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53화 (153/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53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5)

7.

“오호, 제육볶음!”

메뉴를 확인한 4소대장의 눈이 반짝였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고기를 좋아하지만 4소대장은 특히나 더 고기를 좋아했다. 비싼 회와 삼겹살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해도 삼겹살을 선택할 만큼 고기파였다.

게다가 체육대회랍시고 상추까지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 역시 이런 날엔 쌈을 싸 먹어야지.”

4소대장이 씩 웃으며 말했다.

병사들도 상추에 고기를 싸 먹으며 좋아하고 있었다.

“와, 매일 체육대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야, 인마. 그러다 죽어! 체육대회 준비하는 게 얼마나 고역인 줄 아냐?”

“전 그런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냥 맛있는 제육에 아이스크림까지 주지 않습니까.”

“어이구. 우리 이병님. 군대에서 아이스크림 줘서 감동했어요? 원래 여름에는 부식으로 아이스크림 나오거든?”

“아, 그렇습니까? 그래도 체육대회 날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꿀맛입니다.”

푸짐한 체육대회 점심을 처음 맞는 이등병들은 하나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고참들은 알고 있었다. 다 같이 고생했으니 생색내기로 식판이 푸짐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듣기로는 저녁에 삼겹살에 술도 한잔한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맞아! 삼겹살에 아마 술은 막걸리로 나올걸?”

“우와! 진짜였구나. 대박입니다.”

이등병은 벌써부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일병이 그런 후임병을 보며 한마디 했다.

“왜? 막걸리 먹고 취해서 선임병들에게 꼬장 한번 부리게? 아니면 야자타임이라도 한번 할까?”

“저, 정말 야자타임도 하는 겁니까?”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는.”

“에이, 농담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고참분들과 야자타임을 합니까. 그냥 군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막걸리를 먹는다니 기분이 좋아서 그렇지 말입니다.”

“신나는 건 알겠는데 적당히 마셔. 진짜 그러다 실수하면 네 남은 군 인생은 깜깜할 테니까.”

“넵, 알겠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13시부터 오후 일정이 시작되었다.

오후 일정의 첫 스타트를 끊은 건 씨름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이 줄다리기였다.

줄다리기는 경기 시간이 짧기 때문에 뻔한 대진표 대신 재미를 위해서 즉석에서 중대장들끼리 제비뽑기를 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냥 하면 되지, 뭘 또 추첨씩이나.”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또 1중대장이 압력 넣은 거 아닙니까?”

“그러고도 남을 양반이지.”

이대우 3중대장과 5중대장은 대진표대로 진행하지 않아 불만이었다.

기존의 방식대로라면 1중대의 상대는 화기중대.

그리고 화기중대는 줄다리기 종목에서 적수가 없는 최강의 부대였다.

3중대와 5중대는 1중대와 반대편 블록에 있으니 화기중대와는 결승전에서나 만나게 될 터.

그렇게 하면 점수도 벌고 1중대의 콧대도 꺾고 일석이조였겠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작전과장은 즉석 제비뽑기를 지시했다.

“자, 지금부터 줄다리기 대진표를 짜겠습니다.”

작전 장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각 중대장들이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먼저 김철환 1중대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 이대우 3중대장이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보자마자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빨리도 오셨습니다. 1중대장님.”

“3중대장도 빨리 왔는데 뭘.”

“그런데 제비뽑기가 선착순입니까?”

“그랬어? 선착순이면 내가 먼저 왔지만 3중대장에게 먼저 뽑을 기회를 주지.”

“하하하, 아닙니다. 1중대장님이 먼저 오셨는데 당연히 먼저 뽑으셔야죠. 전 언제 뽑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나도 상관없는데.”

“그렇습니까? 그럼 1중대장님께서는 그냥 계시다가 다른 중대장들이 다 뽑고 남은 번호 가져가시면 되겠습니다.”

3중대장의 말에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바구니 안에 8개의 번호가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가장 마지막에 뽑는 사람은 번호를 뽑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일곱 자리가 정해져서 나머지 한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철환 1중대장이야 1중대장의 위신을 세우려고 그냥 해본 말이었지만 이대우 3중대장은 그걸 비집고 들어와 1중대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1중대장 체면에 자기가 뱉은 말을 도로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그, 그래. 난 상관없네.”

김철환 1중대장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러났고 그렇게 제비뽑기가 진행되었다.

“3번입니다.”

“저는 6번이네요.”

중대장들은 빠르게 번호를 뽑았다.

그렇게 두 팀의 대진이 끝나고 화기중대와 6중대의 옆자리가 빈 채 두 개의 제비뽑기만 남겨두게 됐다.

순간 주위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오오오…….”

“화기중대와 6중대라. 재미있는데요?”

“극과 극이야. 6중대면 뭐 거의 최약체고 화기중대는 반대로 우승 후보잖아.”

김철환 1중대장도 바짝 긴장했다. 만에 하나 화기중대 옆자리가 걸린다면…… 예선은 해보나 마나 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제비를 뽑는 게 하필 5중대장이었다. 이대우 3중대장을 등에 업고 자신은 물론 육사 출신 중대장들과 걸핏하면 부딪히던, 이대우 3중대장의 오른팔 같은 존재.

만약 5중대장이 최약체인 6중대를 뽑으면 1중대는 자연스럽게 화기중대와 붙게 되는 것이었다.

“이야. 5중대장의 손에 운명이 갈렸네.”

“그러게 과연 5중대장은 누구를 뽑을까?”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중대장들의 말을 듣고 5중대장이 피식 웃었다.

“그럼 제 손에 1중대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겁니까?”

김철환 1중대장이 말했다.

“그건 5중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저희는 이번에 줄다리기를 전략적으로 포기해서 말이죠.”

“우리도 뭐 크게 신경 쓰지 않네. 축구만 이긴다면야…….”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순간 5중대장이 비웃듯 입가를 비틀어 올리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한번 뽑아보겠습니다.”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5중대장의 손에 집중되었다.

김철환 1중대장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옆에 있던 오상진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상진아, 나 무진장 떨린다. 어떡하지? 그냥 지금이라도 내가 먼저 뽑는다고 할까?”

“그러지 마십시오. 중대장님 체면이 있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그럽니까.”

“저거 아무래도 2번 뽑을 거 같아서 그래.”

“중대장님이 뽑으셔도 모 아니면 도입니다. 중대장님이 제비 뽑았는데 7번 나오는 것보단 5중대장이 2번 뽑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상진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5중대장의 손이 바구니 안에 들어가자 오상진이 속으로 강하게 외쳤다.

‘제발 2번 나와라. 2번, 2번…….’

현재 남은 번호는 2번하고 7번. 2번을 뽑으면 화기중대 옆이고, 7번을 뽑으면 6중대였다.

그때 5중대장이 손을 빼고 번호를 확인했다.

“몇 번이야?”

“이거 딱 봐도 7번 같은데요?”

5중대장이 학의 머리처럼 구부러진 숫자 윗부분을 보며 씩 웃었다.

그 번호를 힐끔 본 이대우 3중대장도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럼 7번이야?”

“헐, 1중대가 화기중대 옆자리네…….”

중대장들의 시선이 일제히 줄다리기 대진표로 향했다. 어느새 6중대의 옆자리에 5중대의 이름이 써졌다.

“이런, 이런. 저희가 6중대와 붙게 되었습니다.”

5중대장이 김철환 1중대장을 보며 놀리듯 말했다.

김철환 1중대장은 일그러지는 표정을 감추느라 애를 썼다. 5중대가 6중대와 붙는다면 강력한 우승 후보인 화기중대와 붙는 쪽은 바로 1중대였다.

반면, 화기중대장은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어차피 우승은 우리 화기중대 차지인데 왜 자기들끼리 난리야? 아무튼 웃기는 놈들이라니까.’

상대가 누구든 화기중대장은 별로 개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제비뽑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상진아, 망했다. 우리 어떻게 하냐. 완전 최악이다.”

“뭘 어떻게 합니까. 그냥 운명을 받아들여야죠. 그리고 우리도 줄다리기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도, 7번이면 결승전까지 올라갈 수 있잖아. 그럼 최소 70점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건 그렇지만……. 애당초 우리 점수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시죠. 그보다 다른 경기에 집중하면 됩니다.”

오상진이 어쩔 수 없다며 김철환 1중대장을 위로했다.

잠시 준비 시간을 가진 뒤 곧이어 줄다리기 예선전이 벌어졌다.

연병장 중앙에 화기중대와 1중대가 예선전을 펼치기 위해 섰다.

예선은 단판제라 긴장감이 감돌아야 정상이었지만 화기중대 쪽은 여유로워 보였다.

반면 1중대에 선발된 중대원들 그야말로 죽을상이었다. 하필이면 가장 붙고 싶지 않은 화기중대와 줄다리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철환 1중대장이 직접 내려와 병사들을 독려했다.

“다들 긴장하지 마라. 화기중대라고 해서 우리가 꼭 이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식하게 화기중대와 힘 싸움하지 마라. 시작과 동시에 줄을 잡아당기고 그냥 드러누워!”

“네?”

“그럼 되는 겁니까?”

“그래! 다른 건 필요 없다. 그냥 뒤로 바짝 드러누워 버려!”

“아, 알겠습니다.”

“알겠나. 절대로 딴 것은 필요 없어. 그냥 누우면 돼!”

“네, 알겠습니다.”

김철환 1중대장은 끝에 있는 병사들에게까지 다가가 필승의 전략을 설파했다.

솔직히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중대장이 직접 와서 독려해 주니 반쯤 포기했던 1중대원들의 눈에도 비장함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화기중대 선수들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야야, 1중대는 껌 아니냐. 그냥 몸 푼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해. 우리의 상대는 5중대니까.”

“네. 알겠습니다.”

화기중대장의 작전도 별거 없었다. 적어도 줄다리기는 상대가 김철환 1중대장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 있었다.

그때 준비 호각이 울리고 감독관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 천천히 줄부터 잡습니다. 절대 서로 당기지 않습니다.”

삐이이익!

감독관의 호각에 두 중대는 줄을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감독관은 붉은색 표시가 된 줄을 중앙선에 맞추려고 용을 썼다.

“허허, 힘빼! 힘빼라고!”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서로에게 집중된 상태인지 감독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감독관은 할 수 없이 표기된 한가운데를 잡고 중앙에 맞췄다. 그래도 기 싸움이 팽팽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냥 호각을 불어버렸다.

삐이이익!

그 소리와 동시에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으샷! 으샷! 으샷!”

화기중대는 호흡에 맞춰 있는 힘껏 놨다 당겼다를 반복했다. 반면 1중대는 김철환 1중대장의 지시대로 그대로 뒤로 몸을 눕혔다.

“버텨! 이대로 버텨!”

김철환 1중대장의 목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으으으으으윽~”

뒤로 드러눕는 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조금씩 줄이 1중대로 기울어졌다.

‘어? 된다? 우리 쪽으로 점점 줄이 넘어오고 있어!’

‘이러다 화기 중대 잡는 거 아니야?’

1중대의 얼굴에 점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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