하니 오상진이 자신을 이토록 믿어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런 김성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상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진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괜히 움츠러들지 말고 후반전도 부탁하마. 우리 1중대를 네 손으로 우승시켜다오.”
오상진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때 후반전 준비를 알리는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그럼 소대장님 저 이만 가 보겠습니다.”
김성진 상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이내 몸을 돌려 오상진을 바라봤다.
“소대장님.”
“……?”
“지금 이 시간 이후로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겠습니다.”
“후후, 그래. 너만 믿는다.”
오상진이 애써 웃었다. 김성진 상병이 고개를 끄덕인 후 연병장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정작 오상진의 속내는 김철환 1중대장만큼이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성진아, 이 새끼야. 제발 좀 잘하자.’
만에 하나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난다면?
한종태 대대장의 기대를 저버리는 건 둘째 치고 모든 책임은 결승전에서 골키퍼를 바꾼 감독인 자신이 지게 될지 몰랐다.
물론 그 정도 책임은 얼마든지 질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 1년간 이대우 3중대장에게 시달릴 김철환 1중대장의 처지를 생각하니 도저히 지고 싶지 않았다.
‘제발. 이놈들아 제발 이겨다오.’
경기장으로 뛰어나가는 선수들을 보며 오상진이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삐빅.
호각 소리와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11.
김성진 상병은 전반전에서 3중대가 썼던 골대 앞에 섰다. 두 손에 장갑을 단단히 착용하고는 손뼉을 치듯 팡팡 두드렸다.
“오 소위님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야신입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경기장 중앙에서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1중대가 전반 내내 중앙에서 빌드 업을 이뤄 갔기 때문에 그에 대비하기 위해 3중대의 윙어들까지 중앙 전투에 뛰어든 것이다.
그러다가 3중대의 공격을 지휘하는 우창호 상병이 뻥 하고 차낸 공이 순식간에 1중대 진영으로 날아왔다.
박정태 상병은 그대로 볼 트래핑을 한 후 두 명의 센터백을 차례대로 벗겨낸 뒤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었다.
‘후후, 또 한 골 추가요!’
박정태 상병은 머릿속으로 해트트릭을 그렸다.
이 골이 골망을 가른다면 1중대도 전의를 상실할 터.
그렇게 되면 오늘 경기의 영웅은 결승전 해트트릭을 기록한 자신의 차지가 될 것 같았다.
‘선출 골키퍼라고 했지? 제법이다만 이건 못 막을 거다.’
골대 오른쪽으로 공을 몰고 가며 박정태 상병은 김성진 상병이 반응을 보이길 기다렸다.
하지만 전반과 달리 김성진 상병은 허둥대지 않았다.
조금씩 몸을 틀어 각도를 좁힐 뿐 섣불리 나섰다가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박정태 상병이 골대 구석을 향해 공을 찼지만.
“어딜!”
김성진 상병이 몸을 날려 두 손으로 공을 받은 뒤 그대로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제기랄!”
박정태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절호의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김성진 상병이 너무나 쉽게 자신의 골을 막아내 버렸다.
그러는 사이 김성진 상병이 냉큼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영운아!”
김성진 상병이 센터백 앞쪽에 나가 있던 하영운 일병을 향해 힘껏 공을 던졌다.
공을 받은 하영운 일병은 쌍둥이인 하영진 일병과 공을 주고받으며 공격 라인을 전진시켰다.
박정태 상병이 득점 기회를 맞이하자 골 세리머니에 동참하기 위해 달려왔던 3중대 선수들이 뒤늦게 수비 진영으로 복귀했지만 쌍둥이 미드필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공은 하프 라인을 넘어 3중대 진영으로 넘어갔다.
“여기!”
중앙선 부근까지 내려왔던 플레이 메이커 김일도 상병이 냉큼 손을 들자 하영운 일병이 낮게 패스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