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55화 (155/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55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7)

화기중대는 운 좋게 올라온 케이스였다. 예선전에서 충돌 사고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 바람에 꼴등으로 달리던 화기중대가 2등을 차지했다고 했다.

화기중대장조차 이어달리기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을 정도.

박중근 하사는 머릿속에서 일단 화기중대를 지워 버렸다.

‘얼핏 봤을 땐 6중대가 의외로 잘 달리던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어. 그래도 가급적 3중대를 견제해야겠지. 3중대가 우리보다 더 많은 점수를 따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니까. 그 외 변수는…….’

박중근 하사가 깊이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단 하나. 3중대만 이기면 돼.’

그때 감독관이 나와 간략한 설명을 했다.

“자, 이어달리기는 총 500미터로 달린다. 이 트랙의 길이는 200미터, 반으로 쪼개서 각 한 명씩 100미터를 돌아 바통을 준다. 마지막 조는 이 트랙의 한 바퀴를 돈다. 이상, 질문!”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미 앞선 예선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감독관도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 게 민망했던지 곧바로 경기를 진행했다.

“자, 그럼 모두 각자 위치로 이동한다.”

감독관의 지시에 4개 중대 선수들이 출발선에 나란히 섰다.

박중근 하사는 마지막 주자로 나서기로 했다. 예선에서는 중간에 뛰었지만 결승전인 만큼 병사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스타트를 끊을 1중대의 첫번째 주자는 2소대 함두식 일병이었다.

함두식 일병은 중학교까지 육상부 선수로 뛰었는데 주 종목은 100미터였다.

나름 유망주라 불리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지만, 현재는 선수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달릴 수 있는 몸 상태였다.

오상진이 그런 함두식 일병에게 다가갔다.

“함두식.”

“네. 오 소위님.”

“컨디션은 어때?”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열심히만 해라. 알았지?”

다른 간부 같았다면 최선을 다해 무조건 1등으로 뛰라며 부담을 줬겠지만 오상진은 그러지 않았다.

함두식 일병이 선수로 나선 것 자체만으로도 큰 결정이라는 결 알기 때문이었다.

“네. 걱정 마십시오.”

“그래.”

오상진이 뒤로 물러나고 함두식 일병도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자, 준비하고.”

감독관이 화약총을 가져와 높이 쳐들었다.

순간 네 명의 첫 주자가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탕!

화약총의 신호와 함께 네 명의 주자가 동시에 치고 나갔다.

초반 스타트가 가장 좋았던 건 1중대였다.

첫 주자인 함두식 일병이 육상부답게 앞서갔다. 그 뒤를 3중대와 6중대가 바짝 추격했고 화기중대는 뒤쪽으로 쳐졌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내달린 주자들이 트랙의 반환점에 도착했다.

함두식 일병은 손을 뻗어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1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지나쳤던 두 번째 주자 고진욱 일병이 바통을 제대로 쥐지 않고 달리면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제기랄!”

함두식 일병이 뒤늦게 바통을 주워 건네줬지만 그 땐 3중대와 6중대가 앞으로 치고 나간 뒤였다.

“환장하겠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오상진 역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소한 실수 하나에 경기 결과가 좌지우지되는 이어달리기에서 바통 처리 미스는 생각보다 뼈아팠다.

하지만 고진욱 일병은 포기하지 않고 앞선 주자들을 쫓아 달렸고 그 모습에 감동한 1중대원들들 목소리를 높여 응원했다.

“1중대! 1중대! 1중대!”

“3중대! 3중대! 3중대!”

“6중대! 6중대! 6중대!”

“화기, 후와! 화기 후와!”

1중대를 시작으로 사방에서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힘을 낸 고진욱 일병이 앞서 달리는 6중대와 3중대 선수를 턱밑까지 따라잡았다.

그렇게 다시 반 바퀴를 돈 레이스는 세 번째 구간에 접어들었다.

“빨리! 빨리!”

1중대 세 번째 주자인 임창중 상병은 조금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 대기를 했다.

괜히 자리를 지켰다가 3중대나 6중대와 엉키면 낭패였기 때문이다.

임창중 상병의 생각을 간파한 고진욱 일병도 살짝 페이스를 늦춰 바통을 건넬 틈을 만들었다.

그런데.

“억!”

바통 터치를 끝낸 3중대 선수가 임창중 상병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다.

바통을 받자마자 미친 듯이 내달려야 하는데 그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다.

그사이 화기중대 선수마저 임창중 상병을 추월하면서 1중대는 다시 꼴찌로 내려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중근 하사가 안타까움에 한마디 내뱉었다.

“저거 반칙 아닙니까?”

그러면서 힐끔 감독관을 봤다. 하지만 감독관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게다가 화기중대가 의도적으로 임창중 상병 앞길을 막으며 달리고 있었다.

“옆으로 빠져! 빠지라고!”

박중근 하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었던지 임창중 상병이 곡선 주로를 멀리 돌아 달리면서 자신을 집요하게 견제하던 화기중대 선수를 뿌리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1중대가 화기중대를 제치고 3등으로 다시 올라갔지만 화기중대 선수의 표정은 밝았다. 마치 자신은 임무를 다 했다는 듯 씨익 웃고 있었다.

“저, 저 새끼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짬짜미가 이루어졌다는 걸 알아챈 박중근 하사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분명 뭔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증명할 물증이 없었다.

결국 1중대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뛰고 뛰고 또 뛰는 것뿐.

“창중아 달려! 달려! 좀 더 힘을 내!”

박중근 하사가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상병이라는 이유로 연습 때 심히 뺀질거리긴 했지만 임창중 상병은 1중대의 에이스였다.

주력이나 체력은 박중근 하사와 더불어 투톱으로 꼽히고 있었다.

그런 박중근 하사의 응원 때문인지 임창중 상병이 젖먹던 힘까지 다해 내달렸다. 그리고 50미터를 지난 시점에서 도망치던 6중대와 3중대의 꼬리를 잡았다.

“그래! 그거야, 창중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상진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김철환 1중대장도 주먹을 움켜쥐며 좋아했다.

그렇게 다시 반 바퀴 레이스가 끝나고 온전히 한 바퀴를 도는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됐다.

1중대의 마지막 주자 박중근 하사가 천천히 바통 받을 준비를 했다. 그사이 임창중은 2등인 6중대를 바짝 뒤쫓았다.

“미안 내가 먼저 간다.”

마지막 곡선 주로에서 인코스로 파고들기에 성공한 임창중 상병이 에이스답게 6중대 선수를 제치고 2등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1등인 3중대 뒤를 바짝 쫓아갔다.

“잡았다!”

박중근 하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면 그 옆에 선 3중대의 마지막 주자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임창중 상병이과 3중대 선수가 동시에 바통 터치 구간에 들어오고 곧바로 바뀐 주자들이 바통을 받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상진과 김철환 1중대장은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다.

‘박 하사 제발…….’

박중근 하사는 이를 악물며 달려나갔다.

8.

앞으로 내달리던 박중근 하사의 시선에 2미터쯤 앞서 달리는 3중대 선수가 눈에 들었다.

3중대 역시 마지막 주자로 지난 산악구보에 참여 했던 김 하사를 내세웠다.

지난 체력 검정에 이은 일종의 리턴매치였다.

박중근 하사가 속도를 높여 김 하사의 옆으로 다가왔다.

“김 하사. 천천히 뛰지.”

“안 됩니다. 저 이번에도 지면 중대장님께 죽습니다.”

“설마 진짜 죽이겠냐.”

“저 좀 봐주십시오.”

“네가 나 좀 봐줘라.”

그렇게 거친 호흡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곡선주로 구간에서 본격적인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박중근 하사가 인코스로 파고들려 했지만 김 하사는 보란 듯이 인코스를 지켰다. 그 과정에서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6중대 선수가 눈을 반짝였다.

‘저 둘이 뭐 하는 거야? 차라리 잘됐다. 잘하면 어부지리를 노릴 수 있겠어.’

초반에 에이스 카드를 전부 써버린 화기중대는 뒤로 쳐졌다.

결국 1중대와 3중대, 그리고 6중대가 1, 2, 3등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농구를 제외하고 점수를 따내지 못한 6중대 입장에서는 종합 우승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이어달리기의 목표를 3등으로 잡았다.

50점이라도 따내서 중간은 가자는 게 6중대장의 계산이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달리다 마지막 기회를 노려보자. 혹시 알아? 둘이서 발이 걸려 넘어져 줄지.’

6중대 선수는 무리하지 않고 간격을 유지해 달렸다.

그런 그의 생각이 맞았을까?

결승점을 두고 마지막 곡선 구간에 들어서면서 박중근 하사와 김 하사의 경쟁이 더 치열해졌고 서로 어깨를 부딪치는 과정에서 김 하사가 균형을 일으면서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그 과정에서 김 하사를 피하려던 박중근 하사도 발이 엉켰다.

“젠장!”

“제기랄!”

순간 김철환 1중대장과 3중대장이 동시에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박 하사! 일어나 뛰어!”

“김 하사! 뭐 하고 있어. 안 일어나!”

오상진과 1중대 소대장들은 박중근 하사를 향해 있는 힘껏 악을 내질렀다.

다행이 박중근 하사는 뒤늦게 몸을 일으켜 레이스를 이어 나갔다. 6중대 선수가 먼저 치고 나간 상태라 1등은 불가능했지만 김 하사가 쓰러진 만큼 어떻게 해서든 2등은 하고 싶었다.

박중근 하사가 달리니 김 하사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왼쪽 발목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넘어지면서 아예 발목이 꺾인 모양이었다.

“김 하사 왜 그래? 어서 일어나!”

경기장까지 내려온 3중대장이 뛰라고 소리쳤지만 김 하사는 왼쪽 발목을 감싸며 꿈쩍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저만치 뒤쳐져 있던 화기중대 선수가 천천히 달려왔다.

“어?”

화기중대원은 쓰러진 3중대를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긋하게 뛰라는 화기중대장의 지시로 뒤쳐져 달리느라 박중근 하사와 김 하사가 서로 엉켜 넘어진 걸 보지 못했던 것이다.

‘벌써 경기 끝났나? 김 하사님은 왜 저러고 계시지?’

뒤늦게 화기중대장이 멈춰 서라고 사인을 보냈지만 그걸 보지 못한 화기중대원은 그대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러고는 당연히 자신이 꼴찌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독관이 3등이라고 외치자 고개를 갸웃했다.

“3등? 내가? 왜?”

화기중대원은 뒤늦게 다른 선수들을 확인했다. 6중대 선수 옆에 1중대 박중근 하사가 숨을 헉헉거리며 앉아 있었다.

“자, 잠깐만 그렇다면…….”

화기중대원이 깜짝 놀라고 있을 때 화기중대장이 다가와 낮은 소리로 화를 냈다.

“야, 인마. 네가 들어오면 어떻게 해?”

“제가 꼴등 아니었습니까?”

“어휴.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1중대하고 3중대하고 걸려서 넘어졌잖아!”

“저, 저는 못 봤습니다.”

“됐다.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아무튼…… 고생했다.”

화기중대장이 어깨를 두드리고 사라졌다.

솔직히 말해 이쯤 하면 할 도리는 다했다.

여기서 뭘 더 해 주길 바라는 건 3중대의 욕심이었다.

3중대장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화기중대장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절뚝거리며 돌아온 박 하사를 죽일 듯 노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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