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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리셋 오 소위-146화 (146/1,018)

인생 리셋 오 소위! 146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8)

“나도 너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집안 형편이 안 좋았잖아. 솔직히 말해서 나도 친구 별로 없어. 어울리더라도 몇 명하고만 어울렸지.”

김철환 1중대장이 말은 저렇게 했지만 육사 시절 인기스타였다. 오상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예쁜 형수까지 얻으셨으면서.’

지금은 비록 고인이 됐지만 김철환 1중대장의 장인은 대대장까지 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투병 생활로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다져 놓은 인맥은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지금도 장인어른과 친분이 있던 분들이 김철환 1중대장을 눈여겨보는 거로 알고 있었다.

만약 육사 시절에 김철환 1중대장 같은 친구를 만났다면 괜히 자격지심에 싫어졌겠지만 회귀를 해서일까. 유복한 환경이 김철환 1중대장을 배려심 깊은 참 군인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잠시 상념에 빠졌던 오상진이 축구장으로 시선이 향했다.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와중에 감독이란 자가 한눈을 팔아서야 병사들이 경기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잠깐 소강상태였던 경기는 1중대 공격형 미드필더 김일도 상병의 활약으로 확 변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 패스 길목을 차단해 공을 빼앗은 김일도 상병은 곧바로 몸을 돌려 멋지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다가 앞에서 움직이는 김이중 상병을 확인한 후 중앙으로 패스를 깊게 넣었다.

김일도 상병의 움직임에 달려나왔던 수비수들은 허를 찔렸고 노마크 찬스가 난 김이중 상병은 공을 잡아두지도 않고 그대로 앞발로 툭 밀어쳐서 상대팀 골망을 갈랐다.

“좋아! 좋아! 이래야 축구지!”

동점 골을 숨죽여 기다리던 김철환 1중대장이 주먹을 움켜쥐었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오상진의 얼굴에도 안도감이 번졌다.

이후 양 팀은 골을 주고받았다.

2중대가 세트 피스 상황에서 나온 찬스를 살려 다시 앞서가자 1중대도 킹리 김이중 상병의 개인 돌파에 이은 중거리 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러자 곧바로 2중대가 반격에 나서서 세 번째 골을 집어넣었는데 전반 종료 직전 김일도 상병이 찬 공이 수비수에 굴절되고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가면서 극적인 동점이 만들어졌다.

전반전 스코어 3 대 3.

군대 축구답지 않게 수준 높은 경기였다.

전반을 마친 선수들은 각자 진영으로 가서 잠깐 동안 휴식을 취했다.

오상진은 막간을 이용해 선수들을 독려했다.

“얘들아, 잘하고 있다. 우리 전반전처럼만 하자. 설마 벌써 지친 것은 아니지?”

“에이, 하나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전반은 살살 뛰었지 말입니다.”

“그런데 2중대 은근히 잘 뜁니다. 패스의 질이 좋습니다.”

“그래 내가 봐도 그렇더라. 우리보단 못하지만 확실히 2중대도 축구 실력이 제법이야.”

“그런데 우리 너무 얌전하게 축구 하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화기중대하고 할 때하고는 느낌이 다릅니다.”

“그래도 서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자. 다들 알지? 우리 중대장님과 2중대장님 친한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전반에 한 것처럼 살살 하다가 한두 골 차이로 이기는 그림이었으면 좋겠어. 너무 일방적인 건 곤란해.”

“네. 알겠습니다.”

경기 시작 전 오상진은 선수들을 불러 놓고 착한 조작을 주문했다.

김철환 1중대장과 2중대장의 사이가 원만한데 너무 골 욕심을 냈다가 두 중대장의 사이가 서먹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선수들도 평소 2중대장이 1중대를 자기 중대처럼 챙겨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우 3중대장의 습격으로 잠이 부족한 1중대원들에게 다음 날 초고속 취침을 허락해 준 것도 다름 아닌 2중대장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은 2중대와 적당히 균형을 맞추며 경기를 이어 나갔다. 덕분에 경기가 다소 심심하긴 했지만 모처럼 화기중대와의 거친 몸싸움에서 해방된 선수들의 표정은 대체로 밝았다.

반면 2중대 축구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3소대장 박 소위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야, 새끼들아. 경기 막판에 그걸 왜 놓쳐? 조금만 집중했으면 골 안 먹었잖아. 어휴 이 멍청한 놈들아!”

3소대장은 마지막 실점 장면을 두고 5분 가까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것만으로 화가 풀리지 않았던지 나중에는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하며 질책했다.

“…….”

“강 상병.”

“네.”

“이 새끼 공 좀 찬다고 공격수 시켜줬더니 그거밖에 못 해? 아까 네가 그 골만 넣었어도 우리가 전반전을 1골 차로 앞서면서 끝났잖아. 그럼 후반전에서 좀 더 여유롭게 할 수 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박 일병!”

“네.”

“너 자동문이야? 왜 거기서 알을 까!”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죄송할 짓을 왜 하냐고. 네가 알만 까지 않았어도 지금쯤 우리가 크게 앞서갔을 거 아냐!”

“…….”

3소대장의 질타가 이어질수록 선수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축구로는 대대에서 수위를 다투는 1중대를 상대로 전반을 동점으로 끝냈다면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정작 3소대장의 성에는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2중대장이 참지 못하고 나섰다.

“야, 3소대장.”

“네.”

“잘하고 있는 선수들은 왜 그렇게 갈궈?”

“갈구는 거 아닙니다. 더 잘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니까 야단을 치는 거죠.”

“적당히 하자. 진짜 무슨 전투 하니?”

“아, 중대장님 자꾸 그러실 거면 저쪽에 가 계십시오.”

“야, 인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중대장인데.”

“현재 2중대 축구팀 감독은 접니다. 그냥 절 믿고 저쪽에 가 계십시오.”

3소대장이 2중대장을 한쪽으로 몰았다. 2중대장은 살짝 자존심이 상했지만 여기서 발끈했다간 가뜩이나 엉망인 분위기가 더 망가질 것 같아 못 이기는 척하고 저만치 물러나 주었다.

“어휴, 이깟 축구가 뭐라고.”

3소대장은 2중대장이 저만치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잔소리를 이어갔다.

“이 새끼들이 어딜 봐? 다들 정신 안 차리지?”

“아, 아닙니다.”

“내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너희들 1중대에게 지면 가만 안 둔다. 진짜 다 뒤지는 수가 있어.”

3소대장이 인상을 팍 썼다. 그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들은 저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쉬는 시간 얼마 남았어?”

“이제 5분쯤 남았습니다.”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할 테니까 제발 잘하자! 알았어?”

3소대장이 그 말을 남기고 2중대장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침묵을 지키던 선수들의 입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아니, 이만큼 했으면 됐지 뭘 더 하라는 거야?”

“우리 정말 잘하지 않았습니까?”

“야. 1중대 상대로 동점이면 엄청 잘한 거야. 솔직히 1중대가 좀 봐준 점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나 되니까 이만큼 한 거라고.”

“그런데 3소대장은 왜 저럽니까?”

“이해해라. 3소대장이 오 소위에게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잖아.”

“아, 진짜 그렇습니까? 그 소문이 사실이었습니까?”

“말도 마라. 3소대에서 누군가가, 오 소위님 칭찬했다가 일주일 동안 갈굼을 당했단다. 그 친구 그 이후로 오 소위의 ‘오’ 자도 입에 올리지 않잖아.”

“와, 진짜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이상합니다.”

“야, 막말로 소대장 중에서 사이코 아닌 새끼가 어디 있어. 다 똑같은 놈들이지.”

“그래도 오 소위님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나마 나은 사이코지, 저 정도면. 하지만 또 모르지. 저 인간도 우리 안 볼 때 뭔 짓을 할지.”

“아…….”

선임의 한마디에 후임병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쉰 것 같지 않은 휴식이 끝나고 작전장교의 휘슬과 함께 후반전이 시작됐다.

후반전 시작 5분이 지난 시점부터 3소대장의 거친 고함이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차! 차라고! 새끼야. 뭐 하고 있어. 인마, 그쪽이 아니잖아.”

대승을 거둬도 시원찮은 판에 후반 들어 밀리고 있으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이 든 것이다.

반면 오상진은 제 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좋아! 잘하고 있어. 그래, 그렇게만 해.”

가끔씩 선수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엄지를 들어 올리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찌 보면 감독의 스타일이 다른 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차이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

후반전 20분을 남길 무렵 너무 과하게 뛰어다녔던 2중대 선수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야, 새끼들아 안 뛰어. 빨리 뛰란 말이야.”

3소대장은 선수들이 요령을 피운다며 호통을 쳤다. 그전까지 체력을 비축하며 균형을 맞추던 1중대가 경기를 끝내기 위해 페이스를 끌어올리니 상대적으로 2중대 선수들의 모습이 더욱 굼떠 보였다.

반면 미드필드 지역에서 부지런히 패스를 주고받으며 점유율을 높여 나가던 1중대 선수들은 오상진의 사인이 나길 기다렸다.

그러다 공이 사령관인 김일도 상병에게 이어지고 김일도 상병은 잠시 공을 멈춘 뒤 주변을 돌아보는 척하다가 오상진을 바라봤다.

‘이제 시작해도 됩니까?’

그런 김일도 상병의 시선을 느낀 오상진이 히죽 웃고는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좋아, 가라!’

그때부터 1중대 축구팀은 180도 달라졌다.

조직적인 플레이야 여전했지만 좀처럼 골 욕심을 내지 않던 김이중 상병과 이근호 병장이 집요하게 골을 노리기 시작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3골을 넣어버렸다.

그사이 2중대는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점수가 6 대 4로 벌어지자 김일도 상병은 손짓을 하며 미드필더 라인을 끌어내렸다.

오상진이 지시한 대로 더 이상 점수 차이를 벌리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2중대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고 경기 막판에 기어코 한 골을 따라붙었다.

6 대 5.

이대로 공을 지킨다면 승리야 확실하겠지만 봐줘도 너무 봐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상병님. 이제 한 골 차이입니다.”

“이대로 계속 수비만 할 수 없습니다.”

김일도 상병이 잠시 생각을 했다.

“그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했어. 모두 흔들어 놔봐.”

“네. 알겠습니다.”

김일도 상병의 말에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깐 중앙에서 혼전이 벌어졌는데 2중대의 패스를 잘라낸 김일도 상병이 단독으로 내달리며 오늘 경기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다.

무려 30m나 이어진 드리블에 이은 골키퍼와 1 대 1 단독 찬스!

“절대 골은 못 준다.”

2중대 골키퍼가 호기롭게 소리쳤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일중 상병은 골키퍼 머리를 살짝 넘기는 칩샷을 날렸고.

“어어!”

2중대 골키퍼가 당황하며 손을 뻗었지만 공은 골키퍼의 키를 넘어 골대 안으로 데구르르 굴러 들어갔다.

“와아아아아!”

“김 상병님 멋있습니다.”

공격 2선에서 어시스트만 6개를 기록했던 김일도 상병의 입가를 타고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경기는 7 대 5, 1중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2중대장이 웃으며 김철환 1중대장에게 다가갔다.

“대단합니다. 역시 1중대 축구는 강합니다.”

김철환 1중대장 역시 환하게 2중대장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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