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오 소위! 144화
16장 지고 싶지 않아(6)
“네. 알겠습니다.”
이근우 병장은 평소에 안 하던 청소 감독까지 해가며 분대원들을 독려했다. 분대원들도 괜한 꼬투리를 잡힐까 봐 평소보다 열심히 문지르고 쓸고 닦아댔다.
그럼에도 이근우 병장은 불안했다.
군대에서는 아무리 깨끗이 청소한다고 해도 꼬투리를 잡으려고 마음먹으면 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21시 30분 저녁 점호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대 차렷!”
당직사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부대 안에 울려 퍼졌다.
“충성대대 일석점호 인원보고…….”
당직사관이 보고가 끝이 나고 이대우 3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점호를 실시한다. 점호는 화기중대부터!”
“점호는 화기중대부터!”
이대우 3중대장은 힐끔 1중대 쪽을 보았다.
‘후후, 너희들은 제일 마지막이다.’
이대우 3중대장의 입가로 살벌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화기중대부터 빠르게 점호가 이어졌다.
“청소는?”
“다 했습니다.”
“아픈 인원은?”
“없습니다.”
“그래, 푹 쉬어라.”
본래라면 대충 눈으로라도 훑어야 했지만 이대우 3중대장은 간단히 보고를 받는 식으로 점호를 진행했다. 그리고 채 15분 만에 모든 중대를 돌고 난 뒤 1중대에 도착을 했다.
“야, 이 병장.”
“병장 이상희.”
“점호 준비 확실히 다 했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 어디 볼까?”
그러면서 이대우 3중대장이 주머니에서 흰 장갑을 꺼내 손에 꼈다.
순간 이상희 병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흰 장갑을 꺼냈다는 것은 점호를 끝내지 않겠다는 의도와 같았다.
‘시발. 3중대장에게 단단히 찍혔네.’
잠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던 3중대장은 히죽 웃으며 화장실로 갔다.
“야, 화장실 청소 담당 어느 소대야!”
“1중대 3소대입니다.”
“그래? 분대장 불러와.”
“네!”
곧바로 3소대장 이근우 병장이 나타났다. 3중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콧방귀를 꼈다.
“야, 이 병장.”
“병장 이근우.”
“3소대가 화장실 청소 당번 맞아?”
“네, 그렇습니다.”
“청소 제대로 했어?”
“네, 제대로 했습니다.”
“확실해?”
“네, 확실합니다.”
“그래, 알았어. 야, 당직사관!”
“병장 이상희.”
“가서 쓰레받기 좀 가져와.”
“알겠습니다.”
잠시 후 이상희 병장이 쓰레받기를 가지고 왔다.
이대우 3중대장이 쓰레받기를 들고 음험하게 웃었다.
“분명 제대로 청소를 했다고 했다?”
“네, 넵. 그렇습니다.”
“좋아. 어디 청소 상태 좀 볼까?”
잔뜩 긴장한 이근우 병장을 약 올리던 이대우 3중대장이 쓰레받기로 바닥을 쭉 훑었다.
“어라? 청소 제대로 했다고 했냐?”
“네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물기는 뭐지?”
“무, 물기 말입니까?”
“그래 여기 물기 말이야. 화장실 바닥에 물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나?”
“아, 아닙니다.”
“이래놓고 청소 다 했다고 했나? 점호 준비가 다 끝났다고 했냐 말이야.”
“아닙니다.”
“이거 완전히 엉망진창이네. 엉망진창이야. 뭐든지 제대로 청소를 하고 했어야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다, 다시 하겠습니다.”
“그럼 3소대만 나중에 다시 점호한다, 이상!”
이대우 3중대장이 입꼬리를 올리며 지나갔다. 반면 이근우 병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시발…….”
그리고 내무실로 가서 말했다.
“야, 화장실 청소 누구야?”
“일병 박가람!”
“애들 데리고 가서 물기 전부 다 없애!”
“아, 알겠습니다.”
박가람 일병과 그 밑에 후임병이 후다닥 움직였다. 이근우 병장은 잔뜩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아, 젠장! 오늘 잠자긴 걸렀네.”
그사이 이대우 3중대장은 2소대를 지나 1소대 점호를 시작했다.
“김대식.”
“병장 김대식.”
“청소 확실하게 했나?”
“네, 그렇습니다.”
“그래? 과연…….”
이대우 3중대장은 내무실 문 창틈에 흰 장갑을 낀 손을 쓰윽 하고 움직였다. 그러고는 장갑에 묻은 먼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야, 김대식!”
“병장 김대식.”
“제대로 청소한 거 맞아?”
“…….”
김대식 병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대우 3중대장의 흰 장갑이 눈에 띌 정도로 검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오 소위 소대라서 기대했는데 1소대도 엉망이고만. 엉망이야. 이래도 놓고 청소를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나!”
“아닙니다.”
“1소대 역시 점호는 10분 후에 다시 한다.”
이대우 3중대장은 다시 걸음을 옮겨 2소대로 갔다. 그러다 낯익은 얼굴들을 확인하고는 간단히 점호를 하고는 물러났다.
반면 4소대는 청소도구함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다시’를 명받았다.
“1중대 1소대, 3소대, 4소대는 점호가 끝나고 당직사령이 지시한 것을 깨끗하게 마무리한 후 보고를 한다. 그때까지 점호는 끝나지 않는다. 이상!”
이대우 3중대장은 회심의 미소를 남기고 상황실로 갔다. 이근우 병장은 전투모를 벗어서 침상에 던졌다.
“에이, 시발! 저거 분명히 꼬장이야. 꼬장이라고!”
“와, 그럼 진짜 화장실에서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 제기랄!”
“이제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떻게 해. 까라면 까야지.”
“오늘 잠은 잘 수 있습니까?”
“젠장할. 나도 모르겠다.”
이근우 병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3중대장이 당직사령을 설 때마다 1중대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긴 했지만 오늘은 확실히 작심하고 괴롭히는 느낌이었다.
더 웃긴 건 그 와중에 2소대만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1중대 1소대, 3소대, 4소대는 다 걸렸는데 왜 2소대만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이근우 병장이 인상을 썼다.
“몰라 인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빨리 지적당한 곳 청소나 해.”
“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의 지적이 더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대우 3중대장이 소리쳤다.
“다시! 10분 후 다시 점호를 받는다.”
병사들이 10분 후 모든 것을 해결하면 또 다른 곳을 지적하며 점호를 끝내주지 않았다.
“다시! 다시! 다시!”
1소대, 3소대, 4소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점호는 밤 23시가 넘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1중대를 한바탕 휘저어놓고 나면 이대우 3중대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황실에 앉아 TV를 켜 놓은 채 느긋하게 휴식을 즐겼다.
“크크크, 이 자식들. 죽을 맛일 거다.”
당직사관인 이상희 병장은 그런 이대우 3중대장을 보며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날 점호는 거의 24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현재 시각 23시 58분. 24시까지 모두 마무리 짓고 취침에 들어간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중대는 다 취침에 빠졌지만 1중대, 특히 2소대를 제외한 1소대와 3소대, 4소대는 분한 마음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놔! 시발!”
이근우 병장이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참으십시오. 전 잠도 못 자고 근무 나가야 합니다.”
강우석 상병이 장구류를 입으며 말했다.
“하아, 진짜 중대장이 되어서 저런 꼬장을 부리다니.”
“이대로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일 우리 중대장님께 말해야 합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알겠다. 일단 어서 자라. 피곤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소등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소대의 불이 꺼지고 평소보다 요란한 코골이 소리가 내무반을 무겁게 울렸다.
다음 날.
어제저녁 점호의 참상이 오상진의 귀에 들어갔다.
오상진은 곧바로 김철환 1중대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뭐야? 3중대장 그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냐? 어쩐지 오늘 아침에 애들 전부 피곤해하더니.”
“저도 이야기 듣고 좀 당황했습니다. 3중대장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데…….”
“뭐가 그럴 분이 아니야? 그 새끼 원래부터 그리 생겨 먹었어. 그래서 내가 싫어했던 거라고.”
지난 전술 훈련 이후로 김철환 1중대장은 이대우 3중대장을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그전까지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대우 3중대장이 자꾸 권위에 도전하듯 기어오르니 김철환 1중대장도 더 이상 얌전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어쨌거나 병사들이 피곤해해서 큰일입니다.”
“아무래도 좀 쉬게 해줘야 할 거 같은데. 오늘 훈련 뭐냐?”
“그나마 다행인 것이 오늘 정신교육이 잡혀 있습니다. 그때 애들 좀 쉬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오늘 정신교육 담당이 나지?”
“네.”
“봐서 1절만 하고 빠질 테니까 애들 좀 자게 둬. 그렇다고 군기 빠지게 두진 말고.”
“눈치껏 빠져 주면 알아서 잘 잘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김철환 1중대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자꾸 화가 치미는지 갑자기 주먹을 움켜쥐었다.
“상진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3중대장에게 가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어.”
“에이. 또 왜 그러십니까?”
“그래. 그것보다 돌아오는 당직사령 때 나도 3중대 자정까지 점호해야겠다.”
김철환 1중대장의 표정을 보니 빈말로 하는 소리 같진 않았다.
“그러시면 3중대장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오상진이 냉큼 김철환 1중대장을 말렸다.
“야, 그럼 이대로 계속 당해야 해? 아니, 무슨 이유라도 있어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이건 도가 지나치잖아?”
“실은 이 말씀은 안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죠. 사실 지난 수요일 저녁에 3중대장, 5중대장, 화기중대장 이렇게 셋이 만났다고 합니다.”
“뭐? 정말이야?”
“네. 솔직히 체육 대회 앞두고 세 중대장이 만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왠지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서 작전 장교인 차 중위를 심판으로 세워 달라고 작전과장님께 부탁드렸던 겁니다.”
“아하, 그래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던 거야?”
“네. 그리고 결과가 뜻대로 나오지 않으니까 아마 저런 식으로 화풀이를 한 것 같습니다.”
오상진이 나직이 말했다. 하지만 김철환 1중대장은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사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저러는 거야?”
“그건 저도 솔직히 좀 실망스럽습니다.”
“후우……. 일단 무슨 말인지 알겠다. 축구도 이겼고 하니까 이번 한 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은 없어.”
“네. 저도 다음에는 참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3중대장 마음에 안 들어. 승부욕 부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도대체 얼마나 진급을 하려고 저러는 거야?”
김철환 1중대장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참, 우리 축구 다음 상대가 누구야?”
“2중대입니다.”
“오, 2중대가 올라왔어?”
“네. 7중대랑 연장전까지 치르고 힘겹게 올라왔습니다.”
“이야. 그 경기는 재미있었겠네.”
“듣기로 상당히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일단 결승까진 무난하겠네?”
“……네?”
“상대가 2중대라며. 우리가 2중대보단 한 수 위 아니냐?”
“그래도 경기는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그래. 해봐야 알겠지. 그래도 우리 오상진이. 이길 수 있겠지?”
김철환 1중대장이 오상진의 어깨를 툭 쳤다.
거기서 차마 모르겠다고 대답할 순 없는지라
“넵! 꼭 이기겠습니다.”
오상진이 김철환 1중대장이 원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준결승전이 벌어졌다.