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생 리셋 오 소위-151화 (151/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51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13)

작년에야 1위와 2위를 골고루 나눠 갖다 보니 고정적인 종목을 가진 화기중대가 뜬금없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어느 한 중대가 두각을 보인다면 화기중대가 작년만큼 성적을 내더라도 우승을 자신하기 어려웠다.

“참, 이번에 이어달리기에서는 간부 한 명도 출전 가능하다고 하는데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아뇨, 저 뛰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리가 완전히 굳었습니다.”

4소대장의 제안에 오상진과 3소대장이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오상진이 불쑥 말했다.

“그럼 4소대장이 나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 말입니까? 에이, 그나마 순위권에 들 수 있는데 저 하나 때문에 꼴찌 합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분이야말로 산악구보의 영웅이었지 않습니까.”

“에이, 산악구보랑 이어달리기는 전혀 다르죠. 게다가 1소대장이랑 박 하사가 다 한 거죠. 저는 그냥 운 좋게 가장 먼저 달렸을 뿐입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곽부용 작전과장이 나왔다.

“대대장님 나오십니다.”

그 말에 모든 장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중앙현관을 통해 한종태 대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한종태 대대장은 생각보다 준비가 마음에 들었던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충성대대 체육대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대대장님의 개회사 및 개회선언이 있겠습니다.”

한종태 대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앞에 섰다. 그는 잠시 병사들을 쭉 훑어본 후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충성대대 장병 여러분 오늘 저희는 체육대회를 맞이해……. <중략> 그리고 한 명의 부상자도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체육대회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 지금부터 충성대대 체육대회를 선언한다.”

한종태 대대장의 짧지 않았던 개회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체육대회의 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시작된 종목은 농구였다. 오후에 치러질 결승전에 앞서 오전에 3-4위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비록 결승 진출에 실패한 중대 간의 맞대결이었지만 그래도 3위를 한 중대는 30점의 점수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종합 우승을 다툴 때 자주 변수로 작용하는 게 바로 종목별 3위로 획득한 점수였다.

“그래도 우리 1중대가 3-4위전에 진출했으니까 가서 응원해야 하지 않습니까?”

“이미 지금 그쪽으로 우리 1중대 병력이 가 있을 겁니다.”

“하하, 응원전도 볼만하겠습니다.”

1중대 소대장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농구장으로 향했다. 농구장에서는 이미 선수들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어? 그런데 2소대장이 보이지 않습니다.”

4소대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오상진과 3소대장 역시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3소대장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래도 3-4위전이라고 쪽팔려서 안 나오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책임자인데…….”

4소대장이 슬쩍 불만을 터뜨렸다. 오상진 역시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2소대장을 찾으러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그사이에 경기가 끝나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애들은 괜찮을까요?”

4소대장이 걱정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좋은 감독은 아니라 하더라도 장재일 2소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사기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오상진이 모여 있는 병사들을 뚫고, 3-4위전을 치르는 농구팀에게 갔다.

“얘들아.”

“어? 1소대장님.”

“그래, 아무래도 2소대장은 잠깐 일이 생긴 모양이다. 대신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해.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오상진이 농구팀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농구팀 선수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경기가 시작되고 1중대 선수들은 3위라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6중대에게 밀렸다.

이럴 때 열심히 독려를 해주고, 작전을 얘기해 주는 코치의 힘이 컸지만 오상진만으로는 2중대장의 부재를 채울 수가 없었다.

결국 1중대는 6중대에 밀려 최종순위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선수들이 고개를 떨군 채 오상진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잘했어!”

“고개 들어. 무슨 죄지었냐!”

“그래 잘한 거야. 잘했어!”

오상진을 비롯해 다른 소대장들과 1중대원들이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위로해 주었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4소대장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구는 농구팀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아쉽습니다. 조금만 운이 따랐다면 3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승패보다는 노력에 박수를 쳐줘야겠죠.”

“그보다 2소대장은 어디 간 겁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오상진이 2소대 부소대장에게 물었다.

“2소대장 어디 갔습니까?”

“그게…….”

부소대장이 말을 더듬으며 슬쩍 말했다.

“그냥 의무대에 간 것으로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소대장도 정확히 장재일 2소대장이 어디에 갔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부소대장이 되어서 소대장의 행방도 모른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상진이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애들 좀 위로해 주러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부소대장이 즉시 농구팀이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오상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4소대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2소대장 아무래도 그때 회식 사건으로 삐져 있는 거 아닙니까?”

“에이, 설마 그러겠습니까?”

3소대장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2소대장과의 옛정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뿐이었다.

오상진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2소대장 일은 2소대장에게 맡깁시다, 그 문제는 본인이 더 잘 알겠죠. 그건 그렇고 족구 결승전이 몇 시입니까?”

“10시 반쯤에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지금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습니까? 그럼 전 그럼 준비하러 가 보겠습니다.”

“네. 고생하십시오.”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3소대장이 족구장으로 뛰어갔다. 오상진과 4소대장은 느긋하게 족구장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족구장에 도착을 하니 선수들이 이미 나와서 몸을 풀고 있었다.

오상진은 독려도 할 겸 자신이 직접 뽑은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종인아.”

“어? 1소대장님.”

강종인이 몸 풀다가 오상진을 발견하고 표정이 밝아졌다. 그 뒤로 손강인 상병, 김우강 일병도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컨디션은 어때?”

“최고입니다.”

“전에도 한 번 이겼는데 이번에도 못 이기겠습니까?”

“그냥 간단히 이기겠습니다.”

그들은 말로서 각오를 다졌다. 확실히 경험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고 3중대를 한 번 꺾은 자신감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다.

“믿는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야. 알지?”

“네!”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오상진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결승전에 오른 3중대 족구팀을 봤다.

지난번 3중대장의 제안으로 족구 시합을 치렀는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체육대회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이리되면 족구는 진정 숙명의 라이벌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3중대 선수 중에 낯이 익은 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어? 가만 저 녀석은…….’

오상진의 머릿속에 순간 저 녀석이 떠올랐다.

‘나는 돈가스?’

오상진의 기억이 맞는다면 지난번 3중대장을 대신해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는 나는 돈가스, 마태호 상병이 확실했다.

‘그래 내가 잠깐 잊고 있었네. 저 녀석 덩치와 안 어울리게 엄청 족구를 잘했지. 이거 여차하면 밀리겠는데…….’

오상진이 홀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1중대 선수들이 성급히 경기를 준비하러 들어가려고 했다.

“우강아.”

“일병 김우강.”

“그리고 너희 둘도 함께 와봐.”

오상진은 다급히 세 사람을 불렀다.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오상진에게 갔다.

오상진이 슬쩍 마태호 상병 쪽으로 턱짓을 했다.

“저기 새로 온 녀석 보이지?”

“네.”

“3중대에 실질적인 에이스가 등장했다. 마태호 상병이라고 족구를 잘해.”

“어느 정도입니까?”

“종인이 너만큼 해.”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저 녀석을 조심해. 그리고 저 녀석의 주특기가 페이크야.”

“페이크요?”

“몸이 유연해서 길게 때릴 것처럼 굴다가 앞에 떨구고, 앞으로 달려들면 그대로 길게 밀어 넣어버려.”

“아, 어떤 스타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경기 초반에 점수를 내주더라도 휘둘리지 말고 너희 페이스를 유지해. 너희 실력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까.”

“넵!”

“그리고 우강아, 수비할 때 녀석의 어깨를 잘 살펴라.”

“어깨 말입니까?”

“그래. 무슨 말인지는 몇 번 보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알겠습니다.”

오상진의 특별 지시를 받은 뒤 세 사람은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오상진은 괜히 주제넘게 나선 거 같아 3소대장에게 미안하다며 손짓했다. 그러자 3소대장이 신경 쓰지 말라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상진이 나섰다면 공치사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3중대 족구팀의 에이스 마태호 상병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태호. 준비됐지?”

“제 실력 아시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 녀석들도 여간내기가 아니야. 부끄럽지만 이 중대장도 한 번 졌고.”

“그건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중대장님 족구 실력이야 제가 보증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전 아직 저쪽에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분명 절 만만하게 보고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가능하면 초반에 작살 내겠습니다. 그럼 멘탈이 흔들려 그다음 세트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마 상병! 너만 믿는다.”

“네!”

양 팀 간의 작전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마태호 타임이 찾아왔다.

이대우 3중대장에게 공언한 대로 마태호 상병은 특유의 페이크 동작을 이용해 순식간에 점수를 쌓아 올렸다.

“좋았어! 잘한다!”

“그래, 그렇게 해야지.”

3중대의 응원석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3소대장도 손뼉을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얘들아, 집중하자, 집중해!”

하지만 1중대 선수들은 좀처럼 마태호 상병을 막지 못했다. 처음 상대해 본 마태호 상병의 스타일에 휘말려 5 대 1까지 점수 차가 벌어졌다.

이러다 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3소대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반면 3중대 마태호 상병은 이죽거림을 감추지 못했다.

“어때? 내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지?”

마태호 상병은 자신의 공격에 1중대 선수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사전에 오상진이 맞춰 놓은 예방 주사 때문일까.

1중대 선수들의 혼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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