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52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4)
“우강아. 어때? 좀 더 봐야겠어?”
“아닙니다. 대충 어떤 건지 감 잡았습니다.”
오상진의 지시대로 마태호 상병의 어깨를 주시했던 김우강 일병이 씩 웃었다. 그리고 마태호 상병이 공격을 한 순간 어느새 김우강 일병이 나타나 공을 받아냈다.
다소 코스가 빗나가긴 했지만 손강인 상병이 욕심부리지 않고 네트 쪽으로 토스를 올렸고 공격수인 강종인 상병이 몸을 날려 코트에 내리꽂았다.
펑!
공이 바운드 되어서 높게 튀며 바깥으로 멀리 날아갔다. 3중대 수비수가 다급히 쫓아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격은 이래야지.”
이 한 방의 공격으로 분위기는 다시 1중대로 넘어왔다.
이후에도 마태호 상병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페이크 동작을 넣었지만 김우강 일병은 더 이상 속지 않았다. 오히려 마태호 상병의 공격 루트를 알아채고는 모든 공을 건져냈다.
“어? 이,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회심의 공격 대부분이 수포로 돌아가자 마태호 상병이 당황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선수들까지 흔들리면서 실책이 늘어났다.
결국 1중대가 접전 끝에 1세트를 가져갔다.
“와아아아! 1중대! 1중대!”
“가자! 1중대!”
1중대 응원단의 목소리가 높아진 반면 3중대 병사들은 기운이 빠진 모습들이었다.
이대우 3중대장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
“야, 마 상병. 어떻게 된 거야? 너만 믿으라며?”
대안이라도 있다면 플랜 B를 가동하겠지만 마태호 상병은 3중대 최고의 공격수이자 실력자였다.
마태호 상병의 발 끝에 족구 우승이 걸려 있으니 애가 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태호 상병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원래 1세트는 주고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뭐? 진짜야?”
“네, 그렇습니다. 3세트 경기라면 첫 세트 내주는 게 부담이지만 결승전은 5세트 경기 아닙니까? 이제부터 내리 3세트를 따 오겠습니다.”
“그런 작전이 있었으면 진즉 이 중대장에게 말을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걱정 마십시오.”
마태호 상병이 큰 소리를 쳤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1중대 선수들의 평균적인 수준도 수준이지만 전체적인 팀 플레이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수비를 보는 김우강 일병이 신경 쓰였다.
1세트 중반부터 일부러 김우강 일병이 없는 쪽으로 공격을 시도하는데도 절반 이상이 김우강 일병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이기긴 힘들 거 같은데……. 중간쯤에 발목이 삐었다고 하고 경기에서 빠져?’
마태호 상병이 고민을 했다. 이대로 결승전이 끝나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올 터.
그러느니 차라리 부상을 핑계로 빠지는 게 욕을 덜 먹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대우 3중대장이 제안한 당근이 너무 컸다.
‘아니야! 잘하면 미영이랑 전국 일주를 할 수도 있는데 최선을 다해야지. 끝까지 해보자.’
마태호 상병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 후 다시 경기장에 나섰다. 기죽은 선수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독려하며 2세트를 잡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마태호 상병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공격은 좀처럼 점수로 연결되지 않았다.
일단 모든 공이 마태호 상병 한 명에게 집중되니 1중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수비하기가 편했다. 게다가 김우강 일병이 마태호 상병을 전담마크 하듯 쫓아다닌 탓에 마태호 상병도 좀처럼 공격할 루트를 찾지 못했다.
그렇게 1세트에 이어 2세트마저 허무하게 내주고 나니 3중대 족구팀은 슬슬 불안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뭐야? 마 상병. 오늘 왜 이러는 거야?’
‘마 상병, 어떻게 된 거야?’
‘마 상병님…….’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원망 어린 눈으로 마태호 상병을 바라봤다. 하지만 더 멘탈이 나간 쪽은 마태호 상병이었다.
“야, 마 상병. 정신 차려!”
“아, 네.”
“괜찮아? 더 뛸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안 늦었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하면 중대장이 휴가증 하나 더 쏜다.”
“정말이십니까?”
“그러니까 제대로 해. 알았어?”
이대우 3중대장은 어쩔 수 없이 마태호 상병 카드를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1세트부터 3세트까지 내리 지며 족구는 3 대 0으로 1중대의 우승으로 돌아갔다.
경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1중대 족구팀 선수들이 오상진에게 달려갔다.
“1소대장님 조언 덕분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내가 뭘 했다고. 다 너희들이 잘한 거지.”
“아닙니다. 소대장님 말씀이 정확했습니다. 마 상병의 어깨를 잘 보니 길게 넣을 때와 짧게 넣을 때 어깨의 움직임이 달랐습니다.”
김우강 일병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눈썰미 좋은 너라면 알아챌 줄 알았다.”
오상진도 마태호 상병의 버릇은 이미 알고 있었다.
과거에 숱하게 내기 족구를 했던 상대니까.
실제로 마태호 상병이 있는 팀을 잡기 위해 연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깨의 미묘한 움직임을 알게 됐는데 그걸 다른 선수들에게 일러줘 봤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깨만 신경 쓰다 역으로 당하기도 했고.
그래서 오상진은 김우강 일병에게 팁만 주었다.
자신처럼 스스로 알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솔직히 3세트 정도는 되어야 김우강 일병이 감을 잡을 줄 알았는데 1세트 중반부터 간파할 거라고는 오상진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튼 다들 고생했다. 그리고 나 말고 3소대장에게 고맙다고 해야지. 여태까지 너희들을 지도해 주셨는데.”
“당연합니다.”
선수들은 곧바로 3소대장에게 갔다. 그리고 늦었지만 서로 약속했던 우승 세레머니를 펼쳤다.
오상진은 그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1중대는 족구 우승을 통해 체육대회 첫 번째 점수를 얻게 됐다.
오상진과 소대장들이 본부석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점수판을 확인했다.
“어? 아직 점수 반영 안 되었나 보네.”
“3소대장이 와야죠.”
“아…….”
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4소대장이 본부석에서 확인을 하더니 손을 들었다.
“저기 3소대장 옵니다.”
3소대장은 본부석으로와서 말했다.
“족구 1중대가 우승했습니다.”
작전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작전과 계원이 일어나 점수판으로 이동했다.
비어 있던 1중대 점수란에 처음으로 70이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오상진은 내친 김에 다른 중대의 점수를 확인했다.
1중대 70점. (족구 우승)
2중대 50점. (축구 3위)
3중대 50점. (족구 준우승)
4중대 30점. (족구 3위)
5중대 0점.
6중대 30점. (농구 3위)
7중대 30점. (씨름 3위)
화기중대 0점.
5중대와 화기중대를 제외한 모든 중대가 30점에서 50점의 점수를 따냈다.
“이야. 다들 점수를 골고루 땄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느낌은 처음입니다.”
“다른 중대도 이번에 준비 엄청 했으니까요. 다들 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하는 모양입니다.”
그때 4소대장이 점수판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2중대는 어디서 점수를 땄죠?”
그러자 점수판을 체크하던 작전계원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축구에서 3등 했지 말입니다.”
“오오 축구! 2중대가 이겼나 보네.”
“아까 보니까 축구 하던데 그게 2중대였습니까?”
“네. 6중대를 이겼나 봅니다.”
“역시 2중대도 저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등비등하게 싸웠지 않습니까.”
3소대장과 4소대장이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3소대장, 애들은 어디 있습니까?”
“아, 제가 편히 휴식을 취하라고 했습니다. 부소대장이 지켜본다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거기가 어딥니까? 제가 가서 간단히 음료수라도 사 주고 오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안 그래도 부소대장에게 만 원 줬습니다. 알아서 챙겨 먹을 겁니다.”
“잘 하셨습니다.”
오상진이 피식 웃었다. 4소대장도 예전과 달라진 3소대장을 보며 씩 웃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경기한 것으로 보면 현재 우리 1중대가 1등입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대로 체육대회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에이. 아직 경기 반도 안 했습니다. 그리고 체육대회의 꽃인 축구는 봐야죠.”
“그냥 끝난 거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자꾸 그러니까 부담됩니다.”
“축구는 우리 1소대장님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없고 우린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겁니다.”
“그럼요. 중간 집계 1등이 어딥니까?”
오상진과 소대장들이 웃으며 본부석을 나섰다. 그때 저 멀리서 박중근 하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다.
오상진이 박중근 하사를 보며 물었다.
“박 하사. 무슨 일 있습니까? 무슨 땀을 그리 흘립니까?”
“아, 방금 이어달리기 예선전하고 왔습니다.”
“박하사가 직접 선수로 뛴 겁니까?”
“네. 장교도 참가 가능하다고 해서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상진의 물음에 박중근 하사가 피식 웃었다.
“저희 2등으로 결승전 진출입니다.”
오상진과 3소대장은 기뻐하는 반면, 4소대장은 약간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2등입니까?”
박중근 하사가 4소대장을 봤다.
“1등하고 아슬아슬한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괜히 예선전에 힘 뺄 필요가 없어서 2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결승전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네.”
“그런데 어느 중대가 올라갔습니까?”
3소대장의 물음에 박중근 하사가 바로 답했다.
“저희 중대와 3중대 6중대 화기중대가 결승전에 맞붙게 되었습니다.”
“3중대는 또 올라왔네.”
3소대장은 3중대의 저력에 놀랐고 4소대장은 예상치 못한 중대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기중대는 진짜 의외입니다. 그 녀석들 힘만 셀 줄 알았더니 달리기도 잘하나?”
“뭐, 다른 중대가 워낙에 못했나 보죠.”
“정확하게는 못 봤지만 중간에 넘어진 선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하, 어쩐지. 이제 좀 이해가 갑니다.”
3소대장과 4소대장이 웃으며 말하자 오상진이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점심시간입니다. 식사하러 가죠.”
“그럼 식사들 하러 가시죠.”
4소대장이 앞장 서서 길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상진은 간부 식당이 아닌 병사 식당으로 향했다.
4소대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1소대장, 간부 식당은 이쪽입니다.”
“아, 오늘은 왠지 병사 식당에서 먹고 싶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자 3소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오랜만에 병사들이랑 점심을 먹어볼까.”
“그, 그렇다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4소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오상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괜히 저 때문에 안 그러셔도 됩니다.”
“에이. 그렇다고 어떻게 1소대장님 혼자 식사하시게 둡니까?”
“맞습니다. 계속 같이 움직였는데 식사도 같이 하시죠.”
“네. 그럼 다 같이 가시죠. 그런데 애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오상진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소대장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아무래도 병사들이 밥을 먹는 데 눈치가 보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3소대장과 4소대장은 그런 쪽으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뭐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먹겠다는데. 불편해도 참으라고 하죠.”
“네.”
그렇게 세 사람은 병사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