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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47화 (147/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47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9)

“그래, 고마워. 2중대도 고생 많았어. 진짜 오랜만에 볼만한 축구 봤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하지. 대대에서 우리 1중대 라이벌이 2중대 말고 또 누가 있겠어?”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무튼 아쉽네, 아쉬워. 우리하고 2중대는 결승에서 만났어야 했는데 준결승에 만나서 했는데 이놈의 대진표가 이상하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김철환 1중대장과 2중대장은 모처럼 만에 훈훈하게 얘기를 나눴다. 그런 두 사람을 힐끔 보던 오상진도 3소대장이자 동기인 박 소위에게 다가갔다.

“박 소위. 수고했다.”

그러나 정작 박 소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뭐야? 지금 놀리러 왔냐?”

“뭘 또 놀려! 경기 끝났으니까, 악수라도 하는 거지.”

“됐어. 그냥 가! 사람 열 받게 하지 말고.”

“야! 그러지 말고…….”

“됐다니까, 어서 가라고!”

3소대장이 버럭 짜증을 내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병사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 경기 이후 2중대 3소대장 박 소위의 등 뒤로 쫌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충성 대대 쫌팽이 3소대장 박 소위.

그렇게 오상진을 향한 박소위의 증오가 깊어졌다.

5.

주말을 기점으로 축구를 비롯한 족구와 농구, 씨름 종목의 준결승전이 모두 끝났다.

김철환 1중대장의 주도로 1중대 간부들은 그동안의 노고를 기릴 겸 다 같이 모여 회식을 했다.

“야, 많이 먹어라.”

“넵. 중대장님.”

“정말 다들 고생 많았다. 중대장은 정말 너희가 자랑스럽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축구가 결승에 진출해서일까.

김철환 1중대장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표정이 김철환 1중대장과 같진 않았다.

일단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마음껏 분위기를 냈다.

“소대장님. 여기 고기 드십시오.”

“박 하사 먼저 먹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소대장님이 먼저 드셔야죠.”

불판에 고기가 잔뜩 놓여 있었지만 오상진과 박중근 하사는 서로 고기까지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박중근 하사의 아들 수술 모금 이후로 두 사람이 정말 가까워졌다는 걸 다들 알다 보니 다른 이들도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반면 장재일 2소대장과 부소대장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란히 앉아 있긴 했지만 서로 대화는 전혀 하지 않고 각자 소주만 마시고 있었다.

가끔 장재일 2소대장이 박중근 하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뿐. 부소대장인 김 하사는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판에 놓인 고기를 집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걸 보고 있던 3소대장이 장재일 2소대장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쉽습니다. 이길 수 있던 경기였는데…….”

그러자 장재일 2소대장이 불쾌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그 얘기를 또 왜 꺼내?”

“그냥 아쉬워서 그러죠.”

“너는 족구 결승전에 올라갔다 이거야?”

“왜 또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집니까.”

3소대장은 말을 해놓고 멋쩍은 얼굴이 되었다.

사실 장재일 2소대장이 맡은 농구팀은 준결승전에서 2중대와 만났다. 오상진이 이끄는 축구팀이 2중대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만큼 장재일 2소대장도 보란 듯이 농구팀을 결승에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의외로 2중대가 키 큰 애들이 많았다.

“야, 키 큰 놈들이 있다고 주눅 들지 마. 우리는 빠른 스타일로 외각에서 주로 골을 노린다.”

“네!”

하지만 장재일 2소대장의 작전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주문이었다.

전문 선수도 아니고 요 며칠 공을 잡아본 군인들에게 외곽 슛이란 들어가면 고마운 슛일 뿐이었다.

당연히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높이를 앞세운 2중대가 골 밑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초반부터 2중대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엘런 아이번이 그랬지? 농구는 신장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거라고. 완전 순 구라야! 군대 농구는 역시 신장이었어. 제기랄!’

2중대에는 신장이 190㎝이 넘는 병사가 3명이나 있었다. 게다가 키만 큰 멀대 같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다들 소싯적에 농구 좀 했다는 이들로 체격과 기본기까지 갖추고 있으니 1중대 선수들이 감히 덤벼 둘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신 트리오를 앞세운 트라이앵글 수비와 골 밑 공격에 거의 속수무책 당하는 모습이 꼭 한국과 중국의 농구를 보는 듯했다.

반면, 축구 못지않게 괜찮은 선수들로 구성된 족구는 준결승전에서 7중대를 잡고 결승전에 올라갔다.

운명의 장난인지 결승전 상대는 3중대.

결승전에 올라간 축구와 족구 모두 결승전에서 3중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부지런히 삼겹살을 먹으며 배를 채운 4소대장이 입이 심심했던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진짜 1소대장님하고 3소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짜 두 분 아니었으면 우리 1중대 우승도 바라보지 못했을 거 아닙니까.”

4소대 부소대장도 냉큼 맞장구를 쳐줬다.

“맞습니다. 정말 두 분 아니었으면 완전 큰일 날 뻔했습니다. 그보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걸 라이벌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악연이라고 해야 할지.”

“상대가 3소대라?”

“솔직히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축구랑 족구 둘 다 3중대랑 붙습니까?”

“나도 그거 듣고 조작인가 싶었다니까?”

“그래도 종합 우승하려면 두 종목 중에 한 종목은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4소대장이 옆구리를 툭 쳤다.

“너 술 마셨어?”

“네?”

“당연히 두 경기 다 이겨야지! 왜 한 경기만 잡아!”

“에이,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우리가 3중대에게 질 게 뭐야? 저번에도 족구 이겼지. 축구야 우리 1소대장이 감독으로 있는데 당연히 이기는 거지.”

4소대장의 단언에 오상진은 순간 술이 확 깼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오상진이 4소대장을 쳐다봤다. 4소대장 역시 조금 오버했다는 것을 아는지 눈짓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떠벌리기 좋아하는 4소대장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튼 두고 봐. 축구든, 족구든 3중대를 다 발라 버릴 테니까. 걱정 마!”

“후후, 전 하나도 걱정 안 했습니다.”

두 사람은 호흡이 딱딱 맞았다. 본래 1중대 소대장과 부소대장 중에 둘의 사이가 제일 돈독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3소대장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부담됩니다. 그만하십시오.”

박중근 하사도 기다렸다는 듯이 한마디 보탰다.

“4소대장님.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공은 차봐야 압니다.”

“에이, 그래도 전 우리 1중대가 이길 것 같습니다. 느낌이 그렇습니다. 느낌이! 그리고 미안합니다. 제가 맡았던 씨름은 결승전 못 갔습니다. 물론 준결승은커녕 8강에서 탈락했지만……. 대신 결승전 때 제가 두 배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체육대회 씨름은 단체전으로 진행됐다. 중대별 선수들이 나와서 다승제를 펼치는데 전통의 강호 화기중대를 넘기에 1중대 씨름 대표들은 다소 연약한 느낌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철환 1중대장이 슬며시 나서서 4소대장의 기를 살려줬다.

“아니야. 4소대장. 잘했어. 경기 결과도 중요하지만 4소대장이 누구보다 노력했다는 거 이 중대장은 잘 알고 있다고. 솔직히 이번에 4소대장 다시 봤어.”

“중대장님께서 또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술 한 잔만 따라 주십시오.”

“좋아, 내가 술 한 잔 따라주지.”

김철환 1중대장이 소주병을 들었다. 4소대장이 재빨리 달려와 소주잔을 내밀었다.

“크으, 아까까지 소주가 참 썼는데, 이번에는 참 달달합니다.”

4소대장의 너스레에 옆에 있던 장재일 2소대장이 인상을 팍 썼다. 분위기도 띄울 겸 4소대장이 자청해서 재롱을 떠는 중이지만 장재일 2소대장은 그저 김철환 1중대장에게 잘 보이려고 환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랄하네, 썩을 놈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모습을 김철환 1중대장이 봐 버렸다.

“야, 2소대장.”

“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 그럼 자, 한잔해!”

“아닙니다, 벌써 많이 마셨습니다.”

“인마, 중대장이 따라주는데 어서 받아!”

“네.”

장재일 2소대장은 어쩔 수 없이 술을 받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그런데 술을 다 마시지 않고, 밑 잔을 좀 남겼다. 그것을 본 김철환 1중대장이 인상을 썼다.

“뭐야, 2소대장. 술 마시는 것이 상당히 불량하다.”

“죄송합니다. 제가 내일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죠.”

“그래서 중대장이 따라준 술은 안 마시겠다. 이거야?”

“아닙니다. 마시겠습니다.”

장재일 2소대장이 살짝 인상을 쓰며 술잔에 남은 술을 마저 털어 넣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왜 이래? 평소에는 잘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장재일 2소대장이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뒤집었다. 그런데 장재일 2소대장의 불만 가득한 표정이 다시 한번 김철환 1중대장을 자극했다.

‘이 새끼 봐라? 3중대장하고 놀아났다고 해도 그냥 넘어가 줬는데 왜 저따위 표정을 지어서 회식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그래! 내가 우스워? 그래 너 잘 걸렸다.’

김철환 1중대장이 속으로 빠득 이를 갈았다. 3사 출신이라고 하도 자격지심을 부려서 그동안 오냐오냐했더니 버릇이 나빠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장재일 2소대장의 버릇을 제대로 고쳐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선 김철환 1중대장이 옆에 있던 오상진에게 슬쩍 말했다.

“상진아.”

“네.”

“너 2소대장하고 자리 바꿔.”

“네?”

“2소대장하고 자리 바꾸라고.”

그 말에 오상진은 대충 눈치를 챘다.

“아, 중대장님. 또 왜 그러십니까?”

“바꾸라면 바꿔!”

김철환 1중대장이 무서운 얼굴로 말하자 오상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상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이 장재일 2소대장을 불렀다.

“2소대장.”

“네.”

“이리 와서 내 잔 받아.”

순간 장재일 2소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철환 1중대장이 작심하고 자신을 갈구려는 걸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인 군대에서 옆에 앉으라는 김철환 1중대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후우…….”

장재일 2소대장이 착잡한 얼굴로 오상진과 자리를 맞바꿨다.

“자, 마셔!”

김철환 1중대장이 장재일 2소대장의 술잔에 술을 따른 후 지켜봤다.

“중대장님…….”

“마시라고!”

김철환 1중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네.”

장재일 2소대장이 어쩔 수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인상을 찡그리며 안주로 삼겹살을 먹으려 할 때.

“장 소위.”

“네?”

“나한테 불만 있어?”

“아닙니다. 불만 없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너 인마 그러면 안 되지.”

김철환 1중대장은 술자리를 빌려, 장재일 2소대장을 갈구기 시작했다.

순간 주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야야, 다들 조용히 술 마시자.”

조금 전까지 왁자지껄했던 회식 분위기는 어느새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며 자기들끼리 조용히 술과 고기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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