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56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8)
9.
지난 축구 예선 때 1중대 발목잡기에 실패한 화기중대장에게 이대우 3중대장은 이어달리기에서 3중대를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여차하면 서로 손 잡았다는 게 들통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화기중대장은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돕지 않으면 이대우 3중대장의 성격상 두고두고 눈치를 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초반에 잘 달리는 선수들을 배치한 것도, 후반에 걸음이 느린 선수를 집어 넣은 것도 다 3중대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1중대와 3중대가 엉켜 넘어지는 사이 마지막 주자가 3등으로 들어온 것이다.
덕분에 화기중대는 50점을 추가로 획득했다. 그리고 이 점수로 인해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일단 이어달리기에서 점수를 얻지 못한 3중대는 종합 우승의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현재까지 3중대가 벌어들인 점수는 50점에 불과했다.
축구 결승에 진출하면서 70점을 확보했다 해도 120점.
130점을 얻어 놓은 4중대보다 낮은 점수였다.
반면 50점을 추가한 화기중대의 점수는 220점.
현재까지 종합 순위 1등을 달리고 있었다.
화기중대장의 시선이 슬쩍 1중대 점수판으로 향했다.
이어달리기에서 2등을 하면서 70점을 추가한 1중대의 점수는 140점.
만에 하나 3중대가 축구 우승을 차지하고 1중대가 준우승에 머물러 추가적으로 70점만 가져가게 된다면?
“우리 화기중대가 종합 우승할 가능성이 높잖아?”
화기중대장이 입가를 길게 찢었다. 본래 화기중대는 이번 체육 대회에서 3중대를 밀어주려고 했다. 전통적으로 화기중대는 줄다리기와 씨름을 제외하고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어달리기에서 3등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강력한 종합 우승 후보로 급상승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우승하는 게 낫겠어.”
마음을 굳힌 화기중대장이 저만치 보이는 3중대장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놀렸다.
그 무렵, 김철환 1중대장도 화기중대장의 맞은 편에서 점수표를 확인하고 있었다.
1중대 140점. (족구 우승, 이어달리기 2위)
2중대 120점. (축구 3등, 농구 우승)
3중대 50점. (족구 2위)
4중대 130점. (족구 3위, 줄다리기 3위 씨름 2위)
5중대 120점. (농구 2위, 줄다리기 2위)
6중대 130점. (농구 3위, 이어달리기 1위)
7중대 30점. (씨름 3위)
화기중대 220점. (줄다리기 1위, 씨름 1위, 이어달리기 3위)
김철환 1중대장도 점수판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원래라면 3중대와 종합 우승을 다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3중대는 일찍 감치 떨어지고, 화기중대 종합 우승을 다퉈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허허, 이것 참…….”
오상진도 점수판을 확인하러 김철환 1중대장 옆으로 왔다. 오상진이 다가오자 김철환 1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상진아. 점수 봤냐?”
“네. 중대장님.”
“상황이 참 이상하게 돌아간다. 갑자기 화기중대가 치고 올라왔네.”
“솔직히 이어달리기에서 화기중대가 점수를 얻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예선도 운 좋게 통과한 화기중대다.
결승전에서까지 그 운이 작용할 거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보다 우리 우승할 수 있겠어?”
“이렇게 된 이상 축구에서 무조건 우승해야 합니다.”
오상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1중대와 화기중대의 점수 차이는 80점.
이걸 뒤집으려면 축구에서 100점을 따는 수밖에 없고 100점을 따려면 3중대를 잡고 우승해야 했다.
축구공은 둥글고 누가 이길지는 경기를 해봐야 아는 것이지만 산술적으로만 계산하자면 너무나 간단한 일이었다.
“아, 그래? 별거 아니네.”
김철환 1중대장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치 축구 우승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이긴, 어차피 축구 우리가 우승할 거잖아. 설마 3중대에게 지겠어? 안 그래?”
“…….”
김철환 1중대장의 당연하다는 반응에 오상진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김철환 1중대장이 슬그머니 말을 이었다.
“왜? 우승 못 하겠어?”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할 수 있다는 거지?”
“할 수야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됐어. 3중대쯤이야 충분히 이길 수 있지. 암!”
순간 오상진의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갑작스러운 김철환 1중대장의 발언에 부담 100배가 되었다.
그런 오상진의 어깨를 감으며 김철환 1중대장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진아.”
“네. 중대장님.”
“인마, 형이라고 해.”
“여긴 부대입니다.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헤이, 괜찮으니까. 형이라고 불러.”
“네, 형.”
오상진이 주위를 살피며 낮게 불렀다.
“그래 인마! 형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지?”
“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뭐냐 이 말이야.”
김철환 1중대장이 싫어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이 시점에서 나올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아, 그건 3중대에게 지는 겁니다.”
“자식, 알면 됐어. 내가 봤을 때 넌 좋은 동생이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넌 형을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녀석이야. 그러니까 이 형은 너만 믿는다.”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멀어졌다.
오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때 나타난 3소대장과 4소대장이 오상진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듯 오상진의 어깨를 양 옆에서 주물렀다.
“아, 다들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4소대장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겁니다. 자, 파이팅!”
“1소대장님. 걱정 마십시오. 우승하실 겁니다.”
김철환 1중대장에 이어 두 소대장마저 부담을 주자 오상진의 어깨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만치서 다가온 박중근 하사의 어깨도 자신만큼이나 축 처져 있었다.
“1소대장님…….”
“네, 박 하사.”
박중근 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저 말입니다. 부담되어 죽겠습니다.”
“박 하사도?”
오상진이 눈을 크게 떴다. 박중근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 전에 행보관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행보관? 김도진 중사?”
“네.”
“김 중사가 왜요?”
“이번에 우승하면 소고기를 쏘시겠답니다.”
“아, 진짜 다들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네. 왜 이렇게 우리에게 부담만 주고…….”
“저도 부담되어 죽겠습니다.”
오상진은 박중근 하사에게 왠지 모를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보다 애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농구장 근처에서 간단히 몸 풀고 있습니다.”
“부상자는 없습니까?”
“네. 컨디션도 다들 좋다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오상진은 그나마 1중대 선수들이 부상자 없이 컨디션이 좋아서 안심이 되었다. 그때 저 멀리서 대대 1호차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1호차는 곧 대대건물 중앙에 도착을 했고, 조수석에서 한종태 대대장이 내렸다.
“별일 없지?”
“네. 별일 없었습니다.”
“아직 축구 결승 안 했고?”
작전장교가 곧바로 다가가 말했다.
“네. 물론입니다. 대대장님께서 오시지 않았는데 어찌 시작합니까.”
“그래. 그래. 축구 결승은 또 내가 봐 줘야지. 그런데 내가 늦게 왔나?”
“아닙니다.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제 막 경기를 시작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잘 됐네. 혹시 나 때문에 미루거나 한 건 아니지?”
“물론입니다. 절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하핫, 나 말이야. 진짜 최대한 빨리 온 거야. 알고 있지?”
“네. 정확하게 시간 맞춰서 오셨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 보자고.”
“네!”
갑작스런 사단장 호출로 한종태 대대장이 사단으로 떠나면서 두 시간 안에 돌아오겠다고 장담을 했다.
하지만 곽부용 작전 과장은 나머지 경기를 최대한 늦춰 진행하라고 지시했고 작전 장교가 그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예정보다 삼십 분 늦게 돌아온 한종태 대대장도 편하게 축구 결승을 지켜볼 수 있게 됐다.
한종태 대대장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때 오상진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 소위!”
“넵!”
오상진이 한종태 대대장에게 뛰어갔다.
“이제 오셨습니까?”
“그래. 1중대 애들은 어때? 컨디션 좋아?”
“네. 물론입니다.”
“껄껄껄!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그러면서 한종태 대대장이 오상진에게 손짓했다. 오상진이 한종태 대대장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자네 말이야, 이길 수 있지?”
“……?”
오상진은 당황하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종태 대대장은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긴장했나? 괜찮아. 이기기만 하면 돼.”
한종태 대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사악하게 느껴졌다.
“아, 네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이야 당연한 것이고, 무조건 이겨야지. 안 그런가?”
“무, 물론입니다.”
“그래, 그래!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한종태 대대장이 환하게 웃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오상진이 떨떠름한 얼굴로 몸을 돌려 가는데 이번에는 곽부용 작전과장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오 소위, 꼭 이겨야 하네.”
“네?”
“이겨야 된다고. 알겠나?”
“네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당황하며 대답한 후 재빨리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작전 과장이 다이어리에서 슬쩍 뭔가를 꺼냈다.
그것은 이번에 걸린 내기 표였다.
‘오 소위. 대대장님이랑 내가 1중대에게 걸었어. 그러니 이겨야 해. 안 그럼……. 여러 사람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
작전과장이 속으로 중얼거린 후 한종태 대대장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왔나?”
“네.”
“어떻게 1중대가 이길 것 같나?”
“네. 꼭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암! 후후후…….”
한종태 대대장은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한편, 화기중대장은 3중대장과 긴히 얘기를 나눴다.
“3중대장 상황이 아주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뭐가 말입니까?”
화기중대장이 어떤 이야기를 할 줄 알아챈 것일까.
이대우 3중대장의 말투는 퉁명스럽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화기중대장은 그런 반응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자신의 말만 했다.
“지금 보십시오. 우리 점수가 220점입니다. 잘하면 우리 화기 중대가 종합 우승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화기중대장이 말하지 않아도 이대우 3중대장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기중대장은 이대우 3중대장의 모르쇠에 자랑도 할 겸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금 1중대 점수가 140점입니다. 그리고 지금 남은 종목은 축구 결승전뿐이고요.”
“그걸 누가 모릅니까.”
“들어보십시오. 지금 1중대와 3중대가 결승전에 맞붙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렇죠.”
“문제는 1중대가 우승하면 100점을 가져가서 240점이 되는데 이러면 1중대가 종합 우승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