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57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9)
“하지만 만약에 1중대가 축구에서 준우승을 하면 70점 밖에 못 가져가니까, 총점 210점이 되면서 종합우승은 우리 화기중대가 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으음…….”
뻔한 설명을 듣는 이대우 3중대장의 표정이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만히 들어보니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환장하겠군. 원래라면 우리 3중대가 1중대하고 종합 우승을 다퉈야 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래. 이게 다 화기중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그래.’
이대우 3중대장의 날 선 시선이 화기중대장을 향했다. 하지만 우승 욕심에 눈이 뒤집힌 화기중대장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말인데 축구, 이길 수 있겠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중대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꼬여 버렸는데…….’
이대우 3중대장은 화기중대장이 얄미웠다. 뻔한 살림에 육회까지 사다 먹여가며 로비를 했는데 정작 화기중대가 우승을 바라보고 있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렇다고 1중대가 종합 우승하는 꼴은 볼 수 없었다.
‘체육대회는 올해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이대우 3중대장이 애써 화를 억눌렀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화기중대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당연하죠. 하하하. 화기중대장은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겁니다.”
“그 말, 믿어도 됩니까?”
“그럼요. 올해 체육대회는 화기중대가 종합 우승을 차지할 겁니다.”
“역시 우리 3중대장은 대인이십니다. 솔직히 우리가 도와주려 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말이죠. 그렇다고 그게 우리 화기중대 탓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해합니다.”
“어쨌든 이제야 좀 마음이 놓입니다. 감사합니다. 3중대장.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껄껄껄!”
화기중대장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이대우 3중대장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엔장…….”
한 종목에서 더 점수를 따냈더라도 이런 수모는 겪지 않았을 텐데.
현재까지 3중대는 족구 준우승이 유일한 타이틀이었다.
10.
삐빅.
작전장교의 호각 소리와 함께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축구 결승전이 시작됐다.
결승전답게 1중대와 3중대는 각자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3중대는 3-4-3.
작년 월드컵 때 한국 대표팀이 써서 재미를 봤던 그 포메이션이었다.
포백이 일반화된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양측 윙어들이 수비에 가담할 경우보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확실한 포메이션이었다.
이에 맞서는 1중대의 포메이션은 4-3-1-2.
시간이 지날수록 중앙에서 공이 노는 군대 축구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 포메이션이었다.
처음 이 포메이션을 주장했을 때 1중대 선수들은 그게 뭐냐는 반응이었다.
4-4-2나 4-3-3 포지션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의 전술적 움직임에 당황한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4-4-2나 3-4-3을 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보였다.
하지만 오상진은 4-3-1-2 전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킹리와 이나우두라 불리는 김이중 상병과 이근우 병장을 전방에 배치시키고 그 밑에서 볼배급과 2선 침투를 해줄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에 김일도 상병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김일도 상병이 플레이를 어려워한다면 과감히 다른 포메이션으로 교체할 생각도 가졌지만 다행히도 김일도 상병은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이근우 병장처럼 체격이 좋지도 않고 김이중 상병처럼 키가 크지도 않은 터라 공격 진영에 박혀 있는 것보다 2선에서 공수를 조율하며 경기를 끌고 가는 재미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런 김일도 상병의 뒤를 받쳐주는 건 강인한 상병과 하영운, 하영진 쌍둥이 일병이었다.
패스를 주고받는 호흡은 1중대 내 최고라 셋을 통째로 4-3-1-2의 3에 이식시켜 놓으니 김일도 상병도 마음먹고 공격 작업에 나설 수 있었다.
포백 라인은 1소대 김우진 상병을 중심으로 구축했다.
준결승 때까진 3소대 강우석 상병이 김우진 상병과 짝을 이루었지만 같은 상병인 데다가 과도한 경쟁심으로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면서 강우석 상병을 오른쪽 풀백으로 돌리고 그 자리에 1소대 후임인 한태수 일병을 집어넣었다.
남은 왼쪽 풀백 자리는 발재간이 좋은 박가람 일병의 차지.
이외에도 후보 선수들은 언제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일찌감치 몸을 풀어 놓았다.
“첫 골이 중요한데.”
미드필드 지역에서 공을 돌리는 선수들을 보며 김철환 1중대장이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축구든 전쟁이든 선수필승이었다.
상황을 주도해 나가는 쪽이 상대적으로 심리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오상진도 경기 전 선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일단 5분간은 무리하지 말고 공을 돌리면서 3중대의 움직임을 살펴봐. 그리고 5분이 지나면 우리가 지금까지 연습했던 대로 3중대 수비 라인을 뚫어버리자. 알았지?”
1중대 선수들은 초반 5분 동안 공을 돌리며 오상진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다 5분이 지나고 몸이 근질근질한 3중대 선수들이 공간을 비워 두고 움직이자 1중대의 본격적인 빌드 업이 시작됐다.
센터백 앞쪽에서 공을 주고받던 하영운 일병과 하영진 일병이 슬금슬금 앞쪽으로 전진하자 양쪽 센터백인 강우석 상병과 박가람 일병이 상대 윙어 뒤쪽의 공간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뭐 해! 막아!”
1중대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간파한 우창호 상병이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불명확한 지시는 선수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는데 하영운 일병과 하영진 일병 쪽으로 접근하던 윙어들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면서 중앙이 비어버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을 건네받은 강인한 상병이 단숨에 김일도 상병에게 공을 찔러 넣으면서 순식간에 미드필드 라인이 뚫려버렸다.
깔끔하게 공을 받아낸 김일도 상병이 골대 오른쪽에서 대기 중인 이근우 병장에게 패스.
이근우 병장이 공을 받고 그대로 왼쪽 골포스트를 향해 감아 차기로 슛을 날렸고 공은 골키퍼 손을 지나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우오오오!”
“1중대! 1중대! 1중대!”
눈 깜짝할 사이에 1중대가 첫 골을 만들어내자 한종태 대대장이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쳤다.
“이거 너무 빨리 점수를 획득한 거 아냐? 이러다가 1중대가 5 대 0으로 이기겠어. 허허허.”
곽부용 작전과장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니까 점수 차이가 크게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결승전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거 아냐?”
“그럼 저희야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체육대회의 꽃인 축구 결승을 두고 한종태 대대장은 여느 때처럼 내기판을 벌였다.
한종태 대대장이 선택한 팀은 당연하게도 1중대.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도 1중대에 숟가락을 올리면서 나머지 간부들의 판돈을 전부 3중대 쪽으로 몰아버렸다.
이대로 1중대가 승리할 경우 두 사람이 받게 될 돈은 내기 돈의 2.5배.
곽부용 작전 과장에게 10만 원을 꾸고 20만 원을 건 한종태 대대장과 통 크게 30만 원을 배팅한 곽부용 작전 과장의 입장에서는 1중대의 승리가 절실하기만 했다.
반면 이대우 3중대장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수비를 할 때 정신 팔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를 했건만 초반에 너무 일찍 골을 먹고 만 것이다.
“이 멍청한 놈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제대로 안 해! 정신 차리라고, 정신!”
이대우 3중대장은 연병장까지 내려와 선수들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 압박 같은 독려가 통했을까.
전반 20분이 지날 무렵 3중대 최고의 공격수 박정태가 난전을 뚫고 기어코 동점 골을 넣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좋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동점이 되자 한종태 대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냉큼 나서서 수습했다.
“그냥 동점일 뿐입니다. 너무 일방적이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재미를 위해서 저런 거지?”
“물론입니다. 이제 곧 정신 차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축구를 내기로 즐기는 한종태 대대장과 달리 곽부용 작전장교는 챔피언스 리그도 챙겨 볼 만큼 축구에 대해 빠삭한 편이었다. 그래서 1중대의 축구가 3중대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견고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처럼 팀의 밸런스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승리하는 건 아니었다.
전반전이 끝나기 1분 전.
뻐엉!
박정태 상병의 낮게 깔아 찬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오면서 1 대 1의 팽팽한 균형이 깨졌다.
그리고 3중대가 2 대 1로 앞선 가운데 전반전이 끝이 났다.
“이봐, 작전과장. 저거 오프사이드 아냐?”
“네. 아마도…….”
“심판 누구야? 저런 것도 제대로 못 보고 말이야. 누군지 알아?”
“작전장교입니다.”
“차 중위? 젠장. 대체 심판을 어떻게 보는 거야?”
한종태 대대장이 보기에 방금 전 골은 수비 실수라기보다 오프사이드 같았다.
물론 축구 좀 본다는 이들의 의견은 다르겠지만 박정태 상병이 수비수들과 골키퍼 사이에서 슈팅을 했으니 오프사이드로 몰아가도 되지 않을까 여겼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심판이 나빴다. 다른 심판이라면 한종태 대대장의 한마디에 판정을 번복했겠지만 작전 장교 차 중위는 달랐다.
장교 중에서 눈치 없고 고집 세기로는 첫 손에 꼽히다 보니 자신이 넌지시 말을 해도 무시할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그렇지. 저거 명백한 오프사이드야.”
한종태 대대장이 다시 의자에 주저앉으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곽부용 작전과장이 적당히 맞장구를 맞춰줬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보다 1중대 골키퍼 말이야. 새로 바뀌었다고 하던데 맞아?”
“네, 그렇습니다. 듣기로 중학교 때까지 선수로 뛰었다고 합니다.”
“포지션은? 골키퍼야?”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벌써 두 골이나 먹어? 선수로 뛰었다는 거 거짓말 아냐?”
“확인해 보니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하아. 선수 출신이 골키퍼를 보는 데 벌써 두 골이라니. 이러다가 진짜 1중대가 지는 것은 아니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반전에 반드시 뒤집을 겁니다.”
“후우……. 어쩌겠어? 작전과장하고 나는 한배를 탔으니 작전과장의 말을 믿어 보는 수밖에!”
“네. 물론이죠. 1중대가 우승할 겁니다.”
곽부용 작전과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역시도 불안한 마음이 컸지만 그렇다고 한종태 대대장 앞에서 입방정을 떨 수는 없었나.
“에잇. 화장실이라도 다녀와야겠어.”
한종태 대대장이 소변을 핑계로 자리를 뜨자 곽부용 작전과장이 한숨을 내쉬며 오상진을 바라봤다.
‘야, 오 소위. 어떻게 좀 해봐. 지면 안 된다고!’
곽부용 작전과장의 간절한 목소리가 마음속에 메아리쳤다.
한편 1중대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전반 막판에 역전 골을 내줘서일까.
경기 시작 때까지만 해도 밝았던 선수들의 표정이 다들 굳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골키퍼를 보던 김성진 상병은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
‘젠장. 이러려고 경기에 나선 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